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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25화 (25/217)

〈 25화 〉 복기­7

* * *

지옥을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기분 나쁜 쇠창살, 그녀의 속도라면 일 초도 되지 않아 끝에서 끝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작은 공간.

쥐 사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벌레들은 마치 자기 집인 양 이 공간을 기어다닌다.

숲속에서 살아가는 벌레들은 귀엽기라도 했지만, 이곳의 벌레들은 그저 독하고 역겨운 얼굴로 그 이빨을 서로에게 들이밀고 있었다.

"흐읏, 으, 끄으으읏..."

그리고 이곳에 있는 유일한 지성체는, 그 경험과 지혜, 감정을 오롯이 절망과 고통을 느끼는 데 소모해야 했다.

"어째서, 으, 어째서..."

살갗이 파먹히는 느낌이다. 몇 번이고 손을 들어 몸을 쓸어내도, 여기에 그녀를 지켜 줄 자연은 없다.

"엘프에게,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것 같으냐..."

전부 배신자다. 그녀에게 이런 짓을 한 모두가 증오스러웠다.

협조하지 않았던 짐꾼, 그녀의 앞을 막아선 황녀, 여기까지 끌고 온 병사 모두가.

그들이 건네주는 빵은 자연에서 나온 곡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역겨웠다.

자유를 빼앗기고 한쪽 발에 무거운 족쇄를 찬 채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그녀가 처음 느껴 보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계속 생각나는 것은, 그 짐꾼의 얼굴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욕망들이 헐거워진 그녀의 정신을 유린했다. 그를 만나야 한다. 만나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 다음.

"아아아아아아아!!!"

엘프는 그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찢어질 것처럼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두렵다. 그녀의 안에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괴물이 한 입, 한 입 그녀의 몸을 뜯어먹는 것 같았다.

분명 네르웬이 생각할 리 없는 망상과 원할 리 없는 욕망들이, 어느 순간 '원래부터 그랬다는 것처럼' 그녀의 머리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

모험 중간부터, 어느 순간 거기 있었다. 비명을 지르면 잠시 모습을 감췄지만, 점점 더 심해졌다.

"...오는가."

하지만 엘프의 뾰족하고 예민한 귀가 발소리를 감지하자, 그녀의 발작은 조금 잦아들었다.

이런 곳에 갇혀 있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고귀한 존재였다. 추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곧이어 간수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엘프는 고통을 억누르면서도, 의연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잠깐, 나오셔야겠습니다."

"재판인가?"

"치료입니다."

네르웬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세계수에 직접 방문하는 것만은 못해도, 엘프 치료사의 도움을 얻으면 이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게 짐꾼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의 눈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와 연관이 있는 건 분명했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보다 조금 더 성숙해 보이는 엘프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이었으면 기껏해야 자매 정도의 나이 차이로 보이겠지만, 네르웬은 엘프가 그 정도 노화를 겪으려면 수많은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장로님."

"괜찮, 읏."

네르웬의 앞에 앉아 있던 엘프는, 말을 하다 말고 코를 막았다.

네르웬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를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지하 감옥의 환경은,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역겹고 더러웠으니까.

그저, 그런 더러운 곳에 있어서는 안 될 고귀한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런 더러운 사람' 같은 냄새를 풍기는 게 치욕스러웠을 뿐이다.

"미안해요, 네르웬. 세계수의 대전사여. 아쉽지만, 당장 당신을 여기서 빼내 줄 수는 없어요. 황제는 당신을 경계하더군요."

네르웬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한 번 고개를 숙인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축제의 흥을 깨지 않기 위한 의례일 뿐이었다.

용사 파티가 해산한 이상, 그녀는 더 이상 용사를 따라다니는 궁사가 아니다. 세계수의 의지를 행사하는 선택받은 엘프, 네르웬이다.

어떤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고개 숙일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취급을 하는 겁니까? 마왕을 퇴치한 이 나에게! 배은망덕한 놈이군요. 당장 그의 배신을 세계수에 알려서..."

정치적으로 그녀가 감금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고귀한 신분의 인간들은 이런 감옥에 처넣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메이드와 시종이 있는 독방에 넣고 출입을 통제할지언정, 이런 곳에서 고통받게 두어선 안 된다.

"당신을 이곳에 넣은 건, 엘레노어였습니다."

"그건..."

네르웬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원칙과 의무에서 한 치도 물러나려 하지 않던 그녀였으니, 엘프라고, 친구라고 특별 대우를 해 준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귀족을 습격한 다른 범죄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생활을 요구했겠지.

"하지만, 엘레노어는 네르웬을 많이 걱정했어요. 자신이 알던 네르웬이 아닌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저를 부른 것도 그녀였어요."

네르웬은 그 부끄러움 때문에, 차마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말할 수 없었다. 성직자나 마법사에게 대략적인 증상을 말해 봤을 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다소 위신이 깎이더라도, 확실히 치료받아야 했다.

"먼저, 천천히 증상을 말해 보세요."

네르웬도 알고 있는, 지혜로 이름 높은 엘프였다. 장로이자 치유사였으니, 어떻게든 그녀에게 해법을 찾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냄새요?"

"제가 알지 못하는... 냄새입니다."

장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프가 자신이 맡을 수 있는 모든 냄새를 전부 아는 건 아니었지만, 네르웬은 젊을지언정 경험 많은 엘프였다.

마법으로 타오르는 불의 냄새, 물에 젖은 쇠가 내는 냄새, 인간의 시체와 피가 내는 냄새.

어린 엘프들이 모를 만한 냄새는 많았지만, 네르웬이 겨우 그런 냄새로 고통스러워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상하네요. 그게 문제라고 해도, 지금은 아무 문제 없는 것 아닌가요?"

"분명 역겨운 냄새일 텐데, 그 냄새가 생각나서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지금도요."

네르웬은 지금 엘프 장로의 눈앞에 있는 순간까지도, 도망쳐서 짐꾼을 찾아갈 방법을 생각했다.

아니, 그건 그녀의 생각이 아니었다. 엘프의 이성과 고귀한 영혼은 그런 추잡한 욕망을 거부했지만, 그저 그 충동은 그녀의 머리 안에 있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 처럼.

"냄새라고 하니...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는 기분이네요. 감정에 집중해서 말해 볼래요?"

"여정 도중에 짐꾼 하나가... 이상한 냄새를 내곤 했습니다."

"영혼의 냄새인가요?"

네르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심해져서, 화를 낼 때도 있었습니다.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이상한 갈망이 들었습니다. 마치 한 번도 물을 마셔 보지 않은 사람이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왜일까요...."

엘프 장로의 머릿속에서 몇 천 년 전의 병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병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그 짐꾼이라는 사람, 중요한 사람이었나요?"

"아닙니다. 귀족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엘프의 고귀함에 비하면 하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네르웬은 한탄하듯이 앞에 있는 엘프를 바라보았다. 지금 고뇌하고 있는 장로의 지혜야말로, 네르웬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으니까.

"정말 모르겠는데...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네르웬.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 오해하지 말고 잘 들으세요."

"네?"

"이건 네르웬 양을 오해하거나, 비하하기에 하는 말이 아니에요."

장로는 악취로 인한 고통을 참으면서도, 어떻게든 네르웬을 똑바로 바라보려 했다.

"엘프는 병에 걸리지 않아요. 저주나 마법도, 당신의 친구들이라면 금세 알 수 있었겠죠."

"그렇다면, 대체 무슨..."

"엘프는 고귀한 목적으로 창조되지만, 꼭 필요한 기관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죠. 그렇게 목적 없이 형태만 가지고 있는 기관이 있는 것처럼, 그런 냄새도 있어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엘프 장로는 한숨을 푹 쉬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네르웬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모두 세계수에서 태어나지만,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어요. 인간과 다른 종족들이 그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거죠."

"아무리 그 방법이 자연스럽다 한들, 역겨운 방식일 뿐입니다."

네르웬은 입술을 깨물고, 혐오를 드러내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자연스럽다는 것... 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겠다는 책임감과 사랑 대신, 추잡하고 더러운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지더군요."

엘프는 몸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 세계수에게 그들의 정수를 바치면, 그 나무가 그를 통해 그녀의 아이를 만들어 준다.

단순히 우연과 욕망에 따라 생겨나는 아기들이 아니라, 신성한 나무의 축복을 받으며 사랑과 축복 속에 태어나는 아이들.

이렇게 태어난 엘프들은, 당연히 다른 종족들을 미개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탄생부터 신의 손길이 깃든 그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거부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주제를 대체 왜..."

"당신, 짐꾼을 사랑하고 있나요?"

장로는네르웬이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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