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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21화 (21/217)

〈 21화 〉 복기­3

* * *

"이게, 정말 의미가 있는 짓인가..."

양팔에 빵 바구니를 들고 따라오는 메이드를 보자,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당연히 의미가 있죠!"

메이드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따라 걸어왔다.

"자원봉사라니, 나는 할 만큼 한 일이라고."

어떻게 보면, 지금 내가 멍하니 여기 남아 있는 것조차 일종의 자원봉사 아닐까.

"그거랑은 달라요! 어디까지나, 즐기기 위한 일이라고요!"

"즐겨?"

"세상에 숭고한 일은 많지만, 꼭 숭고한 희생의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만 수혜를 누리는 건 아니죠."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효율성이라는 게 있는 법이랍니다."

궁사를 만난 일 때문인지, 내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린 아이들을 만나기에 바람직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귀족이나 왕족에 대한 봉사는 정말 가성비가 안 좋죠. 힘들게 봉사를 해 줘도, 그 사람들은 그걸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감사 인사 하나 없이 갈 길 가기 마련이니까요."

"그거, 메이드가 해도 되는 말 맞아?"

"어, 어쨌든! 작은 도움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목숨을 걸고 도와줘도 '내가 꼭 이 사람을 위해 이런 희생을 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보통 메이드라고 하면 봉사, 헌신의 상징 같은 존재 아닐까.

뭐, 실제로는 그들도 사람이니,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거나, 과로에 지쳐 욕을 내뱉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고아원인가..."

"요새 계속 우울해 보이셨는데, 귀여운 애들을 보고 좀 치유받는 시간을 가지자고요!"

“...”

건전해 보이는 의도는 아니었다.

­너희들은 부모가 버린 자식들이니, 이런 작은 도움에도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너희 같은 사람을 신경 써 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당연히 나에게 잘 보이고 내 기부에 감사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하는 봉사가, 의미 있는 봉사가 되기는 할까.

"영 순수해 보이지는 않는데."

"행동! 행동이 중요한 거랍니다!"

"그렇게 치면, 이거 애초에 내 돈도 아니잖아."

내 이름으로 황실에서 돈을 얼마나 끌어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메이드는 내가 고아원에 기부할 물건마저 요령 좋게 사 두었다.

"황제가 남작님께 '필요한 모든 것'을 전부 내어주라고 말씀하셨다고요? 이건 남작님의 공을 인정하는 거니까, 결국 남작님이 기부하는 게 맞죠!"

메이드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기묘한 상징이 세워진 낡은 건물이었다.

"여기가 고아원이야?"

"정확히는, 에리니스의 신전이에요."

"애들 정서에 그리 좋진 않을 것 같은데."

딱 보기에 성당 하면 느껴지는, 아름다운 광채나 불빛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잔혹하게 느껴지는, 작은 조형물들이 마당에 줄지어 서 있었다.

창을 꼬나쥔 신이 사람을 찌르고 있다거나, 불타오르는 무언가를 형상화한 것 같은 조각상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갈수록, 조각상의 형체는 점점 뭉그러졌다.

그 끝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괴하고 형체를 알 수 없는 조각상도 놓여 있었다.

"이건 대체 뭐야?"

경험상, 성물은 명확하게 천사, 여신을 만들거나 아예 형이상학적인 형태가 좋았다.

단순히 명확한 조각상이 보기 좋다는 말이 아니다.

사악한 신을 모시는 자들은, 직접 그 신의 형체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걸 조각하는 것마저 두려워한다.

게다가 대놓고 악신의 조각상이 만들어져 있으면 이단 심문관이 왔을 때 변명할 여지가 없으니, 최대한 애매하고 흉측한, 형태를 특정할 수 없는 신상을 만들곤 했다.

메이드의 표정이 바뀌지 않은 것을 보면, 이곳은 원래부터 그런 조각이 있었던 곳임이 틀림없었다. 사건에 휘말리는 건 질색인데...

"여기 다니는 애들이 직접 조각한 여신상이에요! 예쁘죠?"

"음, 그럴 수 있지."

그 말을 듣고 다시 조형물을 보니, 어렴풋이 인간 형체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조각상의 재질도 단단한 돌을 깎아서 만든 게 아닌, 근처에 돌아다니는 진흙을 손으로 뭉쳐 만든 것 같았다.

"자, 차례대로 줄지어 나오세요. 무례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수염이 새하얗게 나 있는 노인이 어린 아이들을 이끌고 나왔다.

"감사합니다!"

그냥, 아이들이었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고개를 숙여 내게 감사를 표하는 건,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내게 고맙다고 해 주지 않았다. 그 고난을 견디고 버티며,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인내를 거쳐 왔는데도.

그런데, 내 것도 아닌 이 빵 바구니 몇 개로도, 이 아이들은 내게 고맙다고 해 준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작님. 안에 들어와서 잠시 대화라도 나누시죠."

"...알겠습니다."

물론, 그게 이들의 본심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어린아이가 제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걸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아이가 성숙한 것이다.

원장, 혹은 이곳의 사제로 보이는 노인은 꽤 완고해 보였다. 그라면, 제멋대로인 아이들도 훈육할 수 있을 만큼 인내력 있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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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대한 아이들이 배곯지 않게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저 나잇대 애들은 항상 배고프니까요."

"커야 할 나이죠..."

"기아로 인한 원한은 뼈에 새겨지니까요."

단출한 방이었지만, 그래도 낡은 성화가 몇 점 벽에 달려 있었다.

"저 붉은 머리...를 하신 분이 이곳에서 섬기는 신인가요?"

노인은 허허 웃으며 경애 담긴 눈으로 성화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복수의 여신, 에리니스. 우리가 섬기는 신입니다."

"용케 교회가 여길 놔두는군요."

"그놈들이야 그들이 섬기는 '여신'이 아니면 전부 사교 취급하기 마련이지만, 제국은 다르지요. 신을 섬기며 선한 일을 한다면, 놔두는 편입니다."

"그래서 고아원을 운영하시는 건가요?"

복수의 여신과 고아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았다.

"아닙니다. 제국이 허용하든 허용하지 않든, 복수를 원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에리니스를 섬기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는 가볍게 팔을 걷어, 누군가의 이름을 새긴 거칠고 투박한 문신을 보여 주었다. 그 위에는 X표가 새겨져 있었다.

"저는 에리니스께 귀의하여, 복수를 마쳤습니다. 남은 삶은 일어날 원한을 하나라도 더 줄여, 그분의 지친 몸을 쉬게 해 드리는 게 제 사명이지요."

"여신 교단은 이런 곳을 운영하지 않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더 크고, 좋은 시설로 고아원을 운영하지요. 하지만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쫓아낸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창관이나 범죄자 놈들이 데려갈 테니, 기회를 봐서 데려오곤 하지요."

노인은 붉은 차를 건넸다. 비릿하면서도, 잠을 깨우고 눈을 뜨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복수를 원하는 자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푸른 피일 가능성보다는, 길바닥에 돌아다닐 가능성이 더 크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복수의 여신을 섬기는 사제가 고아원을 운영하는 게 딱히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이번 마왕은 굉장히 빨리 퇴치당한 편이라... 한시름 놓았습니다. 1년만 더 오래 걸렸어도, 식량은 식량이거니와 공간마저 부족했을 테니까요.“

"그건, 도움이 된 건가요..."

"물론입니다!"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내가 했던 일들이 그저 무의미한 짓은 아니었으니까. 그 인내, 그 고난은 결국 이름 모를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다른 모든 사람이 틀렸어도, 나는 틀리지 않았다.

메이드의 말이 옳았다.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기분을 풀기에 영 나쁜 장소는 아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개운해진 기분으로 일어나 나가려는 나를, 노인이 불러세웠다.

"벌써 가십니까?"

"...더 해야 할 일이 있나요?"

"원하시는 바가 있어, 이 늙은이를 찾으신 것 아니셨습니까?"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를 보고 있지 않은데도 그의 매서운 시선이 느껴진다. 친절하고 완고한 노인이 아니라, 복수의 신의 사제가 된 그가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아니요. 그냥, 빵이 남아서..."

"마음속에 슬픔과 한을 품고 계십니다."

"복수... 뭐, 굳이 꼭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고, 되도록 안 하게 됐으면 좋겠네요."

나는, 그 빌어먹을 용사 파티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

용사 파티를 정말 치가 떨릴 만큼 싫어하지만, 내가 지금 당장 그녀들에게 해를 입히면 황제와도 척을 져야 한다. 귀환이 늦어진다.

하다못해 당장 황녀나 마법사의 배에 칼침을 꽂아 넣는다 해도, 나는 그 순간 동안 그녀의 얼굴과 몸을 보고 있어야 한다. 그마저도 싫다.

그 증오도, 나보다 중요하진 않다.

"현명하십니다. 엘리니스께서도 '원한을 만들지 않는 것이 으뜸이며, 복수를 이루는 것은 차악'이라 하셨지요."

복수의 여신의 사제는,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복수를 포기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남은 자신의 삶을 고통 속에 빠트리는 일입니다."

그럴 리가 없다. 애초에, 내가 그들을 그렇게 오래 기억할 리 없다.

"용서는 숭고한 일이지만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타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굳은 신념으로 단단하게 빚어진 복수의 조각상이, 입을 열어 내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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