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64화 (64/217)

〈 64화 〉 인내­3

* * *

여행은본래지루하다.가만히앉아있기만해도되는여행은,평소의배이상으로지루했다.

"..."

감사하게도,그영주는친절하게나를대접해주었다.승전연회에참가하지않은나를좋아하지않을수도있다고생각했지만,그건기우에불과했다.

내가걸어서여행을다닌다는사실을들은그는,말을준비해두었고,내가말을탈생각이없자고하자마차까지준비해주었다.

황녀가내여행에참가한다는것이그의결정에영향을미쳤겠지만,그걸감안해도과한친절이었다.

"언제까지이걸쓸수있을까..."

혼잣말이었지만,귀가밝은네르웬은그말을듣고있었다.

"적어도세계수초입까지는쓸수있을거다.그때부터는숲때문에길이없지만..."

적어도이전력이라면,어중간한산적이나늑대떼에마차가망가질일은없었다.

체력관리까지생각하면,마차를타는게빠르다.그녀와함께다니는것도결국효율적인일이고,옳은선택이다.그래도싫었다.

내가결정한일이지만,서로보고싶지않은사람끼리뭉쳐있다는건그리기분좋지않은일이었다.

차라리걸을때는텅빈길을보거나,앞사람의뒤통수를볼뿐이니차라리낫다.

하지만마차안에서는좋든싫든서로를마주봐야한다.내앞에있는엘레노어는쓰러질듯눈을감고누워있었고,파시어와네르웬은살살내눈치를보고있었다.

그나마좀나은세레스는,마부가없다는합당한이유하에말을몰았다.결국,여기에는나와세여자만남겨져있었다.

"하..."

한숨을쉬는것만으로도,부담스러울만큼시선이쏠렸다.

나를빼놓고그들끼리화기애애하게지낼때,조금의질투도없었냐고하면거짓말일것이다.

하지만내눈치를보느라죄다굳어있는모습을보고싶었던건아니었다.

그렇다고다시그녀들이나를무시하고웃는모습도,나와그녀가함께웃는모습도보고싶지않았다.

나는대체뭘원하고있는걸까.

/////

"도착했어요!오늘은이마을에서쉬어가죠!"

세레스의활기찬목소리가들리자,그나마숨통이좀트였다.

에네렐이마차에서내리자,엘레노어는비틀거리며따라내렸다.

그리높지않은마차와대지사이가,거대한낭떠러지처럼느껴졌다.

이미정상이아니었던몸으로오크로드와싸운그녀다.근성으로버텨질만한상태가아니었다.

하지만여관의마구간에말들을몰아넣는것은그녀가해야할일이었다.그녀는말에기대몸을움직여,말들을마구간에집어넣었다.

세레스와에네렐이여관에들어가자,파시어가그녀에게말을걸었다.

"꽤어려운선택을했구나."

"해야하는일이었습니다.그에게사과하는것도,이여행에따라오는것도."

몇번이고의심했다.그냥취소하고,황궁에다시돌아가겠다고그에게말할생각도했었다.

하지만한번말을꺼낸이상,이대로돌아가버리는건그에게나쁜인식을심어줄지도몰랐다.

그건,싫었다.

"그는변하지않았구나."

"...그렇군요."

에네렐이오크로드와싸우지않고그자리를피한다해도,아무도그를비난하지않았을것이다.

하지만그는싸웠다.엘레노어의말이그에게오기를불어넣었는지도모르고,아니면그모든일을겪은다음에도다른이들을도우려하는마음이남아있었던걸지도모른다.

"몸은좀괜찮으냐?"

"셀리아가오면,다시싸울수있을겁니다."

이길수있는싸움만해온것은아니었다.몸은이미너덜너덜해졌지만,당장지금움직이지못할정도는아니었다.

"황제가많이걱정할텐데."

"그분도이해하실겁니다."

어느순간에서나,제국을최우선순위로생각하던그였다.

엘레노어가설령죽게된다고하더라도,그황제라면다시그걸이용해서더강하고안정된제국의밑거름을만들수있을것이다.

대놓고그가황실을적대하지않는한,귀족파의비난은도의적인비난이상이되기힘들다.

한번그의공을빼앗아간황녀가다시진짜용사의목표를위해자신을희생했다는사건은,더이상그런도의적인이유로황실을비난하게만들기어렵게만들테니까.

"글쎄.나는그를이해하고있다고생각했지만...지금은잘모르겠다.너는황제의딸이다.그에게는,훨씬중요한존재일수있어."

"황가의여식은많습니다."

"그의친자식은너하나뿐이잖나."

황제의나이는적지않다.십년,이십년뒤에는,노화에의한죽음을받아들여야할정도로.

그가여색을즐기며아이를만들어내는평범한황제였다면,이십대인엘레노어가황위계승권에오를수있을리없었다.

중년의황자와황녀가이미단단하게지지기반을닦아두고,계승권싸움을하고있을테니까.

하지만그어린나이에도그녀가황좌를넘볼수있던것은,다른황가의사람들이전부방계였기때문이다.

"부디목숨을아껴라."

"화를내실줄알았습니다."

"화야내고싶지.내게조금만더빨리알려줬으면,진짜용사가누구인지,네가누구의힘을빌리고있었는지조금만더빨리알렸으면이런난리가일어나는일은없었을테니."

하지만,파시어에게이일이꼭나쁜것만은아니었다.억지로좋은점을생각해보자면그랬다.

에네렐은그녀가처음부터틀렸었다는사실을,아주처참하고잔인하게알려준존재였으니까.

"그가돌아갈수있겠습니까?"

"불사조의유해라도얻을수있다면,조금가능성이보일게다."

하지만,모든일은그의귀환을전제로하지않으면성립되지않는다.

"네르웬의말을어디까지믿을수있을지..."

엘프장로들의지혜는상상을초월한다.그수명에서얻어지는지식과지혜도적지않을뿐더러,그들은그중에서도나이를먹는것이상으로지혜를쌓은자들이다.

나이가찬엘프중세계수안에들어가진실을깨닫고평범한인간의수명만큼수련한이들이장로의칭호를얻는다.

그들의강약과는무관하게,고대의지식을찾는것이라면제국이상으로아는것이많다.

"...무언가옵니다."

"나는아직들리지않는다만...말발굽소리라도들리는게냐?"

"예.손님이오는것같습니다."

엘레노어의얼굴이조금펴졌다.

/////

"면목없습니다."

황녀의호위대는,무릎을꿇은채황제에게용서를빌고있었다.

평범한기사단의훈련이나여정으로생각했던그들의실수였다.설마오크로드와맞서싸우기위해달려나가,죽을위기를넘길거라고는생각하지못했다.

용사였던엘레노어에게익숙해진탓에경계가느슨해졌다.그힘만있었다면,엘레노어는호위가필요하지않은존재였을테니까.

"자네의죄를탓할생각은없네.하지만,엘레노어가보이지않는군."

"이미떠났다고합니다.용...에네렐남작의여정을돕기위해떠나겠다며...말릴수없었습니다."

"그런가."

황제는깊은한숨을쉬었다.그건좋지않은상황에대한탄식이아니라,자신에대한혐오감에차오르는한숨이었다.

에네렐은이런상황에서도다른이들을도우려했다.그는변하지않았다.

하지만,황제인자신은이런상황에서마저그의행동을이용하려한다.그런자신에대한혐오감이차올라,입가에화색을띄울수가없었다.

"어떻게든설득해서복귀시키겠습니다.치료를위해성녀님을보냈으니..."

"됐다."

하지만결정이끝난황제는,단호하게그의말을잘랐다.

"공표하게.성녀도,엘프대전사도,마탑의주인도,황녀도그의여정을돕기위해떠났다고."

"네...그건?"

일이커진다.

황녀가단지누군가를돕기위해책임을뒤로하고떠난다면,그의존재감은더욱커져버린다.

용사의힘이있다는것을감안하면,더이상황제가컨트롤할수없는수준으로방대해진다.

공공연히발표하지않았다뿐이지,누가진짜용사였는지대놓고선언하는것과다름없다.

"위험합니다."

황녀는거대한전력이다.그상징성으로나,무력으로나.

그건어디까지나황제의권위안에서이루어지는일이었지만,반대로황제도그녀없이는세세한일에개입하기어렵다.

공식적으로황녀직할인기사단이나군인들은,이제누구의편을드는것이이로운일인지저울질을시작해야할것이다.

"그건..."

그의존재감이더욱커진다.오크로드를처단했다는사실을귀족들이널리퍼트리며,그는이미수도를구한영웅으로알려지고있었다.

극단적으로는그가황녀를범해아이를만든뒤그아이를황태자로만들어달라요구해도황제는고개를끄덕일수밖에없게된다.그가귀족파에들어가는것보다는나을테니까.

"당장그가귀족파에포섭된다면,황제폐하가위험해질지도모릅니다!적어도일년정도는상황을지켜보시는게..."

혼란이마무리되고병사들이돌아오면다시그걸통해권위를세울수있겠지만,무슨일인지마물의준동이쉽게가라앉지않았다.

"나는오래살았네.그리고,그는검증된사람이야.악이라면...행하지않겠지."

황제는무엇이허상이고무엇이진정중요한것인지,수도없이생각해왔다.

"그리하게.최대한좋은마차를보내고,호위병도남부럽지않게보내.성녀본인은그를따를의사가있어보이는가?"

"...정신이온전한상태가아닌것같았습니다만,저희가부탁한다면따라줄겁니다."

"그렇다면전부보내게.그가받지못했던영광을돌려줘."

기사는어렵게고개를끄덕였다.황제는안도와슬픔이조금섞인웃음을지으며수염을매만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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