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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23화 (23/217)

〈 23화 〉 복기­5

* * *

황녀가 검을 뽑았다는 소문은 이미 저잣거리에 파다하게 퍼졌다. 목격자가 너무 많았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암암리에, 그 상대가 엘프. 그것도 용사 파티에 들어 있었던 엘프라는 소문도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얼굴을 가리고 다닌 것도 아니었다. 용사 파티를 전부 모아 그들의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었고,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두 엘프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건의 중심에는, 한 귀족 남자가 있었다.

황녀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갈 길을 갈 정도로 무례하고 대담하면서, 엘프의 집착과 납치 시도를 당할 만한 남자.

그런 소문들은 가공되고, 부풀려졌다. 그게 성녀의 귀에 들어올 때는, 원본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셀리아! 황녀님이랑 엘프가, 한 남자를 두고 싸운다는 얘기가 사실이야!"

"크흡!"

하얀 사제복을 땀에 적신 채, 성녀가 기도실을 빠져나왔다.

여신이 항상 그녀의 기도에 응답해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용사 파티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그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이 현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신을 탓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부족한 기도를 더 정성껏, 신실하게 드릴 뿐이었다.

신을 만나지 않으면 이 고통이, 치유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

하지만 지쳐 있는 성녀를 맞이한 건, 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진짜 몰라? 다 알면서, 비밀이라고 우리한테 말 안 해주는 거 아니야?"

"뭐, 황녀님의 비밀이라면 말 못 할 만도 하지. 난 다 이해해!"

성녀는 어지러운 정신을 부여잡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아니라, 아까 한 말... 그게..."

"너, 아직 못 들었어? 아니, 진짜 몰라?"

"성녀님은 어제부터 철야기도 들어갔잖아. 일단 좀 쉬게 내버려 둬."

졸리고 피곤했지만, 저 의문을 두고 누워 봐야 잠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성녀는 수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다시 한번, 말해주세요..."

"황녀님이랑 엘프가, 한 남자를 두고 사랑싸움을 하고 있다고..."

박력에 놀란 수녀는, 순순히 그녀가 아는 정보를 털어놓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어제 저녁에, 용사 파티에 들어갔던 엘프... 네르웬? 그 분이 사랑의 도피를 위해 남작을 납치하려 했다가, 남작을 스토킹하던 황녀님이 칼을 슝 뽑아서 구출하고, 엘프를 감옥에 넣어 버렸다던데?"

성녀의 머릿속에 말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명사는 이해할 수 있었다. 네르웬, 남작, 엘레노어.

하지만 무엇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인물과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허, 헛소문일 거예요..."

"목격자가 많다니까? 엘프가 호위병을 막 뿌리치고 남작님을 안으려 들었는데, 황녀님이 검을 뽑아서 엘프에게 겨누고, 남작은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가고..."

"말도, 안, 돼..."

헛소문이라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고, 상황 묘사가 정밀했다. 애초에, 이런 헛소문이 퍼질 분위기도 아니었다.

황녀의 인기가 부족하거나, 엘프에 대한 나쁜 소문이 돌던 분위기도 아니다.

남작과 결혼한다는 정보는 꽤 많은 곳에 풀려 있었지만, 상류층 사이에서나 알음알음 풀려 있던 정보였다.

시내를 돌아다니는 평민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싸움이라고 단정 지을 정도라면,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건 확실하다.

"두, 두 분 다, 그럴 분이 아니세요..."

남작이 누구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레오드린 가문의 후손이었다는 건, 모험이 끝나고 나서 그를 만나려 할 때에서야 알 수 있었지만.

애초에, 그가 아니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만난 남자 따위는 없었으니까.

엘레노어는 그를 짐 나르는 노새처럼 대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나쁠 수도 있었다. 짐 나르는 노새에게 기사나 할 법한 훈련을 죽어라 시키는 미친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까.

네르웬은 그를 볼 때마다 코를 부여잡았다. 시도 때도 없이 인간,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었던 그를 비하하고, 매도했다.

여신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셀리아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언행이었지만, 몇 번 말려 봐도 소용없었다.

어쩌면, 그건 그녀의 우월함을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성녀, 황녀, 마법사 중 누구라도, 엘프라는 종족 하나로 깔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요..."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그들이 연애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까지 그걸 숨기기 위해 노력한 거라면.

"에이, 그러면 두 사람이 남자를 두고 싸울 이유가 뭐겠어요?"

"그건... 그런데..."

나는. 왜?

그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얼마나 고된 일을 시키더라도, 항상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 준 그였다. 어느 순간, 성녀는 그의 허락을 구하는 것을 잊은 채, 공허한 감사 인사만 건넸다.

오만이었다. 자신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도 사람이고, 그의 헌신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녀의 불찰이었고, 그녀의 부족함이었다. 그걸 부인할 수는 없었다.

이 전쟁만 끝나면, 다시 다 같이 웃어줄 거라 생각했다. 그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건 단지 마왕군과의 전투로 인한 스트레스일 거라 여겼고, 그래서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거라 믿었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지 않는, 모험을 막 떠나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가 농담 섞인 말을 건네고, 엘레노어가 그를 존중하고, 마법사가 흥미 어린 시선으로 그의 생각을 들어 주고, 네르웬이 그의 입에 채소를 물려 주고, 자신이 웃음을 터트리는 그때로.

"성녀님, 괜찮으세요?"

"기, 기도실에 다녀와야겠어요."

성녀는 머릿속을 휩쓰는 충격을 견디며, 비틀비틀 그녀가 있었던 곳으로 돌아갔다.

"몸 상해요, 방금까지 거기 있었으면서..."

"잠깐이면, 아주 잠깐만 있으면 돼요."

하지만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다. 용사는 그녀를 싫어했다. 대화할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처절하게 셀리아를 밀어냈다.

슬펐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걸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여겼다.

신께 기도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채로, 그에게 사과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누군가 죽지 않았으니까,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관계라 여겼다.

하지만.

기도실에 들어온 성녀는, 아무것도 없는 빈방,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무릎 꿇었다. 그 앞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녀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의심을 눌러 두고.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것은, 증오의 감정이었으니까.

"여신님..."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왜, 그 사람들이 짐꾼 씨... 에네렐 씨를 차지하게 하시나요?"

바보 같을 정도로 선한 성녀다.

사람을 매정하게 대하는 것을, 친절과 웃음으로 대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워하던 그녀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대립하게 된다면, 그녀는 원하지 않더라도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와 만나고 돌아오면 말없이 눈으로 욕하며 코를 부여잡는 네르웬.

그녀가 신성력을 쓸 때마다 '그게 꼭 지금 필요한 일인지 생각해 봐라.'라고 말하던 파시어.

그리고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할 때마다, 성녀를 '사람 좋기만 한 어린애' 취급하는 엘레노어까지.

성녀는 미움받는 게 싫었고, 상대가 이단이나 마족이 아닌 이상 화내는 것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도 싫었다.

더 인내심 깊은 사람은 그였다. 더 화내지 않는 사람은 그였고, 수적으로 불리한 쪽도 그였다.

결국, 성녀는 편한 선택을 했다.

"그 사람들만 없었어도..."

성녀는 아무런 가책 없이, 그를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용사 파티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처럼 헌신적인 이를 만났다면, 어떻게든 교단으로 끌어왔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가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며칠 전에 일어났던 사건 이후로, 성녀는 시도 때도 없이 기도실에 틀어박혀 기도했다. 정신을 잃을 만큼 고행에 빠졌다.

그의 눈앞에서 하는 사과가 아니라면 의미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에, 그녀는 기도했다. 만나지 말라는 그의 말을 철석같이 받아들이고서, 그저 그의 마음을 온화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저는 이렇게 있는데..."

만약에.

이게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말 만약에 다른 용사 파티원들이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후회할 일도, 슬퍼할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그 사람들은..."

만일, 엘레노어와 네르웬이 그 사람을 원하고 있던 거라면, 다른 사람이 그에게 접근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 그랬던 걸지도.

말도 안 되는 망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엘프는 정말 그를 싫어했고, 황녀는 진심으로 그를 멸시했다.

그런 짓을 했다간, 다른 여자를 쳐내는 건 성공해도 정작 자신이 그를 쟁취하지 못할 것이다.

"아."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마음을 얻을 생각이 없었다면?

세계수는 성지고, 거기에 인간이 허가 없이 발을 디디는 것은 전쟁이다. 네르웬이 어떻게든 그를 납치해 세계수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제국은 겨우 남작 하나와 엘프와의 전쟁을 저울질해야 한다.

엘레노어는 황녀다. 다소간의 '의견 차이' 정도는, 권력으로 짓누를 수 있다.

호색에 눈이 먼 황제가 유부녀를 건드려도 쉽사리 처벌하기 어려운데, 남작을 배우자로 들이는 정도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당장 힘도 황녀가 더 강하고...

성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신성한 공간에, 추잡한 분노와 질투가 섞여 들어갔다.

"먼저 좋아했던 사람은, 나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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