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복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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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지하실이었다. 잊을 리가 없다. 이 세계에서 내가 처음 본 곳이었으니까.
"들어갈 수는 없네. 뭐, 자네가 정말로 들어가고 싶다면야 말리지는 않겠지만, 마술사건 성직자건 여간 깐깐해서 말이지."
황제와 내 앞에는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 자체로는 어떤 마술적 의미도 담겨 있지 않지만, '이곳을 넘어설 때' 어떤 문제가 생겨도 책임질 수 없다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선 하나라도 잘못 밟았다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방 하나를 빼곡히 채운 마법진은, 군데군데 빈 자리가 있었지만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마족의 피, 군단장의 심장... 마왕성의 벽돌... 운송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대부분은 얻을 수 있었네."
"다행이군요."
"엘레노어를 만나면, 칭찬 한마디라도 해 주게. 그 아이가 직접 검을 빼 들고 나서지 않았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거야. 아직 마왕의 모든 영토가 안정화된 건 아니니까."
몬스터들은 마왕의 기운으로 강해지지만, 그를 통해 한 번 생겨난 몬스터들은 자연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 전방에서는 수많은 병사들이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 재료를 얻기 위해 투입되었다면, 또 다른 희생을 낳을 수도 있었다.
"이제 좀 쉬어도 될 텐데, 지치지도 않고 싸우고 있어."
"그건, 그녀가 저를 위해 구해 온 겁니까, 아니면 황제 폐하의 명령으로 구해 온 겁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았으니,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는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내 눈은, 저 거대한 마법진에 홀린 듯이 꽂혀 있었으니까.
"찾다, 뚫다, 보내다, 찾다, 보존, 보호, 수호, 가호, 숨기다..."
"마법사들의 문자를 읽을 줄 아나?"
"대부분은 모릅니다만, 간단한 단어라면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여기 와서 얻은 것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외우지 못하면 개지랄을 하시는 분이 한 명 있어서 말이죠."
그런 수확 하나하나에, 슬픔이 깃들어 있던 것 뿐이지.
"..."
"그렇다고 황제 폐하께 감사하다고 하기는 좀 그렇고, 아직까지는 믿는다고 해 두죠."
이곳 사회를 많이 경험해본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용사 파티와 관련된 정보는 잘 알고 있었다.
검술, 마술, 종교, 엘프.
저 마법진의 재료에서 느껴지는 흉험하고 요사스러우면서도 신성한 감각은 절대 평범한 마법을 구사하기 위한 마법진이 아니었다.
여신이 들어간 시점에서 저들이 내 뒤통수를 후려칠 가능성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저 방대한 마법진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일단 나를 귀환시키려는 의식이 준비되고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충분하네."
"하지만... 용사는, 대체 무슨 명령을 받고 날뛰는 겁니까? 이 재료를 구해 오는 것 말고요."
"..."
"이왕 만났으니, 이것도 확실히 하고 넘어가고 싶군요."
용사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명확한 원칙 하에 움직인다.
제국의 국익과 황제의 명령. 충성심과 애국심, 책임감이 그녀의 원동력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와 결혼해야 한다는 명령에 혹시나 사심이 들어 있지 않을까 의심했을 것이다.
만약에,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처음 그녀를 만난 날 그런 명령을 받았다면.
그녀의 외모와 당당함에 반해, 못 이기는 척 따랐을지도.
"왜 그녀가 나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겁니까? 분명 용사는 그걸 황제 폐하의 명령이라고 말했어요. 저를 납득시킬 수 있는 설명을 하셔야 할 겁니다."
"...그래 줬으면, 하고 있으니까."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려야 속이 시원하실 겁니까. 이름도 듣기 싫은 사람하고 결혼이라니. 정 필요하다면, 내가 가고 나서 하십시오, 가고 나서!"
발을 쾅쾅 구르고 싶었지만, 혹시나 먼지가 튀어 마법진을 건드릴까 속으로 꾹 눌러 참았다.
혹시나 침이 튈까 두려워, 마법진으로부터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황제는,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정말로 제가 그녀와 결혼하길 원하는 겁니까?"
"그러길 바라네."
황제는, 슬픔이 깊게 내리깔린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이건 대체 뭡니까? 단지 장식이었습니까? 기만을 위한?"
"이 마법진에 들어간 재료는 셀 수 없이 많고, 하나하나가 귀하네. 마족과 관련된 재료들은 마왕을 퇴치하는 동안, 자네가 누구보다 잘 견뎌 준 덕에 구할 수 있었지만... 다른 것들은 다르지."
황제는 손을 들어, 마법진의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유니콘의 피. 아무 유니콘을 잡아 죽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을 위해 자신의 사체를 온전히 바친다고 서약한 유니콘의 피여야 하네. 심지어는, 주인도 아니라 제국을 위해."
"불사조의 유해. 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단어인지. 죽지 않는 불사조가, 어떻게 영원한 죽음을 맞고 그 사체를 남기겠나. 하지만 아주 가끔 일어나는 일이고, 제국의 가장 용맹한 모험가들은 그걸 찾아오는 데 성공했지."
"용의 심장. 그저 용의 심장이라면 이런 재료보다는 흔하게 구할 수 있겠지만, 이건 좀 특별하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데다 수많은 생명을 해친 마룡이 가지고 있는, 마기가 담긴 심장이야."
하나하나, 말이 되지 않는 재료뿐이었다. 그 진위를 내가 바로바로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묘사하는 마법 재료의 특징들은 파시어의 잡담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이 수준이라면..."
"이것들 외에도 가장 값비싸고 귀한 재료들이 산더미처럼 필요하네. 몇몇 재료들은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몇몇 재료들은 그대에게 말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재료지만."
"이걸 다 구하신 겁니까?"
"황실의 비고에는 여러 물건들이 있지. 그래도, 어떻게든 재료를 구하는 데에는 성공했네. 이제 마법사와 성직자들을 훈련시켜야겠지. 자네가 얼마나 닦달하든 이 과정을 빼놓을 수는 없어."
"왜죠?"
"한 번 실패한다면 다시는 시도할 수 없을 테니까."
의심이 완전히 잦아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가 이 일에 진심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고 그는 황제이니만큼, 그가 작정하고 나를 속이려 들었다면 어쩔 수 없었지만.
"인정하겠네. 나는 자네가 남길 바라네. 엘레노어와 사랑하고, 필요하다면 제국을 이어받길 바라네."
이건 좀 의외였다. 그가 그럴 각오까지 되어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그대와 약속했지. 여신의 손길을 따라 이 땅에 내려온 이방인과. 반드시 그대를 돌려보내겠다고."
결국, 그도 책임에 짓눌려 있는 사람이었다. 나를 돌려보내지 않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 내키지 않음에도 나를 보낼 수밖에 없을 뿐이다.
"약속이란, 내가 지키고 싶다고 지키고, 지키고 싶지 않다고 지키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잠시 멍하니 서서 내 상황을 곱씹은 다음, 나는 마지막으로 마법진을 돌아보았다.
처음 왔을 때는 이상한 냄새도 나고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이라도 시계를 돌려, 저 마법진에 앉게 될 날로 넘어가고 싶었다.
호화로운 마법 재료들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졌다.
"잠깐."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렇다면 용사가 귀환을 선택할 경우, 매번 이런 재료들을 준비해야 했던 겁니까?"
몇 백 년 단위로 준비해야 하는 물건이니, 이 정도는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좀 과하게 많았다.
제국이 강대하다 한들, 쉽사리 이런 물건들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여신께서 이 재료들을 준비해 주셨다고 하더군. 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알 수는 없네."
"여신께서?"
"신의 인도로, 반짝이는 곳에 가 봤더니 여신의 선물이 담겨 있었다... 라는 기록이 있었네. 시종 열 명을 교대로 돌리며 하늘을 보게 하고 있지만, 그런 징조는 보이지 않았어."
"그걸 진짜 하고 있었습니까?"
"물론. 시종 열 명이 아니라 백 명이라도, 이 재료를 구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희생에 비하면 값싸네. 평생을 불사조의 유해'만' 찾아다니는 모험가가 있을 정도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갔다.
"그래서, 그녀를 말릴 생각은 없으십니까?"
"자네에게는 미안할 따름이지만, 나도 희망을 놓을 수는 없네. 이 나라와, 내 딸을 위한 희망."
"저는 아니군요."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계단을 올라가는 그의 걸음은 조금 벅차 보였다. 나는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보폭을 맞춰야만 했다.
"예정된 기한에, 자네를 귀환시키겠네. 그저 그동안에라도, 그녀와 대화해 주게. 그녀에게, 자네를 이해시킬 기회를..."
"애초에, 그녀도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애초에 용사가 누굴 이해하려고 시도는 하는지 모르겠군요. 게다가... 저는 용사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용사와 몇 년을 함께 보냈다. 나 나름대로는, 그녀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책임과 업무가 어떻게 그녀를 짓누르는지, 그런 억압이 어떻게 그녀의 용기와 책임감으로 발현되는지 안다.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어서, 누구보다 역겹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황제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시종을 불러 드릴까요?"
"괜찮네. 먼저 올라가게."
나는 그를 남겨둔 채, 남은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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