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복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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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내일이라도...돌려보낼수있다고하셨죠."
파시어라는인간이누구보다위대한마법사라는건누구보다내가잘알고있었다.
하지만그녀에게빚을지는것도싫었고,내가용사라는비밀이알려져서좋을것도없었다.이미진행되고있는술식에그녀가끼어든다고시간이단축될거란보장은없었다.
하지만,내귀환을조금이라도앞당길수있다면그런것은감당할수있는문제에불과했다.
"그게..."
"단순히저를불러내려고그런말씀을하신거라면,정말로...실망하게될것같습니다."
"아,아닐세!잠시오해가있었나보군.나는,자네가이토록돌아가고싶지않을줄알고..."
"당연한일아닙니까?당신들이내게무슨짓을했는데..."
그녀는당혹스러워했지만,그래도기뻐하고있었다.
나쁘지않았다.그녀가내게어떤짓을했더라도,지금마법사는도움이되는인간이었다.
뜻이일치하는것은,나쁘지않았다.내비위를맞추려던걸보면그녀도내게원하는게있었겠지만,이제그걸포기한것아닐까.
"열흘안에는..."
"열흘?"
내표정이조금일그러졌다.당장이라도돌아갈수있을줄알았는데,황제가약속한시각과크게다르지는않았다.
저마법사가일반적인마법사들과는궤를달리하는존재라는것을고려해보면,다소아쉬운수확이었다.
"사,삼일!"
"그건...확실히빠르군요."
그녀의눈을보면,다된의식을망치려들것같지는않았다.
적어도,내가용사라는것을안뒤로마법사는나를두려워하고있었으니까.
"도,돌아가고싶었던거로구만.하,내가어리석었네.그래,가족과친구들을만난지도몇년이지났을테니,보고싶을만도하겠지."
"..."
"자네를위해할수있는모든것을하겠다고약속하지않았나."
마법사가짓는웃음은인위적이고조잡해보였지만,그녀가자기말을지켜주기만한다면나도웃을수있었다.
하루하루가지루하고,하루하루가고통스러웠다.
이제그냥돌아가고싶다.나는이세계에충분히헌신했다.
더이상여기에남아있어봐야,여기있는사람들을괴롭게하고,나역시괴로워질뿐이다.
"최,최대한빨리준비하겠네!지금이라도..."
그래도,조금안심했다.마왕퇴치에비하면비교도안될만큼편한생활이지만,그래도행복하지는않았다.
언제부터일까.이세계가더이상흥미로워보이지않고,하루하루를'버틴다.'라고생각하게되었을때가.
"무...무슨말이에요?떠난다니?"
"네가신경쓸일이아니다.셀리아."
마법사는성녀의말을차갑게잘랐다.
"어디로떠나시길래,마법사님의마법이필요한거예요?영지가아니에요?멀어요?"
"다시는만나지못할곳이다."
"아,안돼요..."
나는차가운눈초리로마법사를노려보았다.
"같이온겁니까?"
"아니,불청객일뿐이다.셀리아,가라.나중에설명할테니까."
"아,안돼요.이렇게헤어지면안돼요.우리,같이여행도했잖아요.다시만나서화해해야...."
싫었다.그녀를보고있는게싫었다.모두그냥나를내버려뒀으면좋겠다.
"이제와서화해하자는말입니까,성녀?"
"다,당장은아니더라도,나중에화가좀풀리면...마,마법사님!당장그말취소해요!취소하란말이에요!"
우스웠다.우리가얼마나오랜시간동안같이여행했다고생각하는걸까.
단순히시간이지난다고풀릴분노였으면,내가먼저화해하기위해노력했을것이다.
나쁜말을하고싶지는않았지만,더이상말을고를힘도없었다.
"이상하네요.성녀.당신,얼마전까지그렇게무서워하지않았잖아요.내가떠난다는게,일어나서는안될일이되어버렸나요?그렇게생각하는이는누구죠?"
그녀가스스로깨닫을거라고기대하지는않는다.이것마저도,온전한그녀의의사는아닐것이다.
"그,그건..."
정곡을찔렸는지,성녀의목소리가작아졌다.그녀는나를위해소리높여화낼수있을정도로,나를좋아하지않는다.
"여신이겠죠.또,또,또여신.사람을죽일때도여신,사람을욕할때도여신,비난할때도여신,지킬때도여신.”
“....”
설령그녀의말이본심이라고해도,더이상그녀에게기회를줄수는없었다.
"가세요.더화내기전에."
"꼭,화해할게요.마음이닿을때까지,사과할게요...."
성녀가눈물을흘리며달려갔다.나는다시문을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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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아는홀로성당으로돌아갔다.땅을밟는발걸음이무거웠다.
"당신도,무거웠던...거예요?"
어리석었다.멍청했다.누구보다가장아래에서다른이들을섬겨야할그녀가,누군가를아프게하는데동참했다.
그의말이맞았다.성녀가자신의잘못을깨닫게된것은,여신의인도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반은틀렸다.그녀의귀로들리는음성이아니라,절규하듯써두었던여신의감정이었지만.
알았어야했다.그녀가견딜수없는것이상으로,그도견딜수없었다.그저,참은것뿐이다.
"바보같아..."
한번도,한번도여신의목소리를듣지못했다.조급해졌던그녀는어떻게든방법을찾다가,결국이전에쓰던일기장을꺼냈다.
그녀가신의목소리를잘듣지못했을때,평범한아이였을때에썼던꾸깃꾸깃한일기다.
그녀의신분으로제대로된종이와펜을구할수없었으니,버려진종이와겨우검은빛이묻어나오는 흙으로 일기를 쓰곤 했다.
어렸을적에그녀가꿈과희망,그녀의일상을적으면,밤에다녀간누군가가따스한위로와감상을적어두었다.
성녀가된지금은그게여신이라는것을알게되었지만,일기를쓰지않은지꽤오랜시간이지났다.
그녀는굳이그런수단없이도여신과소통할수있는성녀였으니까.
하지만그녀가얼마전에다시열어본일기장에는,여신의처절한절규가들어있었다.
왜그를괴롭히는거냐며,제발그만하라며울부짖는그녀의감정이적혀있었다. 일기장은 성당에 있고, 그녀가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여신도 알 텐데도.
몇페이지동안신의분노,증오,체념,절규가빽빽하게적혀있었다. 마치 그걸 내보내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것처럼.
그리고마지막에는,명백히다른글씨체로단어하나가적혀있었다.
안녕?
/////
"당신,대체무슨짓을하는겁니까."
차갑고냉정해보이는말투와는달리,황녀의행동은분노에가득차있었다.
다짜고짜달려온황녀에게멱살을잡힌파시어는코웃음을쳤다.
"하,이제연장자에대한예의도없는거냐?"
"그를남겨놓으십시오.이건명령입니다."
"저건굉장히위험하단다,꼬맹아.제발좀큰관점에서볼수없겠니?"
마법사는손을한번튕겨그녀의손아귀에서벗어났다.
"이딴곳에쓸마력이사무치게아깝단말이다.지금엘레노어네게대답을해주느라,벌써몇초가지나갔어."
마법사가서있는곳은거대한지하실이었다.그녀는자신의피를뽑아내며,그녀가이마법에개입함으로써생길변화를제어하고있었다.
"황제폐하의재산입니다.황실의재산을마음대로쓸수는..."
"허가는받았다.물론,받지않았어도했을테지만."
"대체왜!"
"용사를돌려보내야하니까."
잠시마법진을노려보던파시어는,결국고개를들었다.
지금부터는,흔들리는정신으로마법진을보강하고싶지않았다.재료하나하나가귀했으니.
"저,대마법사님?잠깐성직자들이부르는데..."
의식에참가한마법사하나가눈치를살피며그녀를불렀다.파시어는귀찮다는듯손을흔들었다.
"곧간다고전해라.그,감정이뭔지만빨리알려주고."
"순서대로불안,공포,희망,승리,희망,감사입니다."
마왕퇴치의마지막을장식하는역소환의식답게,거기에들어가는감정은용사의여정을묘사하고있었다.
"알았어.내일은내가알아서할테니,자네는돌아가보게."
"하지만..."
"그러면,이여자를자네가좀설득해보시던가."
파시어가귀찮다는듯이엘레노어를가리키자,마법사는고개를깊이숙이고돌아갔다.
"그래서,할이야기가뭔가?"
"....이젠아무래도상관없어졌습니다."
"뭐?"
엘레노어는흥미가떨어졌다는듯이,차갑게등을돌렸다.
"당신의눈을압니다.그눈을하고있는당신은,누구에게도설득되지않았으니까요."
엘레노어는경험을통해알고있었다.저상태의파시어는,타인을인간으로보지않는다.누군가의말을듣더라도그생각을존중하고의견을수렴하려들지않는다.
그저,모든것들이문제가될뿐이었다.저사람이내말을듣지않는다는'문제'를무슨수를써서라도풀어내는것이그녀의목적이었다.상대가말을들을거라는기대로대화를한다는것자체가,서로에게.특히시간을아까워하는마법사에게심각한손해였다.
"뭐,순순히돌아가준다면나야편하네만."
"애초에다른사람의말을들을생각조차없었잖습니까."
"빨리깨달아주니고맙군.들을가치가없었거든."
"...그대가를치르게될겁니다."
"그건나중에이야기하지.지금이마법진을그리지못하면,또하루를포기해야하거든."
파시어는돌아가는엘레노어를보지않은채,다시마법진에시선을고정했다.피로와긴장이그녀를옥죄고있었지만,입가에는은은한미소가걸렸다.
어쨌든,그녀는성공했다.
거대한마력폭탄이라고생각했던짐꾼이,자기발로고향에돌아가려한다.
최악의상황에는제국의존망을걸고그를진정시키려했고,그게불가능하다면그녀의모든것을걸고그를돌려보내려했다.
하지만,그폭탄은불발탄이었다.
"거참,사람마음이참간사해.일이이리되니재료가아까워졌어."
그녀가여기에쏟아부은마법재료도,황실의것에비하면아주조금모자랄지언정값비싼재료들이었다.
그녀의연구는20년정도늦춰질것이다.마왕퇴치를통해마법재료를든든히벌었다고생각한그녀였지만,결국손해만보게되었다.
"뭐,어쩔수없지만."
파시어는고대골렘의푸른정수를손에서으스러트리고,그가루를마법진에뿌렸다.
일주일을위해20년을소모하는비효율적인짓이지만,그래도이득과손해를비교하면이게궁극적으로더빠른길이었으니까.
모든고난에도불구하고,그녀는성공했다.용사를처리하는데성공했다.
이제와서마법이실패할가능성은없었다.모두의허가를얻었고,어중간한돌발상황은그녀의마법으로제어할수있었다.
파시어는만족스러운미소를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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