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68화 (68/217)

〈 68화 〉 인내­7

* * *

"하루정도는쉬어갈수있게되었구나."

파시어는황녀를치료하는셀리아를대견스러운듯바라보며,안도의한숨을내쉬었다.

"...견딜수있습니다."

엘레노어는분한얼굴을숨기지못했다.

"아,안돼요!다른사람이었으면절대안정을취하라고했을거예요!엘레노어가아니었다면,밥도직접제손으로떠먹여줬을거라고요!"

"성녀의말이옳다.네근성으로어떻게발걸음을옮길수있다해도,그가네게기대하는것은그정도의일은아닐테니까."

황녀로서의권위를쓸일은많지않겠지만,검사로서의기예를써야할일은많을지도몰랐다.한시라도빨리치료를마쳐야했다.엘레노어는그녀의말에동의했지만,감정적으로는인정할수없었다.

"그도,하루정도는기다릴수있다고하지않았느냐."

"이런식으로시간이끌렸다간..."

"돌아가려하는이는네가아니라그사람이다.그걸잠시미루겠다는선택을한것도그의결정이다.네탓이아니니치료에전념하거라."

"으읏..."

나무옆에바짝붙어생체촉매역할을하고있는네르웬보다는상황이나았지만,답답하기는마찬가지였다.

"지금도그는참고있는것아닙니까?"

엘레노어는답답함을꾹억누른채,그저정신력으로침대에누워있었다.

그때까지만해도그녀는큰관심을기울이지않았지만,귀환을기다리는그의모습은꽤초조하고간절해보였다.

그리고그게어느순간터져버린게황궁에서의사고라면,더이상그를참게두어서는안된다.

"축복이라고한들,유의미한수준은아닙니다.이정도면,그냥조금더많은돈으로해결할수있는..."

지금도언뜻언뜻드러나는그의표정을보면,귀환을포기한것같지는않았다.

아니,오히려이전보다더강하게사로잡혀있었다.잠시그녀들에대해분노하기를잊을만큼절박하게.

적어도엘레노어에게는,그렇게보였다.

"이런식으로모든마을을도와가며전진할수는없습니다.하다못해생사가걸린일이라면어쩔수없겠지만,겨우시골의수호령따위로늦어진다면..."

"그만큼우리가서두르면될뿐이다."

"...할수있겠습니까?"

"모르지.하지만엘프장로들이지혜를빌려준다면...게다가,얼마전에에네렐이지도를하나줬었다.검증에는시간이필요하겠지만,모든일이잘풀리기만하면곧돌아갈수있을거야"

잘풀려도몇년의시간이걸릴지모른다는것은,너무나당연한말이라굳이할필요가없었다.

"다른사람들은,괜찮을까요..."

셀리아는슬쩍고개를들어창문밖을바라보았다.

차라리몸으로사죄를하고있는그녀들은,편한일을하는걸지도모른다.

여행을다시떠나야한다는건괴로웠지만,견디지못할정도로치욕적인일을겪은것도아니었고버티지못할정도로힘든여정을보내고있는것도아니었다.

남겨진사람들은,그들의공백을막기위해죽어라노력하고있을테니까.

/////

"아까일은정말죄송했습니다."

"아,아닐세!우리끼리어떻게든해결해볼테니..."

"저희측마법사가의식을복구했습니다.앞으로도별다른문제가생기지는않을겁니다."

내표정은아직굳어있었다.하지만,다행히도마을사람들은사과를받아주었다.

분명네르웬의잘못일텐데왜사과하는사람은나여야하는지이해하기힘들었지만,참아야했다.

그녀가자발적으로'한낱인간'에게사과하는모습을보려면하루가아니라일년을이마을에머물러야할것이다.

나중에충분히부려먹어주면될뿐이다.지금도나무에딱붙은채그기묘한자세를취하고있을테니,어느정도는벌이되었을것이다.

"하아..."

그래도,이사과는싫지않았다.

아니,사과는싫었지만사과로사건이해결되는상황이싫지않았다.

당장내가하루더이곳에머문다고사람이죽어나가거나그에준하는희생을치를필요도없다.

방치했을때명백하게죽는사람들을뒤로하고빠져나갈필요도없고,그들을기만하거나소중히여기는것을빼앗아올필요도없다.

그들도독기에가득찬채이를악물고나를협박하거나,정에호소할이유가없다.

말그대로,그냥사소한사건에불과했다.

아무도죽지않아도되는사소한일.평화로운일상.

여관에들어갔다간다른동료들을만날것같았다.그녀들의얼굴을보는것을잠시나마미뤄두고싶어,나는근처바위에앉았다.

용사파티에들어갔을때,수많은마물과험난한산맥은물론고통스러웠다.하지만,평범한마을이라고행복하게마음을놓을수있는건아니었다.

내사소한실수하나로,흔적을지우지못한적이있었다.

우릴쫓아온마물들은마을을덮쳤다.그나마그날우리가머물고있었기에전멸은피했지만,마을의젊은남자들은대부분죽었다.

그렇다고단순히내잘못이라고하기에는,나도변명거리가많았다.

이미수련과강행군이이어지는여정은나를한계까지몰아붙였고,흔적을지우는일은내가하더라도분명네르웬이최종확인하기로합의되어있던일이었으니까.

굳이사고가일어나지않더라도,시시각각세력을넓혀오는마왕군에작은마을들이버틸수있을리가없었다.

지도를보고앞에있는마을로들어갔을때,처참하게불탄시체와폐허만남아있었을때도있었다.

너무나도중요한유물을얻기위해마을사람들의죽음을눈감아야할때도있었고,왜피난을가야하는지납득시키지못해아쉬움을남기고떠나야할때도있었다.

하지만,지금은아무것도없다.

마을사람에게한사과는목숨과전투에대한사죄가아니라,그냥사소한오해와사고에대한사과다.

얼마전까지만해도싸움이끝났다는확신이없었다.황궁에서의생활은기다림에눈이팔려기억나는일이없었고,그뒤로부터는싸울일이많았으니까.

오히려용사파티에참여하면서도검을들지않았던그때보다,직접누군가를베어넘긴횟수는많았을것이다.

하지만지금,마을촌장과시답잖은대화를나무고별거아닌사과를하는지금은전쟁이끝났다는사실을실감할수있었다.

그래서,기다림이지루하지않았다.

/////

마치시선이마주치면사라지기라도할것처럼,셀리아는그의얼굴을곁눈질로힐긋힐긋쳐다보았다.

잘생겼다.검은머리카락의남자는그녀를노려보며,한탄과욕설을내뱉었다.

대답할수는없었다.그녀의손은쉬고있지않았고,지금도치료주문이황녀에게흘러들어가고있었으니까.

처음저게나타났을때는꼴도보기싫었지만,지금은오히려반가웠다.이렇게나마그를볼수있다는게,아니그를아파하게하지않고볼수있다는게다행이었다.

'좋아했던...걸까.'

모험중의그는항상웃고있었고,가장힘들때도조금표정이굳어졌을뿐누군가를원망하지는않았다.

그게전부인내였다면,가식없는그의감정은오히려황궁에서분노를토해냈을때더정확히드러난걸지도모른다.

"누가왔습니까?"

"어,그게,그러니까...왜요?"

엘레노어는누워천장을보고있었기에,그남자가앉아있는곳을볼수없었다.

"시선이다른곳을향해있지않나.아,혹시내가언급해서는안될분이라면..."

"아니에요.여신님께서는...쉽게만나주지않으시네요.제게크게실망하셨던걸지도몰라요."

"그러면됐습니다.오늘은여기까지하지요."

"아,그게,괜찮아요!"

번뜩자리를박차고일어난엘레노어의시선이그를향했지만,그녀는아무것도보지못했다.

당연한일이었다.설령셀리아가무언가숨기고있다한들,눈에안대를끼고있는그녀가무언가를볼수있을리없다.

그럼에도그의얼굴이보인다면,그건그저환상에불과하다.

존재할리없는환상.그녀의죄악감이만들어낸,혹은더러운욕망이만들어낸허상.

차라리그녀를더비난하고감정을토해내며,죄를씻게만들어줄가상의구원자.

처음그녀가이걸봤을때는진짜에네렐과착각하기도했다.

몇번허공에대고사과를했던그녀는,허상과진실을구별하는아주쉬운방법을택했다.

눈을가리면,보이는것이허상이다.

"엇."

무심코그와시선을마주치자,그는연기처럼사라져버렸다.

"역시무언가...그수호령입니까?외지인의시야에나타날정도면악의가없다고단정하기도어렵습니다."

"진짜아니라니까요.그냥,그냥..."

셀리아는어떻게이걸설명해야할지몰라,그저고개를흔들었다.

"제치료도중요하지만,성녀님의건강도무엇보다중요합니다.에네렐에게필요한건성녀님과마법사님이지,제가아니니까요."

엘레노어는대체할수있는자원이었다.황녀의권위를사용할일이나오지않는이상,그녀의몸이온전히회복되더라도에네렐이할수없는일을해내지는못할것이다.

그마법적지식과지혜로그의귀환을뒷받침해줄수있는마법사나,그거대한감사와사랑의감정으로불완전한의식마저성공시킬수있는성녀와는달랐다.

"정말괜찮아요."

"눈부터치료하시는게..."

"아파서이걸감고있는건아니니까요."

허상이허상이라는것을구분하기위해,그리고허상이나타났을때빨리눈치채기위해.

그녀는자신의시각을그남자의허상말고는아무것도보이지않게막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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