〈 71화 〉 세계수1
* * *
"여기서부터는마차를탈수없을거다."
세계수앞에있는마을은,나무냄새가인간의냄새를뒤덮고있었다.
"이제,정말얼마남지않았네..."
"신성한땅이다.네게이런말을할자격은없는나지만...주의해라.다른엘프들은네은원에대해알지못할테고,이해하려들지도않을테니까."
네르웬의말에,나는고개를끄덕였다.주위에서조금따끔한시선이느껴졌다.
모습을드러내지는않았지만아마이곳의엘프일것이다.
"싸우러온것도아니고,그냥몇가지물어보고나오면되는일이야."
불사조에대한단서도중요했지만,지금당장네르웬의상태를정신으로돌리는것도중요한일이었다.
그녀가어찌되든나와는상관없는일이라고생각했고,꽤오랜시간그건사실이었다.
하지만네르웬이나를보는시선은점점이상해지고있었다.
"일단들어가게되면,전부나와떨어지지마라.엘프들은침입자에게관대한이들이아니다."
말투는달라지지않았지만,그눈은달라졌다.
내가그녀와여행한시간은,객관적으로봤을때그리길다고는할수없는시간이다.엘프의수명을생각하면더더욱그랬다.
하지만그녀가어떤생각을가지고행동하는지정도는알수있었다.
네르웬이다른인간들을어떻게대하는지,어떤생각을가지고활시위를당기는지.
그리고지금네르웬은,마치다른사람이라도된것처럼움직였다.
"...질생각은없습니다."
"그야그렇겠지,황녀.하지만네르웬의말이옳다.엘프의숲에서그들에게상처하나라도냈다간,승리도실패와마찬가지다."
다른사람이본다면,아니내가보기에도네르웬의눈은묘하게달라져있었다.
눈이마주치지는않았지만,그녀는나를보고있었다.언제부터였는지는모르겠다.
오크로드를죽이기전에는아예얼굴조차보지않았으니그녀가어떤상태인지몰랐다.
하지만다른사람들이들어오고마차에사람이들어차며,나는그녀의이상성을깨달을수있었다.
"읏."
생각에빠져있다가잠깐발을헛디뎠다.넘어질정도는아니었지만,잠깐균형을잃기에는충분했다.
"길이좀험하군...괜찮은가?"
네르웬이다급하게뒤를돌아봤다.아무일도아니라는것을확인한다음,그녀는아무일도없다는듯이다시고개를돌렸다.
"...계속가자."
지금도그렇다.대지에솟아난풀과나무는엘프의자랑이다.
흔한일은아니었지만,엘프의손길이들어간초목을볼때마다그녀는저게얼마나신성하고위대한존재인지다른동료들에게떠들곤했다.
물론그위대함을이해할수있는것은파시어밖에없었지만,적어도그녀에게는자랑스러운물건이다.
하지만방금드러난그녀의눈을보면,그녀는나를걱정하고있었다.내착각일지도모르겠지만심지어그세계수의초목들을부끄럽게여기고있었다.
이상했다.그녀답지않았다.
차라리마약중독자처럼헉헉거리는편이나았다.적어도그때는,무엇이그녀의생각이고무엇이그녀의충동인지는구분할수있었으니까.
처음나와'거래'를할때까지만해도,네르웬은네르웬이었다.그녀답지않을정도로고개를숙이고있긴했지만,그녀는오만할뿐멍청이는아니었다.
그저칼자루를쥔사람에게복종을맹세하는것뿐,그이상은아니었다.
그순간마저도그녀는진심으로사과하지않았다.나도그걸모르지않았다.
"조금만견뎌라.너를걷게하는건미안하지만..."
하지만지금그녀의눈은이상하다.
마치그녀가처음의심했던대로,내가그녀에게최면이라도걸고있는것같다.
어느순간부터네르웬이라는인격체가흔적도없이사라져,다른사람이그녀의역할을대신하고있다고해도믿을것같다.
관심받는것이,사랑받는것이싫다고하면거짓말일것이다.과거를잊어두면네르웬은몸매좋은엘프였으니까.
엘프들은마치컴퓨터그래픽으로만들어진생명체처럼,'어떤생명체가아름다운지'를현실로구체화시킨존재였다.
때나먼지는그저그녀가손을들어쓸어내리는것만으로도사라졌으며,인간이라면당연히가져야할흠이전혀존재하지않았다.
하지만하필그게네르웬이라면,과거를잊을수없다.반성도사과도없이나를사랑한다는건,누가봐도어색하고불합리하다.
좀잔인한생각이지만,네르웬이어떤저주를받아죽어가더라도내알바는아니었다.
어쩌면,내손으로죽였을지도모른다.서서히무언가에먹혀가며자신이아닌누군가가되는것과무딘칼에맞아온몸이부서지며죽는것,어느것이더불행한일이라고말하기는어려웠다.
지금은그런짓까지해가며싸우고싶지는않았지만,어디서그녀가무엇을당하든크게관여하고싶은마음은없었다.
하지만,둘다라면.
진심으로사과하지도않은그녀가,어느순간갑자기사라져서,자신의의사도아닌어떤이유를통해나를사랑하게된다면.나는기뻐할수없었다.
정말로어떤저주나마법때문에그녀가갉아먹히고있다면,아무리그녀의불행이즐거운일이라도기뻐할수없었다.
네르웬은반성하지않았다.적어도그것만큼은확실히단언할수있다.
내가용사라는사실을깨닫고조금후회할수는있겠지만,그녀는다른짐꾼을만났을때그녀가했던행동을똑같이반복할것이다.
하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그녀가나를사랑하고진심으로헌신하고있으며,그게'저주'때문이라면.
네르웬의감정이그렇게약하고,정말그녀의감정을이용하거나조종하려는세력이존재한다면.
그녀가내게했던짓마저,'네르웬의의도가아니었을가능성'이생겨버리게된다.
그래서는안된다.냄새고뭐고,그녀가한짓은분명그녀의본질이었다.빠져나갈구멍이있어서는안된다.
하지만그조그마한가능성이생기는것만으로도,나는지금처럼그녀를원망하지못하게될것이다.
가슴이답답했다.
/////
"쓸데없는짓하지마라."
"하,하지만..."
내모습에트라우마를느끼는건기분나쁘지않았지만,지금엘레노어가무언가하려고하는것은민폐였다.
"셀리아,엘레노어의치료는아직이야?"
"거의다끝났어요.몸이곳저곳의뼈가다부러져있어서..."
좀심했던걸까.모험중에는,정말죽음직전의상처라도며칠만에처리하던성녀였는데.
거대한마물의발톱이배를질러피가흥건해졌을때도,거대한대도에팔이잘려나갔을때도이렇게오래걸린적은없었다.
그러고보면,성녀도어느샌가다시눈을가리고있었다.
"환자를데리고다니고싶었던건아닌데..."
이제와서그들과화해하고싶은것도아니고,세레스의말대로데리고다니면서직접복수하고싶은마음도없었다.
정확히는어떻게해야할지몰랐다.복수하기위해서는,무엇을해야하는건가.
때리는것은황궁에서많이해봤다.남은것은그녀들을죽이는것밖에없다.
하지만죽은사람은돌아오지않는다.그들중하나라도죽인다면,내귀환은거의불가능에가까워질것이다.
그녀들을죽여서완성하는복수는,그만한가치가있을까.용사파티원들이없는이이세계는그만큼행복할까.
그렇다고해도,그녀들은필요때문에데리고다니는것이다.혹시나몸이완치되지않은엘레노어가사고로죽거나,성녀를잃게된다면그건큰손해다.
차라리제국으로돌려보내는편이나을지도모른다.
"이,이제다나았다!그짐을이리다오!"
"저,저도괜찮아요!이거,그냥...풀수있어요..."
하지만두여자는깜짝놀란듯고개를저으며,그들의쓸모를어필했다.
"상관없어."
엘레노어가전전긍긍한이유는뻔했다.내등뒤에매여있는거대한짐만해도,그녀를불안하게만들기충분했을것이다.
사실,그렇게무겁지는않았다.
마왕을무찌를마법재료와무기를챙기고보급없이긴여행을떠나야했던용사파티때에비하면이건그저여행배낭수준에불과했다.
내강해진힘까지생각하면,등에무언가지고있다는감각외에다른것은느껴지지않았다.
하지만,기억나는건어쩔수없다.
세레스가더해지긴했지만,용사파티네명이그대로내옆에있다.그사이로짐을들고움직이고있는내가있다.
엘레노어가다낫지않은몸을이끌고다가오는것도,이해할수있는일이었다.
"됐어."
고개를돌렸다.꽤멀리서부터보이던저거대한나무는,그압도적인크기로위압감을뿜어내고있었다.
살아있었다.거대한폭포나산에서느껴지는웅장한감각을넘어선감각이었다.
고층빌딩이숨을쉬고,살아움직이면저런풍채를가질수있을까.이근처에는인간이면서세계수를숭배하는사람도있다고했는데,어느정도는그들을이해할수있었다.
"음..."
하지만내감동과는별개로,그세계수의자녀들은불청객을환호로맞이해줄생각이없는것같았다.
시선들은점점경계를넘어,따끔할정도로내정신을자극했다.
활을든엘프들이나무사이로하나둘씩모습을드러냈다.
"동행인이많으시군요,네르웬."
마치내존재따위에는관심도없다는것처럼,그들은선두에선네르웬에게말을걸었다.
"무,무례를범하지마라!"
네르웬은누가봐도당황했다는것처럼얼굴을붉히며내눈치를살폈다.당연히,엘프들은나를더맹렬하게경계했다.
쉽지않을것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