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흉터10
* * *
싸움은계속이어졌다.
오크로드의움직임은눈에띄게무뎌졌고,잔뜩집중한나는추가적인타격을허용하지않았다.
하지만전선은계속해서밀리고있었다.내가붙들려있는것만으로도,전황은계속해서악화되었다.
계속싸우면이길수는있을것이다.하지만,무의미한승리다.내뒤에있는사람들은모두죽을것이고,나는혼자남아도망치거나같이쓰러지겠지.
나를지원하는화살은점점줄어들었다.네르웬을원망하고싶은마음은없었다.지금그녀의화살이필요한곳은,내가아니라오크와맞서는병사들이있는곳이었으니까.
"어?"
그렇게포기했던순간,조금이질적인소리가들렸다.
오크의함성과인간의비명소리사이로경쾌하게들려오는말발굽소리가,진동이작게나마들려오고있다.
병사들이함성을지른다.얼마지나지않아,나는그함성의원인을찾아낼수있었다.
갑옷입은흰말이먼저모습을드러냈다.그리고그위에는,너무나도익숙한얼굴이나를기다리고있었다.
"용사..."
충분히지쳐있지않았으면,분노로그녀에게달려들었을지도몰랐다.
하지만지금은그런여유로운생각을하고있을때가아니었다.오히려,다행이었다.
오크의수가지나치게많았을뿐,수도에서원군이와준거라면승산이있었다.
지금까지오크가우세했던건단지수가많았을뿐,절대적인격차가있던건아니었으니까.
그리고그녀가이끄는기사무리는내쪽으로달려들어,오크무리를향해돌격했다.
"와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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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십니까?"
갑주를꺼낸엘레노어의모습을보고,기사들은당혹스러움을감추지못했다.
수많은전장을거치며,깨지고수리되기를몇차례반복한백색갑주가그녀의손에들려있다는것은,싸움이있다는뜻이었으니까.
단순한대련이나시연을위해사용될만한갑옷도아니었을뿐더러,검과투구,랜스를챙기고있는그녀는누가봐도전장에나가는모양새였다.
하지만,그녀는기사단을부르지않았다.
"개인적인일이다."
당당한그녀의모습만보던그들로서는,달라진태도에당황할수밖에없었다.
최근논란에휘말리며풀죽은모습을보이던엘레노어였지만,적어도그갑옷을입고검을든순간부터는다시냉철하고단단한기사의모습으로돌아올거라생각했으니까.
"해야할일을하는것뿐이다."
"저희를여기남겨두신채로요?"
반으로갈라진기사단은,이전처럼그녀의명령을따르지않을것이다.
황명으로움직인다면결국다시충성을바치겠지만,이전처럼그녀개인의지시에목숨을바칠생각은없을것임이틀림없었다.
하지만그절반은아직그녀를믿고있었다.그절반중절반은이전처럼맹목적으로그녀를따르고있었다.
"얘들아,말준비해라!"
"...정식으로인가받은행동이아니다."
엘레노어에게도,이행동은일종의도피였다.
용사파티에있던동안,그를가혹하게대했던건그녀자신이었으니까.
이건그저,무슨수를써서라도피해를최소화하겠다는몸부림에불과했다.
"들었지?다들준비해!싸움이다!슬슬가만히있는것도질리던참이었어!"
엘레노어는입술을깨물었다.
충성도대의도정의도아닌,그녀를따르는사람이있다는것을자기눈으로확인한건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그녀는그럴자격이없었다.
"따라올필요없다.정따라오고싶다면,올사람만오라전해라.처벌받을가능성도있다."
하지만그녀의말은,그녀를따르는기사들에게는들리지않는말이었다.
"용병나부랭이하던놈을기사단에넣어준사람이누구인데,은혜를잊어서야쓰겠습니까?"
"그자리를좀더소중히여겨라."
그녀의실수다.그의소유인용사의힘을빌려쓰면서,자신이용사라는착각에빠진것도,그에게과도한임무를맡기면서왜해내지못했냐고비난했던것도그녀다.
"내판단에너희들을끌어들일수는없다."
하지만,고개를든엘레노어는깨달을수밖에없었다.그들의행동을막는건불가능했다.
"하다못해,오고싶은이들만따라와라."
가슴을찌르는죄책감을뒤로하고,그녀는기사단중일부와함께말을타고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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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검을든채,오크로드와대등하게싸우고있었다.
검기를뿜어내지도못하는성검을들고,오크에게둘러싸인채흔들림없이검을들어맞서고있었다.
하지만,저모습에흔들려서는안된다.
엘레노어는각오를다진채,그를향해소리쳤다.
"여기서부터는내가싸우겠다!잘해줬다,에네렐!"
"무슨소리야!"
그는오크로드의대검을쳐내며,어처구니없다는얼굴로엘레노어를노려봤다.
"원군으로온거아냐?이놈은내가붙들고있을테니까,싸움에집중해!"
합리적인말이었다.엘레노어의뒤에충분한군사가있었다면,그녀의목표가이전투를승리로이끄는거라면그판단이옳았다.
엘레노어는아주잠깐머뭇거렸다.
그녀가지키려했던나라는,이만큼이나추하다.에네렐을희생시켜지킨이세계는,이토록이기적이다.
그에게희생을강요한그녀는,너무나도약하다.그걸모두인정하는것은치가떨릴정도로부끄러운일이었다.
하지만,시간이없었다.그녀는인정해야했다.
"아니다.원군은없다!여기있는우리가전부다!"
"...뭐라고?"
"나는이전투를승리로이끌기위해온게아니라..."
용사의힘이그녀에게남아있었다면,이런고민을할필요는없었을것이다.
하다못해몸이멀쩡했다면,목숨을걸고시민들을지키기위해싸워볼만했을것이다.
하지만,그녀에게는아무것도남지않았다.
"너를,너만이라도이전장에서빼내기위해온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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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생각보다상황이좋지않다는것을깨달았다.
일단기사의수가적다.물론그녀의기사라면수로판단할수없는강자들만모여있겠지만,그래도칼질한번에오크한명을죽이는건다르지않다.
기사의갑주와커다란말의위용은어마어마했지만,그수는 스물이 채 되지않았다.
그리고,용사는지나칠정도로흔들리고있었다.
아무리급하게말을타고왔다한들,겨우 승마 따위로숨을헐떡일그녀가아니었다.
어색하다.부드럽지않다.오크로드와싸우면서살짝한눈을파는정도로도,그녀가이상하다는것을눈치챌수있었다.
"뒤에사람들이있잖아!"
"네겐책임이없다.책임이있는사람은,나다."
말에서내린그녀는,순식간에공격에가세했다.
"그워어..."
오크로드는지치지도않는듯투지를불태우고있었지만,엘레노어는다른잡졸과는달랐다.
그녀의예리한검이,오크의허벅지에작은상처를만들었다.
"몸,정상이아닌것같은데."
"견딜만하다.그리고,조금만더견딜수있으면충분해."
"애초에,원군이없다고?수도근처에서저런괴물이나왔는데?"
"황제폐하의권위가약해졌다.수도에최소한의병력을배치하지않으면,어떤사태가일어나도대처할수없어.친위대의부상도전부치유되지않았고..."
결국,또나때문인건가.
이런일이생길지도모른다고생각해서,정말마지막까지그녀에게준힘을되찾지않았다.
정말중요한순간에힘이필요할때는,나보다그녀가더이힘을잘쓸수있을테니까.
"내잘못이다.내가올바른판단을했다면,네게조금이나마더유했다면,네가짊어지지않아도될책임을억지로던져주지않았다면이런일은일어나지않았겠지."
"그럼꺼져.나혼자라도저놈을죽이고말테니까."
"그럴 순 있겠지. 하지만 그 다음, 오크의물결에휘말려죽게될거다.네게제국에봉사해야할의무는없지만...네가그런생각을언제가할수있는가능성이라도남아있는게,내하찮은목숨보다중하다."
그녀의가세로 여유가조금더생겼다. 오크 로드의 시선을 끌 사람이 한 명 추가된 것이니, 들어가는 유효타도 늘어났다. 하지만 저 괴물을 죽이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대체왜!"
"용사의혈통이제위에올랐을때받게될가호는,무엇보다제국에중요한축복이다."
그녀의표정이서서히굳었다.조금전까지남아있었던미혹과회한들이사라지고,그자리를기사도가메꿨다.
"혹시나그럴생각이있다면,황가의다른여자와결혼해아이를낳아라.아니,결혼도필요없다.단지즐기기만하는걸로충분하다."
"그딴상상뱉고있을여유가있으면저괴물에집중하라고!"
"나같은이상한여자가아니라,아름답고고분고분한여자일거다."
헛소리는그만하라고외치고싶었지만,오크로드가나를보고있었다.거대한검격이내가있던자리를찢고지나갔다.
"읏?"
그리고내뒤에서,가녀린양팔이나를끌어당겼다.익숙한냄새가났다.
기사하나의말을뺏어탔는지,은발메이드가나를뒤로잡아끌었다.
"뭐야,위험하잖아!"
"황녀님말이맞아요.일단도망쳐야해요!"
엘레노어는이쪽을보고,조금감성적인표정을지었다.
"그리고, 내 부탁을 들어 줄 생각이 있건, 없건. 언젠가는..."
나는 메이드의 팔을 뿌리쳤다. 말은 불안한 듯 날뛰었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꼭돌아가라."
다시검을쥔그녀는,오크로드에게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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