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흉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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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그,일단물을..."
짐꾼은그신화적인전투를 그저바라보고있을수밖에없었다.
용사의팔이찢기고,마법사는자신의주문에양손가락끝이검게타있었다.
성녀는그나마멀쩡해보였지만,이마에송골송골맺힌땀과흔들리는걸음이얼마나격한전투가있었는지보여주고있었다.
안전한곳에서화살을날려야할궁사마저도,그거대한나무괴물이쏜총알같은나뭇가지에이곳저곳피를흘리고있었다.
마기에잠식된나무괴물은그거대한줄기로용사를후려침과동시에,멀리서지원하고있던이들마저공격했다.
이목을끄는것은,당연히궁사의역할이될수밖에없었다.그녀는소리를지르고화살을나무에깊게박아,나무의분노를용사와나눠받았다.
얇은옷은땀과절어그녀의몸매를여지없이보여주고있었지만,짐꾼은차마그모습을보고야하다고생각할수없었다.
그녀의옷에묻은액체는,땀뿐만이아니었으니까.피와흙,조각조각으스러진나무조각이어지러이옷과엉킨형태가그녀의몸을무겁게하고있었다.
짐꾼은거의,아무것도하지않았다.무언가하더라도달라지는건없었을것이다.
하다못해물이라도가져다주려수통을열었지만,궁사는차가운얼굴로그말을잘랐다.
"다가오지마라."
궁사도,자신의반응이이성적이지않다는점은인지하고있었다.
힘과고결함을지닌용사도아니고,그저미개하고약한인간에불과하다.하지만,그의행동은틀림없는호의였다.
같은엘프의호의만큼기분좋은일은아닐지언정,개나원숭이가꼬리를흔들며주인을반기는모습은분명기뻐해야할일이었다.
하지만네르웬은순수하게기뻐하지못했다.방금의전투는만족스럽지않았고,한계까지혹사한육체는너무나도지쳐있었다.
그리고아무리좋게봐주려해도,조금전까지죽을고비를넘기고온몸에피를흘린그녀에비해짐꾼의몸은너무나도멀쩡했다.
"알겠습니다!"
짐꾼은조금당황했지만,바로다른사람들을지탱하러움직였다.
네르웬도,여기서짐꾼에게적의를보이는게억지라는것은알고있었다.그가전투에참여한다한들저마기가잔뜩깃든나무의껍질하나라도뜯어내지못했을것이다.
하지만,감정적인분노는그와다른문제였다.누군가죽을고난을넘기며사투를벌이고있을때안전한곳에숨어있던사람을보는건,기분좋은일은아니었으니까.
성직자와마법사와달리,그는자신을보호할최소한의수단도없었다.그가아니었으면조금덜요란하게저나무괴물의이목을끌어도괜찮았을것이다.
게다가그냄새까지생각하면,도무지그를좋아하게될리없었다.
그와중에도,그는다급하게다음사람을찾아달려가고있었지만.
"몸은좀괜찮으세요,용사님?"
"아,자네인가...견딜만해.고맙다."
거대한나무줄기에맞아몇미터씩붕붕날아다닌용사는,그럼에도불구하고여유를잃지않았다.
잠시주위사람들을돌아보던용사는,작은목소리로짐꾼에게속삭였다.
"...미안합니다.당신에게약속된건이게아니었을텐데."
처음에그녀와그녀의아버지가약속했던것은,안락한삶이었다.처음부터그의것이아니었던책임을대신지고,그힘을받아내는것이약속이었다.
하지만용사파티의여정에서,시간은곧목숨이었다.이전에그랬던것처럼안전한곳에서군대를통해그를호위하는형태로는,도무지시간을맞출수없었다.
소규모부대가아니라군대가마왕의땅으로들어갈수도없으니,계속유지될수도없는방식이었다.
"괜찮아요."
짐을드는것도,어떻게든다른사람들을도우려하는것도그가스스로선택한일이었다.
"감사합니다."
"더맡겨줘도괜찮아요.내가이런말을하긴좀뭐하지만...필요한일이니까."
사람의죽음에가장민감하게반응하는이는,아이러니하게도저짐꾼이었다.
마법사와궁사는아쉽고슬프다는반응정도는가지고있었지만,그이상은아니었다.
성녀는사람이죽을때마다슬픔에잠겼지만,그녀도적지않은죽음을본사람이었다.삶과죽음은어쩔수없다는체념이가슴에박힌사람이었다.
하지만저남자는,자신과관계없는한명의죽음을거대한사건으로받아들였다.
마치끔찍하고흉물스럽고,절대있어서는안될일이일어난것처럼.
그가어디서왔는지는몰라도,그곳에도전쟁은있었을것이다.짐승이나사고,질병으로죽은친구나가족이없지는않았을것이다.
하지만그는마치그것에대해전혀인식하지못하고있는사람처럼,필사적으로죽음을막으려했다.
"내가할수있는한,버틸테니까."
"더무리한일을맡겨야할수도있습니다.인정하긴싫지만,그대가말하면...저는그대에게요구할겁니다."
"상관없어요.필요한일이라면."
그때까지만해도,짐꾼은그렇게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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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좋다.거기,그자루쪽에...아이고,시원하다.
"쓸데없는소리하지마."
그냥손수건으로검을닦고있을뿐이었다.신비로운힘때문인지비교적꼴이멀쩡하긴했지만,아주작은이물질로도검의궤도가어긋날수있었다.
"그래서,어떻게하실거예요?"
"...남을거야."
이사람들을위해목숨까지바칠생각은없다.나는이미할만큼했다.
하지만,이건절대위험한일이아니다.극단적으로는,전장한복판에있다해도빠져나올여력은남아있다.그경우는,같이싸우러나온병사들을모조리죽게놔두고내목숨만건져나오는꼴이되겠지만.
진짜로그사람들을지키기위해홀로오크떼에뛰어들어가는것이아닌이상,내생명에지장은없다.
"할수있는데까지는,해봐야지..."
하지만전황이생각보다절망적이지않을수도있었다.징집할수있는군대가생각보다많을수도있었고,원군이올지도몰랐다.
그때내가없었다는이유로이사람들이모두죽게된다면,그건너무나도아쉬운일이다.
음,용사라면마땅히그래야지!걱정하지마.나를쥐고있는한,반드시승리할...히잇!
나는성검의자루부분을손바닥으로툭툭쳤다.귀여운비명과함께,성검은입을다물었다.
성검은가끔유용한말도하고기본적으로는내편이지만,솔직히말해서신뢰할수는없다.
굳이따지자면,지나치게긍정적인데다계산도잘하려하지않는다.
아니,진짜라고!진짜...
"많이달라졌군.그때는몰랐지만...이제는알겠다."
"뭐가?"
"네가이일을고민하고결정할거라고는생각하지않았다."
네르웬은안타까운듯이,나를동정의시선으로보고있었다.기분좋은일은아니었다.
"그래서,기분나빠?"
"네가어떤선택을내리건,나는거기에이의를제기하지않을거다."
여관방구석에앉아있는네르웬은지금도나무를깎아화살을만들고있었다.평소라면저런유사화살은쓰지않을네르웬이었지만,지금은죽여야할적이너무많았다.
"네게맹세했다.나를세계수로데려다주기만하면,네가원하는건뭐든하겠다고."
"그랬지."
"그사람들을모두죽이라했어도,홀로오크무리를전부사냥하라했어도그명령을수행했을거다."
그용사보다도혈통과명예를중시하는그녀다.그녀에게는나같은원숭이에게머리를숙이고있는것보다,그원숭이와한약속을지키지않는것이더큰굴욕일것이다.
"내개인적인감정에는,의미한의미도없다.하지만,그래도..."
그녀답지않게,네르웬은말끝을흐렸다.나도그녀와의대화를중요하게여기지는않았기때문에,신경을쓰지않고다시검을닦았다.
"내가부수고만것은,참아름다웠었구나.그런생각을하게되었다."
그래서,그녀의말을이해할수도없었다.
/////
"이런...즐겁게맞이하긴어려운분이군요.이누추한곳에는어떤일로오셨습니까?"
평범한사제복을입은노인이었다.
하지만그의목소리만듣고도,셀리아는바로그의무시무시한신앙심과단련된육체를눈치챌수있었다.
"궁금한게,있어서요..."
눈을천으로가린채고개를푹숙인셀리아는,손에잡힌지팡이에의존하며비틀거리고있었다.
그녀의눈으로볼수는없었지만,노인의사람좋은미소는살짝굳어져,이상함을느낄정도로경직되어있었다.
"저로서는,교단의성녀가우리에리니스교단에오실이유가도저히생각나지않는군요.혹시나그,남작님에대한복수를생각하는거라면..."
"아,아니에요!복수가필요한것도,복수를원하는것도아니에요!그냥,그게...궁금한게있어서..."
침묵이흘렀다.하지만,셀리아는긴장감이조금풀리는것을느꼈다.
"다행이군요.안그래도,당신을향해들어오는의뢰를쳐내는건꽤고생이었습니다."
"지,진짜요?그래도이곳은...다받아줄텐데..."
복수의여신은사람을가리지않는다.죄인과성자를가리지않고,거지와왕족을가리지않는다.
물론이곳은고아원이자성당이었고,여기서할수있는것은단지기도에불과했다.하지만,그것만으로도꽤복수의성공률은올라가는편이었다.
복수를대행하고돈을벌사람들이복수를원하는이들에게접촉하거나,복수의여신이축복을빌어주는것만으로도사람들은위안을얻고성공에대한희망을얻을수있었으니까.
"맞습니다.하지만,피해자본인을불러오라하면보통입을다물더군요.에리니스는단죄의여신이아니라복수의여신이기에,피해자의의사없이는털끝하나움직일수없습니다."
"아..."
"하지만,그와별개로당신에게원한을진종교인들은많습니다.제가여기서오래당신과대화하는것만으로도,그들이저를멀리할까두렵군요."
셀리아는소리내어반박하려다가,슬그머니입을다물었다.여신의교단안에서통용되는상식일지라도,여기에서는그저우스갯소리로치부될게분명했으니까.
"그러니,왜오셨습니까?"
"사,사제님.그러니까,그..."
셀리아는부들부들떨며,그녀가여기온이유를말했다.
"신의목소리가,들리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