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복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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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어는,쉬지않고진행하던연구와실험을모두멈췄다.그녀는대신,남는시간을기억을더듬는데사용했다.
쉬운일은아니었다.모험을함께한시간은꽤길었고,짧게나마그에게말을건일도적지않았으니까.
그녀가그에게어떤일을했는지는,너무뻔하고잔인해서굳이더뽑아낼정보가없었다.
모욕과멸시,명령과강요.
그의표정을제대로관찰한적은거의없었지만,마술로보존되어있는그녀의시각은생생하게그표정을담고있었다.
피로와분노,체념과한숨이그의표정에서짙어지는것을보며,그녀는과거의자신에대한혐오가차오르는것을느꼈다.
"더...넘겨야겠네."
같은잘못을반복하는자신을몇번이고지켜보는것은고통스럽고지겨운일이었다.파시어는시간을뒤로돌리고또돌렸다.
조금씩그의얼굴이밝아졌다.텅빈듯한,마모되어있던그의표정은신념과열정,친절과사랑으로천천히차오르고있었다.
감정없이비틀거리며명령을따르던그가밝은모습으로다른이들을배려한다.혹시나싸우던이들이다치지는않았을까걱정하고,전투를마치고돌아온그들을진심으로반겨준다.
시간이뒤로돌아갈수록.
"하..."
영혼없이기억을더듬던파시어는,어느밤의기억을눈앞에보게되었다.
잊고있었다.
이걸봐서는안된다.파시어는,이걸보는순간버틸수없다.
냉정을유지할수없다.세계를지키기위해,그녀의비원을이루기위해행동할수없다.그저,감정이그녀를집어삼키고그녀행세를하며움직일것이다.
하지만그녀는몸을움직일힘이없었다.수직으로뻗어오른수면이,그녀의의사와는상관없이그기억을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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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어났구나?깨우러가는수고를덜었어.칭찬해주마."
텐트에서들려오는발소리가파시어를웃게만들었다.
"제대로잔것같지도않네요.그렇게거칠게깨우면,자면서도악몽에시달린단말입니다."
짐꾼은투덜거렸지만,아직그녀를증오하고있지는않았다.
"뭐어쩌겠냐?이작은몸으로네놈을깨울수는없지않으냐.마법의힘에의존하는수밖에."
"인정합니다."
"애초에,성녀그꼬맹이가깨울때는말몇마디면일어나더니만.사람차별하는것도아니고.대체뭐냐?"
"일어나지는걸어떡합니까."
"그래.뭐,어쩔수없는일이세상에한둘이겠느냐."
마법사는그녀가앉아있던바위를탁탁두들겼다.
"앉거라.내시간이조금남아있으니,네놈이일찍일어났다고먼저들어갔다간용사가일어나서고함을칠게다."
그는쓰러지듯,털썩마법사의옆에앉았다.
"벌써졸린게냐?고개가떨어지고있다."
"막일어났으니,어쩔수없지않습니까..."
"얘기라도좀해보거라.명상이나고독은익숙한일이지만,감시는원체익숙한일이아니었으니....심심했느니라.뭐,요즘은어떻게지내느냐?"
혼자있는게지루했던건아니었다.
가만히앉아서마법에대해탐구하거나,술식에관한가설을짜보는것은마법사의일상과도같았다.
하지만,올지오지않을지도모르는미지의적을상대로마법감시망을정비하는것은파시어에게극도로귀찮고지루한일이었다.
"마법사님은다아시지않습니까.그냥,힘들고죽을것같고.지치고...내가여기왜이러고있나싶고."
"네가선택해서우릴따라오는게아니더냐.버티라는말외에는할수있는게없구나."
짐꾼은씁쓸한웃음을지었다.
"뭐,따지고보면그것도맞는말이지만....그러고보니 마법사님은 대체왜여기오신겁니까?"
"마법재료를구하고,마왕의위험을제어하기위해서지.이나이에용사파티에끼어움직이기에는급이좀맞지않지만,내소원을위해서라면얼마든지할수있지."
"소원이라니,음.제가들어도되는일입니까?"
마법사는잠시생각에빠졌다.
"비밀이될만한일도아니지만,내가먼저떠들고다니지는않는편이지.그래도너라면,꽤재미있는반응을보일것같구나.좋아.알려주마."
그녀는손을들어저하늘의별을가리켰다.
"저걸봐라."
"별이군요."
"그래,저건영원히살지.나는틈틈이하늘을올려다보지만,저게사라지는모습을보지못했어."
하늘을올려다보는마법사의모습은,마치그나이대소녀처럼해맑아보였다.
"지금내가보는별은천년뒤에도남아있을테고,아마천년전의기록에도남아있겠지."
"생각외로....낭만적이군요."
"하지만,잔혹하다고생각하지않느냐?별은영원히사는데,인간은죽는다는게."
그녀의감정이고조되며,주위의마나가흔들렸다.
"살인마가열명의사람을죽이면마을이흔들린다.사람들이공포에떤다.마왕이몇천명의사람을죽이면세계가두려워한다."
짐꾼의눈으로볼때,그녀는사람의목숨을중히여기는사람이아니었다.
하지만,그건반은맞고반은틀렸다.그녀의싸움에는이미너무나많은희생자들이있었고,지금도너무나많은사망자가나오고있기에,겨우한사람의목숨을소중히여길수없는것뿐이었다.
"그런데저시간이란놈은몇천,몇만,몇억명의사람을죽이는데도뻔뻔하게'자연의이치'라고주장하며제몫을챙기고있어."
마법사가분노할때어떤표정을짓는지,짐꾼은처음으로알게되었다.
용사가마왕군의잔혹한만행에치를떨때도,'원래그런놈들이니,어쩔수없지않겠느냐?'라며웃어넘긴그녀였다.
마왕군은물론이고,마왕도'이전력이면순리에따르는것만으로도손쉽게제거할수있다.'라고말하던그녀였다.그들은,그녀의진짜적에비하면사소한잡범에불과했다.
"나는,죽음을정복할거다."
짐꾼은잠깐말을잊은채,그녀의얼굴과굳게쥔주먹을번갈아보았다.마법사의선언을곰곰이생각하던그는,문득떠오른의문을던졌다.
"그런데,이미이루신것아닙니까?"
"뭐,나로한해서는어느정도?"
이미몇백년을살아온그녀였다.짐꾼이마법을잘아는것은아니지만,그녀가단순히노화를감추거나리치처럼뼈만남은괴물을만들어움직이고있다고생각할수는없었다.
그녀가살아온시간이엘프에비해눈에띄게긴것은아니었지만,어떤방식으로든그녀는노화를극복했다.
"하지만,나혼자영원히사는게무슨의미가있겠나?나는.이걸로모든사람을살릴거다."
"...네?"
"이몸은일종의시제품이지.비용도너무많이들고,다른사람에게적용했을때어떤부작용이생기는지도몰라."
꿈을가지고마법을배우는마법사들은많다.마법을배우는건고된일이고,마법을배울정도의신분이라면보통마법을배우지않아도살수있다.
그래서어떤절박한기적을바라기위해,불가능을실현하는마법을배우는이들은셀수없이많다.
하지만그들은포기한다.시간의장벽,능력의장벽이그들의눈앞에다가온다.
아무것도모르는일반인이'마법을배워비를내리게하고싶다.'같은말을꺼내는건쉽지만,그가마법을배우다보면그걸위해얼마나많은마력과제물,시간과노력이소모되는지깨닫게된다.
하지만그녀는포기하지않았다.어설픈이가말했다면마법이뭔지도모르는사람의망상이라치부되었을테지만,그녀는자신의영생으로그게망상이아니라는것을증명했다.
"인간은죽음보다강해.나는이걸,내마법으로증명해낼거다."
사람의죽음자체를부정할수는없다.하지만그게,인간의의지도거대한마룡도아니고,그저'살기에는그가너무오래전에태어나서'같은시시한이유여서는안된다.
그녀의마술을다시한사람에게적용하는것에,몇백년의시간이걸릴지모른다.그걸다시또다른사람에적용하는데,몇백년의시간이걸릴지모른다.
그리고그걸모든사람에게적용할수있는이론으로승화시키는데는다시몇백년이걸릴지모른다.
모든사람이받을수있을만큼효율적인공정을만들고,재료를모으는데는몇천년의시간이걸릴지모른다.
하지만그녀는포기하지않을것이다.
"그래서,감상은?"
신나게감정을쏟아부은파시어는,그가어떤창의적인저주와욕설을내뱉을지기대했다.
그녀의말을들은누구도,이계획을긍정적으로들어주지않았다.
허황되다는말은그녀가들을수있는가장귀여운비난이었다.
성직자들은신의뜻에어긋난다며게거품을물고,엘프는자연이하사한수명을거부하는거나며분노했다.
그외에도역사서에남은사악한흑마법사와그녀를비교하거나,제발자기에게만그마법을걸어달라고애걸복걸하는권력자들도있었다.
하나같이추했고,역겨웠다.
"뭐,괜찮네요.잘해보길바래요."
"그럴줄알았다!이어리석은...뭐라고?"
타지에서왔다고하며,다른이들과는다른가치관을보여주던그였다.파시어가조금의기대도품지않았다고한다면거짓말일것이다.
하지만,별거아니라는듯이툭내뱉는어조에,파시어는당연히그도그녀의꿈을비웃으리라생각해버렸다.
"멋지네요."
그는그녀의꿈을긍정해주었다.
그날,파시어는처음으로자신의이해자가나타났다고생각했다.
신이있다면,이모험을통해그를자신에게내려준거라생각했다.한번도신을믿지않은마법사였지만,지금,이순간만큼은여신의섭리를믿었다.
그렇게,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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