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66화 (66/217)

〈 66화 〉 인내­5

* * *

"자,잠시만시간을내주십시오!"

다급하게여관방에들어온남자가 나를 불렀다.

"무슨일이죠."

"그,그게!"

무의식적으로 그를노려보게되었다.

고의는아니었다.그냥얼마전에셀리아를보면서느꼈던우울한감정이 아직남아있었을뿐이었다.

아이들과도얼마놀지못하고다시들어가야했다.웃을수있는기분은아니었다.

"어지간하면옆방에있는사람을부르는게나을겁니다."

엘레노어도걸어다니는것정도는할수있었다.

복잡한일이생기는건마음에들지않아신분을숨기고있었지만,그래도그녀는황녀였다.

그녀의갑옷과방금들어온휘황찬란한마차만보고서도어느정도신분을짐작할수있을것이다.

오크로드같은괴물이더있을리도없고,만일있다고해도나를부를필요는없다.

"그,동행하신엘프분이..."

좀이상했다.

나에게는한없이나쁜용사파티원들이지만 대놓고분쟁과사건을몰고다니는사람들은아니었다.

네르웬의인종차별적생각과는별개로, 그녀는자신의생각을숨길수있는사람이었다.

여행도중에있었던많은일들로그녀의인내심이끊어지지않았다면 내게도그리험한말을하지는않았을것이다.

"알아서잘처리할것같은데요."

어느 정도는 그녀를 믿고 있었다. 먼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닙니다!그,마을의의식을방해하고활을겨누는데,분위기가엄청살벌해서..."

"의식?"

시골마을이다.우리는계속해서수도와멀어지고있었고,이마을은이전에방문했던마을보다훨씬더허름한마을이다.

의식을수행할만한주술사나성직자가머물것같지도않았고,마법사라면이런여관에잠깐들르는것만으로도힘들어할것이다.

"일단가보죠."

힘들고 고된 여정은아니었지만,마차여행은본래쉬운일이아니다.낮에는후덥지근하고,밤에는땀이식어손발이떨리고,무료함과지루함은정직하게정신력을깎아먹는다.

억지로 옷가지와성검을챙기고그를따라걸었다.마을중심지로부터약간떨어진산턱에,어설픈제단이올라가있었다.

"저기입니까?"

"아닙니다.조금더올라가면...."

그의발걸음을따라올라가자 마을사람들에게둘러싸인네르웬이있었다.

하지만그녀가민간인들에게화살을겨누고있다는것만으로도,지금강자와약자가누구인지는명백했다.

"...뭐냐,네르웬?"

분명나와눈이마주친그녀였지만,쉽사리활을놓지않았다.

나는천천히앞으로나아가 그녀의화살앞에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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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웬은그의얼굴을본순간,일이잘못돌아가고있다는것을깨달았다.

"설명해."

온몸에힘이쭉빠진다.활을자연스레내려놓게된다.

그에게활을겨눈것이처음은아니었다.살의를품은적은없었지만,싸우다보면그가있는쪽으로활을겨눠야할일은많다.

하지만그녀에게는확신이있었다.그의얼굴바로옆에과녁이있더라도,화살이단한치도빗나가지않을거라는확신이.

그녀의볼옆에팽팽하게당겨진활줄이느껴지고,그녀가화살을잡고있는한,무슨일이있어도그걸놓치지않을거라는확신이.

하지만지금은그게없었다.조금이라도그녀가불안해했다간,그화살이그의심장에박힐것같았다.

그리고사라진확신보다더그녀를불안하게하는것은,에네렐의죽음그자체였다.

그가화살을맞고네르웬에게화를낸다면,그땐정말버틸수없을지도모른다.

만일운이나빠,그녀의화살이기가막히게그의심장을꿰뚫어버린다면,그건절대일어나서는안될일이다.

네르웬은활을내려놓았다.

"도,도와주세요!저엘프가저희마을의신목을꺾으려했습니다!"

그의표정이한층어두워졌다.하지만분노한네르웬의눈은,차마그의기색을살피지못했다.

"말도안되는소리하지마라.네놈의우둔한눈으로는겨우그정도밖에안보이겠지만..."

산중턱즈음에거대하게솟아오른나무는,여러줄기들이얽히고설켜꽤웅장한풍채를자아냈다.

"시,신이노하실겁니다!이번풍작의식은다끝났다고요!"

"어리석은놈.나는그저화살을만들려했을뿐이고,저건그냥나무다.미개한인간놈들이엘프의판단에관여하려하지마라!"

그농민의말은,네르웬의자존심을건드렸다.

사람들은엘프를보고그뛰어난궁술과아름다운외모를떠올린다.하지만그건,엘프만가지고있는특별한요소는아니었다.

인간중에서도명궁이있을수있고,조금다른개념이지만거대한기계식활이라면엘프의궁술도이루지못한충격력이나사거리를가질수있다.

엘프처럼모든구성원이빠짐없이아름다운종족은매우드물었지만 인간이나다른종족중에서도아름다운이는많았다.

하지만나무와생명에관한일이라면 그들의신비로운주술과이해를따라올종족은없었다.

마치드워프의야금술에시비를거는일이멱살을잡고싸울만한안건인것처럼,엘프에게나무로시비를거는것은그녀의자존심을건드리는행위였다.

"그건꽤듣기안좋은말인데."

하지만,에네렐도그걸고려할정도로여유있는상황은아니었다.

"나를두고한말인가?"

"아,아니다.그저...그건."

"나도인간인데,왜.저사람에게는미개한인간놈이라고할수있는데,내게는차마할수없는모양이다?"

여신에게선택받은용사를함부로대할수없다.그걸제하더라도,에네렐은용사여정에참가하면서그고귀함을드러냈다.

하지만그런사소한일을제쳐두고서라도,네르웬은그를거부할수없었다.거역할수없었다.그의마음에들지않는행동을할수없었다.

맹세를한건그녀였지만,그이상으로거대한 충동이 네르웬을압박하고있었다.

"으으..."

그는고개를절레절레저었다.

"됐다.자세한얘기는우리끼리하고,일단사과해라."

"뭐라...고?"

그녀의앞에있는마을사람들은,정말평범한사람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고귀한엘프가아니라,그저한미한작위를가진잡스러운귀족이라도이런이들에게사과할일은없었을것이다.

"못하겠나?"

그녀는잘못하지않았다.그녀가특별히채식주의자거나생명지상주의자는아니었지만,엘프인이상나무를귀엽게여기는마음은가지고있었다.

나무를죽이고있는이들은그녀가아니라저들이었다.저건신목도아니었고,그냥나무일뿐이다.

"인간따위에게는고개숙일수없다,뭐그런거냐."

그의눈이시시각각차가워진다.처음에는원군의등장에기뻐하던마을사람들도,분위기가심상치않다는것을느꼈는지땀을흘리기시작했다.

"하긴,해본적이없으니어려울만도하지."

잠깐그의시선이네르웬을벗어나자,그녀는자신도모르게안도의한숨을흘렸다.

당장그의신뢰를잃는것은아쉬웠고 그녀가무능하다는소리를듣는것도마음에들지않았다.

하지만지금,이순간이이어지는것보다는나았다.

"내가시범을보여주마."

"뭐...라고?"

"잘봐,이렇게하는거다."

그는공손하게, 마을사람들을향해허리를굽혔다.

아무런수치심도없이,그저당연히해야하는일인것처럼.

"죄송합니다.제가애들관리를못해서폐를끼쳤습니다.저희중에마법사도성직자도있으니,어떻게는복구할방법을찾아보겠습니다."

"아,어,감사하오..."

그가조금이라도만만해보였다면 의식을방해받았다는이유로더거세게화를냈을지도모른다.

하지만,이미엘프에게시비를건것만으로도그들의오만은한계치에다다른상황이었다.

처음부터 조금이라도생각이밝은사람이있었다면 인간보다는몇십배강한엘프를상대로이렇게압박하려는생각은하지못했을것이다.

두사람의신경전이길지는않았지만,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만만하지않았다.

농민들은 슬슬 눈을 피했다. 쇠스랑과곡괭이를든사람여럿이모여봐야,그를 이길것같다는생각을할 수 없었다.

"네가 그럴 필요는 없다!"

네르웬은 마치 자신이 아프다는 것처럼,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에네렐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는, 그녀를 재촉했다.

"자,봤지?사과해."

그리고그시선은다시,방금전까지이들모두를압도하던엘프를포식자앞의사슴처럼벌벌떨게만들었다.

"나,나는엘프의대전..."

"맹세하겠다고했잖아."

네르웬은입술을깨물었다.

하고싶은일만할수있는건아닐거라예상했다.힘든일도,다소치욕적인일도할수있다고여겼다.

하지만이건그녀가예상한일이아니었다.그녀가잘못한일도아닌데,천하고열등한이들앞에서고개를숙여야하는일은.

"나는했어."

"아,알겠다!"

하지만여기서그녀가그걸받아들이지않는다면,에네렐은여지없이그녀를내칠지도모른다.

당장은약속이있으니그녀를내버려두더라도,세계수에도착하고정보를획득하자마자그녀는버려질것이다.

네르웬은입술을깨물고,눈물을꾹참았다.

억울함과치욕스러운절망감이그녀를덮쳤지만,여기에그녀의편이되어줄사람은아무도없었다.

결국 그녀는고개를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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