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54화 (54/217)

〈 54화 〉 흉터­7

* * *

"미안하지만,내일은여관을비워야할걸세.이늙은이도창을들고싸우라고하더군."

"괜찮습니다.저희도싸울생각이었으니까요."

"고맙군.뭐,도망칠수도없겠지만...그래도내딸이살아남을가능성이조금은늘어나겠지."

나는장담할수없었다.내가있으면당장전열이무너지지는않겠지만,전장에서절대란없다.

오크가아무리만만한존재라고해도,일반병사보다는강하다.검을맞댄순간,그사람이살아남을지살아남지않을지는운명의신이정해주는것이다.

"정무서우면,제옆에붙어있어요!제가지금은이래도예전에는한싸움했거든요?"

여급도어느새가죽갑옷을입고검과방패를든채이리저리자세를잡고있었다.

모험가에대해잘알고있는건아니었지만,그녀의무장은꽤그럴듯했다.

이세상의검은아무리싸구려라도핸드메이드다.굳이명검이아니더라도,모험가가자비로구매하는것이쉽지않다.

방패나가죽갑옷도그럭저럭돈이들어가는물건임을감안하면,적어도자기에대한투자를아끼지않고,실력도어느정도검증된사람이다.

물론,그런사람도죽는다.

"잘부탁드리겠습니다."

보통,이런상황에서는외지인을경계하곤한다.하지만이사람들은아무렇지않게나를받아들여주었다.

적어도,이결정을괜한일이라고생각하지않게되어서다행이다.

"뭐,어차피결국만나게되겠지만요.모험가들이나방랑기사들은한곳에모아두니까...아,아가씨도싸울수있어요?"

세리스는귀엽게손을휘저으며싸우는흉내를냈다.

"저도칼만주면그냥다쓸어버리죠!"

"됐어요,됐어.절대안죽고아가씨가모시는주인님이랑같이돌아올테니까,여기기다리고있으세요."

여급은그녀의머리를쓱쓱쓰다듬어준뒤,술에잔뜩취한채곯아떨어진모험가들을두들겨깨웠다.

"일어나,돼지들아!언제까지자고있을셈이야?"

"오늘죽을지도모르는데너무박한거아니야?"

"절대안죽어.그러니까쪽팔린소리하지말고일어나,멍청아!오크가아니라내칼에죽고싶지않으면!"

절박한상황에도불구하고,아직그들은여유를잃지않은것같았다.

"바로전투입니까?"

"네.모이자마자바로출격한다는데요?솔직히,왜우리가오크랑먼저싸워야하는지는모르겠지만요.그냥함정이나파두면안되나..."

느낌이좋지않았다.생각이상으로,어려운싸움이될지도모른다는생각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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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무리가나타났소.수는적어도천이상.최대한빨리군대를파견해야하오."

조금늦었지만,소식은황궁으로도들어왔다.하지만모든신하가이걸다급한일로여기고있는건아니었다.

"누가먼저군대를파견하겠소?"

아무도입을여는이가없었다.

군대가없는것은아니었다.마왕군을막기위해소집된각지의병사들이언제든투입될수있는위치에대기하고있었다.

하지만,그들은움직이려하지않았다.

"일단적의수효를파악해야합니다.어설픈병력이연이어출진했다가각개격파를당하는것보다,확실한정보를바탕으로움직여야합니다."

크레온의말은정론이었다.한줌의병력도섣불리사용해서는안된다.

하지만마왕이죽은지금,한명의시민이라도더살리기위해서는시간이더중요했다.

"오크가출몰한영지는성도없고,상비군도부족하오.마을이초토화되기전에시급히병력을..."

황제는잠시말을멈췄다.상상이상으로상황이좋지않았다.

황제가직접움직일수있는군대는한계가있었다.군대는유지하는것자체가돈이었고,충성스러운친위대들은이미꼭필요한전장에들어가있었다.

전방은아직전쟁이끝나지않았다.마물들의대규모습격은없었지만,점령당한땅을되찾고혹시모를습격을방비해야했다.

그리고그공백을메운것은,당연히엘레노어의압도적인무력과그녀의기사단이었다.

하지만,차마황제자신조차마음이꺾인그녀에게움직이라고말할수없었다.

황실의피를이은자들은많았고,그녀의목숨을노리는사람도적지않았다.황제대신그의검이되어귀족들과대립한엘레노어는,귀족들의지지를받지못했다.

그런그녀의목숨을유지해주는것은용사로서의강력한힘과시민들의지지였다.

귀족이어설픈암살자나불량배를동원해도단칼에베어버릴힘과,수많은병사를동원해도그병사가명령을거부할만한인망.

하지만지금은둘다없었다.신뢰할수없는귀족의군대에황녀를끼워보내는것은위험했다.

"황제폐하.영주들도지쳐가고있습니다."

크라운은몇번씩생각한다음안전한말을골라하는성격이었다.그가이런무례한말을한다는것은,지금이런말을해도괜찮은상황이기때문이었다.

평소라면,그저황제가명령하는것만으로도귀족들이따랐을것이다.그에게는그만한권위가있었다.

혹은,그저황제의총애를얻기위해자기병사들을투자할야심있는귀족도있었을것이다.

"처음부터영지의방위는그영주의책임입니다.마왕군이사라졌으니,제국법률에따라야하지않겠습니까?"

그리고그영주의병사가부족한것은,황녀파인그가열성적으로병사를차출했기때문이었다.

제국을위해서,그영지는반드시지켜져야한다.황제를위해헌신한이는반드시보상받아야한다.

한번신뢰가깨지면,귀족들은다시사병을쟁여둘것이다.그렇게사병을늘린귀족들은주위다른귀족들에게위협이될테고,그걸억제하기위해서제국은다시병사를늘려야한다.

하지만아이러니하게도,지금그영지를구원할수없는것도신뢰의문제였다.

이전과달리,황제에게봉사하면반드시보상받을수있다는안정감을심어줄수없었다.

당장은어찌어찌버티고있지만,결국황제는무언가양보해야한다.그의권위는더흔들릴것이다.

황제는,그의자리가무너지고있다는것을느꼈다.선택에대한대가를치르고있었다.

"애초에,그영주가유능하기만했어도일어나지않았을일입니다."

"급조된군대로오크와정면대결을하려하다니,기사도소설을너무많이본건지,아예전장에대한개념이없는건지..."

황제는왜그가그런선택을했는지이해할수있었다.그리고그건,아이러니하게도그가마지막남은군사를쓰지못하는이유이기도했다.

결국,회의가끝날때까지결론이나지않았다.사람들은각자의이익을위해한치도물러나지않았다.

시간이지나갔을때피해를볼사람은,발언권이없거나회의장에있지않았다.

/////

"안돼."

엘레노어는,아직돌이킬수있다고생각했다.

용사가아니게되었다고한들,그녀는아직검사였다.몸은너덜너덜해져도저히검을들수있는상태가아니었지만,더충분한휴식과시간이있으면호전될수있었다.

하지만그정보원이건네준첩보는,상상이상으로충격적이었다.

"말도안된다.수도와멀지도않은곳에...그렇게많은오크가출몰할수있을리가없다."

"첩보원들의보고가일치합니다.수량은조금씩다르지만,거대한오크무리가움직이고있다는점은일치했습니다."

"...황제폐하께도이보고가올라갔나?"

"네.이미회의에안건이올라갔습니다.하지만..."

어떤병사도움직이지않았다.원군은없었다.그정도는,따로보고받지않아도알수있는사실이었다.

"거기에에레넬이있다는사실도보고되었나?"

"보고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황제도그녀와같은위협을느끼고있었을것이다.

몇천이나되는오크무리가무슨암살자처럼은밀하게국경을넘을수는없다.

마왕과의전투로국경에허점이숭숭뚫린것은사실이지만,적어도그규모의부대라면진작첩보가들어왔어야했다.

"...늘어나고있나."

하지만,몇십,몇백의오크라면달랐다.마을을피해움직이면피해도발생하지않고,수많은마물의습격사이에주목받지않고침입할수있다.

"오크가그냥늘어난다는말씀이십니까?"

"마기만있으면.그리고,그럴만한촉매만있으면.영주가야전을선택했다고했지?"

"그렇습니다."

몇번만나본영주였다.전술에뛰어난능력은없었지만,최소한의이치는알고있는사람이었다.

일천의오크부대를상대하려한다면,별동대를동원해그들을유인하고기다리는편이훨씬효율적이었다.

하지만그일천의오크부대가며칠만에삼천,오천으로늘어난다면,어떻게든병사를끌어모아바로습격해서패퇴시키는것이그나마가능성있는전략이었다.

"오크로드가들어왔나."

마왕이죽은지금오크무리를만들수있을정도로마기를축적한마물은드물었다.

황제가마지막남은친위대를긁어모아구원을보내지않는것도,그변수를두려워하기때문일것이다.

라인하르트는오크로드와검을맞댈만한강자이지만,전력자체가부족해오크들에포위당한상태라면목숨을잃게될것이다.

"하다못해그라도살려야..."

"지금까지떠나지않을걸보면,전투에참여할생각으로보입니다."

"그런가."

이번에도,그는거기에있었다.단한사람이라도더구하기위해그곳에섰다.

엘레노어는저모습에기대곤했다.자신을속이고,편한방향으로생각했다.

아무런의무도지지않았던그의발목에,마치노예의쇠사슬이라도걸린것처럼대했다.

희생과헌신을당연시했다.

엘레노어는이제,속을생각이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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