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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32화 (32/217)

〈 32화 〉 실패­2

* * *

엘레노어의손에서붉은피가떨어졌다.그녀는아무말도하지못했다.

"뭐,지?"

애초에,푸른빛이뿜어져나와서는안됐다.

성검은날카롭지만,인간을벨수는없다.

물론그무게만으로도강력한둔기였고,살상력은충분히있다.하지만힘조절은얼마든지가능했다.

그절삭력은,용사의힘을사용하는것을전제로한다.아주적은마력을소모하는것으로무엇이든베어버릴수있는검이되지만,그녀가원하지않으면그누구도베지못해야한다.

그리고당연히,엘레노어는그를베어넘길생각이없었다.사고가있었지만,황제폐하가아끼는인간을죽여야할정도의문제는아니다.

그래서,바로그의앞까지간순간,엘레노어는용사의힘을거뒀다.

평범한사람인그라면,그빛이닿는순간몸이부드러운천처럼잘려나갔을테니까.

"무슨,일이..."

­하하하하하,꼴좋다,꼴좋다고!

성검은미친듯이웃었다.하지만,용사의의문은풀리지않았다.

성검에는자아가있지만,그걸통해무언가할수있는것은아니다.그저그걸잡은사람에게쉴새없이말을걸거나조언을할뿐,무력을행사할수는없다.

검기를불어넣는것은어디까지나용사본인이다.성검은한번도엘레노어의뜻에동참해주지않았지만,그걸들고도엘레노어는계속해서적을베어왔으니까.

용사의힘이다.

그의주위에서,거침없이휘몰아치는빛알갱이들은.

그의어깨에놓인검은,어떤상처도내지못한채그저올려져있었다.

에네렐은아무런말도하지않은채,고개를푹숙이고그저우두커니서있었다.

엘레노어는,드디어이상을깨달았다.

"...설마."

마치처음부터엘레노어는용사가아니었다는것처럼,그녀는용사의힘을전혀쓸수없었다.

그녀의손을상처입힌것은자신도,성검도아니었다.

"이제...이건필요없잖아요?"

눈을뜬에네렐은,성검의날을아무렇지않게잡아끌었다.

손에서느껴지는고통때문에잠시검을쥔손이느슨해졌던엘레노어는,무력하게그의손에성검이들어가는걸보고만있어야했다.

단지성검의문제가아니었다.그녀가여정중에쌓아왔던여신의가호가,용사의힘이조금도남지않았다.

그힘은정당한주인의의사에따라,긴여행을마치고원래있어야할곳으로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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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마법사는,멍하니그광경을보고있었다.

그가원한다면힘을돌려받을수있을지도모른다는생각은하고있었다.

하지만그오랜시간동안,그는한번도그걸시도하지않았다.원한다면언제라도그힘을가지고다른이들을협박하거나,더좋은대우를요구할수있었다.

하지만그는한번도그런말을하지않았다.그에대한대우를묵묵히받아들였다.

어제까지라면,그행동을이해하지못했을것이다.이해하려는노력도할필요없었을것이다.

갑자기잠잠해진마수가,왜먹잇감을앞두고돌아갔는지이해하려할필요는없다.

하지만지금은이해할수있었다.

마왕이살아있는일분일초마다사람이죽는다.그걸모를에네렐이아니었다.

그가정당한용사의힘을행사하더라도마왕을퇴치할수는있었겠지만,이용사파티가했던것만큼압도적이고빠른시간안에마왕을죽일수는없었을것이다.

그의고통은대부분용사파티의속도와과감성과관련되어있었다.마왕군의습격으로희생된이들의시체를볼때마다,그는매번고통에찬신음을흘렸다.

그걸위해참은것이다.그걸위해인내한것이다.이세계를사랑했으니까,죽어가는사람하나하나에공감할수있었으니까.

'나는...'

조금이라도그를이해하려했다면,무언가달라졌을까.

엘레노어는그녀의눈앞에서떨어지는성검을급히피했다.

힘없이내리쳐지는성검이었고,그끝에용사의힘도깃들어있지않았다.

하지만,슬픔과피로가잔뜩묻어나는그의검격일지라도전력을다해피해야했다.

외부로방출되지는않을지언정,그가그검을움직이는동력은분명용사의힘이었으니까.

"싸우겠다는거냐!"

예상했어야했다.일반인에게네르웬의습격은분명두려운일이고,도망치는것은부끄러운일이아니었다.

하지만마지막만남에서,그는네르웬을보고도망치기는커녕두주먹을굳게쥐고맞설준비를했다.

네르웬의힘이다른초인들에비해압도적이지는않겠지만,세계수의대전사다.일반적인완력으로는버텨낼수없다.

"운이좋아서라고말했던것도,그때문이었나.”

그가감사를표하지않은것은그렇다쳐도,아무일없다는듯이유유히그자리를떠난것은일반적인행동이아니었다.그는이미용사의힘을돌려받을준비가끝나있었다.

엘레노어는급히예비용검을뽑아다시자세를잡았다.

그의행동은검술조차아니다.살의도,기교도느껴지지않는다.그저한을담아검을내리칠뿐이었다.

하지만,용이별생각없이흔든꼬리에도사람이맞아죽을수있다.그검격은위험했다.

"무엇을...원하는거냐."

"글쎄요.방금전까지는귀환이었는데..."

그의걸음이무거웠다.마치한걸음한걸음걷는것조차힘겹다는듯이,비틀거리며그의몸이움직였다.

"그건,방금포기해버려서.어떻게해야할지모르겠네요."

용사는검을굳게잡고,그를향해검을휘둘렀다.

검대검으로힘싸움을하겠다는것은어리석은망상에불과하다.용사의힘을얻은이상,그녀의검으로치명상을입힐수는없다.

어떻게든먼저공격해그의공격의사를사라지게만들수밖에없었다.

하지만그는간단히그녀의공격을피했다.소란스럽지도거창하지도않은움직임으로,마치엘레노어가어떻게공격할지알고있다는것처럼.

"...이건,죽었어야하는공격인데."

"읏!"

그가나지막이뱉은말에,황녀는입술을깨물었다.

성검으로는사람을벨수없다.몸에닿는다한들,치명상으로이어지지않는다.

훈련에는최적의조건이었다.그는마족의손에죽게하지않기위해강해져야했고,엘레노어는강압적으로그의회피실력과검술을끌어올렸다.

제국최강의기사인그녀가,무의식적으로용사의힘까지써가며몰아붙인다.그폭력적인구타에서벗어나기위한몸부림들은,아직도에네렐의기억속에남아있었다.

그리고,그녀가했던말도남아있었다.

결국황녀의공격을피하지못하고,죽을만큼아파쓰러져있을때그녀는차가운표정으로다가와말했다.

­이건,죽었어야할공격이다.죽고싶지않다면피해라.

하지만그가용사의힘을얻은지금,압도적으로강력해진신체능력과동체시력은황녀의검을피할수있는수준까지상승했다.

수십,수백번씩그녀와대련했던그다.황녀가어떤눈빛을보일때어떤공세를취하는지머리가아닌몸이기억하고있었다.

운좋게황녀가검을그의몸에가져다댄다해도,승산이있는것은아니었다.어설픈공격은그의몸에흠집을낼뿐,치명상을낼수는없을테니까.

"언제부터,언제부터그걸다시가져갈수있었던거냐!"

"처음부터."

엘레노어는더입을열수없었다.조금이라도호흡이흐트러졌다간,그의공격을버텨낼수없었다.

"으읏..."

분명제대로일격을흘려냈음에도,몸에가해지는부하가어마어마하다.반격을가하기는커녕,다시자세를잡는것조차어렵다.

비틀거리며이를악물고일어났다.그녀의정신도혼란에빠져있었다.

그가책무를피해도망쳤다고생각했다.힘을넘긴것은,그에따른당연한대가라고생각했다.

던전을소탕하고거대한마수들을처단하며여신의계획에따라축복을받고용사의힘을얻을때마다,자신에게주어지는능력을당연한것이라고여겼다.

하지만,그건허상이었다.그녀가어떤업적을이루었고얼마나노력했는지와상관없이,용사의힘은처음부터끝까지그의것이었다.

노력한사람은,그에따른대가를얻어야했다.묵묵히책임을다한사람은,당연히다른이들보다존경받고강해야만한다.

하지만,그는단한순간도그녀보다약한적이없었다.

검격을막아내는것이어렵다.용사의힘이얼마나강력한지누구보다잘알던그녀였다.

용사의힘과성검에익숙해진몸이다.

그전에도유능한기사였으니시간이있다면적응할수있겠지만,지금그녀가들고있는얇은검과약한육체는엘레노어를주저하게만들었다.

어지럽다.쓰러질것같다.황녀는어느새생각하기를멈추고,본능에따라그의검을피하고막아냈다.

"화,황녀님을지켜!이대로두면..."

비밀스러운공간이었지만,황녀와황제를지키는호위들이하나도없을수는없었다.그들은각자창과검을뽑아들고에네렐을둘러쌌다.

그리고그건,희미해진황녀의정신을붙잡아두었다.

"뭘하는거냐.비켜라!"

"하,하지만..."

"황제폐하와다른성직자,마법사들을모셔!이자는내가막고있을테니,빨리도망치란말이다!"

용사의힘이있든없든,그녀가해야할일은변하지않았다.

그녀의책무를다하는것.

누구에게나,이겨낼수있는시련이주어지지는않는다.

거대한오우거무리앞에서인간병사는그저한끼간식거리일뿐이다.

거대한시체의무리를몰고다니는사령술사앞에서,활을든병사하나가할수있는일은없다.

하지만,그렇더라도자리를지킨다.그들은아무리작은위치일지언정,제국을위해희생한다.모두에게하나씩주어진목숨을주저없이바친다.

그녀는,자신이이길수없다는것을인정했다.그가용사의힘에익숙해지는것은시간문제다.

하지만,그게자신이도망쳐야할이유는되지못했다.

그의분노가어디까지퍼져나갈지는몰랐지만,적어도그녀의선에서막아야한다.

"여기서부터는한발짝도못간다!"

엘레노어는두다리를굳게땅에붙이고,지친몸의마지막힘을끌어다써검을들었다.

책무를다하기위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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