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37화 (37/217)

〈 37화 〉 실패­7(수정)

* * *

"일어나셨나요?"

잠에서깨어나자,성녀의얼굴이보였다.

그녀의주문은분명효과적이었다.나는,아마다시는포기하지않을테니까.

어떻게든돌아갈거다.다시는포기하지않을거다.이세상에서벗어나,내가원래있어야할세계로돌아갈것이다.

하지만,그러면나는미뤄왔던일들을정리해야했다.

어차피이세계를떠날거라며미뤄왔던일들을,묵혀놨던감정을정리해야했다.

"그래."

나는짧은말과함께,성녀에게주먹을날렸다.

피할의지도없어보였고,반응할수도없었을것이다.성녀는내주먹한번에쓰러졌다.

행복해질것이다.그걸위해노력할것이다.

하지만,이들과쌓은원한을쉽게지울수있을리없었다.

"꺄아아앗!"

신성력으로방어할틈도주지않았다.작은성녀의몸이받아내기에는너무큰충격이다.

장기가상했을지도모른다.나는쓰러진그녀에게천천히다가가,그심장을발로지긋이내려밟았다.

"이걸원했던거아니었어?가려는사람을굳이붙잡아둔건너잖아."

살아야한다.많은일들이있었지만,이제더이상복수를'무의미한행동'으로넘기기는어려웠다.

이세계에살게된다면,용사파티의이야기를듣고그들을칭송하는소리를들을수밖에없을것이다.

복수를끝마치지않고서는,그얘기를들을때마다다시이분노에휩싸이게될것이다.

"...맞아요."

하지만성녀는자기가이겼다는것처럼,성공했다는것처럼배시시웃고있었다.

"편해...보여,이대로라면,살수있을것같아요..."

자신을얘기하는것이아니었다.그녀가보고있는사람은,바로나였다.

나는그녀의가슴위에올라간발에체중을실어,심장을부술기세로그녀를눌렀다.곧그녀의호흡이거칠어졌다.

"더할말없어?그대로있으면,진짜죽을텐데."

"죽어야할사람이...죽는다.행복해야할사람이...행복해진다.당연히,그렇게되어야해요..."

나는그녀의심장에서발을떼고,쓰러진그녀의얼굴을두드려팼다.

"윽,꺄읏,읍,큭...."

성녀의입에서피가새어나온다.눈은멍으로부어올랐고,이곳저곳에붉은상처가남아있었다.

"기분은,으읏,좀...괜찮아지셨나요?"

"글쎄.아까보다는조금나은것같기도하고."

때리고또때릴수록,그녀의비명이잦아들어간다.

그녀의신성력이조금반짝였다.성녀의몸이조금씩치유되었다.

"치료할필요는없을것같은데."

주먹이그녀의배를때리자,방금했던치료가무색할정도의충격이그녀를흔들었다.

"더아플뿐이야."

"아,아파하려고,제가아파하는모습을보여드리는게더좋을것같아서..."

더이상그녀가입을여는게마음에들지않았다.입을제대로후려치자,그녀는끅끅거리는소리만낼뿐더이상말을하지않았다.

"사과할거면,조금더일찍했어야지."

하다못해마왕퇴치가끝난뒤에이런얘기를하기만했어도,이렇게까지되지는않았을텐데.

"저는,바보라서...몰랐어요."

마치다이해한다는듯한저눈빛이마음에들지않았다.눈을후려치자,그녀는고통스러운비명을질렀다.

"그래도,제가맞아서기분이편해진다면얼마든지맞을테니까...제발행복해지세요."

겨우이건가.그렇게오래준비해서,그거대한감정으로만든주문의결과가.

물론,감정에적용되는마법은매우비효율적이다.거기서내게'멈춰주세요.'나'용서해주세요.'같은주문을건다고한들,몇초도지속되지않았을것이다.

하지만,그때나를멈추는주문을썼다면.애매하고복잡한'행복하게살아주세요.'같은주문대신,'포기해라.'같은주문을걸었다면,나는아무것도하지못했을것이다.

"저,잘버틸수있어요.원망도안하고,화도안낼게요.화가풀릴때까지,얼마든지때려도괜찮아요..."

여기서죽일까.

하지만,그건그녀를편하게해주는일이다.죽는게두려웠으면,애초에내곁에남아있지도않았을테니까.

반응을보니,성녀도이걸예상하고있었음이틀림없다.

다리,발,배,어깨,팔,얼굴.비는곳없이,쉬지않고그녀를구타했다.하지만,그녀는의식을놓지않았다.

은은하고신성한빛이,계속해서그녀를치료하고있었으니까.

여기서죽일까.

하지만,그걸로는부족하다.

"네모든걸빼앗을거다."

그녀는대답하지않았다.

제국도,교회도,세계수도,마탑도.

전부망가트릴것이다.그여자들이돌아올수있는곳이없도록.

"그러면,행복해지길빌어요..."

그녀는드디어눈을감았다.이제한번만,한번만더때리면죽을지도모른다.

하지만나는마지막손길을거뒀다.

오늘있었던일을습격이라고생각한다면,나는아무런제지없이황녀앞에바로설수있었던셈이다.

다시그런기회가올일은없었다.여기서쓸데없이이목을끌게된다면,다른모두를죽일수있을지는몰라도황녀에게복수할순없다.

지금그녀를이대로놔두면그녀는'이걸'사고'라고둘러댈수있지만,시체는변명할수없으니까.

"죽이겠나?"

"아직남아있었습니까?"

그녀는,위험하다.

성녀는살아남아도내일을방해하지못할것이다.그녀의신성력은위협적이지만,그뿐이다.

그녀의성격이나지위를포함하면조직전체를사용해서나를추격할리없다.게다가,고통스러워하고있다.

그녀를살려두는것도복수의일환으로여길수있다.

하지만,마법사는무슨일을할지모른다.나는아직도그녀가어떤마법을쓸수있고능력을사용할수있는지,짐작조차할수없었다.

지금은내게고개를숙이고있지만,언제마음이바뀔지모른다.

그녀를편하게보내야한다는게조금아쉬웠지만,여기서그녀를죽여야한다.

결정을끝낸나는벼락처럼마법사에게달려들었다.

성녀보다도작은몸이다.용사의힘을받지않은상태였지만,이미내게수없이두들겨맞은그녀다.

더이상버틸여력이남아있을리없었다.

"크흑,나는..."

"뭐,더할말이남아있으십니까?"

"저여자처럼솜씨좋게몸을재생할수는없는지라,그리거칠게다루면금세부서지고말거다."

정상적으로,목을써서나오는소리가아니었다.

입에서소리가나오고있지만,마법이다.이미그녀의몸은입을열수없을정도로망가져있었다.

"상관없습니다.당신은죽을테니까요."

"결국,그렇게되나."

내손에는성검이들려있지않았다.아마주위어딘가떨어져있겠지만,그걸줍겠다고지금그녀를놓는일은하고싶지않았다.

내게잡혀있는상태에서도,언제어떤방법으로도망칠지모르니까.

사람이맨손으로사람을죽일때는어떻게해야하더라.

엘레노어가몇번목을비트는장면은보았지만,그렇게솜씨좋게일을처리할자신은없었다.

그리고,이미피를지나칠정도로많이묻었다.혹시나그녀의목을꺾어버리면,찢어진살점사이로피가터져나오는것아닐까.그건마음에들지않는데.

딱히,고민할필요는없었다.나는,진심으로그녀를죽이기위해주먹을휘둘렀다.

연약한육체가찢어진다.그녀를아프게하는게목적이아니라,죽이는게목적이었으니까.

사람의피부는생각보다질긴지,다행히도주먹으로쉽게찢어지지는않았다.하지만,그녀의장기가이미짓이겨졌다고확신할수있었다.

그녀의입에서는바람빠지는신음만이흘러나왔지만,마법은끊임없이내게말을걸었다.

"더이상,내가뭘해야할지는모르겠구나.하지만,조금더모범적인사례를참고할수는있지."

"걱정마세요.다른놈들도살려두지는않을거니까.모두,복수할겁니다."

"도울수있다."

"그런말을한다고살려줄생각은없습니다."

"이미내게남은건없어.어쩌면처음부터...없었을지도."

멀쩡하게대화를이어가는그녀의목소리를들으며,눈도제대로뜨지못하는마법사의작은육체를부수고있자니마치인형을부수는것처럼느껴졌다.

"이 육체도,마탑도.네마음대로해도좋다.하지만..."

이일을끝내면,일단도망쳐야한다.

모험을떠나,어떻게든마법재료를구해야한다.불가능한재료가많다고들하지만,그걸위해노력과시간을투자할가치는있었다.

그녀들의추악함을퍼트리고,그들이있던조직스스로선을그을기회를줄것이다.경비병이나늙은기사는,무슨일이일어난건지모르고있었으니까.

하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세계수가궁사를,제국이황녀를보호하려한다면,함께부술것이다.

얼마나시간이걸릴지는모른다.이게끝난다해도,성녀가내게환상으로보여준아름답고행복한삶을되찾을수있을지는모른다.

"나는,멈추."

더이상그녀의이야기를듣고싶지않았다.마음을굳게먹고,그녀의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찍었다.

단단한두개골이부서지고,부드러운뇌가으깨지고,뇌수가주먹에달라붙어끈적하고기분나쁜축축함이느껴진다.

목을쓰지않고말을걸던그녀라도,이제더이상입을열수는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로 죽어 있는 텅 빈 그녀의 시체 뿐이었다. 머리 부분이 텅 비어 있고, 보랏빛 머리칼이 붙은 두피가 여기저기 널브러진 주인 잃은 육체만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마법사는,여기서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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