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환속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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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용사라고?용사는황녀님아니었나!"
"무,무슨소문이있다는얘기는들어봤었지만..."
혼란에빠진이들이하나둘씩웅성거렸다.내눈앞에있는귀족,크리스티나는살짝웃으며내게손을건넸다.
"아직어리석은이들에게는소문이퍼지지않은것같네요."
그녀는옷에묻은먼지를기품있게털어낸뒤,다시한번공손하게고개를숙였다.
"진정한용사가겨우이런곳에서,오크나잡으면서생계를유지하고있다니.증오스럽기그지없습니다..."
원하는게뭘까.
귀족들의이름을하나하나외우고다니지는않았지만,그녀의자신감을보면한미한가문은아닐것이다.
"사람잘못보셨네요."
내가용사로선택받았다는사실을굳이숨기고싶지는않았지만,쓸데없는주목은사양이었다.
"모험가놀이는재미있으셨나요?저어리석은자가얻어맞는광경은제가보기에도꽤유쾌했습니다."
슬쩍뒤를돌아보자,그노인은어디론가사라진건지코빼기도보이지않았다.
"일단,나가서얘기하죠."
쓸데없는정보가퍼지도록놔둘이유가없다.진짜용사가있다는사실이야막을생각도없었고막을수도없었지만,내가진짜용사가되는건사양이다.
근거 없는 기대는,사람을고달프게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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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말만중얼중얼...언제까지그러고있을생각이냐?"
네르웬의말은,서로다투던사람들의이목을집중시켰다.
"신중하게말을골라라,엘프.네놈이어떻게생각하든,나는에네렐의편이다."
파시어가벌떡일어나그녀를노려보았다.그작은몸으로는일어나봐야엘프를올려다보는자세였지만,눈에담긴기세는작지않았다.
"나야말로,네놈들을욕하고싶은마음은굴뚝같아."
"하,더러운종차별주의자가."
"인간이열등하며,엘프가우월하고,그사실을공공연히말하고다녔다는사실에대해서는부인하지않겠다."
"네놈만아니었어도!네놈이씻고오라는말을열번만덜했어도,아니.하다못해정중하게부탁하기만했어도이렇게되지는않았을텐데!"
"그말은무가치하다.'조금만친절했어도'라는가정은,여기있는누구에게하든유효한말일테니까.나도,엘레노어도,셀리아도,너도."
"...그말은맞네."
한숨을깊게쉰파시어는고개를숙였다.
"이상해.왜그런건지는모르겠지만,내적의는분명이상하단말이다."
엘프장로는사랑과성욕을언급했지만,그건엘프에게는너무나이상한감각이다.
일반적으로,성욕은천박한욕망이다.하등한이들처럼몸과몸을겹쳐새로운생명을만들어낼필요없이,엘프의아이는세계수를통해태어난다.
임신도되지않는관계를그저욕망을위해,그것도하등종족과맺는다니. 사랑이라고 생각해도 어색했고, 성욕이라고 생각하면 흉측했다. 고귀한 존재로 태어난 네르웬에게 있어서는 안 될 감정이었다.
인간남자와만난것이처음인 것도 아니었다.그의외모가추하지는않았지만,엘프의아름다움에는비할바못되는수준이다.
"인간을벌레취급하니까,당연히에네렐도벌레취급한거아니에요?"
"아니야.엘프와인간을동등하게볼수는없겠지만,적어도가치있는인간을이유없이싫어하지는않는다."
엘프는냄새로다른이들을판단한다.그녀가그를혐오했던것은,그의냄새로인성을판단했기때문이다.
그의행동하나하나에사악하고천박한의도가숨어있을거라생각했다.몸이닿는것도역겨웠고,시선이움직이는것도소름끼쳤다.
하지만,누군가그냄새를조작할수있다면.그의영혼에그냄새를묻히는게가능하다면그녀가했던모든판단이어그러진다.
물론,현실적으로불가능한일이었다.엘프가어떤냄새를맡고느끼는지해석할수있는종족은없었다.
파시어수준의마법사라면조잡하고비슷하게나마냄새를재현해낼수있겠지만,엘프는누군가가만든냄새를바로구분해낼수있었다.
그래도, 네르웬은 의문을 떨쳐낼 수 없었다.
"무언가있어."
"그래서,어쩔생각인데?"
"이미지난일이다.우리가서로책임을추궁하고,그가왜분노했는지토론하는게의미있는일이라생각하나?나와파시어는그렇다쳐도,황제.넌남은시간도많지않을텐데.."
"그러면?"
"너희도,너희가할수있는일을해라!그가당연히받았어야할명예와영광아닌가?나는이곳에돌아온다음에야그가용사라는사실을알았어!"
엘레노어가이를악물었다.뭐라고변명하든,그가용사라는사실을숨겼던것은사실이었다.
하지만다른이들은영묘한표정으로네르웬의제안을고민해볼뿐,동의하지는못했다.
"그가명예와영광을원한다고생각하나?차라리그가그걸원했으면마음이편했겠군."
"뭐라고?"
"만약그렇다면,내딸과결혼하는조건으로황위를넘긴다는해결책이존재했겠지.권력에욕심이있는이는,그걸위해무언가를포기할수도있는법이라네."
파시어는헛웃음을지었다.
"네가?엘레노어를?그걸믿으라는거냐,꼬맹이?"
"그정도라면포기할수있었다.하지만,처음부터그는그걸원하지않았어...원하는것없는이와협상을하라니,어처구니없는상황이군."
엘레노어는입술을깨물었다.
"어쩌면,나도...납득할수있었을거다.그를싫어하지는않았으니까."
"네말도만만찮게거칠었던걸로기억하는데,가짜용사?"
"크읏..."
엘레노어는입을다문채아무말도하지못했다.폭언의수위는네르웬이나그녀나별다를게없었지만,그녀는자신의책임을돌리는방법을몰랐다.
"그럼,돈과여자인가?"
엘프는그녀의상식안에서,계속해서그에게보상이될만한요소를늘어놓았다.
"네르웬씨.정말에네렐에대해하나도모르셨네요.관심이없다는건알고있었지만..."
"애초에,그가좋아하든좋아하지않든해야지.이제와서겨우사과몇마디로그의마음을돌릴수있다고생각하나?애초에,대안이없지않나.성의라도보여야지."
"...그사람이원하는건,귀환이에요."
"그럼보내주면되지않나."
엘프도초자연적인힘을다루곤했지만,마술사의능력과는결이달랐다.그마술이얼마나어렵고고된작업인지는이해하지못했다.
"당장구할수있는재료를구하기도어렵네.황실금고를다시한번털어야할테고,운송에시간도필요하겠지."
황제는떨떠름한얼굴로그게어려운이유를설명했다.
황제가'무리해서'구할수있다는물건은,제국민들의피와땀을요구한다는뜻이다.
모험가들은결국돈으로움직이고,그들에게무언가를강요할수는없다.위험하고지루한업무는결국군대가동원되어야한다.
징집된 이들의 노동력을 뺏고, 상인의 돈을 갈취하지 않으면 마법 재료를 구할 수 없다.
"그래도,구할수없는재료에비할바는아니야.불사조의유해를어디서구하겠나?마룡의심장은?"
그런걸신경쓰지않는파시어도,그가원하는것을쉽게줄수는없었다. 네르웬의 얼굴이 살짝 움찔거렸다.
"그렇다면,너희들은마음대로해라.나는,나대로그에게사죄할테니."
네르웬은뒤도돌아보지않고그방을나왔다.남겨진이들은더깊은시름속에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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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제가꼭따라가겠다고했죠?"
은발메이드가 성 어디에선가 불쑥 나타나, 밝은얼굴로나를맞이했다.갑자기다가와손을꽉집는그녀의행동에,잠깐당황하고말았다.
"아는 사이라니, 다행이군요."
앞서 걸어가던 크리스티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요."
황궁에서살다시피한나인지라그렇게충격적이지는않았지만,그녀의집도호화스럽고아름다웠다.
하지만오랜만에만나는메이드도,아름다운장식과예술품들도내시선을빼앗지는못했다.
"직접맞이하러나가지못해죄송합니다."
살짝말라있고,수염은단정하게정돈되어있다.체구는크지않지만존재감은거대했고,싸워서질것같지는않지만적대하게된다면위험할 것 같았다.
복잡해보이는외모였다.중후함과열정,잔인함과카리스마가섞여있었다.
"크레온알트도어입니다.제딸이폐를끼치지는않으셨는지요?"
"...감사합니다.덕분에소란을피했습니다."
하지만,경계를풀수는없었다.
순수한의미로내게접근한건아닐테니,그도결국내게원하는게있는사람이다.
하지만,공존할수조차없는사람인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가알고있던용사가가짜라는것을안이후로,귀족들은혼란에빠져있습니다.황제폐하에대한실망도...꽤큰편이죠."
차갑게내려앉은그의목소리가,조금씩내신경을자극했다.
"용사께서는,어떻게생각하십니까?"
그는몇마디내뱉지않았지만,생각보다많은정보를풀었다. 상품에 가격표를 적어 둔 상인처럼, 정직하게 거래 조건을 내밀었다.
이정도귀족이라면본론은꺼내지도않고,값비싼술과맛있는음식으로경계심을깎아내리며내눈치를살펴도이상하지않았다.
식사에초대했다는말을들었을때만해도그런행동을예상했지만,그는순순히내의중을물었다.
그의얼굴을보면,전혀조급해보이지는않았다.나는멀쩡한정신으로깊이생각해야했다.
"크리스티나,술을따르거라."
"예,아버님."
그녀는아까보다좀더가슴부분이파인옷을입고,붉은와인을글라스에따랐다.
"아무리생각해봐도,전제가잘못된것같네요."
하지만내것이아닌것을요구할수는없었다.그가원한다해도,줄게없었다.
"저는용사가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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