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62화 (62/217)

〈 62화 〉 인내­1

* * *

"정보부에서는네행적을파악하고있었다."

"..."

나도,거기까지뭐라할생각은없었다.

황궁에서그난리를쳐둔상태였으니,관심을끄라고말할수는없었다.

"네가나를구할필요는없었을텐데?"

"제국의시민들을위한일이다.그리고,네게는아직갚지못한빚이있으니까."

엘레노어가사람들을구하러다니는건,이상한일이아니었다.

용사파티안에서는죽어가는사람들을외면하던그녀였지만,그건어디까지나위급한상황이기때문이었다.

"언제부터제게그리관심이많아졌습니까?제가용사의힘을얻었을때부터?그황가의가호라는거에제가필요하다는사실을알았을때부터?"

"...그런게없이도,꼭사과했을거다."

그게그녀의본심일지도몰랐다.마음속어딘가에는,그녀가하던행동에대한반성.혹은나를격려하고싶다는마음이있었을지도모른다.

하지만,이미무의미한일이었다.

"언제요?"

"..."

하지만그우선순위는저아래떨어져있었다.

그녀는바빴다.오크로드같은거물은아닐지언정,그정도,혹은그보다조금모자란수준의몬스터무리는쉴새없이처리하고있었다.

지금당장내게사과하지않아도괜찮다고생각한순간,이미그말은몇년이지나도이루어진다는보장이없다.

황제의지시도있었을테고,당장그녀의뜻대로움직이지않는내가기분나빴겠지.

나와화해하는것정도는,그일들을전부끝마친다음에언제라도할수있었을거라생각했을지도모른다.

"늦었을지언정,해야하는일이다.나뿐만아니라황제폐하도너를도울것이다."

그건불행중다행이었다.구하는것이불가능한마법재료를모으는건그렇다쳐도,소소하고비싼마법재료나의식에참여할사람들을모으는건불가능에가까운일이었으니까.

"...그래.이제어쩌려고?"

말은된다.언젠가내게사과할생각이있었다면,조금속보이는짓이지만지금내게사과하는것도불가능한일은아니었다.

엘레노어는처량하게고개를숙였다.

"...거기까지는,생각해보지않았다."

그녀와대화하다보면,가끔은사람이아닌다른것과대화를나누는느낌이든다.

제국의기사,황녀,용사.그정체성이마치엘레노어라는사람의본질인것처럼.

저말은진심이었을것이다.

"반드시죽을거라생각했다.다음따윈...생각해본적도없었어."

언제나다음계획이있었다.그래서,나는당연히다음행동도준비되어있을줄알았다.

하지만지금,그녀는너무약했다.

"너를따라다니며속죄해도괜찮겠나?"

본능적인거부감이솟아올랐다.

"그몸으로?"

"...셀리아에게도미리말을해놨었다.이싸움에는참여하지못했지만,계속따라다니며치료마법을걸어주면곧회복할수있다."

딱잘라거절하고싶었지만,나도내한계를느꼈다.

용사의힘이계속남아있다면,결국온전히몸이회복된그녀도나보다는약할것이다.

하지만그걸감안해도그녀는최고의검사였다.성검의말을들어보면,마왕퇴치이후천천히용사의힘은사그라든다고했다.

나는,언제까지더이힘을가지고있을수있을까.

만에하나,어느순간내힘이사라지게된다면여정이끊겨버리는것아닐까.

그녀의품성을생각하면,한번나를돕겠다고한순간끝까지그약속을지킬것이다.만에하나마왕이부활해서제국을노린다거나하지않는이상.

"됐어,나중에얘기하자.파시어,당신은요?"

언제봐도,몇백년을살아온마법사로는보이지않는작은몸집이었다.

눌러쓴고깔모자가아니었다면,그녀를처음본사람은절대마법사라고생각하지못할것이다.

"그주문은,여기오자마자바로쓴마법이니라."

"...그럴리가."

"마력을아끼지않았을뿐이다."

물론그녀수준의마법사라면,준비되지않은상황에서도최소한의마법은구사할수있었다.

오크의진형을가르고수많은오크들을태워버릴메테오를준비없이쓰는것도,불가능한일은아니었다.

"진심입니까?"

한톨의마력도정신병자처럼아끼는그녀의행동을생각하면,도저히믿기지않았다.

"이제는,그마력으로할수있는일보다네목숨이더중요해졌을뿐이야."

그녀도,조금달라진걸까.

"준비때문에바쁜줄알았는데.그때당신을살려준건,제귀환에도움이되라고..."

"노력은하고있느니라.그래도,마법의식에서재료의유무만큼중요한게신선도야.돈과노력이있어도구할수없는물건들도있고..."

파시어는자그마한손가락으로연신보랏빛머리카락을매만졌다.

"그리고무엇보다,네가여기서죽어버리면다부질없는짓아니겠나."

궁금한건전부들었다.

"제발,부탁이니까다시는...얼굴보지말죠."

어쩌면,감사하다고말해야하는순간이었을지도모른다.

엘레노어의의도가어땠든,그녀의도움은적시에이루어졌다.내힘을두려워하기때문에어쩔수없이고개를숙인건아니었다.

파시어도마찬가지였다.적어도그저주같은무언가를풀기위해내게고개를숙일수밖에없었던네르웬과는달랐다.

나는많이안일했었다.감정이앞서,그녀들을통제할수단을만들어놓지못했다.

물론무슨방법을쓰든,그통제가제대로이루어지는것을확인할방법도없을테지만.

최고의마법사와황제가함께수를짜내면어떤저주나맹약이든회피하거나끊어낼수있을테니까.

어쨌든,그녀들은자신의의지로여기왔다.내가죽는것을막기위해서.

그걸이해할수없었다.차라리나를배신하고나를죽이기위해내앞에선거라면,마음이좀편했을것이다.

이번에는정말로그들을죽이기위해싸울수있으니까,아무런망설임도죄책감도없이화를낼수있으니까.

하지만그들은그러지않았다.마치내가나쁜사람이된것처럼,헌신적으로행동했다.

조금만더빨리이렇게대해줬으면,마왕퇴치까지아무것도안해도괜찮으니까,적어도돌아오는와중에나를이렇게대해줬다면.

성녀의마음이조금이해되기시작했다.

"왜이제와서..."

조금이라도빨랐으면,이렇게까지싫어하지않아도됐을텐데.

"지금이라도,속죄하겠다.짐꾼이라도좋고,더미천한자리라도상관없다.하라는것은뭐든지하겠다.

엘레노어는고개를깊게숙였다.그녀가사과하는모습을보는것은처음이었다.

그녀는항상그녀의행동에떳떳했으니까.나중에사과할만한일은애초에하질않았다.

"...정말그럴수있겠어요?"

그녀는,다른이들과다르다.

노예처럼부려먹히겠다는맹세를한건그녀뿐만이아니었지만,네르웬의맹세와그녀의맹세는결이다르다.

엘프의수명과인간의수명은다르다.내가살아있는동안네르웬이내게봉사하더라도,그게그녀의삶전부를바치는것은아니다.

좀극단적으로는,세계수에들어가고내뒤통수를칠수도있었다.저주를끊는것이그녀의목적이었으니.

게다가네르웬과그녀는맞고있는중책이다르다.세계수의대전사가어떤일인지는모르겠지만,그게아무리중요해봐야황녀인그녀만하지는못할것이다.

엘레노어는,제국에대한책임을지겠다며얼마안되서빠져나갈것이분명했다.

고민에빠진나는,복잡한심경으로그녀를내려다보았다.

/////

"얼마전습격에들어갔던오크부대가전멸했습니다."

크레온의매서운시선이황제를향했다.거대한옥좌앞에선크레온의태도는꽤무례했지만,그걸볼수있는사람은황제와그경비병밖에없었다.

뒤에서있는신하들은그걸볼필요가없고,크레온과적대하는황제라면그의태도와상관없이그를지적할수있었다.결국,그무례를비난할사람은아무도없었다.

"짐도약간은전해들었나만...그대는어떻게생각하나?"

공식적인보고는이번이처음이었다.크레온과황제는,서로의정보력과의사를확인해야했다.

"에네렐남작이큰공을세웠다고하더군요.조사결과,적의규모도적지않았고심지어는오크로드까지있다는것이확인되었습니다."

"호오."

사실에가까운말이었지만,이건얼마든지왜곡될수있었다.

크레온이원한다면'오크의수가지나치게부풀려졌다.'같은트집을잡을수도있었고,오크로드의진위까지의심할수있었다.

목격자가적지않았지만,일반농민이나병사따위의증언은착각으로넘길수있었고,귀족에게는압박을줄수있었으니까.

하지만크레온은그게거대한위협이라는것을인정했다.결과적으로,황녀파인영주가용맹하게싸워공을세웠다는사실을인정해야한다.

"그자리에다른이들도있었지만,중요한역할을하지는못한것같습니다.에네렐남작께서는오크로드를홀로무찌르고,적진에파고들어싸움을승리로이끌었다고하더군요."

황제의가장충실한신하이자혈족인황녀와파시어를'다른이들'로격하하는것은어찌보면당연한일이었다.

"그런가..."

크레온은자신이원하는상황을들이밀었다.황녀의영향력을낮추고에네렐에게거대한군공을만들어주는것.

당장그들이볼이득은없지만,이런일들이하나둘씩쌓이다보면그의존재자체가정치적으로큰의미를가지게된다.

황제가그를포섭할가능성은거의없으니,시간을들여귀족파가에네렐을포섭하기만하면황제에큰타격을줄수있을것이다.

"어찌하면되겠습니까,폐하?"

황제는,선택해야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