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흉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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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양껏마시고일어나보니,주위가소란스러웠다.
"다모였어?일어나,일하러가야지!"
"으..."
피로가아직남아있는몸은노곤했다.술에취해곯아떨어진건아니었고,제대로여관방침대에누워있었다.
소리는창문밖에서들려왔다.이런시대에방음시설이잘되어있을리도없고,밖에서사람들이떠들고있으면잠이깰수밖에없었다.
"뭐지..."
방한구석에메이드가새근새근자고있었다.방을하나더잡아줄수도있었지만,그녀는꼬박꼬박내방안에들어와서잠을자곤했다.
"이것도슬슬못하게해야하나..."
어제도바쁜일이있다면서여기저기돌아다닌그녀였다.검을쓰기까지했으니,그녀도피곤하긴매한가지였을것이다.
피로를느끼긴하는건지아니면저모든게연기인지확신하지도못했지만,어느쪽이든이렇게구석에눕혀둘수는없었다.
"어,일어났어...요?"
"편하게해.이제와서무슨..."
술에취한여급은덕분에,별로필요하지는않지만흥미로운정보들을좀얻을수있었다.
구체적으로는,‘이지방에서는어떤민요가유행하고있는가’같은뭔가민속학적가치가있을법한정보들을.
분위기가좀지루해졌다싶으면조금아쉽거나슬픈표정을짓는데,그녀의슬픔을생각하면멋대로자리를빼기도어려웠다.
그러다가또쉴새없이모험얘기를꺼내는데,듣다보니또재밌기도해서밤이늦도록듣게되는마력이있었다.
그럭저럭남작님대우를해주던그녀였지만,어느순간말을놓았다.나도,그게싫지는않았다.
"그래서...저건무슨일이야?뭐가또남아있어?"
"일단죽은사람들을묻어줘야하니까."
예상에비해전사자는훨씬적었지만,그것도엄연히대지에뿌려진,썩어들어가는유기물이었다.
하나하나묘를만들어줄수는없겠지만,그렇다고방치할수는없었다.구덩이를파고,적어도오크와는다른곳에묻어야할것이다.
"도와줘야하나..."
"그런일까지시키지는않을거야.손님이잖아?"
"그래도,나만쉬고있을필요는없어.필요한일이라면나도도울테니까..."
"진짜곱게자라긴했구나.음,그럴것같긴했지만!너무걱정하지마.다하고싶어서하는거니까."
"...왜?"
잠깐생각해본나는,아주당연하고간단한이유를떠올릴수있었다.
"유품이구나..."
용사파티는돈이필요하지않았다.
애초에돈으로해결할수있는일은황녀의권위와용사파티의모험이라는대의명분하에징발할수있었다.
금화는그다지가벼운물건이아니었고,우리가쓸만한금화를내가짊어지고다녔다간내어깨부터남아나지않았을것이다.
금화가그런취급을받을정도였으니,다른인간의유품따위에관심을가질이유가없었다.
마법사나성녀의필요에따라정말귀중한물건을가져올때가아니면몬스터의사체를잘건드리지도않았으니,내생각밖의일이될수밖에없었다.
죽은자의갑옷과무기를벗겨한몫챙기려는하이에나든,희생된친척과가족의마지막유품을간직하고싶은일반인이든모이지않을이유가없었다.
그리고,하이에나를욕할수도없었다.적어도그전투에참여한하이에나라면,그건비겁자의약탈이아니라목숨을바쳐싸워승리한대가를받고있는것이다.
"뭐,그러면다행이네."
묘하게목소리가기운차보였던게착각은아니었던모양이다.하긴나라도,어제같은전투를치른상태에서당장시체치우는작업에동원되면좋은소리가나오기힘들었을것이다.
"잘쉬어.돈은더안받을테니걱정하지말고."
"그럴필요는없는데."
"됐어.네얼굴이라도봐주러온사람들이많다고."
그녀는나무다리를꾹꾹눌러고정시킨다음,멋쩍게웃었다.
"언제까지머물생각이야?"
"내일이나,늦으면모레.바로떠날거야."
"그렇구나...음,그렇겠지.좀아쉽네."
입맛을살짝다신그녀는,안절부절못하고이리저리움직였다.
"뭔가하고싶은게...목표같은건있어?"
"돌아갈거야."
조금,오래걸릴뿐이다.언젠가는꼭돌아갈것이다.
"고향?"
"뭐,그런셈이지."
"그렇구나...으,그래.고향은중요하지.아쉽네.다리만멀쩡하면,네고향에도한번꼭가보고싶었는데."
싸우는사람에게,죽음은너무익숙한일이다.부상과상처는그보다도더흔한일이다.
저상황에서도다른모험가처럼싸울수있다는것이그녀의실력을증명하지만,그래도싸움에는변수가너무많았다.
장애가있는사람이일상생활을하기도힘들지만,전투를하기에는더욱어렵다.
한쪽눈이나팔하나,다리하나가없는사람은자기급보다몇배낮은적을상대로도고전해야한다.
"마음만으로도고마워."
의족을찬모험가는,나와함께떠나고싶었던걸지도모른다.
"아쉽네,아쉬워..."
그리고그녀의역량과내역량의격차가너무크다는사실을깨닫고,그마음을접은걸지도모른다.
"내가이런말을하게될줄은몰랐는데,그래도안하면후회할것같네.있잖아,괜찮다면여기남지않을래?"
상상도하지못했던말이었다.
짧은순간이었지만,이곳이싫지않았다.그냥,편했다.
나를좋아해주는사람이너무많았다.황궁에서처럼저사람은누구냐며속닥거리는말을들을필요도없었고,여기있는사람들은내손에목숨을구원받았다.
하지만,계속여기머물수는없었다.
"돌아가야해."
그녀는잠시멈춰씁쓸한미소를지었다.
"하,역시그렇겠지?남작님이니까,뭔가더엄청난그런게있겠지..."
신분차이가피부로와닿지는않았지만,그녀는그저모험가였고나는명목상이나마귀족이었다.
"그런건아니지만,어쩔수없네."
"그래도,배웅정도는할수있겠지?아빠한테는좀미안하지만,근처까지안내정도는해줄게."
"음...그게,고향에가려면뭘좀찾아야해서."
"뭐길래?말만해줘.몸이좀불편하긴해도,소싯적에는꽤잘나가던모험가였거든?내가찾아줄게."
말은고마웠지만,그녀에게도움을구할생각은없었다.애초에,스케일이좀다른재료였으니까.
"불사조의유해랑...유니콘의피였던가,그리고마룡의심장?"
잠시입을다문그녀는,내말을믿어야할지말아야할지고민하는것같았다.
"남작수준이아니잖아!고향에돌아가기전에나쁜짓을좀많이했어?"
내말을믿겠다는결정을내린건지,그녀는호들갑을떨며내게소리쳤다.
"무슨,천사나악마같은종족이아니고서야고향에돌아가기위해그런물건이필요할리가없잖아!"
"뭐,그렇게됐지."
혀를내두르며포기하는그녀의얼굴을보자,말하길잘했다는생각이들었다.
"이건정말...직접구해다주지는못하겠네.그래도,도움이될만한정보는있어."
"뭐?"
그녀의실력이심상치않을거라는생각은했지만,이런재료들과연관이있을거라는생각은하지못했다.
잠시창고로들어가이곳저곳을뒤지던그녀는,꼬깃꼬깃접힌종이하나를가져왔다.
"여기는진짜비밀인데,너라면보여줄게.어쩔수없지만..."
지도에별다른내용이있는건아니었다.하지만,그들이여기서발견했다고하는물건은꽤의미있었다.
"유니콘의꼬리털...맞아?"
"여기서주운물건을마탑에팔았는데,별말없었던걸생각하면틀림없는진품이야."
심지어한두번주운것도아니었다.관리되지않는야생유니콘의서식지라니,누구에게물어봐도나오지않을정보였다.
"아니,그런모험가가여기서왜..."
"흐,그게,여기도우리역량을훨씬넘어서는오지였거든.그래도전재산을다퍼부어포션이랑장비를샀는데,다음모험이마지막모험이될줄은몰랐어."
"그래도,값은치러야..."
당장은불사조의유해를찾으러갈생각이었지만,이정보도소중했다.돈을내고사야하는정보였다면당장에개처럼일했을정도로,첫실마리는중요했다.
"됐어,됐어!내가더고맙지."
하지만그녀는아무것도바라지않았다.
이렇게순수한감사를받아본적은,좀오랜만인것같았다.
아니,어쩌면이미몇십번씩받았음에도내가그걸받아들일준비가되지않았던걸지도모른다.
"고마워."
"나랑우리마을,꼭기억해야해!고향에가기전에한번들러!"
"...알았어.꼭기억할게."
조금,용기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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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기분들을싹다끌어내리는것같아아쉬웠지만,그래도해야하는일이었다.
"...왔나."
꽤나말끔한파시어의옷차림에비해,엘레노어는아직전장의상흔이가시지않은것같았다.
"이번일은고마워.하지만...이거,날따라오고있었던거지?"
차라리이영지를구하기위해허겁지겁달려왔다면용사다운행동이었을것이다.
하지만그녀는나를정확히지목하고,나'만'구출하기위해들어왔다. 분명히 나는 감시당하고 있었다.
"파시어.너는어떻게내가여기있다는걸알고있었지?"
게다가,마법사의마법은준비없이쓸수있는게아니다.
파시어의수준을생각해도,전장에영향을줄정도로거대한메테오라면적어도일주일전부터준비한것이다.
어디인지 몰라도, 분명 그 거대한 돌덩이를 떨어트릴목적으로.
"확실히해.너희들,원하는게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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