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58화 (58/217)

〈 58화 〉 흉터­11

* * *

"시간이없다."

셀리아는내키지않는다는듯이연신마을을되돌아봤지만,용사의결정을이해하고있었다.

파시어와네르웬은그럴가치도없다는듯이떠날채비를마쳤다.

"...안돼요."

그걸인정하지못하는것은,이름없는짐꾼밖에남지않았다.

"여기서시간을낭비할이유는없습니다.당신도알고있을텐데요."

엘레노어는최대한차분하게그를설득하려했다.

"봤잖아요.마물무리...몇시간이면쓰러트릴수있는수잖아요.전투경험을쌓기위해서라도..."

"네가우리'전투경험'을걱정해주는거냐?"

네르웬의차가운말에,그는입을다물었다.아무리쉬운적과의전투라도그걸직접수행하는것은그가아니었으니까.

"마법에는대가가따르기마련이다.피할수있는전투는피해야하고."

파시어의말에도그짐꾼은아무런반박을할수없었다.그가아무리노력해봐야,어디선가마법재료를모아올수는없는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이대로면저사람들은..."

마물의진군로에있는사람들이다.대피준비를시작했지만,너무산골에있는마을이라제대로된소식이전해지지않았다.

"파시어의말처럼,싸움은불필요합니다.시간은한정되어있고,우리가먼저적을따라다니면서요격할수도없습니다.필연적으로,하루이상의시간이소모됩니다."

"그정도면..."

"안됩니다."

이성적인판단을하고있는사람은,누가봐도명백하게엘레노어쪽이었다.

올바른시간에용사의비고에도달하지못해마왕의감시가심해진다면,마왕퇴치까지몇달의시간이더허비될수도있었다.

그리고그시간동안,전선에있는병사들은수없이죽어나갈것이다.

셈을하지못하는어린아이의생떼였다.눈앞에있는것만보고,멀리있는것들을보지못하는어리석은자의판단이었다.

하지만,그에게는용납할수없는일이었다.

어제까지웃고떠들며잠자리를제공해준마을사람들이,아주잠깐의시간과약간의전투로살아남을수있다는말을들었으니까.

"그래도,나는최대한노력할테니까..."

그는,사람의목숨을저울에올리는법을배우지못했다.

"지금까지의여정도쉽지않았을겁니다.더속도를올리면당신도버티지못할겁니다."

하지만그의눈은집념과미련을담고있었다.엘레노어는잠시고민할수밖에없었다.

이성적으로는그들을버리는것이옳다.

하지만,이성으로모든사람이움직이는것은아니다.그가용사파티의덤으로나마들어온이상,한치의의심도있어서는안된다.

마왕이마음을움직이는방식은잔혹하고교묘하다.그가마왕과손을잡을거라는생각은들지않았지만,조금의의심이라도들게된다면비상상황에대처할수없다.

"그렇다면,책임지실수있겠습니까?"

"...무슨책임?"

"저는짐꾼의말은듣지않습니다.하지만제기사,아니제국기사의부탁이라면들어줄생각이있습니다."

사실,이정도로그가포기해주기를바랐다.

"당신이동의하면,저는당신을기사로임명할겁니다.당신은저에게기사로대우받고,저는당신에게기사의책임과임무,인내와충성을요구할겁니다."

"뭐든지할수있어."

하지만,그의눈은불타고있었다.

엘레노어는그를보며안타까움과씁쓸함을느꼈다.

"그러니,제발저사람들을구해줘.애초에내가좀더빨리움직이고,덜다치면속도는더올릴수있는거잖아?어떻게든보충할테니까..."

제국의시민들을지키는것은당연한의무다.그가아니라,그녀가해야했을말이다.

하지만그녀는지금,마치용병이라도된것처럼그의신병을약속받았다.

"너,그게말이된다고생각하는게냐?"

파시어가끼어들어그를막았지만,엘레노어는고개를절레절레저었다.

"아니요.싸웁시다."

그렇다면,최소한받은만큼은움직여야한다.

"제정신이야?"

"제정신입니다.지금부터는출몰하는마물의종류가달라질테니,전투경험이필요하다는그의말이모두그른것은아닙니다.게다가지금들어오는마물들은척후역할도하고있을겁니다.좀무리해서라도정리해두면마물의진격이늦어지겠지요."

그럴듯한이유는있었지만,효율적인판단은아니었다.

"묻겠습니다.이방인.저는지금부터당신에게더가혹한훈련을,무리한일정을,막중한책임을쥐여줄것입니다.감당하실수있겠습니까?"

"...내가해내지못할수도있지만,약속할게.버틸수있어."

짐꾼은이를악물고눈을불태웠다.

"견딜수있어.참아볼게.무슨역할이든,마왕이죽고여행이끝나고내가돌아가는그때까지."

엘레노어는,그말을믿었다.

그리고시간속에서,그감정은사라지고약속만남았다.

마물은많아지고,전투는잦아지고,여유는사라졌다.

그의결정에대한감사와존경의마음은희미해졌고,주어진일을해내지못하는그에대한분노가커졌다.

그가결정한일이다.그가받아들인책무다.합의된사항이다.

파티원들의갈등이생길때그가비난의대상이되는것도,훈련받지않은인간이도무지할수없는일정속에놓인것도.

조급함은그녀의말수를줄이고,존중을사라지게만들었다.

그래서는안되는거였다.

그의말을믿어서는안됐다.그는결국버틸수없었다.아니,딱약속된순간까지만버틸수있었다.

마왕을처치하는것이그의한계였다.돌아간다는약속이아직유효할때까지버틴건,그한계를넘어선행동이었다.

버틸수있을리가없었다.아무리선하고,아무리곧고,아무리정의롭다해도그는사람이다.

그가지하실에서폭발하는그순간까지,엘레노어는그걸깨닫지못했다.

그의친절에안주한나머지,그의영혼을갈기갈기찢은사람은다른누구도아닌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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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그것때문이었어?황가사람이고뭐고,겨우내정액이필요해서그딴말을했던거야?"

오크로드에게분노에찬검기를휘두르며,그는야수처럼날뛰었다.메이드가그를잡으려했지만,힘에서당해낼수없었다.

"네가싫다면,어쩔수없다."

그의곁에웅웅거리는빛의알갱이들이점점거칠게흔들렸다.

"미안하다는거야,꺼지라는거야,살려주는대신그엿같은황가를도우라는거야.하나만해!"

"...이번에도욕심이앞섰군.황가나축복이야기에대해서는사과하겠다."

위험한자세를잡을수도,적의공격을정면에서받아낼수도없다.

조금이라도무리하게오크의대검을받아내는순간,겨우위치를잡은뼈들이자유롭게그녀의몸안에서흩어질테니까.

"미안하다.너는아무런책임도지지않은그저한인간이었고,나는내책임을네게돌리고영광을빼앗아갔다.버틸수없을임무를강요하고,베풀필요가없는자비를강요했다."

"이제와서,무슨..."

"그러니,가라!나는여기서시민들을수호할테니,너는너의여정을떠나라!"

하지만그는마치싸움에홀린사람처럼,오크로드에게서눈을떼지않았다.

"그부서진몸으로뭘어쩌겠다는거야!내가버틸테니까,당장다른오크들이나..."

"또,버틸수있다고말하는것이냐!"

저편안하고안일한말에기대,엘레노어는에네렐을수도없이상처입혔다.

이방인이라한들,제국에있는동안은제국이책임져야할사람이다.죄없고선한사람이다.

목숨을바쳐서라도,그를상처입힌대가를치러야했다.

"가라!황제니혈통이니,아무것도신경쓰지말고집으로돌아가라!"

용사의혈통을얻지못하면,제국은위험해질것이다.항상제국을우선시해야할그녀가해도되는말이아니었다.

마왕의존재와상관없이,제국의가호가끊기는순간수없이많은사악한존재들이제국에들어오게될것이다.

하지만,결국우선시해야할건그의의지였다.제국이,이세계가갚아야할마땅한빚에대한채권을쥐고있는그의존재였다.

"네가이길수있을리없잖아!"

오크로드의검격은확실히무뎌졌다.적어도,그들이시끄럽게말다툼을할수있을정도로는.

하지만그보다더빨리무너지고있는것은엘레노어의몸이었다.애초에전투를해서는안되는몸으로,오크로드와싸워이만큼버티고있는것이기적이었다.

"그워어어!!!"

"크윽!"

에네렐이바닥에처박혔다.

대검에맞은것은아니었다.오크의대검은그가쥔성검에막혔다.

하지만공격과방어는검대검이아니라,그걸쥔존재에의해이루어지는것이다.

조급해진에네렐이살짝뜬사이에이루어진공격이었기에,손으로는막을수있어도그충격을받아내줄디딤발이없었다.

땅바닥을구르는에네렐을본엘레노어는,어렴풋이과거의기억이스쳐지나가는것을느꼈다.

"물론,내게는남은힘이없다."

잠깐그의얼굴을머리에담은엘레노어는,다시녹색괴물을눈에담았다.

"하지만,싸울의지도,이유도남아있다.제국의기사는,이길싸움만할수있는건아니야."

잘훈련된기사들은,아슬아슬하게오크의파도를막아내고있었다.이정도라면,네르웬과에네렐이돌아갈퇴로정도는확보할수있을것이다.

"주제넘은짓이라생각하지만,이걸속죄라고생각해줬으면좋겠다."

다시,아슬아슬하게오크의대검이엇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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