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흉터2
* * *
"그럼,다음목적지는어디인가요?"
"근처에마을이있다고했으니까일단거기서쉬어가야겠지."
은발메이드는가볍고편하게개량된메이드복을입은채,나를따라여로를걷고있었다.
"짐드는거,지겹지않으세요?"
"...무겁진않으니까."
여행에필요한짐은적지않았고,인원이줄어들어도그양이크게줄어들지는않았다.
"제가대신들어도괜찮은데..."
"상관없어."
하지만,용사의힘으로들지못할정도는아니었다.
그렇게나힘겹고무거워보였던짐은,이제솜털처럼가볍게느껴졌다.
겨우이정도면,그여정중에나대신이걸들어줘도괜찮지않았나하는원망도들었지만,무게가문제는아니었다.
닦인길로엘프를앞세워걸어가는이안전한여행은,용사파티가떠났던여행에비하면산책과다를게없었다.
마왕퇴치에는,언제적이들이닥칠지모른다.사막을지날때는땅밑에서거대벌레가습격하고,마왕의암살자들이방심한틈을타기습하기도했다.
순간적으로가장먼저뛰어나가야할용사의등에이런짐짝이걸려있었다면,두세번은파티가전멸했을것이다.
필요하지않은일은없었다.
"저못된엘프한테떠넘겨버리는건어때요?"
"값진물건은없지만,그래도당장은필요한것들이라고.들고도망치면어떡해?"
당장네르웬을따라가고있지만,의심을멈추지는않았다.
그녀의행동에는일관성이없었다.대체그냄새가뭔지,그녀가어떤감정을느끼고있는지중구난방이었으니까.
그녀가정말절박하고필사적인상황이라해도,내가그걸증명할방법은없었다.
거짓말에능해보이지는않았지만,처음부터끝까지나를작정하고속이려들었다면나를속일수도있었다.
언제든나를배신할수있다고생각해야한다.
"후..."
이주제를이어가고싶지는않았다.용사파티원을생각하면,계속부정적인생각이이어진다.
"그러고보면,뭐라고부르면되지?계속메이드로만부를수는없잖아."
그녀는잠시당황하더니,헤헤웃으며말을흐렸다.
"세레스.세레스라고해요."
얼떨결에같이여행을떠나게된그녀였지만,나는그녀에대해아는것이너무없었다.
평범한사람이진짜로나와함께여행을떠나겠다고한거라면,조금도신경쓰지않고그사람을쳐냈을것이다.
하지만,그녀는뭔가숨기고있는게있었다.상식적으로,황궁에서일하는메이드가눈깜짝할새귀족의가문으로들어올수있을리없다.
물론황궁시녀는단순한평민이아니고,적어도급이어느정도되는귀족중에서선출된다.그래도제국을상대로이런행동을할수있을리가없었다.
목소리도묘하게익숙하고,분위기도내가알던사람을닮은것같지만그녀일것같지는않으니,그저답답할노릇이었다.
"밥먹죠,밥!"
몇번먹어보지는않았지만,무슨수를쓰는건지메이드가해준식사는꽤괜찮은편이었다.
용사파티와의여행에서밥당번은나였다.처음에는경험이있는용사가식사를준비했지만,성녀와마법사의격렬한저항에무산되었다.
근본적으로는,밥이왜맛있어야하는지이해하지못하는사람이었다.
싱겁고역한스튜를끓이면서도,'불과물,시간과도구를쓴식사를할수있으니그걸로충분하지않으냐.'라는생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모험후반부에는우리모두가그녀의말을이해할수있게되었다.
불을피워냄새를올려보낼여유도,식수를증발시킬사치도없었다.한곳에앉아몇십분동안냄비를지켜볼여유도,아니애초에작은냄비를가지고다닐공간도없었으니까.
"음..."
사실,배는고프지않았다.분명히지치고배고플시간이된것같은데도몸에는아무이상도느껴지지않았다.
표정을보면단순히떼를쓰는것같기도한데,진짜그녀는배고픔을느끼고있을지도모른다.
"오늘안에는그마을까지가고싶었는데."
"히엑?빨라요,빨라!그속도로다니시고싶으시면마차를가져왔어야죠!"
"...비싸더라."
곰곰이생각해보니,조금후회도된다.귀족이나황제에게적당히입을털어서운송수단하나는가져왔어야하는것아니었을까.
"마차몰줄알아?"
"당연히알고있답니다!"
"응.난몰라."
하지만,마차는결국소모품이될수밖에없다.내가어디까지가야할지지금알수는없지만,당장세계수만해도마차를끌고갈수는없을테니까.
말이라면조금낫겠지만,나는말을탈줄모르는데다위급한상황에서내가아닌다른생명체를책임져줄능력은없다.
결국,다시돌고돌아두발로걸어야했다.
"이럴바에는,근처상단에호위용병같은걸로살짝자리를붙여서..."
"생각을안해본건아닌데...언제나올지모르는상단을기다리기는싫어서.속도차이가많이나는것도아니고."
"인간의걸음을과대평가하고있어요!"
잠깐,걸음을멈췄다.
내예상이맞다면세레스가이런곳에서힘들어할것같지는않다.하지만,그건내오판일지도모른다.
초인들로가득한파티에서내가방치되고소외된것처럼,그녀에게과도한업무를맡기는걸지도모른다.
"그럼좀쉬고있어."
"알았어요.어...에,에엣?지금무슨일을하려는거예요?"
세레스는내손을피해타다닷뒷걸음질을쳤다.
"뭘하다니,안으려고하잖아?"
"쉬,쉰다는게그런의미였나요?대체어떤여행을다니신건가요!"
"아니,갑자기왜..."
"분노고복수고다필요없고치정극이었나요?아직해는지지않았고여긴길한복판이라고요!"
눈에살짝눈물이고인채속사포처럼말을내뱉는세리스를보며,나는잠깐머리를긁적였다.
"아무리메이드가봉사할의무가있다고해도,다,당장은안..."
"무슨소리야.내등에짐이있으니까업힐수는없잖아.앞으로안아야지."
"네...네?"
잠깐머리를긁적인나는,내말이중의적으로해석될수있다는사실을깨달았다.
"음...미안.말그대로,널안고계속걷는다는뜻이었어."
"어,어떻게하면방금그대화가그렇게될수있나요?쉬고있으라면서요!"
세리스는믿을수없다는듯,손가락을쭉내밀고소리쳤다.
"용사파티에서는,쉬고있을때는다른사람이그인원을안거나업은채로계속걸었거든.걸어야할때멈추면죽으니까."
"쉰다는게그런의미였나요...대체어떤모험을떠나셨던건가요..."
몸에힘을살짝뺀다음,세리스는내팔에몸을맡겼다.나는자연스럽게그녀의다리를훑어보았다.
흑과백이섞인메이드복이었지만,너무치렁치렁하거나무겁지않게치마는적당한크기로잘려있었고,그안에는검은스타킹이몸을가리고있었다.
"지,지금시선이!뭔가음흉하게!앗,거기만지면..."
"내려줄까?"
"자,잘못했어요!버리지말아주세요!"
너무어색하지않게발목을만져보자,꽤현실적으로부어있었다.축처진근육도꽤설득력있게지친모양새였다.
"여자에능숙하신데...많이안아봤어요?"
"...내파티원들은다몇번씩안아봤지."
"정말요?"
"전투중에.혼수상태나전투불능상태가되면,예비인원이나밖에없었으니까."
전략실패로한명이쓰러지면,파티가전멸하기전에빨리자리를이탈해야했다.주로회복마법을쓰다지쳐쓰러진성녀를안아도망치곤했었다.
"나도많이안겼고."
육체가가장약한사람이라면성녀였겠지만,그다음은당연히나였다.
잡다한몬스터들의기습에당하거나대지를뒤흔드는거대한몬스터의공격에휘말려의식을잃고쓰러지면,어쨌든전투는중지되었다.그들도,내가죽도록놔둘수는없었으니까.
이때문에몇번씩거대한괴수앞에서멈춰섰던적도있었다.그때다른사람이내게보냈던차가운눈빛은,더떠올리고싶지않은기억이다.
메이드와눈이마주쳤다.만약,이사람이정말아무런힘도숨기고있지않고,내모험에따라오고싶다는마음만으로여기온일반인이라면.
언제헤어져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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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렇게...괜찮겠습니까?"
"싫으면네연구에집중하거라.내게도움이되고싶은거라면,내가시킨일을그대로하고."
파시어는손짓몇번으로거대한연구실의구조를바꾸며,새로해야할일을준비했다.
"최근의논란도있고,당장해명을해야할지도..."
"황제와엘레노어는겨우이딴일에무너지지않아.그리고,그들이무너지면우린도망치면그만이고."
하지만이조그마한마법사에게,정치적사건들은말그대로사소한일에불과했다.
원래자신만의세계에틀어박혀있는게마법사다.
용사의귀환실패라는,거대한잘못을저지른지얼마되지도않은그녀가신경써야할만큼유의미한일이아니었다.
그를위해,할수있는일을해야한다.당장영생에관한연구를전부정지시켜둔그녀는,새로운목적을위해조직을움직였다.
"그리고,이마지막재료는...정말괜찮겠습니까?"
"걸리지만마.필요하니까모으는거다."
그리고그녀는,무의미한것들을포기할준비를마쳤다.
"최대한많이.지옥의악마를소환해도이상할게없을정도로.아니,그걸만드는것만으로도그자신이악마가될정도로많이모아야해."
마법사는두려움에떨었다.파시어는윤리에서자유로운마법사였지만,그걸감안해도이건선을넘은행동이었다.
"기다려라,에네렐.너무늦지않게준비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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