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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69화 (69/217)

〈 69화 〉 인내­8

* * *

규칙적인말발굽소리에미쳐버릴것같았다.

황제가준말들은꽤나이름있는품종인 것같았다.말끔하다고는말할수없는길을,무거운마차에사람다섯을이고서도템포를흐트러트리지않고나아갈수있었으니까.

수도근처의평야는슬슬끝이보였고,조금씩언덕과산이보이기시작했다.

그나마골짜기를따라길이이어져있었지만,이런시대의길이평탄하기까지기대하는것은과한욕심이었다.말발굽소리의규칙성과별개로,마차는위아래로흔들렸다.

침묵과 울렁이는 마차, 귀를 자극하는 발굽 소리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네르웬은주위를정찰하겠다며마차위로올라갔다.아직엘레노어의몸이완치되지않았기에,셀리아는계속그녀를안은채치료주문을걸고있었다.

엘레노어는늘우울해했지만,파시어와셀리아는가끔웃거나장난을칠때도있었다.전부,내가없는곳에서만.

나를따돌리는것은아니었다.오히려,내가그들을웃지못하게만들고있었다.

그저침울한표정을짓고있는것만으로도,그들의표정이함께어두워졌으니까.

"얼마나남았지?"

그래도,아무것도하지않은채앉아시간이지나가기를기다리는것은고역이었다.

너무많이물어보는것도무의미한일이될것같았지만,적어도하루에한번은물어보고싶었다.

"그리많이남지않았다.빠르면내일,적어도모레쯤에는도착할수있을거다."

네르웬의목소리가바람소리에섞였다.

"후..."

익숙해져야한다.

세계수는단지,단서를얻기위해들어야하는곳에불과하다.

거기에내가원하는정보가있으리라는확신도없었고,만일명확한정보가있다하더라도다시불사조를찾아떠나야한다.

만일불사조가대륙반대편에있다면,나는이런생활을년단위로해야할것이다.

익숙해져야한다.이마차에서내리지않는일상을받아들여야한다.

돌아가기위해서는어쩔수없었다.

/////

네르웬은향기가가까워지는것을느꼈다.그리운숲이,세계수가느껴진다.

하지만,난생처음으로그녀는그향기에아쉬움을느꼈다.

마차안에서피어오르는그의냄새가조금씩가려지고있었으니까.

"큿..."

지금이라도돌아가야할까.아쉬움을느꼈지만,마차안에서는자신을온전히제어할수없을것같았다.

그의바로옆에서그의냄새를들이마시는것 만으로도,이해하기힘든감각이든다.계속보고싶고,거부하기힘든충동이그녀를덮친다.

차가운분위기때문에마차위에올라간것이아니었다.그냄새를계속맡고있다간,그에게다가갈것같아서억지로거리를둔것이다.

그는'얼마나남았나'라는짧은질문을던진후,다시침묵을지켰다.네르웬은자신도모르게다시그가말을걸어주기를기대하고있었다.

이해할수없다.이렇게되어서는안된다.

세계수의대전사이자태어나면서부터고귀했던그녀가,인간에게이런감정을가져서는안된다.

정찰을소홀히하지는않았다.그녀가진짜힘을발휘할수있게만드는영기깃든화살은얼마남지않았지만,돈으로살수있는인간의잡다한화살들은충분히가지고있었다.

주위를돌아다니는늑대나들개를사냥하는데는,이걸로충분했다.

"왜..."

후회스러웠다.그를멸시한것은다른누구도아닌그녀였다.

나름대로,버틸만큼버텼었다.

전투가정신을갉아먹는건,아무리강한전사라도피할수없는일이었다.광전사처럼전투그자체를즐기는사람도있었지만,그런이들은일정수준이상으로강해지기어렵다.

엘레노어도,파시어와셀리아도,그녀도마찬가지였다.

전장은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일초,아니그반만움직임이늦었다면자신이죽었을지도모른다는상상을하게된다.

그녀의화살이조금이라도늦거나,손이아주미세하게떨려잘못된곳으로화살이나아간다면동료가죽을지도모르는극한의상황이었다.

자연스레손에는힘이들어가고,통제되지않는것을증오하게된다.

용사파티원들이그걸버틸수있었던건,그게힘들지않았기때문이아니라그걸버티고도남을정신력이있었기때문이었다.

혹은,그분노와한탄을토해낼희생양이있기때문이거나.

생사를넘나드는싸움뒤에서혼자싸우지않고도망만치는동료가있다는것은, 분노를토해내기에썩합당해보이는근거가된다.

왜그때마물의공격을피하지못했는가,어째서지나치게뒤로빠져용사파티원들이신경을쓰게만들었는가,혹은과하게앞으로쏠려그들의화살이나마법에방해되는요인이되었는가.

네르웬은항상받들어지는삶을살았다.고귀함그자체인엘프장로보다는조금덜했지만,그건그들의지혜와경험 때문이었다..

세계수가직접목적을가지고키워내어,전사로만들어지길선택받은그녀다.

엘프여왕이건재한지금,그녀보다고귀한혈통의엘프는적어도어린엘프중에서는존재하지않았다.

당연하고마땅하게도,언제나그녀를떠받드는이들이있었다.

세계수안에서는그녀를선망하고그고귀함을존중해주는이들이있었다.세계수밖의인간들은너무나도우둔하고격낮은자들이라,떠받음을받고싶다는생각조차들지않았다.

하지만,용사파티에서는달랐다.

아무리인간의천함을멸시할지언정,하나하나만만히볼수있는이들이아니었다.

황가의피를타고난데다용사이기까지한엘레노어는물론이고,신의선택을받은성녀나그기교와집념으로영생언저리의삶을구현시킨파시어까지.

빈말로라도천하다고말하기어려운자들이다.네르웬이그녀보다우월하다고자신있게말하기어려운이들이다.

선망받고존경받고그혈통에대한대우를받는것이,대우를받지못했을때똑같이타인을멸시하는것이당연했던그녀의삶에서,에네렐은억눌려있던그녀의멸시와혐오를홀로받았다.

그게 이꼴이다.

조금만더그에게유하게대했다면,차라리엘레노어와파시어가그를괴롭히는동안,방관자의자세로아무일없던것처럼그를대했다면.

어쩌면,지금그의옆에앉는것정도는불쾌한내색없이허락해줄지도몰랐는데.

"...무의미한가."

지금그의미가크게달라졌을뿐,그의냄새가그녀를흔드는것은진실이었다.단지,그때는그에대한멸시로눈이멀어있었기에그원인을찾아낼생각을하지않았을뿐이다.

용사파티의여정은아슬아슬했다.엘레노어의요구는극단적이었고,파시어는그에맞춰극단적인계획을세웠다.

그가묵묵히그멸시와증오를받아주지않았더라면,그녀의손에조금이나마미련과답답함이섞여있었더라면지금마차위가아닌대지아래에묻혀있었을지도모른다.

"그래도,조금은더참을수있었을텐데..."

과거를생각하면할수록,무의미한가정이그녀의머리를맴돌았다.그걸끊은것은,저멀리길앞에멈춰있는마차행렬이었다.

그녀는활을든채,말없이그들을지켜보았다.

/////

"잠시,멈추시는편이좋을것같네요."

마차밖에서여자의목소리가들렸다.

대낮에잘지나가던마차를멈출사람이라면강도외에는떠오르는게없었지만,그랬다면진작네르웬이나세레스가경고를보냈을것이다.

옷매무새를정리하고밖에나가보니,젊은여인하나가나를기다리고있었다.

상인이라기에는지나칠정도로귀족의품위가배어있고,귀족이라기에는옷차림이검소하고털털해보였다.

"무슨일있나요?"

"저골짜기로들어가는건위험해요."

"산적이라도있는겁니까?"

좁은골짜기였다.그래도마차몇대는함께지나갈수있을정도의크기였지만,작정하고틀어막는다면위에서산적이급습했을때평범한상인은저항할수없을것이다.

"최근에여길관리하던귀족이정쟁에휘말려서...확실하진않지만,일단관리가되지않고있어요."

그녀의뒤에는단지마차한대만있는것이아니라,말탄병사몇명이함께있었다.

"안타깝네요."

"이런말을하고싶지는않지만,수도의귀족들은대부분사기꾼에칼없는강도들이에요."

나이는젊어보였지만,목소리에서는여유가느껴졌다.

"무언가일을시작하면,다른곳에서피해를보게되죠.이것때문에우리가본손해가얼마인지..."

이정보도,굳이내게알려줄필요없는정보다.귀족으로보나상인으로보나,오만이나욕심보다는인명을중시하는사람으로보였다.

"하여간, 억지로막을생각은없어요. 그래도 될수있으면안전하게가는게좋겠죠?"

"경고해주셔서감사합니다.저희는바로출발하겠습니다."

"제말을듣긴하셨나요? 마차 한 대 분량의 병사로는 큰일나고 말 거예요!"

"들었습니다.하지만,저희는돌파할수있을겁니다."

주위를살짝둘러보니,아무래도상인쪽에생각이쏠렸다.

귀족들이아예군대를이끌고돌아다니는일은흔히있지만,마차행렬에는사람과군대,사치품보다잘포장된상자가더많이있는것같았으니까.

내게는별의미없는일이었지만,친절을베풀어준다는것자체가고마웠다.

상인이라면 더효율적인선택지가있었다.

"이근처에산적들이뭉치고있다는이야기도있었어요.그게사실이라면,적어도정규군이저위를확실하게점령할때까지는..."

"상관없습니다."

내거절에자존심이상했는지,그녀는고개를휙돌리고다시그녀의마차로들어갔다.

우리가탄마차는그행렬을뒤로하고말발굽소리와함께출발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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