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59화 (59/217)

〈 59화 〉 흉터­12

* * *

"멋대로..."

확실히,그녀와는맞지않는다.나는엘레노어를싫어한다.

하나하나마음에드는말이없었다.이런상황에서도황가의의무를들먹이는것도싫었고,멋대로나를구하려드는것도싫었다.

흙을털고일어났다.하지만,뒤에서들려오는목소리에잠시멈출수밖에없었다.

"와,높으신분이었나보네.진짜남작님이었어..."

그다리없는모험가는,운좋게도살아남아있었다.

그녀와함께나온몇명의모험가들은,오크로드와멀어진전열간의거리를메꿔주고있었다.

"칫..."

멈춰있을시간이없었다.생각할여유가필요했지만,그순간에도손이놀아서는안된다.

바로오크둘을베어버린뒤,그녀에게소리쳤다.

"신경쓰지마!"

"황녀님까지오셨는데,우리가목숨을아꼈다간중범죄야.네걱정때문에메이드까지저기서칼들고싸우고있어.그냥가,도망쳐."

그녀의눈에살짝,눈물이고여있었다.

"연인도있다며!너야말로도망치는게..."

"그게...이제없어."

분명얼마전까지그렇게화기애애한얼굴로그사람을만났으면서,없다는말을단호하고차분하게할수있다니.

하지만,그게보통일것이다.이세계에서죽음은일상이다.모험가라면,이런전장에서자신혹은옆에있는사람이죽을수있다는것은알고있었을것이다.

그래도,그담담한태도는내머리를깨질듯이아프게했다.

살릴수있었을까.

엘레노어가했던것처럼,내가먼저선두에파고들어적의주목을끌었다면.

오크로드의공격을정통으로얻어맞아도좀많이아플뿐인육체다.오크잡졸을상대로는둘러싸여도버틸수있다.

내가먼저선두에서고,몇안되는화력을거기에집중했더라면.

어설픈가정이다.희생자를줄일수있었을지모르지만,그랬다간오크로드와싸울체력이남아있지않을수도있었다.

하지만,그줄어든희생자에그녀의연인이있었을지도모른다.그주점에있던모험가들이나,그녀의아버지는어떻게되었을까.

이미,죽었을까.

"도망칠것같냐…."

이미,도망쳐있었다.

평소의나라면주저없이그방식을선택했을것이다.하지만나는,애매하기짝이없는행동을했다.

사람이죽는것은두려워하면서도,내가앞에나서서무언가하고싶지는않았다.

그들의말이옳았다.엘레노어의말이옳았다.

살수있는사람이라도도망쳐야한다.나는여기에있는모든사람을버리고,혼자살아남아야한다.

"절대,그렇게는안할거야..."

그'옳은'판단이싫었다.용납할수없었다.여기있는모든사람들의목숨이,'포기할수있는것'으로폄하되는꼴을볼수없었다.

"버틸수있어..."

아니,그걸로는부족하다.내가이를악물고버틴다한들,여기에는용사파티가없다.용사의힘을얻은엘레노어는이제어디에도없다.

나아가야한다.버티는게아니라,해내야한다.

"비켜!!!"

뒤에서달려오는나를보고,엘레노어의자세가흐트러졌다.

"왜아직도떠나지않은거냐!"

"이길거니까!"

주위에몰려든오크둘을베어넘기고,그거대한괴물에게검을겨누었다.

그녀가틀렸다.그선택이옳을리없다.내가증명할거다.

더이상아무도죽지않고,누구도희생시키지않을것이다.

"죽어!!!"

온힘을다해,오크로드의옆구리를베었다.

지금까지그랬던것처럼,손가락한마디정도들어간검은그거대한근육에의해멈췄다.

하지만,나는여기서멈출생각이없었다.

오크로드가주먹을내리치더라도한번이면버틸수있다.

시간이지나가면지나갈수록전황은불리해진다.이싸움에서한명의사람이라도더살리고싶다면,내가해야할일은명확했다.

어떻게든이괴물을,이공격으로처단하는것.

"될리가없다!네가그렇게까지할필요는없다!"

모두가나를말리고있었다.어쩌면이행동은,그들의희생마저무의미하게만드는일이될지도모른다.

하지만,지키고싶다.내뒤에남은사람들을한명이라도더살리고싶다.

부정하고싶다.반박하고싶다.이와중에도어쭙잖은희생을하며,제국의안위를위해서는어쩔수없는일이라고말하는엘레노어를향해,그녀가틀렸다고외치고싶다.

증명하고싶다.

오크로드가고함을질렀지만,나는이를악물고그검을놓지않았다.

"으읏...!"

할수있다.정확한이유는몰랐지만,내몸에서알수없는기운이요동치고있었다.

이힘의끝이어디까지일지는모른다.생각외로쉽게막힐수도있고,오크로드를어렵사리베어낸다음오크의수에밀려쓰러질수도있다.

하지만,해야한다.하지못한다고해도해야한다.

"크윽..."

순간,검이자홍색으로빛났다.내몸에서튀어나오던빛의알갱이들은어느새사라졌고,성검은이글거리며요동쳤다.

성검은더나아가지않았다.하지만그검끝에서뿜어져나온빛은,검의크기의두배이상컸다.

그리고그검의앞으로새어나온검기가,서서히오크로드의살을태우며앞으로들어갔다.

마치거대한철판에몸이반으로잘린것처럼,그육중한괴물의신체가조금어긋났다.

시끄러운전장이었지만,그순간만큼은조용했다.

오크로드의상체가땅에떨어졌다.거대한소리와함께먼지가퍼져나갔다.

"봐.되잖아..."

어느순간부터,할수있다는생각이들었다.

하지만그런확신이없었더라도,나는이오크에게달려들었을것이다.

해야하는일이었으니까.할수밖에없는일이었습니까.

그래도,멍하니나를보고있는엘레노어의얼굴을보니묘한승리감이들었다.

물론,그걸즐기고있을시간이많지는않았다.

"너희들,다빠져!난더버틸수있으니까!"

"그게무슨..."

무슨힘인지는모르겠지만,무언가내안에서끓어오르고있었다.이정도로면,한시간은더버틸수있었다.

그자홍빛검기,아니검기라기에는너무이질적인빛의판은순식간에사라졌다.다시뿜어내려해도,쉽게나타나지는않았다.

물론,남은오크정도는성검으로도쉽게베일테니문제는없었다.

"당장은위험하지않으니까,일단전열과합류해요!"

메이드,세레스는어디선가검을뽑은채오크를베어넘기고있었다.내말을듣자마자최대한빨리다른사람들을안내해주는건,정말고마운일이었다.

"아니,방금그거,어떻게..."

의족모험가도,다른기사들도그저어이가없다는듯이나를바라보고있었다.

"나도몰라!애초에,그걸고민할때가아니잖아!"

상황이시급했다.

잠깐고민한나는,이런상황에서엘레노어가어떻게움직였는지떠올렸다.

'지휘관부터,최대한적진을흔들면서...'

그걸행동으로옮긴순간부터는,비는시간이없었다.수없이많은오크무리한가운데로들어가있었으니억지로라도집중할수밖에없었다.

나는,최선을다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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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의망막에남은에네렐의검기가남아있었다.그녀는,그빛을멍하니바라보고있었다.

"...할수있었지않나."

어쩌면,그녀는필요하지않았을지도모른다.그냥그대로그를내버려뒀으면,스스로용사의힘을깨우치고영웅이될수도있었다.

악수였다.차라리그가혼자이전투를승리로이끌었다면,그명성과영광을오롯이받을수있었을것이다.

하지만,그녀는여기와버렸다.전투에실질적으로도움이되지는않았으면서,어설프게'전투에참여했다.'라는결과만남겼다.

그와의마지막대화가될지도모르는상황에서도,제국을우선시했다.분명,그는그런그녀의태도가마음에들지않았을것이다.

"그건...뭐였나."

그녀의불길한상상은,점점현실이되어가고있었다.

엘레노어가용사의힘을얻은것은,현명한선택이아니었을지도모른다.

그가 뿜어낸 거대한검기는그녀가한번도도달하지못한크기였다.

그예리함이그녀의것과같은수준이라면,그리고이게용사의힘을얻은지한달도되지않는초보용사의검기라는것을생각했을 때 믿기 힘든 성과였다.

"자질도,부족했던건가."

그는모두를지킬역량이있었다.그검기가푸른빛이아닌자홍색빛을띠고잇다는것은좀불안했지만,그힘은진짜였다. 용사의 힘도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그 검기의 크기만큼 강한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간혹 그가 타락하거나 용사의 힘이 변질되었다고 해도, 그녀는 그를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마음의동요,혹은분노로인해 그가 타락했다면 그원흉은여기온엘레노어였을테니까.

그녀는마지막까지쓸모없었다.그가용사였다면더빨리,많은사람을살릴수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그녀는지친정신을붙잡고다시일어섰다.아직오크는많았다.용사가여기서싸우기로결정했다면,제국의기사인그녀는그지시를따라야한다.

"어떻게든, 움직여야..."

그리고,너무나도갑작스럽게,냄새를맡았다.

기름과마력초가타는냄새.익숙해질수없는냄새였지만,그전과는기대할만했다.

"너도,에네렐에게사과하기위해온거냐..."

언덕위에,조그마한인영이드러났다.양손으로자기몸집만한지팡이를들고있는,사람이라기보다는소인족에가까워보이는작은존재가.

지팡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늘에서 불이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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