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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28화 (28/217)

〈 28화 〉 복기­10

* * *

"말도안됩니다."

이성을되찾은네르웬은,그녀의앞에선의사에게울부짖듯외쳤다.

"그딴남자를...."

"혹시,그에게서그냄새말고다른냄새는나지않았나요?"

"아닙니다.오직그것만,강렬하게..."

"그러면더이상해지네요."

장로는책상을손가락으로톡톡두드렸다.

"역겹다고생각한냄새가뭔지는알겠어요.성욕이죠.이걸일반적인것으로받아들이지않는건,엘프에게는당연한일이에요."

"당연히일반적인일이아니니까요!"

종족번식은신성한세계수의허가를받아,자신을닮은아이를낳는것으로충분하다.

아이를낳기위해그런추잡하고더러운짓을한다는것은,인간을잘이해하고있는엘프라도받아들이기어려운일이었다.

엘프가그런관계를맺을때는,보통강압적인환경아래에서일어났다.

막태어난어린엘프가숲을벗어나돌아다니다가노예상인을만난다거나,탈선하고범죄를저지르는엘프들이더강한기사나범죄자를만나는등.

지금은거의일어나지않는일이었지만,그게네르웬의거부감을줄여주지는못했다.

"보통은,다른냄새와섞여서나요.한쪽만날때도있지만...사랑의냄새와섞이면서,그정욕의냄새는더욱달콤해지죠."

"맹세코,그런냄새따위는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심각한거예요."

방금그녀가무슨말을했는지곰곰이떠올려본네르웬은,장로를죽일듯이노려보았다.

"그게사실일리없습니다."

"저도,제생각이틀렸다고믿고싶어요.하지만,이보다더정확한진단을받으려면세계수에몸을맡겨야할거예요."

"저는...세계수의대전사,그녀의가장특별한딸입니다.그렇게태어났을리가없습니다."

장로의흔들리는눈빛과,네르웬의고압적인눈빛이뒤섞였다.

"그러면,세계수로갈수는있겠어요?"

"...당장숨쉬는것도무리입니다.어떻게든,머릿속에서그냄새가필요하다고,그의앞에서굴복하라고소리치고있어요."

장로에게서흘러나오는숲의냄새가아니었다면,진작에미쳐버리고말았을것이다.

"...냄새는,보통어떤행동까지하나하나지시해주지는않아요."

"네?"

"머릿속에떠오르는생각이있다면,그걸따르세요.엘프의머릿속에신이나악마가들어오는일은극히드물어요."

장로는매끄럽게혀를굴려,그녀를안심시켜주었다.

"무슨일인지는모르겠지만,네르웬양도믿죠?엘프는가장고귀하게태어났다는것."

"...예."

"의미없는탄생은존재하지않고,우리가태어난이상우리에게의미없는충동은존재하지않아요."

"그충동이,말도안되는...!"

하지만,네르웬은결국그녀의말을따를수밖에없었다.

고귀한엘프의신분과혈통은,그녀가당장처한상황속에서어떤의미도없었으니까.

"그남작이죠?제가좀무리하면,사과할기회한번정도는잡을수있을지도몰라요.같이힘내보자고요!"

"아...."

네르웬의머릿속이세차게흔들렸다.

고귀한엘프대전사인그녀는이걸인정하지않았지만,그녀의머릿속에있는충동,눈앞에있는엘프치유사,그리고욕망에굴복하고싶은그녀의육체가거기굴복해버렸다.

"알겠...습니다."

어떻게든고개를숙이고,그가원한다면그이상이라도할것이다.

비참하지만,세계수에가서치료를받은뒤다시고귀한엘프인자신으로돌아오면된다.그때까지,잠시만비굴한행세를하는것뿐이다.

네르웬은,자신과타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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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해야해,사과해야해,사과해야해,사과해야해..."

그녀가불안할때마다마음을진정시켜주던여신은이제느껴지지않았다.셀리아는그의방근처에서주위를두리번거리며기회를노렸다.

에네렐은선한사람이다.그녀가충분히설명한다면,다시그녀를이해해줄것이다.

애초에,다른사람을오래증오할수있을정도로마음이모진사람이아니다.셀리아는본능적으로그걸알고있었다.

다시그의상냥함에의존하는자신이조금혐오스러웠지만,그의배이상잘해주면된다.성녀의직위와능력은분명쓸모가많을것이다.

하지만무슨일을하려고한들,그를만나지않으면아무것도이루어지지않는다.

그렇다고호위병을뚫고문을박차고앞으로나아갈용기는없다.

신성력을쓰면호위병한둘정도는제압할수있겠지만,그녀는힘을조절하는방법을몰랐다.

대련을해본적도없고,사사로운싸움에신성력을써본적도없다.거대하고사특한악마나괴물이나타났을때,그신성력을쏟아부어터트리는것만이그녀가할줄아는유일한공격이었다.

하지만그의방앞은조금소란스러웠다.멀리서슬쩍눈치를살피니,메이드와호위병들이모두밖에나와있는것같았다.

그리고잠시,고함소리가들렸다.그녀를향한것이아니라는것을알고있었는데도셀리아는조금주눅들었다.

하지만그녀가그뒤에본것은,더충격적인장면이었다.

'엘레노어...황녀님?'

드레스를어설프게입은엘레노어가성큼성큼걸어나오고있었다.

당연하게도,황족신분쯤되면처음드레스를입을때전속메이드가달라붙어한치의오차도없이옷을조정하고옷매무새를만진다.

하지만그녀의옷은여기저기흐트러져있었다.풀려있는리본이나살짝끌리는밑단을보면,단순히격하게움직였을때생기는옷의흐트러짐을벗어났다.

"아....아?"

성녀의어설픈생각으로도분명히알수있었다.저건옷을벗었다가다시입은흔적이다.확실했다.

"아닐거야,아닐거야,아닐거야..."

그가황녀를안을리없다.

방금도커다란목소리가들렸었다.내용관계맺고을수는없었지만남녀가관계맺고있을때그런소리를지를수있을리없다.

황녀와남작이밀회를가지던거라면,이렇게대놓고만날리없다.누가봐도거대한스캔들이될수있는사건이니,황궁정원의미로나사냥터에서만난다면모를까...

"어?"

하지만,소문이사실이라면,황녀가남작과결혼하려고든다는소문이사실이라면.

임신해도배가바로불러오지는않을테니,잠시스캔들이생겼다해도결혼으로무마하면그만이다.태어나는아이도정통성을의심할리없는둘사이의아이일테니,문제될일은없다.

"싫어,왜,대체...."

성녀는절망에빠졌다.이미그녀가권력으로그를취했다면,자신이들어갈자리는남아있지않았다.

그녀가무언가요구할자격이없다는것은알고있었다.더좋은사람이있다면,주저없이그를양보했을것이다.

외압에굴복했건분위기에휘말렸건,그녀가그를고통스럽게했다는사실은변하지않으니까.

하지만,왜하필상대가황녀였던걸까.성녀는패배감에울고또울었다.

"뭐냐.네놈.여기서왜이러고있는게냐?"

조그마한보라색머리소녀가성녀에게말을걸었다.

"파시어...님?"

성녀는급하게눈물을훔쳤다.이런모습을보여주고싶지는않았다.

"그래.보아하니네놈도용사를만나러온것같은데.맞나?"

"황녀님은,그,저리가셨어요.쭉..."

셀리아가복도반대편을가리키자,파시어는고개를절레절레저었다.

"아무것도모르고있나.됐다,그럼."

파시어는터벅터벅그의방을향해걸어갔다.

"무,무슨,마법사님까지?"

"사태가심각해지고있는것같아.내책임이크니,내가끝을내야지."

"네?"

폭풍같던시간을보낸호위병들은드디어엉거주춤자세를잡고창을집었다.하지만,금세들이닥친다음파도에정신이아득해질수밖에없었다.

"마,마법사님!"

"막을필요없다.여기서말할테니.황궁복도에서소리치는것정도로나를제지할생각은없겠지?"

파시어는숨을크게들이쉬었다.

"듣고있는것안다.에네렐!네가뭘원하는지는모르겠지만,이곳을떠나라.역소환의식을받아들이고돌아가!"

마법사는이를악물었다.딸을그리도끔찍하게아끼는황제가,원치않는결혼을서두를정도로다급하게움직이고있다.

용사의복수는이미시작되었다.그가당했던일들을전부살펴본뒤,파시어는그가복수하지않을지도모른다는헛된희망을버렸다.

이미용사는흔들리고,성녀는피폐해지고,궁사는감옥에갇혔다.거기에그의의사가깃들지않았다고생각하는것은,지나치게희망적인예측이었다.

왜그녀만멀쩡한지는모르겠지만,계속기다리고있을수는없었다.

"지,지금무슨말을하는겁니까!"

경비병이사색이되어소리쳤지만,파시어는멈출생각이없었다.

"원한다면내모든것을바쳐서라도,내일당장이라도네놈을돌려보내줄테니까."

소리치는것은상상이상으로벅찼기에,그녀의숨은헐떡거리고있었다.메이드는그녀의눈에눈물이맺힌것을보고작게미소지었다.

"나,남작님은아무도만나고싶어하지않으셨습니다!"

"됐어.내할말은다했으니,이제그만가보겠다."

하지만,모두의예상을깨고문이열렸다.

"내가왜그생각을못했을까."

문을연그는,매섭게파시어를노려보았다.신장차이때문에,파시어는그를올려다볼수밖에없었다.

"그말,사실이겠지?마법사."

마왕퇴치이후로는처음으로,그의눈에증오가아닌다른감정이깃들었다.

증오는성욕을넘어섰고,희망은그증오마저억눌렀다.

아주잠시일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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