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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31화 (31/217)

〈 31화 〉 실패­1

* * *

그는입가에미소를띤채,죽은듯이누워있었다.

행복해보이는모습이었다.

파시어가기억하기에,그가한번도여정중에웃지않은것은아니었다.그의 미소가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그녀는 떠올릴 수 없었다.

사람이라고인지하지않았다.

짐꾼이었을때의그는,그저노새에불과했다. 이유를 밝히지도 않고 파티에끼어든그를, 파티원들이 고깝게 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분고분하게파티원들의말을따랐다.

나름대로 예뻐해주었다고생각했다.하지만,그건인간으로서의존중과배려가아니었다.

말을잘듣고대소변을잘가리는애완동물에대한귀여움,잘작동하는도구에대한애정이었다.인간에대한애정이아니었다.

그가그녀의꿈을인정해주었을때도,다른이들과달리'마땅히기뻐해야할일'에 기뻐하는. 고장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파시어는, 그를 인간으로대한적이없었다.

그게아니라면,그의행동을배신이라여기고화내는일은없었을테니까.

그의웃음이조금씩걷힌다.몸이조금씩움찔대기시작한다.

아직까지는그의입에미소가걸려있었다.그웃음이너무덧없어보여서,파시어는더욱침울해졌다.

그의눈이떠졌다.조용히주위를둘러보면서,그의표정이조금씩굳어졌다.

"제가왜아직여기있습니까?"

"실패했다."

"왜죠?"

아무런감정도없이그저공허한눈으로파시어를바라보는그는,터지기직전의폭탄처럼꿈틀거리고있었다.

"나다.내가실패했다."

용사의귀환의식과관련된감정.

불안과공포라면,당연히가지고있었다.정통성있는용사가분노했을때는,기록으로만전해지는무시무시한일이일어날테니까.

하지만그순간까지도,파시어는그녀를사람으로보지않았다.

그녀의뜻대로움직여야하는도구에서 무시무시하고거대한무언가로승격한에네렐이었지만,그게사람은아니었다.

인간이잡을수없는정도로거대한산불이나,저항할수없는거대한자연재해.그이상도이하도아니었다.

"내가,네게감사하지못했다."

그가돌아간다는말에서희망을보았고,그를마법진에앉히면서승리감을얻었다.전부 이룰수있는감정이었다.

하지만,감사할수는없었다.그건사람이사람의행동에느껴야하는감정이니까.

"나는...마지막까지,너를보지못했어!"

언제부터이렇게되어버린걸까.

파시어를음해하는이들은많았다.마치나쁜이야기속마녀처럼,그녀를매도하고역겨워하는이들은셀수없었다.

평소라면그말들을지능낮은자들의질투따위로넘겨버렸을파시어였지만,지금은그걸인정할수밖에없었다.

자신에대한역겨움에,파시어는하염없이눈물을흘렸다.

한번도그가어떤감정을느꼈을지생각해보지못했다.혼자기억을되짚어볼때도,'이정도모욕감을느꼈으면화가나겠지.'같은규칙과상황에의존했다.

"하...."

그는허탈하게웃었다.웃음은곧그의호흡을망가뜨렸고,거칠어진숨에는눈물이섞였다.

"하,흐,하하,흐,흑..."

무너지고있었다.그가품고있었던마지막희망이사라졌다.

그는짐승처럼절규했다.웃음도,울음도,무표정도.숨결하나하나까지슬픔에차있었다.

"그러네...음,처음부터,될리가없던일이었구나."

"아니다,가능했던의식이었다.주제넘게내가끼어들지만않았다면,조금이라도네게감사하고있었더라면!"

이마법사와성직자들은,진짜용사가누구인지알고있는이들이었다.

에네렐을아니꼽게보는이들도없지않았지만,그들은적어도그가감사받을자격이있다고생각하고있었다.

그들로만의식을진행했다면,실패하지않았을것이다.

"내가할수있을리가없었어...돌아갈수있을리가없었어..."

마치아무것도들리지않는다는것처럼,그는쉴새없이혼자중얼거렸다.

"미안하다.미안해..."

에네렐은한걸음씩,멈춰있는파시어에게다가갔다.

눈을꼭감은어린마법사의부드러운배에, 그의거센주먹이꽂혔다.

"끄흐으윽!"

알고있었지만,마법사는피하지않았다.

온몸의숨이토해져나오고,복부의장기가뒤엉키는고통에도그녀는견뎠다.아니,그저고통을받아들였다.

"왜...왜그랬어요?"

에네렐은 마치자신이맞고있는것처럼아파하는표정을짓고있었다.

"한번만,한번만성공했으면됐잖아요."

하지만그의슬픈표정과는별개로,그의주먹은멈추지않고파시어를두드리고있었다.

배,어깨,가슴.어느곳하나성한곳이없었다.

지금당장마법을쓰면,파시어는이고통에서벗어날수있다.당장그의손아귀에는아무런힘도깃들어있지않았으니까.

하지만그녀는묵묵히,그의분노를받아들였다.

"그러면나도,적어도마지막에는당신에게 좋은기억을가지고이세상을떠날수있었잖아!"

마법사의입술에서피가흘러내린다.마왕과싸울때는더위험하고더아픈순간도있었지만,그때는생각할겨를이없었다.

어떻게이난관을벗어날지,어떻게이싸움을승리로이끌지계속해서떠올려야했다.

하지만지금은아니었다.승리하기만하면행복한미래가약속되어있는,양심의가책없이쓰러트릴수있는괴물따위는없었다.

지금있는괴물이라고는,한번도그를이해하지않았던그녀와이해받지못한끝에무너져버린남자밖에없었다.

"왜,왜그랬던거야..."

그의말도사리에맞지는않았다.이미,그는마법사에게서어떤좋은감정도가질수없었을테니까.

하지만,시간이지나고많은것들이잊혀져,감정과아픈기억들은멀리사라지고행복한기억들과그들의아름다운모습만기억하게된다면.

그때는,파시어의마지막호의아닌호의를기억하게될지도몰랐다.

이제는의미없는가정이었지만.

별다른기교없는거친주먹이계속해서그녀의볼과턱에쏟아진다.체중을실은주먹이계속그녀를강타했다.

주먹이몸에닿을때마다,파시어는소리없는비명을질렀다.피가흘러나오는입을닫을힘도없었고,그공간사이로바람빠지는소리가새어나왔다.

마법사들과성직자들은벌벌떨며,그광기의현장을지켜보고있었다.그들은자신의능력을모두의식에소진한상태였다.

멀쩡한상태였어도그의분노앞에서자신있게나설수있는이는없었다.

"멈춰라."

하지만황녀는,냉정하게그에게다가갔다.용사의검에서뿜어져나오는빛이,어두운지하실을조금밝게만들었다.

아른거리는빛을통해,에네렐은엘레노어의,엘레노어는에네렐의얼굴을조금씩볼수있었다.

"돌아와라,엘레노어!그건안돼!"

황제가다급하게소리쳤지만,엘레노어는검을다시집어넣지도,발걸음을멈추지도않았다.

"이번일은반쯤배신이라고생각하고,그녀에대해실망하긴했지만...적어도파시어는제친구입니다."

에네렐은잠시멈췄다.

"흐,흐으..."

그의눈물자국가득한얼굴에서,서서히웃음이흘러나왔다.

"흐아,하하,하하하하...."

웃음도,호흡을거칠게만드는동작이다.끝도없이가팔라진그의호흡은,웃는것조차힘겨워보였다.

"이런다고네게도움이되는건아니다.황제폐하가네게줄수있는모든것을약속하겠다.네가원하는것처럼,너는아무런책임을지지않아도된다."

엘레노어는검을앞으로세웠다.

"친구였군요.친구,친구였어요..."

그는파시어를힘없이놓아버렸다.피를흘리던작은마법사는,땅바닥에곤두박질쳤다.

"당장그재료를다시모을수는없다.내감정과는별개로 제국은,황제폐하께서는최선을다했다."

"...."

"어쩔수없지않나.포기해라.레오드린남작위는영지가있는자리다.돌아가서삶을즐겨라.네가그안에서무슨일을하든우리는상관하지않겠다."

당장에네렐은아무런능력도없는일반인이었지만,황녀를제외한모두는그를두려워하고있었다.

"여자를안아라.맛있는음식을먹고,편히자라.제국의신민이된너를,나는목숨을걸고지키겠다."

"...포기하라고요."

파시어가꿈틀거리며,피에섞인목구멍을힘겹게열었다.

"불사의...비술,쓸수있어...어떻게든,시간을들여서라도,널돌려보내..."

에네렐이파시어의손목을밟자,그녀가죽을힘을다해짜낸목소리는순식간에사그라들었다.

"됐어요."

에네렐은짧게웃었다.

"돌아간다고뭐가있는것도아니고,이미가족도,친구도없어요."

"...뭐라고?"

"나는돌아가고싶은게아니야."

황녀도,파시어도,황제도당황한채그의말을듣고있었다.

돌아가길원치않는다면,아무것도설명되지않는다.그는뭘위해참아왔던것이고,무엇을바라고행동했던것인지.

"돌아가고싶은게아니라,살고싶지않았던거라고!너희가있는이세계에서,단한순간도살고싶지않았던거야!"

드디어,그는그들이이해할수있는감정을내비쳤다.증오로 가득찬눈동자가타오르고있었다.

"잠시,머리좀식혀야겠군.목숨을상하게하지는않을거다."

용사의날카로운검이,그를향해조금씩나아갔다.

"싫어...싫다고...."

방금까지내비쳤던분노가마치거짓말이었던것처럼,그는어깨를축늘어뜨린채고개를숙였다.

"깨어나면꼭사과하마.네가파시어에게그랬던것처럼,나를모욕하고구타해도좋다."

엘레노어는그의어깨를향해검을휘둘렀다.용사의검에서파란빛이뿜어져나와살갗을찢었다.

"...어?"

'용사였던것'의손은,참혹한상처와피로얼룩져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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