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36화 (36/217)

〈 36화 〉 실패­6(수정)

* * *

"왜,그런짓을하는거지?"

그녀의신성주문이몸에닿았다.화사한빛이나를감쌌지만 아무일도일어나지않았다.

용사의힘에대해전부알고있는건아니었지만,엘레노어는어지간한마법따위에당하지않았다.

용사의힘이마법이나신성주문에도저항력을준다면,그녀의주문이실패할가능성도있었다.

나는병사들을제치고성녀의멱살을잡았다.그녀는내손을잡고캑캑거리면서도,내눈을바라보는것을멈추지않았다.

"돌아갈수있어요.다시..."

"너,정말미친년이구나."

더 이상 참기 어려웠다. 나는 그녀를 거칠게 땅바닥에 던졌다.

"꺄아아앗!"

그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었다. 헛구역질을 한 번 하고 나자,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미안하다는말을하기에는너무늦은거아니야?겨우그것때문에?대체왜?"

그냥이대로내가죽게놔두면,아무도위험하지않다.

내가조금만더분노에휩싸여있었더라면,복수를하기위해이세상을돌아보게된다면무슨일이일어날지모른다.

그녀는내자살을막은것뿐만아니라,모두를위험하게만든거다.

심지어는그녀자신마저도.

"미안하다는말은...안할게요.복수하지말라는말도,안할게요.무슨짓을해도괜찮으니까..."

성녀는입에서흘러나오는피를겨우닦았다.

"제발 살아서, 어떻게든 살아서..."

나는, 그제야 위화감을 느꼈다. 착각했었다.

신성주문은성공적으로시전되었다. 설치만되고터지지않은폭탄처럼,이미내몸 안에 성녀의 신성력이들어와있었다.

"행복하세요."

그녀의말과함께,주문이발동했다.

시야가하얗게변했다.

/////

"그러니까,신성력이란게참말이안되는힘이라는게다."

"어떤식으로요?"

마법사는싱긋웃었다.그때의나는,그미소가귀엽다고생각했던것같다.

"네가농사를짓는다고생각해봐라.네가더좋은땅에서,월등한종자를쓰고,더꼼꼼하게벌레를잡고잡초를끊어가며농사를지었는데,옆집사는놈이더많은수확을거둔거다."

"왜죠?"

"더간절했으니까."

감정이능력에들어간다는말은,지금생각해도아리송했다.

"불합리하지않나.하지만,사제복입은놈들사이에서는그게상식인거다."

"신기하군요."

"너도모험이끝나면거기나들어가봐라.여신믿는놈들은죄다위선자들이지만...네놈같은놈이라면,최소한그녀가슬퍼하지는않을테니까."

"마음만받겠습니다."

그런말을들었다.

신성주문은,감정의영향을받는다고.

같은기도문을쓰더라도,성직자에감정에따라저주가되기도축복이되기도하며,그규모도하늘과땅차이로달라진다고.

그렇다면그녀의감정은,얼마나거대했던걸까.

용사,마법사,성녀,궁사,황궁에서의기억,가족,친구.내가만났던모든사람들의,가장따뜻하고,멋지고,포근한순간들이나를감싸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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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는전투가한창이다.엘레노어는대장을잡기위해튀어나갔다.

"여기,마물이..."

"조심해라."

네르웬이쏜짧은화살이,내뒤에있는오크의눈을뚫고들어간다.

"감사합니다!"

보호받고있다.어투는차갑고냉소적일지언정,그녀는나를보호하고있었다.

내앞에있는오크를향해검을휘둘렀지만,그때의나는아직약하고서툴렀다.오크의살갗을뚫지못하고검이멈춰있었다.

"얍!"

셀리아가손을착모으고힘을불어넣어주자,내검은마치미끄러지듯이그괴물을베었다.

"한방에맞고죽으면안돼요!"

"어떻게든피할겁니다!걱정하지마세요!"

성녀가지팡이를땅에박고주문을외우자,몇명의오크가혼란스러운듯땅에고개를처박았다.

"용사가없는것치고는오래버텼구나.칭찬해주마."

준비를마친마법사가주문을외우자,땅이흔들리며불기둥이솟아오른다.고기타는냄새를맡자,반사적으로긴장이풀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얼마지나지않아,엘레노어가돌아왔다.그녀의하얀갑옷에묻어있는얼룩이전투의치열함을짐작하게했다.

"대장은처리했습니다.그리고,당신..."

그녀는나를보며잠시안타까운표정을짓더니,고개를숙였다.

"약속과일이다른것,진심으로죄송하게생각합니다.분명,안전한곳에당신을보호한다는약속이었는데."

"괘,괜찮아요.이정도는..."

"약속한대로,목숨을걸고당신을지키겠습니다."

짧은말을남긴엘레노어는패잔병을처리하러튀어나갔다다.

그들의전투는말그대로인간을벗어난수준이었다.이들중하나가될수있다는사실에전율을느낄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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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어린내가웃고있다.아무것도모르는얼굴로,순식간에떨어지는롤러코스터에타며.

엄마는놀란와중에도,혹시나내가떨어지지않을까걱정하고있다.

"재밌어?"

"응!재밌어요!"

그저몸이움직이는게재밌다.시야가순식간에지나가는게행복하다.볼을스치고지나가는바람이흥미진진하다.

기구에서내린나는,양손으로아빠와엄마의손을잡은채방방뛰었다.

"저거사줄까?"

내가솜사탕기구에시선을돌리자,아빠가바로쪼그려앉아나와시선을맞추고물어본다.

"네!"

"아니,여보는무슨벌써간식이에요.좀있으면밥먹어야하는데..."

"아니,신나게놀았으니까배고플때도됐지."

"나,밥먹을수있어요!배엄청고파서저거먹어도안배불러요!"

엄마는이내한숨을쉬며고개를끄덕였다.벤치에앉은엄마를뒤로하고,나는아빠와경쟁하듯솜사탕가게로뛰어갔다.

달콤하다.어린이용과학책을열심히읽은나는그게아무것도없는설탕과공기,향료의합이라는것을알고있었지만,그래도그건맛있었다.

가치있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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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모든삶의행복한순간들이아름답게편집되어,머릿속을스치고지나간다.

편안하고따뜻한사랑이마음속을가득채우고있었다.

"어째서..."

그녀가스스로를위험하게하고,모두를위험하게하고,아무도원하지않은행동을한이유를,이제조금은알것같았다.

과정이나원인이야어찌되었든,그녀는내삶이불행한채로끝나는것을도무지볼수없는것이다.무엇을희생해서라도,그녀의눈앞에있는나를지키고싶은것이다.

바보처럼'다시행복하게'라는말을지껄일뿐이었지만,그말은정말그녀의진심이었다.

용사의저항력따위가그녀의신성주문을막아낸것이아니었다.

성녀가내게준것은적의하나없는축복이었기에,막을수없었던것이다.

"행복해야해요.행복해야..."

행복한추억말고는아무것도보이지않았고,아마지금땅에쓰러져있을그녀의모습도보이지않았다.

하지만,그녀의모습은마치신의목소리처럼보이지않는곳에서웅웅거리며,이작은마법속세계에울리고있었다.

아는주문이다.사람을행복하게하고,흥분을가라앉히는신성주문.

대단한주문이아니었다.다른성직자가사용했으면,그저숨을한번편하게해주는정도의가벼운주문이었을것이다.

하지만거기에담겨있는성녀의감정이,준비가,희생이이주문을위대하게만들었다.

"미쳤...냐고.왜,이렇게까지..."

마치내삶을포장하는것처럼,행복한감정과기억들이머릿속을강타한다.생생하고아름다운순간들이,마치손만뻗으면다시돌아갈수있을것처럼반짝인다.

나는바보처럼'왜'라는질문을반복했지만,이미정답을알고있었다.

정말로그녀는,바보같은일이라해도,이젠너무늦었다해도.

내가행복하길바라고있는것이다.

"하..."

마치내게강요하는것처럼,그녀는내게행복해지라는그녀의소망을퍼부었다.

의지의크기가다르다.이것도안되고,저것도안된다며포기해버린내가,그저나를행복하게만들겠다는이유로이런주문을준비한셀리아를이길수있을리가없다.

"살아주세요..."

내가필요하다고,제발죽지말아달라고,자신과함께행복한삶을사는게아니라도괜찮으니,제발다시살아달라고애원하는사람이있다.

그마음만으로,유사한기적을만드는인간이한명이라도있다.비록내가세상에서가장싫어하는사람일지라도.

그런사람이존재한다는것자체는,싫지않았다.

"결국,자살도마음대로못하는거냐.너무하네..."

허탈했다.

하지만,삶에대한의지는다시찾을수있었다.

적당히반짝이는필터를통해,제삼자의시선으로본내삶을보고나서깨달았다.

그건충분히,어떤고난과시간을견뎌내더라도되찾을만한가치가있었다.

도저히포기하고싶지않을만큼아름다웠다.

이미돌아가도가족은없겠지만,새로운사람을만날수있을것이다.

내가아버지의자리에있을수도,자식의자리에있을수도,아니면연인중하나의자리에있을지도모르겠지만.

다른사람들과함께다시파티를만들어,동료를만들고친구들과함께모험을떠나고,다른가족을만들어,다시무한한사랑을받고,그걸다시되돌려주는일이라는게.

포기하기힘들만큼,아름다운일이었다.

조용히,눈을감았다.

/////

"수고했다."

파시어의몸은이미자체적인운동능력을상실했다.그가용사의힘을얻기전에맞지않았더라면,이미목숨조차부지하지못했을것이다.

"파,파시어님?"

쓰러지기직전의셀리아는,쓰러진용사를지키듯이꼭껴안았다.

파시어는복잡한눈빛으로그녀를바라보고있었다.

자신은열등했다.그조그마한감사의감정조차갖지않아완벽한계획을망쳤던자신과달리,셀리아의신성주문은완벽했다.

아니,완벽그이상이었다.그녀는진심으로에네렐을생각하고있었다.

"해치려는게아니다.애초에,저건쓰러진것도아니야.그냥자기가자고싶어서자고있는것뿐이지.섣불리창칼을겨누었다간,저잠을깨우고말거다."

"자,잠깐.움직이면안돼요!"

"이정도상처는괜찮다."

파시어는근육을일절쓰지않고,마법으로그녀의몸을들어움직였다.마치험하게쓴인형처럼,몸이곳저곳이부자연스럽게움직였다.

"그가용사라는것,몰랐나?"

"그,여기와서..."

심지어그가용사라는것도알지못하고,분노로날뛰는그의앞에서서그를위로했다.

비효율적인일이었다.성녀말고는아무도만족하지못할위험하고의미없는행동이다.

그래서,자신은절대하지못할행동이다.

해결해야할문제조차해결하지못해그를절망에빠트린마법사와,자신의목숨을걸고진심으로그를달랜성녀.

누가우월했는지,보지않고도뻔했다.

"화,화내지않으셨나요?"

"잘했다.만일그가죽었으면,상상도못할정도로위험한일이일어났을거야.아니,그걸보지도못했던거냐?"

"그,무슨말씀을하시는건지...저는기도문에만집중하고있어서."

파시어는고개를끄덕였다.그녀가시전한주문은,이리저리한눈을팔면서쓸수있는위력의주문은아니었으니까.

"...흉험한것을쫓아냈군."

만일그가스스로목숨을끊었다면,그육체를바로그붉은빛이차지했을것이다.

하지만,파시어는그걸차마말릴수없었다.모두가죽더라도,그의마지막선택을존중해야한다고생각했다.

차마,그가더고통받는것을두고볼수없었으니까.

"잠시,치,치료를..."

"됐다.남은신성력이있으면그용사한테나좀써줘라."

마치어깨에실을단인형처럼그녀의몸이떠올랐다.

"저,잘한걸까요?"

"되도록이면입열지마라,질투나거든."

"네?"

파시어는한숨을깊게쉬었다.일단목숨은부지했지만,앞날은한없이불투명했다.

깨어난에네렐이자신을죽이지않을거라는보장이없었다.그걸피할염치도없었고,살아남은자신이뭔가이룰거라는희망도없었다.

효율적인선택을하려머리를계속돌려봤지만,그결말이이런비참한실패였으니그녀의이성마저믿을수없었다.

목표도없고,잣대도없으니무엇이효율적인선택인지정할수도없었다.

셀리아도지친건지,곧그를안은채새근새근잠들었다.파시어는멍하니잠든두사람을바라보고있었다.

"가치없는인간들은,가치있는인간들을위해봉사하고희생해야한다...."

파시어는늘상하고있던생각을,자신도모르게입밖으로내밀었다.

"나참.이몸이,가치없는인간중하나가될줄은도저히몰랐는데.."

위대한인간과거대한인간은다르다.거인은남들이이룰수없는성취를만들수있어도,위대한인간은세상을바꾸고삶을바꿀수있다.

파시어는,아무것도바꾸지못했다.용사파티의성공을위해희생했던사람은용사였고,목숨을걸고그를지켜이세계의수명을연장시킨이는성녀였다.

자신이 초라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마법사는 다른이들이깨어날때까지그자리를지켰다.그녀의눈이그안에담긴감정을바꿔가며,하염없이그들을바라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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