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70화 (70/217)

〈 70화 〉 인내­9

* * *

"따라오고있다.어떻게하면되겠나,에네렐?"

마차위에올라가 있는 네르웬은 경계를늦추지않은채상황을보고했다.

"역시그런가..."

상인, 혹은 귀족으로 보였던 그 여자도산적이있을지없을지는확신할수없다.

당장현대에서도배달이하루늦으면불평하는사람이한둘이아니다.상인이불안정한위험때문에시간을낭비하는것은막대한손실이다,

그렇다면,그녀가할수있는최선의수는그걸확인하는것이다.

"스,습격할까요?"

"그럴생각이있었으면아까했겠지."

전력으로질주하는마차를뒤에서습격하는것보다,멈춰있었을때급습하는편이어떻게봐도더현명한선택이다.

물론우리전력은그녀의행렬에비할바가아니었지만,적어도겉으로보이는머릿수는훨씬적다.

"우리가지나가서안전을확인한다면,그녀도따라올생각일거다."

더효율적인방법이있었다.

우리에게아무것도알려주지않은다음잠깐멈추고,지금하는것처럼우리뒤를조심스레따라오면된다.

이마차도나름대로값비싼마차였으니,산적이욕심내지않을리없었다.만일이마차를통과시켜준다해도 적어도길을막고급습하는방법은택하지못한다.

그녀는온전히호의를베풀어,내게이앞이위험하다는정보를알려준것이다.

"산적은있나?"

"있어.볼수없으니정확한규모는모르겠지만...강해보이지는않아."

네르웬의감각은 이런산골의도적따위가피할수있는영역을 벗어난 능력이다.

이곳저곳이인간냄새로가득찬도심지나마을안이라면모를까,숲에들어간인간냄새는그녀에게역겹고강렬하게다가올것이다.

조금더앞으로나아가자 네르웬이세레스를불렀다.

"멈춰.앞이막혀있다."

"여기서는안보이는데요?"

"공기의흐름이어색하다.저골목을넘으면막혀있을거다.나무잔해와...돌?죽은지는오래되었지만,여기떨어진지는얼마안되었군."

여기서어설프게시간을끌고싶지는않았다.

저번에네르웬이저지른사고로인해발걸음이늦어진건어쩔수없지만,나도조급했다.

이렇게빠른속도로달려나가는마차가답답하게느껴질정도로.

"계속나아가자.처리할수있지?"

"가능하다."

그녀의말대로더앞으로나아가자,산위에서우릴둘러싸고있는인간들이느껴졌다.

"후..."

마차안에서도느껴지는쇳내와흉험한기색에 나는어기적어기적마차앞으로나와걸었다.

아니나다를까,꽤험악해보이는인상의남자들이이리저리얼굴을내밀고있었다.

"멈춰라!통행료를내지않으면,이곳을돌파할수없다!"

자신만만하게소리치는놈이아마대장인것같았다.

나는멍하니그를바라본뒤,생소한감각을느꼈다.

시시하다.

인간과싸운적이처음은아니었다.

마왕이라는지나칠정도로거대한 공동의 적앞에서,대부분의인간들은우리파티에힘을보태주었다.

하지만모든이들이선한것은아니었다.혼란을틈타자신의욕심을챙기려는사람도있었고,우리들의결정을이해하지못하는사람도있었다.

아예마신을숭배하다가발각된이도있었고,그나마말이통하는마물에게항복하고그들에게협조하는대가로치욕스럽게목숨을부지한이들도있었다.

하지만그들모두,거대한아픔을가지고있었다.

돈을위해습격하는이들은거의없었다.대부분은당장가족이나다른마을사람들을지키기위해우릴습격했고,실패했다.

아무리그게마신이라한들,진심으로그신을섬기는사람들이있었다.가장척박한땅으로몰려난가운데그나마그들에게삶의길을열어준악신을차마버리지못하는이들이있었다.

행복하고안락하게,남에게피해끼치지않으며살다가도갑자기들이닥친마물에항복하지않으면안되는인간들이있었다.

하지만,그들에비해이들은너무작다.키나몸집이아니라,짊어지고있는무게가너무나도옅고희미하다.

어쩌면이것도오만일지모른다.저사람들도나름대로고충이있을수있으니까.

하지만내가보기에그건, 우스울 정도로 사소한이유로보였다.

"...지나가게해주세요.앞으로가야합니다."

저위에있는인간이이말을들어주지않을것임을알고있음에도,나는무심코그말을뱉었다.

어쩌면자신에게변명하기위해서하는말일지도모른다.저사람들의시체를앞에두고,'난그래도평화적으로해결하려했어.'라는탈출구를만들어놓으려고.

내가조금더성실했다면,조금더그들하나하나의생명에집착했다면.

지금당장이라도이절벽을뛰어올라날없는성검으로그들을제압하고,근처에있는마을까지달려가법의심판을받게했을까.

아니면저들중에서도선한사람이있을지모르고,지금악행을저지르는사람중에서도회개할수있는사람이있을지도모른다며진심으로그들을구하려했을까.

"어림없는소리!정가고싶다면,아까마차위에올라탄그엘프년은두고가라!아니,마차안에또어떤계집이있는지확인해야겠다!"

힘이없을때는이런고민을할필요가없었다.

아픈선택을하는사람은내가아니었다.나는엘레노어와파시어에맞서,적어도이사람만은구해야하지않겠냐고호소하고달려들면그걸로충분했다.

지성없는오크를벨때는느끼지않아도되는감각이다.나는빠른길을선택했고,다른것을무시하기로결정했다.

이건,게으름이다.

"마지막으로부탁드리겠습니다.방금그엘프는,혼자서그위에있는모든사람을죽일수있을겁니다."

네르웬은살짝몸을피해,화살에직격당하는일이없도록마차뒤로몸을숨겼다.

"하,어림없는소리!이몸께서는엘프노예도팔아본적이있단말이다!그런식으로겁을주면'아이고무서워라.'하면서속아줄것같았나?"

다양한엘프를만나본건아니었지만,그와나의엘프에대한인식이다르다는것은알수있었다.

대부분의엘프는 그리강하지않다.

물론기본적인신체능력도인간보다훨씬우월하고,그압도적인수명에서나오는경험은무시하기힘들다.

'취미'로검술을100년이상배운엘프가수두룩할지경이니,일반인의기준에서는압도적으로강하다.

하지만,대부분은전투요원이아니다.

정령사로태어난엘프들은태어나면서부터정령을다루지만,검술은인간에비해우월한것이없다.

조경사로태어난엘프들은정말나무와대화하는것처럼식물들을다룰수있지만,그들이가진궁술에는한계가명확하다.

태어나면서부터존재가정해지는이들이고,그목적에따르지않았을때말도안될정도로어설퍼지는이들이다.

그냥엘프도세계수밖의인간이보기어렵다.전사인엘프를본적은아마없었을것이다.

"제발,부탁하겠습니다."

영혼없는간청에 산적이웃음을터트렸다.

정말그가내요청을받아들여자리를피한다면,그건그것나름대로불안한일이생길지도모른다.

다른여행객이습격당했다는소식에내가죄책감을느낄수도있고,굳이멀리까지가지않더라도당장내뒤를쫓아오는친절한여자의행렬이있었으니까.

어쩌면지금도그의거절을바라고있을지도모른다.그게가장일을편하고빠르게끝내는방법이었으니까.정당한싸움에는 뒤탈도책임도없다.

"주둥아리가길구나!"

내게는힘이있다.이검으로깔끔하게목을베지는못할지언정,누군가를때려죽이는건너무나도쉬운일이다.

죽일수있다.내게선택권이있다.나는이들따위에굴할생각이없고,하루빨리돌아가고싶다는욕심이있다.

이게,꼭유쾌한일만은아니었다.

결국내게으름이다.다른이들과어울려살가능성이조금이라도남아있던이들을,나는내가시간이없다는이유로죽이는거다.

그들의인생을,끝내는거다.

"네르웬..."

이런일을얼마나더해야할지도모른다.차라리,지금끝내두는게편할지도모른다.

나는,결정했다.

"죽여."

그말과함께,엘프의화살이그의머리통에박혔다.

비명을지를틈도없었다.마치이마에화살뒤꽁무니모양장식을박은것같았다.

피도그리많이나지않았다.아마그의뒤통수에는빠져나온뇌수와피가흥건할것같았지만,적어도여기서는보이지않았다.

서서히그의다리에힘이풀렸고, 막 생명을 잃은 고깃덩어리가 앞으로고꾸라졌다.

"뭐,뭐야!"

"대장이당했다!우리도반격...크윽!"

안에있는마법사가나갈틈도없었다.그녀가마력을다루는방식에는동의하지않았지만,적어도이수준의적에그녀를소모할필요는없었다.

저지대에있었지만,네르웬에게그건전혀장해가되지않았다.입을여는산적은바로화살에목이나머리가뚫린시체가되었다.

그로테스크한상황을처음보는것은아니었다.시체도,눈앞에서사람이죽는것도많이봐왔다.

그들을동정할이유는없다.굳이내게칼을들이대고진로를막은것을제하고서라도,죽어마땅한이들이다.

억지로그들을생포해서법의심판을받게하더라도,경비대대장에게'직접죽이지왜귀찮게데려왔나'라는핀잔을들을게뻔했다.

"도망쳐!일단뒤로빠져서다른애들을불러와!"

"겨우한명한테도망쳐서어쩔거야!대장의복수를해야...윽."

하지만처음여기에왔을나였다면,이런고민을했을것같지않았다.

사람이죽어야하는마땅한이유를들어그들을죽이거나죽게내버려두는쪽은,내가아니었으니까.

내가지나치게순진했던거다.지금좀흔들리더라도,참아내야한다.돌아가기위해서는어쩔수없는일이다.

그들의비명을뒤로한채,나는길을막은돌덩이와나무토막들을하나둘씩치워나갔다.

세계수가머지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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