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흉터5
* * *
"...주접떨지말고그냥나와."
"알겠다."
여관방침대위에앉아있자,네르웬이문을열고들어왔다.
"내얼굴을보는것...마음에들지않아할것같았다.
"물론마음에들지않지."
그래도,멀쩡한여관문밖에그녀를세워두는건지나치게이목을끄는일이었다.
"신호는받았다."
여행은거리를두고하고있지만,유사시에그녀에게연락할수단은필요했다.
적당한향을태워그녀를부르는방식은,생각보다잘먹혔던것같았다.
"네가먼저보고할줄알았는데.오크무리에대한얘기가있었어."
당연한얘기지만,이런시골에있는정찰병이아무리뛰어나도엘프를넘어설능력이있을리없었다.
"음.그게..."
"말해.왜내가이걸네가아닌다른사람에게서들어야하지?"
네르웬은잠시주저하더니,이내고개를끄덕였다.
"그래.실수했다.사과하지."
"실수?네가이걸모를리가없잖아."
"당연히알고있었다.하지만,보고할가치가있는정보라고생각하지않았다."
"어째서?"
오크무리의준동은중대한정보다.그녀가이걸보고하지않았다는것은,어떻게봐도고의일수밖에없었다.
"...이전의여행에서는,저정도오크무리가돌아다니는것은당연한일에불과했으니까."
"아."
"전투는낭비였고,손쉽게피할수있었다.어느정도거리를확보하기만하면파시어가은신마법으로해결해줬으니."
"그랬겠지..."
마족의영토에들어갔을때는,저것보다강한무리도셀수없이많았다.그에비하면오크몇천은보고할필요도없는잡졸에불과했다.
"하지만,이길순없겠지?"
"나는아직네무력을정확히모르고있다.이전...아니,가짜용사와비교하면,어느정도인가."
나는쓴웃음을지으며성검을어루만졌다.
‘용사의검기.언제쓸수있는거냐...’
지금싸우면쓸수있을지도?그래도너무기대는하지마.애초에,그빛은마왕퇴치가끝나면사라지는게일반적이거든?그깐깐한여자가좀예외였던거고,원래는그래!
나는아직도성검에빛을불어넣지못했다.
집중하거나분노했을때는몸주위에빛알갱이들이이글거리곤했지만,이걸전투용으로쓰려면당장검을내려놓고격투기라도배워야할판이다.
"후...훨씬약하다.인정하고싶진않지만,그렇게강하지는않아.아직검기도다루지못하고있어."
"엘레노어의말에따르면,검기를쓰는것도용사의힘을소모한다고했다.그걸쓰지않으면그만큼전투지속력은늘어날거야."
"그런문제가아니라고."
몇번,혼자검을휘둘러본적이있었다.조금씩,나는나를객관적으로판단할수있었다.
용사의신화적인움직임과전투기술,인내와무력에비교하면나는턱없이모자랐다.
물론용사의힘은적지않고,이힘이내가아닌어린여자아이에게들어가더라도엄청난강자가될수있었을것이다.
"그녀와너를비교할필요는없다.가짜힘에휘둘린가짜용사일뿐이야."
"그래도너한테는친구고동료였을텐데,꽤매섭네."
"가장중요한사실을숨긴사람을,엘프의친구로취급해줄생각은없다."
그러고보면,수도에서그녀가뭘하고있을지생각도해보지않았다.되도록,힘들어하고있었으면좋을텐데.
"그래도,그힘은진짜였지."
시간이흐를수록,전투에서용사가차지하는비중은점점커졌다.가장먼저적진으로달려들어가이목을끌었고,검으로해결할수있는일은전부그녀의검으로해결했다.
"다시말하지.그녀와너를비교할필요는없다.애초에,그힘이비정상적으로강했던것뿐이야."
궁성에서의소란은,반쯤은운과상황이섞여있었기에일어날수있었던사건이었다.
그노인이가강력한기사라고한들,혼란스러운상황속에서전력을다할수는없는데다체력의한계를느꼈을것이다.
엘레노어는순간적으로용사의힘을잃은상태에적응하지못하고있었고,나는엘레노어을너무나도잘알고있었다.
그걸전부감안해도세계에서손꼽히는강자반열에들수는있겠지만,능력이무한하지는않았다.
"...그래.어차피,그녀가다시용사의힘을쓸일은없을테니까."
어렸을때부터전사였고,가장재능넘치는이가용사의힘까지얻은케이스다.마왕이없는지금,그정도로압도적인힘은필요하지않다.
"오크와싸우면,질까?"
"모른다.체력을무식하게쓰는전투는내장기가아닐뿐더러,구체적인네능력이어느정도인지도몰라."
"오크천정도라면,다른사람들이버티는동안어떻게..."
"사천이다.계속늘어나고있어."
생각보다도더많았다.이정도면,정면에서싸우는순간영지군은전멸한다고봐야한다.
지나치게많은숫자였지만,원래마왕군과야전에서맞서싸우는것은말도안되는일이다.인간의생명은유한하고,마족은그렇지않으니까.
정석적으로는,성과기계를활용해야했다.한번유인당한마족무리들은아무리험한지형이라도어떻게든들어오려하니,끓는기름과무거운돌을떨어트려어떻게든교환비를만드는것이다.
혹은마법사를사용할수도있었다.파시어가충분한준비만할수있다면,대마법한번으로셀수없는오크들을타는고깃덩이로만들수있을것이다.
하지만,여기서그런전략을구사할수있을거라는생각은들지않았다.
"생각보다더위험하네."
근처에성은보이지않았다.있다고해도방어에적합한형태는아닐것이다.혹은,모든시민을수용할공간이없거나.
"아니,위험하지는않다.너하나라면얼마든지이동할수있어."
"...그건그렇겠지."
몇천의오크와정면에서맞서싸우는건힘들수있다.
하지만,겨우길들인늑대몇십마리가상대라면그냥네르웬의화살으로정리할수있다.
귀족의말과달리,내몸하나를챙겨도망치는건쉬운일이었다.
"메이드는잘모르겠다만..."
"안고뛰어도상관없어.그정도힘은있다."
"또...또요?"
하지만,그렇게도망쳤을때이곳사람들의목숨은장담할수없게된다.
신경쓰지않아도상관없다.내게,이들모두를신경써야할의무는없다.
하지만몇명이죽을지가늠조차할수없는일이다.기적적으로원군이온다해도,최소한전투에참여한사람은거의전멸에가까운피해를입을것이다.
방금전까지나와대화하던사람들이죽는다.그들의인생이끝나고,다시는볼수없는사람들이되어버린다.
별다른정은없다.그저,한번스치듯이만나서재미있는꼴을본정도에불과하다.서로의이름조차모르는,ㄴ그냥지나가는관계에불과하다.
영웅놀이는더하지않겠다고다짐했다.애초에,나는용사도아니고용사의여정중인것도아니다.
그래도,입맛이쓰다.
나는입술을깨물었다.
/////
"오늘도두명이탈퇴했습니다."
겨우갑옷을다시입은엘레노어였지만,이곳에서도좋은소식은들려오지않았다.
"배신자놈들..."
"너무그렇게말하지마라.내잘못이니까."
"..."
그녀의기사단이품고있는충성심은의심할바없었지만,그강직함만큼명예욕도품고있었다.
기사들도결국누군가의자식이고,친구다.드물게연고없는사람들이있었지만,그들도친하게지내는'기사단밖'사람들이있었다.
사회분위기는살벌했다.귀족들은의도적으로그들을'도적기사단'따위멸칭을만들어불렀다.
아무리엘레노어를믿는사람이라해도,그녀가직접언급하지말라고한주제에대해서는화를내며반박할수없었다.
그들은칭송받고싶어서그녀의뒤를따른것이다.엘레노어가칭송받을가치가있기때문에그녀의뒤를따른것이다.
전부그런것은아니었지만,그녀가용사가아니라는것에배신감을느낀기사도있었다.
"혹시나,저희사이에서도는소문대로...그남자에게협박당하고있는겁니까?"
"쓸데없는생각하지마라.처음부터내것이아닌힘을그가돌려받았을뿐이니까."
에네렐을대하는방식도,사람마다달랐다.
엘레노어를음해하려는배신자라고생각하는사람도있었고,음모에휘말린희생양이라고생각하는사람도있었다.
"미안하구나.나때문에,모두에게폐를끼쳤어."
"단장님이해주신일을생각하면,이정도는아무것도아닙니다.그리고무엇보다...단장님을믿으니까요."
엘레노어는고개를푹숙인채,아무말도하지못했다.
"지금은뭘하고있다고했나...그는."
"어디론가이동하고있었습니다.메이드한명과같이여관을써가며움직이고있더군요."
당장에네렐을잡을생각은없더라도,황실요원들은아직그를감시하고있었다.
"엘프궁사도근처에서움직이고있었지만,아직정확한관계는밝혀내지못했습니다.그가엘프를미행하는건지,엘프가그를앞질러함정을파는건지..."
"...알겠다."
엘레노어는이를악물었다.이미상황은그녀의손을떠나있었다.
이렇게생각하니,황제가왜그와의관계를개선하라고애원하든빌었는지알수있을것같았다.
황실의권위로나마그의앞에설수있는기회는,이제더이상존재하지않았다.
만일그가돌아온다해도,상황은그의손마저떠나있었다.
이제에네렐이어떤화해의말을한다해도,그녀를음해하는사람들은협박이나굴복의결과라생각할것이다.
"다음전투가시작된다면,몇명이나따라와줄거라생각하나?"
"남아있는단원들은,결국따라올겁니다.어찌되었건황녀폐하의명령이니...하지만,고민하던이들이기사단을나오겠지요."
적은많고,일은쌓여있었다.하지만,움직일동력이없었다.
엘레노어는오늘따라갑옷이무겁게느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