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65화 (65/217)

〈 65화 〉 인내­4

* * *

"갈게요.꼭,아니가게해주세요!"

황제가성녀의의사를물었을때,셀리아는쉴새없이고개를끄덕였다.

황제의전령은좀의아하게생각했지만,그래도다행이라생각했다.

성녀가담당하는실제업무는적을지언정,그상징성과권위는설령교황이나황제라해도쉽게건드릴수없다.

왜인지는몰라도그녀에게분노하고있을에네렐남작의여행에참여한다는건,쉬운일이아니었을테니까.

"하지만,제가가도되는걸까요..."

"이미다른분들은여정에참여하셨다고들었습니다.일단은,황녀전하의치료를맡아주시면될것같습니다."

"네르웬씨가따라갔다는건들었지만...파시어씨나황녀님도요?"

"예.다른용사파티원들모두,그분을따라움직이고있습니다."

"다행이다..."

평생그의얼굴을보지못하더라도,어쩔수없는일이라고생각했다.

더이상그녀는,그에게행복을주지못하는사람이었으니까.어떻게든그가돌아가서그의행복을찾을수있다면,그걸로만족할수있었다.

하지만조금,아주조금만더욕심을부린다면.

"저,갈게요.뭐든지할수있으니까!"

"황제폐하께전해드리겠습니다.분명,기뻐하실겁니다."

황제가준비해둔마차는편안하고안락했다.두손을꼭모은셀리아는,오늘도응답받지못할거라는것을알면서도기도했다.

그가다른사람을용서했을거라는기대는하지않았다.하지만,적어도다른사람들을참아낼수있을정도로귀환을기대하고있는것은분명했다.

이겨낼수있는힘이있다면,다시행복해질수있다.약간의희망과기대를안고,마차는계속앞으로나아갔다.

"여기가,그전쟁터였나요..."

들판에는아직오크들의시체가어지러이널려있었다.

인간병사의시체라면수습해서땅에묻어뒀지만,오크의시체를전부묻기에는인력이부족했다.

그래도얼추한곳에모아산처럼만들었고,시체의크기에비하면좀작았지만구덩이도여기저기드러났다.

"이곳에,있었구나..."

끔찍한것들을봐왔던성녀였지만,전쟁과마물은언제나그녀의마음을아프게했다.

이들판에서에네렐은싸웠을것이다.뒤에남은사람들을지키기위해.

그는본질은바뀌지않았다.

이곳에그녀도함께있었어야했다.목숨을걸고함께싸운엘레노어와파시어처럼,그를도왔어야했다.

어쩌면그들이받아들여진것도,그공을인정받았기때문아닐까.

그가나아간거리는짧지않았고,성녀도기대와불안을안고마차여행을이어가야했다.

"이곳입니다.아직이마을을떠나지않았다고했으니..."

"드디어도착했네요."

그녀의은발머리카락이이리저리흔들렸다.반가움과어색함을가득안고,마차에서내리자마자셀리아는에네렐을찾아나섰다.

"아..."

그는,어린아이들과어울려웃고있었다.

나무검을들고이리저리몰려다니는아이들은,꽤그럴듯한모험가복장을하고메이드를거느린에네렐에흥미가있는것같았다.

조금은어색한상황이었지만,그는웃으면서아이들과어울려주었다.다소짓궂은장난도받아주며,웃고있었다.

"용사님!"

셀리아가웃으며달려갔다.그순간,그녀는무언가이상함을느꼈다.

"와!성직자누나다!

"어디서오셨어요?"

젊은성직자를싫어하는사람은거의없었다.성녀의아름다운외모와편안한분위기를제하더라도,견습성직자들이이런농촌에봉사활동을가는것은흔한일이었으니까.

교회를관리하는늙고불평많은성직자라면모를까,젊고아름다운성직자를싫어할이유는없었다.

하지만,웃지못하는사람이단한명있었다.

"..."

분명방금까지웃고있던에네렐의표정이순식간에일그러졌다.마치달이해를가린것처럼,단번에빛이사라졌다.

"아저씨,어디아파요?"

남자애들과어울려놀던조그만여자아이하나는,셀리아의외모에시선을덜빼앗길수있었다.

그아이는바로그의안색이이상하다는것을깨달았다.

"아,아니야.그,괜찮아."

"아저씨가아는사람아니었어요?"

"그래.응,아는사람이지."

셀리아는느낄수있었다.

그는애처로워보일정도로,억지로웃고있었다.

성녀에대한분노가사라진것이아니었다.다른상황에서셀리아를만났다면,차라리시원하게화라도낼수있었을것이다.

하지만지금,그는분노를드러내고싶지않았다.이렇게행복하게웃는아이들을침울하게만들고싶지않았다.

그래서웃고있다.의무감이그를웃게하고있다.

"나,나중에...다시얘기할게요."

셀리아는그자리를빠져나왔다.그녀가여기있는동안은,그가웃지못할것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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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개의마법진이떠올랐다가사라졌다.그녀가준비한마력가루들이서서히타오르다,빛을잃고공기중에흩어졌다.

"내실력으로는모르겠다.네몸에서는어떤흔적도느껴지지않아."

인간마법사중에서는,파시어의마법을따라올사람이없었다.

그녀가자신의실력으로알아챌수없다고말한이상,적어도마법이개입되어있을가능성은거의없었다.

"역시...그렇습니까."

"단정지을수는없다.신성력이나마기,엘프의술식이나정령술...세상에변수는넘치고또넘치니까.하지만,적어도마법은아니다."

그녀보다더마술에통달한존재를찾으려면,적어도몇천년간마법의이치를연구한고룡을데려와야할것이다.

네르웬의몸에는어떤저주도걸려있지않았다.

하지만네르웬의태도는담담했다.

그를설득할때는마왕의암수를언급했고,그때는그게꽤가능성있는가설이라여겼다.

그러나,지금그녀의상태는마왕의저주라고생각하기어려웠다.

"좀더천천히털어놓아봐라.엘프의육체에는신비가많지만...적어도도착하기전까지는내가가장아는게많을테니."

네르웬은입술을깨물었다.

"그게,그...복잡합니다."

"냄새라하였는가?확실히,설명하기어려운주제긴하군.인간과엘프의감각은다르고,나는네가어떤방식으로냄새를맡는지도이해하기힘드니."

눈이없는사람이있다면,아무리다른이들에게색채의아름다움을듣더라도이해할리없다.

저푸른하늘이얼마나아름다운지,노을빛진태양이얼마나황홀하게빛나는지이해하려해도이해할수없다.

"그에더해...제감정이,좀이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그를,좋아하고있습니다."

분명엘프장로가그가능성을언급했지만,그때의네르웬은한귀로듣고한귀로흘렸다.

좋아할리없다.자신이좋아하는사람에게그런행동을할리없다.

어린아이도아니고,그의관심을끌기위해못된짓을한다는유치하고어설픈짓을할리없다.

관심을끌고싶은것도아니었다.정말자신이그의관심을끌고싶었다면,냄새로그를모욕하는것보다더좋은방법이얼마든지있었을테니까.

"언제부터?"

"잘모르겠지만,확실히느낀건...그를따라다니고난다음부터였습니다."

혹은,그보다조금전일지도모른다.엘프가호의없이누군가의노예가되어,평생봉사하겠다는선언을할리없었으니까.

그걸결정한건네르웬자신의의사였지만,그녀는자기생각과행동까지검밀해야할정도로몰려있었다.

"냄새때문이아닌가?"

"냄새는...여전히납니다.하지만그게,미친듯이달콤해서..."

중독성은좀옅어졌다.수도에서처럼그를미친듯이쫓아다니는일은없었다.

하지만,그의얼굴을보고싶다는욕망이그녀를덮치고있다.아주사소한일이라도함께하고싶다는갈망이온몸을지배하고있다.

"왜,왜,왜,왜..."

세계수의대전사인그녀다.태어날때부터고귀했던그녀다.

용사를위해봉사하는것은그런대로이해할수있는일이지만,그걸감안해도자신의감정은이상했다.

구체적으로는,세계수에도착해도이저주를풀고싶지않을정도로그녀는그에게지배되고있었다.

정작그목줄을쥔자가그녀에게아무런관심도보이지않았기에자신을유지할수있었던것뿐이다.

"마왕의저주라면,차라리그랬다면!이게남아있는그사악하고음흉한저주였다면,이감정이바뀌어서는안됩니다!"

정말마왕이그녀에게음욕의저주를걸었고,운좋게네르웬의무지와에네렐의예의덕분에파티가와해되지않았던거라면.

지금그술자는없다.술자없는술식이유지되는일은잦아도,효과가변화했던일은드물었다.

이런상황에서도,그녀는그의분노를두려워하고있었다.

그를혐오했던것은자신이다.그걸부인할생각은없다.

하지만그명백한진실앞에서,그녀는어설프게변명하며형벌을유예시켰다.

죽는것은괜찮다.하지만,그가그녀를혐오하는것만은버틸수없다.

이런생각이드는것마저그녀의이상성을보여주고있었다.

"수고했네.말하기어려운일이었을텐데.하지만,차라리그에게털어놓는것은어떤가?적어도살가운얼굴로그를대한다면..."

"몇번시도해봤지만...번번히막혔습니다."

그를졸졸따라다니는메이드,세레스는네르웬이필요이상으로그에게접근할때마다선을그었다.

그녀를비난할수도없었다.에네렐이네르웬을불쾌하게여긴다는사실은그녀자신이누구보다잘알고있었다.

세레스는,그저그의의사를대신해표현해줄뿐이었으니까.

네르웬은절망속에헤엄치고있었다.세계수에돌아가는것은당연히해야할일이었지만,거기서할수있는일은저주를푸는일이전부였다.

사람의마음을얻을수는없었다.증오의칼날을무디게할수는없었다.

그건,오롯이그녀의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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