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실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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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었다.에네렐의눈에조금분노가섞이고,내리치는검에조금의지가섞인것만으로,그녀는꼴사납게바닥을뒹굴었다.
"크흐으윽!"
황녀의검은이미부러졌다.만약검을잡고있었어도,그걸잡을만큼힘이남아있지않았다.
성검은그녀의몸을베지않았다.정확히는,베지만않았다.
그얇은검날을따라,강대한힘이그녀의몸을부술듯이내리쳤다.
"크흡,어,으윽..."
더강한고통도견뎌냈다.더강대한적도이겨냈다.
용사의힘을다루는에네렐은그녀의능력으로는싸워이길수없을만큼두려운존재였지만,그녀는더격렬한전투에서더굳건히버틴적이있었다.
하지만지금은그럴수없었다.
그의눈이말해주고있었다.어떻게변명해본다한들,가해자는그녀라는것을.
"어떻게...왜,어째서...이제서야?"
그가분노하고,배신하고,도망친다면그녀는놀라지않았을것이다.애초에,그녀는책임없는자에대해어떤존중과신뢰도가지지않았으니까.
사람은타성에젖을수밖에없다.처음에야조심조심그를대하던엘레노어도마찬가지다.
이런저런이유로한번선을넘었을때,그가아무런대응도하지않고인내하는것을보면마음을바꿀수밖에없다.
저사람은,대항할수있는수단이없다는인식이머릿속에박혀버린다.
"왜의미없는걸물어보시는겁니까."
그는쓰러진황녀를향해,다시한번검을높게들었다.
"제가이검을들능력이없었다면,무언가달라져야했습니까?"
성스러운검이무력한황녀에게내리꽂혔다.고통스러운신음을내지른황녀는,저항하지못한채쓰러졌다.
"굳이궁금하신거라면,말씀드리겠습니다.저도참았습니다.그뿐입니다."
"너도...그랬던건가."
지금생각해보면,그는도움이되었다.
단순히결계를해제하고여신의축복을허가하는것외에도,그자신으로도움이되었다.
그가그저약한일반인이었다는사실을고려하면,일어나기힘든일이다.그게쉬운일이었으면처음부터동행인을늘렸을것이다.
그를지키기위해희생된것들도있었지만,그가해준일도많았다.
현지주민들과접촉한뒤설득하고,미친듯이날카로운네사람의분노를홀로받아냈다.
전장에서는도망치지않고궁사와마법사의보급품을조달하고,위험한위치에있는성녀를안아이동시키거나대신주의를끌기도했다.
지금보면하나하나,숭고하지않은일이없었다.엘레노어가그의행동을밝은눈으로보지않은것뿐이었다.
"그러면,무엇을위해서냐."
인간을묶어두는것은서약이다.혼자서는짐승과다를바없는인간은,약속과이행,책임의무게를통해인간이된다.
하지만그는,어디에도묶여있지않으면서그런인내를수행했다.
황녀는그걸이해할수없었다.
"...거기에이유가왜필요한건지.그게있다고해도왜당신에게설명해야하는건지.하나도모르겠어요."
"으읏!"
어떻게든일어나려는황녀는,다시한번쏟아진검격에무너졌다.
마치땅을파는농부처럼,그는감정없이규칙적으로그녀를내리쳤다.성검이내리쳐질때마다그녀의뼈가으스러졌다.
멍하니황녀를부수고있는에네렐의어깨에,누군가에손이얹혔다.
"자네."
에네렐은잠깐멈췄다가,멍하니뒤를돌아보았다.
"아,나가신것아니었습니까?"
"딸이저꼴이된모습을보고,멀쩡히나갈수있는이가있겠나."
파시어와엘레노어가흘린피가지하실이곳저곳에묻고,그들이만든싸움의흔적이마법진을전부흐트러트려놓았다.
하지만그둘은 여기아무일도없었다는것처럼자연스러운대화를나누고있었다.
"그것참유감이군요."
"혹시나해서다른이들은대피시켰네만,자네...복수할생각인가?"
에네렐은눈을감고한숨을쉬었다.
"제국에있는모든사람들을죽일셈인가?"
그는 긍정도부정도하지않은채그저고개를숙였다.
"글쎄요."
"만약자네가그걸염두에둔다고해도,나는막을권리가없다네.당장지금나는약자니까.받아들여야지."
"..."
"하지만."
황제는웃었다.마치아들을바라보는것처럼인자하고자애로운미소였다.
"순서는지켜야하지않겠나?"
"네?"
"자네가먼저죽여야할이는,다른누구도아닌내가되어야하지않겠나."
"어째서죠?"
"내딸이용사가되도록,자네가용사의힘을포기하게만든이는바로나다.자네가진짜용사라는사실을숨기도록만든이도나다.용사파티의인선은내가직접골랐고,그들은너를힘들게했지."
분명몸에힘이라고는하나도없어야할황녀가,팔꿈치와발가락을움직여힘겹게기어왔다.
그녀는더이상입을열힘이없었지만,눈빛으로제발그러지말라고애원하고있었다.
"내욕심때문에,내거짓말때문에,그리고..."
숨을한번들이쉰황제는,조금전보다몇년은늙은것처럼지쳐있었다.
"내과거때문에,자네가상처받은것아니겠는가."
에네렐은아무말도하지않고조용히서있었다.
두손으로자신의얼굴을감싼에네렐은,목에서부터터져나오는거친호흡을억지로짓눌렀다.
눈물없이흐느끼고있었다.
"제가,당신을...죽여야할까요?"
이질문은예상하지못했는지,황제는껄껄웃었다.
"자네의선택이지!나는실수를저지르고,지금그대가를치르고있지않나.자네도나중에는...우욱!"
그의말이끝나기전에,에네렐의발이그의복부를강타했다.황제의몸은힘없이날아가,지하실벽에부딪혔다.
"화,황제...폐하!"
그리고에네렐은주위를두리번거리며,그의기척에걸려든이질감의원천을찾아보았다.
저멀리,화살하나가박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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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떡하죠..."
지하실에몰래들어오는것까지는성공한성녀와엘프였지만,이곳의분위기를파악할수는없었다.
"인지하고행동하면늦을것같군."
도착하기전까지이성을잃고허덕이기만하던네르웬은,어느새차갑고냉혹한평소의얼굴을되찾았다.
"네?"
"네가말했지않나.어떤방식으로든에네렐을이곳에서추방시키려는의식이진행되고있다고."
엉망진창이된마법진,도망치는마법사들,쓰러진파시어와엘레노어.
"죽이면된다."
"네?그게무슨..."
성녀가뭐라말을꺼내기도전에,네르웬은활을들어한남자를겨누었다.
"네, 네르웬!"
셀리아의 비명에도 화살은 네르웬의 손을 떠났다. 하지만 그 화살은, 인간의 몸에 꽂히지 못했다.
반드시맞았어야하는화살이다.그누구라도,인지하지못한상황에서그녀의화살을피할수는없었을것이다.
하지만그활도,화살도그녀의것이아니다.최고의신궁이쏜화살이라도,이미한번활시위를떠난화살은되돌아오지않는다.
목표의몸이거대한충격에부딪혀,벽까지날아가쓰러지더라도이미활을쏜이는대응할수단이없다.
"빗나갔나."
"자,잠시..."
"먼저가겠다."
네르웬은셀리아가말릴틈도없이,방금막한사람을벽에처박은에네렐의곁으로달려나갔다.
"뭡니까."
"도와주러왔다!"
네르웬은감옥속에서,그녀가얻을수있는최소한의보상을.그녀의목표를재설정했다.
그를움직일수는없다.마지막만남에서, 감옥에서 그를 곱씹으며 깨달았다.무슨이유에서인지는몰라도,그가명령하면그녀는거부할수없다.
억지로그를납치하는것도불가능하다.남작의직위와제국의경호는둘째치더라도,사로잡힌그가'풀어라.'라는말한마디만하면풀어주고말테니까.
그렇다면해야할일은명확했다.아주먼길이걸릴지언정,다시돌아와야했다.그의호의를얻어야했다.
인간남자가무슨일에호의를느끼는지는몰라도,일단은무작정그의옆에붙어그를도와야했다.
"무슨의식인지는몰라도,늦지않게...아니,네선에서처리할수있었던모양이군.돕겠다."
네르웬은그를등진채앞에서서,주위의인간들에게활을겨누었다.
황녀가쓰러져있다는것은가슴아팠지만,어쩔수없었다.그가명령하면,네르웬은그녀를죽일것이다.
방금전에그녀가노린사람이황제라는것은조금놀라웠지만,이제와서정치적문제를신경쓸여유는없었다.
이제이곳을어떻게탈출할지가문제였지만,에네렐은이미황녀를쓰러트렸다.몸이너덜너덜해진네르웬이라도그를이끌고안전한곳까지도망치는것정도는할수있었다.
네르웬은드디어그의바로곁에서냄새를맡을수있다는사실에기뻐하며,미래를계획하고있었다.
그녀의뒤에서있는에네렐이성검을높게올린것을눈치채지못할정도로.
"끄으으읏!"
아무런대응도하지못한채,그녀는등뒤에서내려치는성검에맞고땅바닥을굴렀다.
용사의힘으로내리친검격이다.피격자체가수치스러운엘프의궁사가그걸견딜수있을리가없었다.
"내눈앞에나타나지말라고했잖아!"
눈물섞인그의포효가지하실을가득울렸다.
"왜,왜,왜,왜,왜지겹도록나타나는거야?왜내가,너희를죽이도록만드는건데!"
드러나서는안될신체내부의살점들이드러난다.몸이꺾여서는안될각도로꺾인다.
가까스로되찾은네르웬의이성이,고통으로잠식되고있었다.
그참혹한광경에깜짝놀란셀리아는,반사적으로신성주문을시전했다.
"아아아아아아!!!"
몸이치유되며감각이돌아온네르웬이,방금지르지못한비명을질렀다.
에네렐은땅바닥에처박힌네르웬을보던눈을들어,계단에숨어있던셀리아와눈을마주쳤다.
그공허한눈동자를본셀리아는,한발짝도움직이지못한채벌벌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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