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63화 (63/217)

〈 63화 〉 인내­2

* * *

"...좋아,인정하겠네."

황제는나지막이,그가어떤결정을했는지선언했다.

"자네의말이옳아.에네렐남작은큰공을세웠으니치하하겠네."

크레온의머리가복잡해졌다.

하지만,나중에라도황제의퇴로를막으려면지금더몰아붙여야했다.

"그렇다면,그를바로수도로불러야하지않겠습니까?"

치하하겠다는말은,그말자체로는아무런영향력이없다.

공인된시간과절차에따라공개적으로남작의공을치하하는순간,그의영향력은커지게된다.

"나는큰잘못을한몸인지라,도저히그를부를면목이없군."

"그렇다면,제가먼저접촉해도괜찮겠습니까?"

나쁜소식을가져온사람은나쁜대우를받고,좋은소식을가져온사람은좋은대우를받는다.

에네렐의영향력을키우겠다는합의가끝난이상,조금이라도그의비위를맞추는게중요했다.

크레온의본능이무언가이상하다고말하고있었다.저황제가,그걸이렇게쉽게포기할리없었다.

"원하는대로하게."

"그렇다면,치하는그저말뿐이었습니까?"

"레오드린가문에큰상을내릴걸세."

속보이는연극이었다.그가문의영지는멀리있었고,일단은황녀파였지만거의관계가없는수준이었다.

중앙정치에참여할가능성이적은가문이었으니,갑자기명성을얻어봐야고만고만한수준이었다.

"에네렐남작은,분명실종된레오드린가문의장남이셨지요."

"음,그렇지.그렇고말고."

에네렐남작의행동을보면그가가문이있는사람이라고생각하기어려웠다.용사빙의의가능성이없는건아니었지만,그의생김새나행동을보면틀림없이소환된용사였다.

하지만그가레오드린가문의귀족이라는자리에만족하고있다면,이걸로섣불리황제를압박하는것은역으로그의분노를살수있다.

레오드린가문에대한지원도,결국궁극적으로는그에대한포상이라할수있었다.적법한후계자가없는지금,그는원한다면레오드린가문의모든것을가질수있었으니까.

"명대로하겠습니다."

협상은끝났다.황제는황녀를사지로몰아넣은뒤,그대가를챙기길포기했다.귀족들은새영웅의등장을축하하면서그들이지원군을외면했던사실을묻어버렸다.

커진것은에네렐의몸값뿐이었다.당장은그사실이묻히더라도,그가원하는순간바로그가용사였다는사실을퍼트리며황가를흔들수있었다.

결국그를설득하면될뿐이다.크레온은,지난번의만족스럽지않은만남을아쉬워할수밖에없었다.

만족할만한성과였다.하지만,감정변화라고는하나도없는황제의태도는크레온을불안하게만들었다.

'놓치고있는게있나...?'

동요하거나분노할지언정그걸표정으로보일만큼어설픈사람은아니었다.하지만그와황제는서로를20년가까이봐왔다.

그가무덤덤하다는사실은직감적으로알수있었다.

'무슨생각을하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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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나쁘지는않잖아요?"

세레스는어느새깔끔하게세탁한메이드복을입고,슬금슬금내게달라붙었다.

"알아..."

나는,생각보다약했다.

객관적으로인간중에서약한것은아니었다.용사의힘이남아있는한,그제국에서도검을쥔채나를이길수있는사람은없을것이다.

하지만,검사하나의힘으로는한계가명확했다.

생각대로일이풀리지않아,세계수에도착했는데도정보를얻기위해폭력적인방법이필요하다면.

혹은,불사조의유해를얻는방법이특수한방법으로그정령을사냥해야하는거라면.

강약의문제가아니라,상황에다른대처에관한문제였다.아무리검을든내가강하다해도,검으로해결할수없는문제는여기저기널려있었다.

엘레노어나파시어같은고급인력이내지시를따르기만하면,선택지가기하급수적으로늘어난다.

내가귀환하는것이쉬운일은아닐테니,가능성을올리고시간을단축시킬방법은하나라도더많이만들어두는편이옳았다.

그냥,기분의문제였다.

나는그녀들과함께모험하며,그분노를참아낼수있을까.

"복수라고생각하는건어때요?"

"복수?"

"여행으로난상처는,여행으로치료해야죠."

메이드는눈을반짝거리며말했다.

"어쨌든,저사람들은주인님에게복종할수밖에없잖아요?"

"그래준다면,다행이겠지."

"그러면이것저것,해보고싶은일들을마구해보죠!냄새난다고욕을한다거나,대련이라면서마구때린다거나..."

푸념삼아,그파티에서있었던일들을그녀에게얘기하긴했다.그럴때마다,세레스는마치자기가당한것처럼슬퍼해주곤했다.

그래도,복수심까지가지고있을줄은몰랐지만.

"그것참나쁘지않은생각이구나."

여관방의문이열리고,익숙한보라색머리칼의소녀가들어왔다.

"엿듣고있었나?"

"마침문앞에와서듣게되었을뿐이니라."

딱딱한나무의자에앉은파시어는,손을가볍게쥐었다.

"에네렐.미안하지만,잠시이충직한시녀를물려줄수있겠느냐?"

세레스는이기회를놓치고싶지않다는것처럼,내왼팔에딱달라붙어파시어를경계했다.

"...그래."

하지만내입에서허가의말이나오자마자그녀는바로일어났다.아쉽다는듯연신이쪽을힐끗거렸지만,그녀는결국문을열고나갔다.

"그래서...넌하고싶은말이대체뭐야."

어지러워잠시시선을내린나는,다시눈을들어그녀를보고당혹감을감추지못했다.

"...그건."

"보기흉하지는않지?"

아무것도걸치지않은,새하얀그녀의몸이드러났다.

그녀를마법사로보이게만들어주는것은그모자와로브였다.그걸걸치지않은파시어는,그저작은여자에불과했다.

가슴도,허벅지도,작은뱃살도전혀가리지않은채그녀는당당하게내앞에서있었다.

"네가나를경계하는것은안다.나라도경계했을테고,분노가쌓여있겠지."

"..."

"그래도,봐라.이렇게작은사람일뿐이다.얼마든지때릴수있고,조금만몸에힘을주면부러져버릴그런여자."

당연한일이지만,마법사의약점은눈앞의적이다.

충분한시간과준비,투자를통해뭐든지할수있다는뜻은,반대로말하면시간도준비도재료도모으지않은마법사는지팡이든농민과다를것이없다는뜻이다.

그녀가드러나지않는무언가를숨겨두지않는이상,나는지금그녀를죽일수있다.그리고,같이여행을떠난다면아마매번그럴수있을것이다.

꼭필요한때가아니라면,적어도그녀를내옆에두는게안전할지도몰랐다.

"음..생각보다동요하지않는구나."

"당신의알몸따위는몇번이나봤으니까요."

파시어뿐만은아니었다.셀리아도,네르웬도,엘레노어의몸도본적은있었다.

"그래도,부끄러움같은건없는건지...당신도뭐,황가의가호같은게필요한겁니까?"

"아니,아니,아닐세!그럴리가있겠나!애초에,왜엘레노어가그게필요한건지도모르겠네만..."

그녀는고개를절레절레흔들었다.하지만,파시어가흘리듯뱉은말은쉽게넘어갈수없었다.

"중요한거아니었습니까?"

"아니,물론황가의가호는중요하지.마술적으로도여러의미가있거든.황가의가호가있어야즉위식을수행할수있고,그걸성공해야황가에숨겨진비술이나병기들을가동할수도있고..."

"너무길군요."

"어,어쨌든!혈통만유지되면상관없느니라.용사의혈통이황가의혈통을대신할수있긴하지만,적법한황제의딸인엘레노어라면그녀에게도가호가있을거다!"

갑자기기분이나빠졌다.

"그녀가제게거짓말을한겁니까?"

"모르지.그녀도잘모르고있을수도있고,아무래도황가의비술이니내정보가잘못되었을수도있고.하지만그녀가거짓말을했다면,왜거짓말을했겠나?아마그녀도자네에게..."

"그런건아닐겁니다."

기껏해야귀환에소모되는마법재료를아끼기위해서거나,내가어떤방식으로든황실에필요하기때문이겠지.

"오크로드와싸울때,엘레노어는저를보내면서공주중아무에게나씨를뿌리라했습니다.그녀가제게마음이있었다면,그렇게말할리가없어요."

"그건덕담일세.황가의여자들이얼마나아름다운지아나?제국에서가장아름다운첩을들이는자들이네."

"그건내알바..."

"그건아네만,일반적으로그건덕담이란말일세.그녀도,나쁜뜻에서한말은아닐거야."

발가벗고있는꼬맹이에게훈수를듣는것은그다지유쾌한경험이아니었지만,적어도연륜만큼설득력은있었다.

"하지만,당신이제게원하는건뭡니까."

"나는길을잃었다.확신이사라졌어.그쉬운의식하나끝내지못하는내가만들세상이과연좋은세상일까."

잠깐잊고있었던분노가다시치솟아올랐다.하지만,지금여기서그녀에게분노를표출하면그건해프닝으로끝나지않을것이다.

"그래서,자네가필요하다.적어도,그대를귀환시키는의식을끝내지못한나는아무것도할자격이없어."

파시어는작은몸을서서히굽혀,내쪽을보고엎드려절했다.무방비한등이바르르떨리고있었다.

나는그방에서나왔다.마지막으로,술을마시고싶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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