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35화 (35/217)

〈 35화 〉 실패­5

* * *

호위병,리나는오늘아침까지만해도평안한하루가될거라생각했다.

황궁호위병으로일하다보면온갖사람들을다만나게된다.이곳에초청될만한귀족들은대부분거만한사람들이었지만,이번에만난남작은눈에띄게좋은사람이었다.

얼굴이항상굳어있어혹여나기분나쁜일이있지않은가늘걱정했지만,그가말을걸때면그는억지로라도웃는얼굴을지어보였다.

아랫사람들에게친절한사람이었다.엘프의습격이나다른기사가시비를걸었을때호위병들은완전히무력했지만,그는스스로그위기를빠져나왔다.

처벌을감수하고있는그녀와그녀의동료들은,징계가없다는소식에깜짝놀랐었다.

목을내놓으라고징징거리는귀족들도가끔있었고,적어도황실의호위병이실패했으니형식적으로나마징계를내려야하는상황이었으니까.

그때마다그가강력하게반대했다는소식을은발메이드가전해주었다.얼굴이마주칠때말을걸수는없었지만,모든호위병들은그에게감사하고있었다.

하지만그는공허한얼굴로도서관을들락날락하다가,침대에누워멍하니천장을바라볼뿐이었다.

그모습이,조금안쓰럽다고는생각했다.

그리고오늘은,그가유일하게진짜미소를짓는것을볼수있었던날이었다.

평소에는치지않던장난을치고,기대감에몸을떨며,한걸음한걸음가벼운발걸음으로나아가는그를보며다행이라고생각했다.

아쉽지만,귀빈을호위하는병사로서만남과헤어짐은필연적이다.저렇게까지좋아하는남작을두고,며칠만더남아있으면안되냐는이야기는농담으로라도꺼낼수없었다.

그렇게보냈는데.

­가용병력전부집결해!인원이고상태고편제고따질것없이다모여!이미라인하르트경이싸우고있다!

갑작스럽게내려진소집령에,병사들이다급히모여들었다.누가습격한건지,어떤전투가일어나고있는건지들을틈도없었다.

그저지하실밖으로호송되고있는병사의몰골을보면서,심상치않은일이일어나고있다는상상을하고있을뿐이었다.

"남작...님?"

하지만그혼란의중심에,그가있을거라고는생각하지못했다.

"왜....왜이러시는거예요?"

그는잠시얼굴을찡그리고가만히서있었다.입술을꽉깨무는게,무언가를참는것같기도했다.

"설명하기복잡한데,결론만말하자면...제가용사로선택받았었습니다.집에돌아갈거라고약속받았고,그약속이깨져버렸어요.그게답니다."

"용사라고?"

라인하르트가다급하게끼어들었다.

그도이상함을느끼고있었다.분명황녀와엘프,마법사는반쯤죽일듯이구타한그였지만,그와검을맞대었을때는묘하게소극적이었으니까.

마치상관없는사람들은빠지라는것처럼,넌지시그냥물러나달라는말도했다.

마신이나포악한용은 사람의작디작은얼굴을쉽게구분하지못한다.누군가에게폭력적이면주위에있는사람모두에게폭력적이어야하고,누군가에게온화하다면이들모두에게온화해야한다.

죽은사람이나오지않는것도,그의검에살의와의욕이담겨있지않은것도설명할수있었다.

"말도안돼.그런..."

무엇보다,용사의힘을얻은엘레노어가어떻게쓰러졌는지설명하는가장쉬운방법은,그전제를부수는것이었다.

용사인 그녀를 쓰러트릴 정도로 강한 존재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설명하는 것보다는, 눈앞의 남자가 용사임을 인정하는 것이 편했다.

"이정도면,증거가될수있을까요."

그의검에서푸른빛이어지러이반짝이다가흩어졌다.

선명하지도않고,오래가지도않았다.

하지만성검에깃든힘과별개로,그가힘을주자몸주위에빛알갱이가맴돌았다.눈치없는병사라도,저기에닿으면좋은일이일어나지않을것이라는건알고있었다.

그는 용사였다. 최소한, 용사의 힘을 썼다.

"그렇다고한들,그들의목숨을앗아갈수는없..."

하지만,늙은기사의마음속에도아주조금의구심이생겼다.

사정을봐줄생각도,존중할생각도없었던저거대한마수를조금이나마이해해버렸다.

용사의힘은억지로빼앗을수있는것도,여신이선택하지않은누군가에게양도될수있는것도아니다.

그가비슷한다른힘을써서'용사인척'하고있는걸수도있지만,그푸른빛은용사가검끝에서퍼부은용사의힘과너무나도닮아있었다.

한쪽을의심하기시작하면,다른한쪽도의심해야한다.

"일단,사과하겠네.자네가용사인게진실이라면,모두가이걸숨기고있었다는뜻이겠군.내부하들마저도."

고개를푹숙인라인하르트는,그의손이원인모를분노로부들부들떨리는것을보지못했다.

"하지만,가짜들의목숨은보장해줄수있겠는가?최소한재판이있을때까지.나는적어도,엘레노어의이야기를들어보고싶네.그리고,그녀가잘못한게사실이라도...죽음으로서도망치는것이아니라,살아서죗값을치뤄야한다고생각하네."

그건라인하르트가할수있는최대한의타협이었다.황실에목숨을바친기사로서 배신이나다름없는행위였다.

하지만,지금까지공격을전혀할생각이없던에네렐을쓰러트리지못한그다.평화적으로해결할방법이있다면,타협하는것이옳았다.

"약속할수없어요."

"그렇다면...미안하네.이게옳지않은일일지도모르겠지만...나는제국에빚진게너무많아."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되면..."

말을멈춘에네렐은그의말을듣고있지않는것처럼어딘가를노려보았다.

모두가그의시선을따라가고있었지만,그끝에는허공외에아무것도없었다.

"내가해."

잠시정적이흐른뒤,그가나지막이말했다.

차마다른이들이그말에반응하기전에,그는속사포처럼분노어린말을쏟아냈다.

"내가한다고,내가해!그새끼들을죽이든,살리든,복수하든,용서하든내가한다고!네가뭐길래내선택에끼어들어!"

"그,그게뭐든..."

"닥쳐!넌대체뭔데쫑알쫑알옆에서끼어들어!"

그는거세게성검을땅바닥에내던졌다.용사의동반자이자여신의선물인성검이,몇번튀어꼴사납게널브러졌다.

"그렇게여행이좋으면적당히사람구해서꺼지란말야!"

거친숨을몰아내쉬던그는,다시공허해진얼굴로다른이들을돌아보았다.

/////

그냥,참을수없었다.

집으로돌아갈수없게되었다는사실을인지한순간,나는버틸수없었다.

그저감정에휩쓸려마법사를때려눕혔다.

프라이드를버린궁사를,내옆에있다는이유만으로쓰러트렸다.

황녀를쓰러트리고,몸이부서질정도로무자비하게구타했다.

그들이죽어도상관없다고생각했다.어쩌면,황녀는이미죽어있을지도모른다.

하지만,이들은달랐다.아무것도모르는사람들이다.그저제국에충성할뿐인,죄가없는사람들.

하지만그것보다나를더강하게막아세우는건,귓가에서들려오는역겨운목소리들이었다.

그들을죽이라고,복수하라고.붉은빛은감정의덩어리가되어,내귓가에서속삭이고있다.

우울한와중에밝은목소리로모험을떠나자고소리치는성검도기분나쁘기는마찬가지였다.

절대로,이들의의도대로움직이고싶지는않았다.

"막으면,죽을수도있어요."

내호위병과눈이마주쳤다.씩씩하고밝은사람이라,기억에남아있었다.

"그,저는남작님을정말좋은사람이라고생각하고,황녀님하고도그렇게큰인연은없지만..."

어쩔수없다는듯이,그호위병은살짝웃었다.

"여기에,친구들이너무많아요."

나는고개를끄덕였다.

내가남은용사파티원들을모두죽인다해도,얼마나많은사람이내게원한을가질까.복수하러오는사람이있을지도모른다.

그렇게원한없는사람들을수없이죽여봐야,저붉은목소리가원하는대로따르는것뿐이다.

그리고그걸다이룬다해도,이미돌아갈길은없다.

되돌아갈 수는 없다.

"...처음부터이렇게될것같긴했지."

나는주섬주섬성검을찾아서주웠다.

­왔다,왔다,왔다!그지?역시나없으면안되지?

"조용히좀해줄래?"

­다때려부수고,빨리여행을떠나자고!어차피제국을무너트렸으니방랑생활시작이잖아?

"이걸로충분해."

성검에힘을넣는과정이깔끔하지는않았다.깔끔하고명확한엘레노어의검기에비하면,어설펐다.

마치살아있는생물처럼,출렁이는파도처럼흔들리고있었으니까.

하지만그절삭력은의심할바없었다.나는그검을거꾸로잡고,마지막숨을들이쉬었다.

그사람들이없는세상으로떠나는데,구태여저런마법진에의존할필요는없다.

아마돌아갔을그녀들을하나하나찾아낼필요도,그걸위해무고한이들을죽여야할필요도없다.

처음부터,혼자가되는데필요한건검한자루와내결정밖에없었다.

이글거리는검기가내배를관통하기직전에,익숙한비명소리가들렸다.

"안돼요!"

하얀머리칼의수녀복을입은여자.성녀다.그녀의전신은거대한신성력으로빛나고있었다.오랫동안준비한신성 주문이 시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가왜내앞에나타나는지,왜내자살을막는지하나도이해할수없었다.

“...어째서?”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