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38화 (38/217)

〈 38화 〉 환속­1

* * *

엘레노어는,어둠속에갇혀있었다.

­꽤예쁘장한년인데,귀족한테팔면한몫제대로잡는것아닙니까?

­지랄하지마.고귀한혈통인데다,황실이이계집을추적하고있어.계약완수에집중해라.

그녀의몸은움직이지않았다.공포에질린채,그저이어두컴컴한곳에서빠져나갈수있기를기도할뿐.

하지만,작은소녀인그녀가이상자안에서탈출할방법은없었다.마차에실린작은관은,단단하게묶여있었으니까.

도망친다해도지키고있는남자들에의해,흠씬두들겨맞은채다시이곳에들어오게될것이다.이미,몇번그랬던것처럼.

'...꿈이다.'

하지만거기갇힌그녀의정신은,어렴풋이이게환상이라는것을떠올릴수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눈을뜰수는없었다.아무리눈꺼풀을움직여봐야,보이는것이라고는완전한어둠밖에없었다.

'움직여야...'

그녀의몸은이미그녀의것이아닌것처럼,손끝하나까딱할수도없었다.

무력했다.아무것도할수없었다.

그녀를해하려는사람들앞에서,아무런저항도할수없었다.

"아아아아아아아!"

비명과함께,꿈에서깨어났다.

황실병동이었다.간호사들과사제들의발소리가들렸다.

"깨어나셨군요,황녀님."

"상황은!상황은어떻게되었나.분명다급한..."

"일단은,아무생각하지말고푹쉬세요.억지로움직이려하지마시고요."

그녀가누워있는곳은차갑고딱딱한관이아니라,부드럽고따뜻한침대였다.

"몸이...큭,움직이질..."

"회복주문도,으스러진뼈를단숨에낫게할수는없어요."

몸을살짝뒤틀자,그녀는몸안에서작은검사들이그녀를조각조각찢어발기는것같은고통이느껴졌다.

그녀의뼛조각들이살점하나하나를잘라도축하려는숙련된요리사처럼,그녀의몸을찌르고베어넘기고있었다.

"으으...흐,상황을..."

"일단은,안전해요.최소한지금은요.황제폐하의명령이라서더이상은말못하지만요."

그녀는다시무력하게누워,방금전에꾸던꿈의다음을억지로떠올렸다.그게,그녀를지탱하던기억이었으니까.

­저런,다치지는않았니?

멋진옷을입은금발의노인은,허허웃으며그녀를꼭안아주었다.보석과장식이몸에걸렸지만,그걸빼고보면꽤푹신하고안락한감각이었다.

­내딸아.

처음보는사람이었다.왜그가자신을딸이라고부른건지도이해하지못한채,어린엘레노어는그의품에안겼다.

­왜저사람들은,저를...

­어려운질문이구나.그들이의무를지키지않는사람이기때문이다.

­의무요?

­책임질것이있는사람들은,그걸소홀히하려하지않지.가정,제국,자신의삶,노력,하다못해작은땅이나허름한가게라도.

반짝거리는황제의보석과주위를지키고있는호위병들은,어린엘레노어의마음을깊게파고들었다.

­하지만지킬것이없는사람들은그렇지않단다.책임을다하려하지않고,그걸지킬대상도없는사람들. 그들은 쉽게유혹에빠지거든.

별거아닌말이었지만,납치당해한치앞을알수없는상황에서구출받은엘레노어에게는큰의미를가지고있었다.인생의이정표가되었다.

책임을다하기위해수련했다.누가생각해도어린아이에게는,아니여자에게는,아니그누구라할지라도가혹한강도의수련을계속했다.

기사의책무를다하기위해,황녀의책무를다하기위해.누구보다더고된훈련을하며자신을한계까지몰아붙였다.

하지만,지금그녀는움직일수없었다.

"...나는,용사가아니었나."

어느순간부터착각하고있었다.

용사의힘을쓰고,직접마물과피와땀을흘리며싸우고,모두가그녀를용사라고불러줬으니까.착각하고있었다.

황제는,엘레노어가용사의힘을쓰는게효율적일것이라며그의힘을넘기는의식을거행했다.하지만,정말그랬을까.

용사가반드시검으로싸우지는않는다.어느방향이든성검을들게되겠지만,꼭최전방에서서검으로적을쓰러트릴필요는없다.

역사서에는마법을쓰는용사도,활을쓰는용사도,조금이질적이지만작은쇠알맹이를쏘는용사도있었다.극단적으로는,사령술사도있었다.

그가말한대로'언제든지'용사의힘을되찾아갈수있었다면,그가얼마나인내하고배려했던건지짐작할수조차없었다.

그힘으로신성력을사용했다면.

어쩌면,자신보다먼저마왕을죽일수있지않았을까.

그녀보다더적은희생으로이여정을마무리지을수있지않았을까.

병상에누워천장을보는엘레노어는,그녀의무력함을느꼈다.이제그의분노를어떻게받아내야할지생각하자,아득한절망감이느껴졌다.

/////

복수는복수고,생활은생활이다.

내가무언가중대한결정을내렸다고해도,다른모든사람들이그걸알아주는건아니다.

결국여기서살아남아목표를이루겠다고결정한나는,당장은이곳의룰에따라야했다.

허름한의자에앉아멍하니기다리다보니,내가받고있던특혜가적지않았다는것을느낄수있었다.

그렇다고한들,돌아가고싶은생각은없었지만.

"에네렐씨.고블린퇴치의뢰정식으로발부되었습니다.4인이상파티로들어가시는걸권장하고요.인당고블린오른쪽귀2개이상가져오셔야합니다."

빠르게이어지는,안내원의고저없는목소리가귀에꽂혔다.오늘만해도몇번씩같은말을반복했는지,표정에힘이없어보였다.

"증거품제출완료되시면2주안에기본모험가자격증발급해드리고요.지금신청자가많이밀려있고,저희가직접서류가지고왔다갔다해야하는거라좀걸릴수있어요."

"무슨일있나요?"

안내원은표정하나변하지않고말을이었다.

"마왕이등장하면,모험가일은위험해지니까요.등장하는몬스터의수도질도뒤죽박죽이되어버려서,보통그시기는피하려하죠."

"예.알겠습니다."

"추후에라도자격증명과정에서고블린귀를매입했다거나,범죄내역이증명되면언제든취소될수있다는점인지해주시고요."

나는멍하니고개를끄덕였다.

별다른계획없이,무식하게황궁을빠져나왔다.피칠갑이된남자가황성을돌아다니면누군가제지할법도했지만,원체혼란이심해서인지무사하게빠져나갈수있었다.

더이상황궁에손을벌리고싶은마음은없었다.마지막에는어쩔수없이마법사나성직자의손을빌려야하더라도,내가할수있는걸하고싶었다.

그러려면,내것을만들어야했다.

­나,이제말해도돼?

길드건물을나와거리를걷고있자니,성검이조용히말을걸었다.

"마음대로해."

­그,그때는미안했어!나,막네손에들어와서,무슨상황인지잘몰라서...

"상관없어."

혼자다니게된다면,아마대화상대라고는이검밖에없을것이다.미리친해져두는것이좋을지도모른다.

당장 누굴 죽이니 살리느니 하는 상황에서 내 손에 잡혔다고 행복한 목소리로 모험! 모험! 하고 떠들었을 때는 증오스러웠지만, 결국 어쩌다 보니 모험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까.

­다행이다!그럼,내가하나하나알려줄게!수도는아직기억하고있으니까.여기고블린소굴이어디있냐면...

"아니,그런걸알고있어?"

안그래도이걸누구한테물어봐야하나고민하던중이었다.

­거긴어지간하면바뀌지않으니까.사람의욕심은시대가지나가도변하지않거든!

"오..."

밖으로나오자,왠지모르게힘이쭉빠졌다.주저앉고싶었다.급하게나온지라돈은한푼도나오지않았고,나름대로귀해보이던옷은어제의전투로너덜너덜해졌다.

용사로소환된게아니라그냥아무설명도듣지않고이세계에떨어졌다면,아마이렇게시작하지않았을까.

하늘을바라보자,몇번이고봤던하늘이보였다.텅빈하늘.

하지만수련을하자고나를얽매는용사도,씻고오라며차가운눈초리로나를바라보는궁사도없었다.

마왕을막기위해쉬지않고강행군을할필요도없었고,당장쉬면누군가가죽는다는이유로중압감에시달릴이유도없었다.

나를위해걷고,내귀환을위해움직인다.잊고있었던두근거리는감각이었다.

아니면,그냥하루동안그파티원들을보지않아서조금들뜬것뿐일지도.

­오늘은일단쉴거야?

"당장한푼도없는데쉬긴어디서쉬어.고블린정도로위험할리는없으니까,그일이라도마무리해서조금이라도벌어야지."

수도에오래있을생각은없었다.나는부지런히발걸음을올려,성검이말해준고블린소굴로발걸음을올렸다.

­여기서오른쪽.음,좀많이달라진것같긴한데,그래도이정도면큰문제없겠다!

"아니,그걸다기억하고있어?"

어느근방에있는지만기억하고있을줄알았는데,의외로그녀는정확한위치를짚곤했다.

­이골목,3번정도바뀌지않았다니까?

"어지러울정도로긴시간이네..."

하지만그녀가고블린소굴이라고나를데려온곳에는,텅빈터와잔해들만남아있었다.

"없는데?"

­저,저기동굴이있어야하는데!그,사라졌나보다!아무리내가기억력이좋다고해도,아무래도몇백년전의정보다보니까...

나는깊은한숨을쉬었다.돌아다니지도못하는검을믿었던내잘못이었다.

"뭐,천천히찾아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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