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흉터9
* * *
크다.
사람은,자신보다조금만큰존재를보고도두려워한다.키가30cm만차이나도,그의얼굴을올려다봐야한다.
하지만마기가모여비대해진그괴물은,두팔과두다리가달린인간형생물이라고믿기지않을정도로커졌다.
저속도로커질수있다면,네르웬의경고가늦은것도이해할수있었다.겉으로보기에는다른오크와다를바없는존재였을테니까.
"그워어어어어!!!"
거대한대검이내리쳐진다.피할공간은없었다.내가피하면,당장다른모험가들이저검에휘말리게될것이다.
"하아아아!!!"
성검의끝을한손으로잡고,이를악물고그검격을버텨냈다.
"크읏..."
놀랍게도,버틸만했다.디딤발은오크의파괴적인힘에눌려땅을파고들었고,검을쥔두손은 고통스럽게타올랐지만일단막아낼수있었다.
성검이인간을벨수있었다면,내손아귀가찢겨버렸을것같았다.
그검격이막혔다는것에놀랐는지,오크로드는그거대한머리통을돌려나를바라보았다.
머뭇거림은아주잠깐이었고,오크로드는다시그대검을사선으로휘둘렀다.
다행히도,그괴물을보고놀란모험가들은죄다좌우로뿔뿔이흩어진상태였다.
그공간으로다른오크들이물밀듯이내려왔지만,오크로드의묵직한대검은녹색피부의괴물마저 가차없이날려버렸다.
그건,날이있는무기라기보다는거대한몽둥이에가까웠다.오크로드의공격에휘말린오크들은잘렸다기보다는거대한충격에찢겨져,녹색체액을뿜어내는시체가되고말았다.
그리고,그건기회였다.
힘의차이가그렇게절대적이지는않다.대검에직격당하지만않는다면땅에구를지언정목숨이위험하지는않다.
계산을끝낸나는,오크가휘두른대검을회수하기전에총알처럼날아갔다.
저무시무시한크기의대검을쉽게들어올릴수는없었다.한번정도는,검이찔러넣을시간을벌수있었다.
"그어어어!!"
오크로드는다급하게반대로대검을휘둘렀지만,한번끝까지휘둘러진무기는내가보고피할수있을만큼느리게움직였다.
하늘높이뻗은대검의그림자에숨어,오크로드의배까지달려들었다.
"죽어라!"
들어갔다.위에서아래로휘둘러진성검은,선명한궤적을그리며오크로드의배를쓸고지나갔다.
그리고,오크의대검이내등을강타했다.
"크윽..."
등이으스러지는것같다.몸이비틀린다.
검이엇나간것은아니었다.하지만,그순간잠깐머뭇거린게패착이었다.
오크로드의피부에서는피가흘러내리고있었지만,겨우그정도였다.
저거대한육체에비하면,내칼은너무작았다.깊게박히지도않았다.피를흘린다고해도,과다출혈로죽을만한크기가아니었다.
억제력이부족하다.저거대한팔이나다리를몸에서끊어놓지않는한,끝까지방심해서는안된다.
"우워어어어!"
위에서아래로내려찍히는오크의대검을옆걸음질로피했다.하지만,흔들리는땅과내리쳐지는풍압을생각하면피했다고말할수도없었다.
중심을잡지못했지만,그래도그오크보다는빨리움직일수있었다.이번에는진심으로,치명타를내기위해내장을가를듯이베었다.
하지만,성검은다시한번막혔다.
피부가단단한것은아니었다.하지만어느지점부터검이전혀들어가지않았다.
오크로드의배에겹겹이쌓인지방,혹은근육은살아있는것처럼칼을잡고놔주지않았다.
"그워어어..."
자기살점에검이박힌상황에도오크는멈추지않았다.여기서힘을더줘성검을박아넣는건너무위험한행동이었다.
이를꽉악물고검을뽑아냈다.그마저도쉽지않은일이었다.
머리위를대검이스치고지나갔다.피하는것은익숙하고,막자면아직막을수도있다.
"뭐도움될만한거...아니,너무무디잖아!"
짜증섞인목소리로성검에게소리쳤지만,그녀도마땅한방법은없는것같았다.
내탓이야?이검은원래용사의힘을쓰는방출기라고.물론그걸빼고도엄청단단하고,부서지지않는검이긴하지만...
"그럼왜안베이는건데!"
이검의문제는아니야!베기가만만해?제대로된힘과자세가아니면들어가지않는다고!
"그걸배운적은없었어!"
피하는법은알고있지만,베는법은알지못했다.
엘레노어에게기본적인개념정도는배워놨지만,그훈련의목표는어디까지나내생존이었다.
나는아직도반쯤은감정이섞여있을거라생각하지만,당장은그랬다.
내가누군가를베어넘길필요는없었다.그런위험을감수하는것보다,어떻게든버티면서용사나궁사의도움을바라는것이합리적이었으니까.
당연히나는피하는법,쳐내는법은배울수있었을지언정,베는법은배울수없었다.
"찔러야하나..."
하지만저거대한육체라면,점으로상처를내는것이별로효과적일것같지는않았다.
최악의경우검을뽑지못했을때,너무많은시간을소비해야할수도있었다.
"애초에,그힘은왜못쓰는거야..."
글쎄.이정도면쓸수있을거라생각했는데...미안.그건진짜모르겠다.
"젠장,이런괴물을상대로어떻게싸우고있었던거야..."
오크로드는분명엄청나게강한군단장급마물이지만,최강의마물은아니다.
마왕은물론이고,전선에파견된다른마물중에서도저정도로강한마물은적지않다.
오크는불에약하니까불을쓰거나...어쨌든,순수한인간이검술로저놈과맞선사례는없었어.
"그랬구나..."
보통은용사가처리했다.그럴수없을경우에는마법을쓰거나기름과불을넉넉히준비했지.
"그거말고,평범한사람이할수있는거없어?"
대검을피하며거대한오크의몸에상처를하나더만들었지만,그괴물은아랑곳하지않고계속그무시무시한쇳덩이를휘둘렀다.
검술로맞선자가없지는않았지만,내가알기로는반인반룡이라고들었다.며칠에걸친싸움끝에결국싸워이겼다고하더군.
오크가나를단번에죽일수없는것처럼,나도저오크를단번에죽일수없다.
"결국,그것밖에없나..."
계속상처를내고,한번도실수하지않아야한다.
내내구력이얼마나되는지는모르겠지만,굳이시험하고싶은생각은없다.
엘레노어는무시무시할정도로강했지만,그래도다칠만한공격을받았을땐다쳤고피를흘릴만한공격을받았을때는피를흘렸다.
방금전오크의대검을등이아니라목에맞았다면,머리와몸통의결합의느슨해졌을지도모른다.
게다가이곳에서는성녀도,마법사도없다.
"...할수있을까."
다시피하고,또베었다.
오크의움직임에는점점익숙해졌지만,오크또한내행동에익숙해지는것같았다.
기분나쁜일이었지만,저종족들은전투에타고난종족이었다.나와오크로드사이의싸움에서,나보다저괴물이더많이배우고있었다.
떨어지는대검을한번피하고그오크의몸을한번베던패턴은,점점어그러졌다.
오크로드는좀더절제된검술을구사했고,온힘을다해땅을박살내는공격대신적당한힘을다해연속으로대검을휘둘렀다.
피하는것에는한계가있었고,오크의몸놀림은꽤날랜편이었다.
한참동안상처가늘어나지않은오크로드는승리의미소를지으며다시검을내리쳤다.
"어딜!"
그리고나는,이작은몸에도불구하고힘이라면저괴물과대등했다.
저무거운검의충격량을정면으로받아내는건힘들었지만,어설프게힘을조절한공격이라면받아칠수있었다.
잠깐자세가흐트러진오크로드에게,다리에남을상처하나를만들어주었다.
"후..."
처음배에만든상처는어느새아물었는지,더이상피가흘러나오지않았다.
저괴물의배는녹색피로가득했지만,죽이고있다는느낌도없었다.얼마나더이걸이어나가야할까.내가몇분이나더이공격을피할수있을까.
"큭!"
옆에서나를찌르는조잡한창에자세가조금흐트러졌다.자리를만들어주는인간병사들과달리,오크들은싸움이고뭐고계속달려들어나를베려했다.
대부분은오크로드의힘에쓸려사라졌지만,잠깐빈틈을노려내게공격을성공시키는오크도있었다.
"조심해라!"
자세가무너진틈을,뒤에서날아오는화살하나가메워주었다.오크로드의눈으로정확히들어간화살이었지만,녹색괴물은아랑곳하지않고다시몸을움직였다.
하지만아주조금생긴틈으로,나는다시검을들어그공격을막아낼수있었다.
"본대도뚫리고있다!지휘관도직접검을들어싸우고있어!살고싶으면도망쳐야한다!"
"읏..."
"아니다,이미늦었어!생각보다오크가훨씬많다.후퇴해!"
살짝눈을돌려주위를돌려보니,어느새나는오크들에둘러싸여있었다.네르웬의화살지원이시원치않았던이유도알수있었다.
나무판자위에올라선네르웬은몰려드는오크를검으로베어넘기고있었다.그주변에서어설픈전선이만들어지긴했지만,그마저도위태하고불안정해보였다.
"...괜히왔나."
나는쓴웃음을지었지만,당장오크로드에게서눈을뗄수는없었다.
죽음을각오한채,나는다시오크로드의검을받아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