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환속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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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인색합니다."
술잔이비자,크리스티나가기다렸다는듯이잔을채웠다.
"가진것없는이들은그극단적인사상에동조하지만,먼저노력한이들,먼저희생한이들은방치됩니다."
그의볼이약간붉어져있었다.술에취한것처럼보였지만,그표정마저그의계산안에있을거라고확신할수있었다.
"마왕이침공하고,병사들을징발하면서황녀가어디있었는지아십니까?빈민가의고블린굴이었습니다."
차갑고냉철하게가라앉은목소리였지만,그안에서는분노가꿈틀거리고있었다.이것만은,진심일지도모른다.
"그부랑자들,강간범들,소매치기들의수를그나마유지해주던게거기있는몬스터였습니다.그리고그걸황녀가제멋대로부수어버렸으니,가치없는자들은제세상인것마냥들끓고있죠."
"그러시군요."
"예의와존중을알려줄푸른피들은,죄다황녀의힘과권위에눌려미천한자들처럼행동하고있습니다."
얘기는충분히들었다.나는고개를끄덕이고,그의얘기에적절히반응해주었지만,더이상귀를기울이지는않았다.
"더이상그들의폭거에휘말려서는안됩니다.제국에는,용사님같은피해자가더많이있습니다."
마지막으로,그는내게동의를구했다.
내분노를자극하려하고있었다.자신이자신의가치에걸맞은대우를받고있다고생각하는사람은거의없다.누구라도더많은돈,더많은명예를원할것이다.
어쩌면,그의말에동의했을지도모른다.황제는용사로선택받은사람을속였고,굳이다른사건이일어나지않았더라도요령좋게사람을이용했을테니까.
하지만,참아슬아슬하게도내경우는조금달랐다.
굳이따지자면,자업자득이었다.
내눈에진심이들어있지않았다는것을눈치챘는지,그가살짝숨을들이켰다.
"지루한말로용사님을피로하게만들어죄송합니다.이만쉬시지요."
그가준비한나를위한대접이,멋지다는것은부인할수없었다.말그대로극소수만을위한,돈과인간을아끼지않고소비해내게바친자리였으니까.
"식사가마무리되어가니...슬슬밤을즐기시지요."
"그건괜찮습니다.슬슬,나가봐야할것같네요."
"...크리스티나의외모가차지않으십니까?"
"아니요.아름다운따님을두셨네요."
잠깐혹한것은사실이었다.여기와서만난많은여자들이그렇듯이,크리스티나도아름다웠으니까.
하지만,적어도겉보기에는멀쩡했던용사파티원들과의관계도파국으로끝났다.심지에불이붙은폭탄처럼아슬아슬한크리스티나와의관계에서,내가행복을느낄리없었다.
"감사합니다.하는일,꼭잘되시길바라죠."
무의미한덕담과함께,나는자리에서일어났다.그는조금앓는표정을지었지만,이내공손하게일어나내게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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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그귀족과같이있는것아니었...습니까?"
반말을해야할지,존대를써야할지감이잘잡히지않는다.은발메이드는헤헤웃으며짐을들고나를따랐다.
"거기에는잠깐머무르고있었을뿐이에요.저는처음부터우리주인님을따라가려했다고요!"
억지로떨어트려놔도멀어질것같지않은사람이었다.괜히방치해놨다가이상한일을만드느니,차라리즉각대응할수있는편이나았다.
"다음은어디죠?"
"일단,여관으로돌아가야죠."
호기롭게나와봐야,단서는하나도없었다.불사조의유해는일단제쳐두고,유니콘이나마룡부터찾으러다녀야할까.
지금까지나를추격하는이가없었다는것을생각해보면,황제도나를적대하는것같지는않았다.하지만,다시협력해준다는보장도없었다.
"멀리가봐야하나..."
제국안에서는방법이없다면,결국제국을떠날수밖에없다.황궁도서관에다시들어가서처음부터제대로정보를뒤져봐야할까.
"첩첩산중이네..."
일단모험가패는있으니,어느정도자유롭게여행할수는있다.하지만,없는정보가순식간에생기는것은아니다.
최소한어느나라에서누구를통해구할수있는물건인지,무슨일을어느정도기간동안수행해야얻을수있는물건인지대략적인이정표는필요했다.
게다가,내무력은그리초월적인것도아니었다.
당장제국최고의검사인라인하르트나엘레노어와싸워이길수는있다.하지만,그때용사파티가전력을다한것은아니었다.
나는그들이싸우는걸가장가까이서보았다.용사의힘을얼떨결에얻었다고한들,용사로서싸우던엘레노어에비하면한참부족하다.
그런초월적인힘이없다고해도,차륜전으로병사와기사를소모해가며나를사냥하려든다면결국잡힐수밖에없다.
그러면,먼저강해져야할까.하지만강해지려해도어떻게강해질수있을지감이오지않았다.
육체적훈련은의미없다.지금도몸안에용사의힘이잠들어있는것이느껴졌고,조금만힘을주면바로총알처럼근육하나하나에파고들테니까.
하지만,이걸로는부족하다.나는마법도신성력도쓰지못하니,부족한부분을오직내무력으로보충해야만한다.
"음?"
반사적으로여관문을연순간,나는뭔가잘못된생각을하고있었다는것을떠올렸다.
이곳은내집이아니라,여관이다.
그리고당연하디당연한일이지만,어제내가머무른여관이라한들오늘다시내가여기머무를수있는권리는없다.
내가처음이여관에들어왔을때는3일치숙박료를지불했었지만,크리스티나와만난다음바로취소해서돈을돌려받았다.
그러니,이방에들어가려면다시숙박료를지불했어야했다.
상념에빠져걷다보니잊고있었다.이곳은내방이아니다.
그리고남이들어가있는여관문을여는것은,당연하게도이세계에서도크나큰무례다.
하지만,저침대에누워있는사람은뼈에사무치도록익숙한사람이었다.
"지금뭐하고있는겁니까?네르웬?"
"흐잇?"
붉어진얼굴로숨을들이마시고있는엘프궁사는,잠시고개를절레절레흔들었다.
"사,사과하러왔다!"
"그런꼴로?게다가,지금이곳에찾아온건저아닙니까."
"귀,귀족과즐거운시간을보내는것을방해할수는..."
"그런교양을가지고있었을줄이야,놀랍군요.그런데지금설마,그..."
차마말을하지못하고눈을감았다.그냄새라는게그만큼지독했던걸까.
그녀가내게했던일을생각하면저정도로는부족했지만,당장은만족스러웠다.
"하고싶은말이뭡니까."
"뭐든지하겠다.그러니,노예로라도좋으니제발나를..."
나는성큼성큼다가가,그녀의목을잡았다.
"저는,이제모험을떠나야합니다.그빌어먹을마법사가망친의식을다시마치고,집으로돌아가기위해서."
그녀의목을잡아본것은처음이었다.그녀의빠르고경쾌한몸놀림에어울리지않게,너무나도가냘파보이는목이었다.
"그런데당신을데려가라고요?제가다시한번당신과모험을떠나라고요?"
"때려도되니,큭,까...짐도내가들테고,얼마든지욕하고괴롭혀도..."
"당신같은사람들은어떻게생각할지몰라도,저는다른사람에게화도잘내본적없는사람입니다."
그녀의몸이공기를보내달라고애원하고있었다.그절박한발버둥이목을통해느껴진다.
"복수해본적도,화를내는것도,때리는것도힘들어요.지쳐요.기분나쁘고,어색하고생소한데다불편하단말입니다.그러니까그만꺼지세요.혹은,죽어주시겠습니까?"
막소환에실패했을때보다는확실히정신이안정되었다.하지만,마법사나성녀와달리엘프를죽이지않아야할이유는없었다.
"켁,큭,윽...정,보오...있,케흑.어...."
잠시생각한나는,그녀의목을잡고있던손을풀었다.엘프의머리가꼴사납게침대로떨어졌다.
"당신의정보따위는의미없을것같습니다만.혹시모르니뭐가필요한지는알려드리죠.불사조의..."
"있어."
"...네?"
"불사조의...후우,하아.유해.정확하지는않지만,어딜가야찾을가능성이가장큰지는알수있다."
필사적으로숨을고르면서도,그녀는나와눈을맞추려했다.눈에서린날카로운분위기는쇠하지않았지만,영혼속에나에대한공포를새긴것같았다.
"...그말,거짓말이아니어야할텐데요.아니,됐습니다.그래도당신의도움따위는필요없어요."
"미안하다!하,하지만...내가누군가에게조종당하고있었던걸지도몰라!"
나는눈을감았다.잠시정적이흘렀다.
"있잖아요.용사든,마법사든,성녀든.다정말꼴보기싫고기분나빴지만...최소한그사람들은그런추잡한변명을하지는않았어요."
"확신할수는없지만,가능성은있다!누군가너와내관계를조종하고있었을..."
"확신하셔야합니다.책임질수있어야해요.만일그게사실이라면,저는진심으로당신에게사과할거니까요."
네르웬이벌벌떨고있다.내앞에서,다리에힘이풀린채주저앉아필사적으로숨을고르며.
"설명해보세요.왜그런생각을한건지.마지막으로이야기정도는들어줄테니."
나는검집에서성검을꺼냈다.다행스럽게도,그녀는분위기가심상치않다는것을깨닫고아무말도하지않았다.
아직날이서지는않지만,이걸로도엘프를죽일수있다.네르웬은나와검날을번갈아보더니,서서히입을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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