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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20화 (20/217)

〈 20화 〉 복기­2

* * *

"말했지만, 허락할 수 없네."

"말도 안 됩니다. 명가의 딸이 다쳤어요. 전투 중도 아니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황제는 금색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앞에 선 신하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서류를 점검했다.

"그가 레오드린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혹여나..."

황제의 시선이 살짝 올라왔다. 오랫동안 그를 모셔 온 신하였지만, 그의 뭉툭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시선을 마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남아 있는 레오드린 가문의 여자들을 통해 검증이라도 거쳐야 합니다. 그가 대체 무슨 증표를 가지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나마나 도둑질이라도 했을..."

황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지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자네는 알고 있어야겠지. 그들의 말이 옳네. 그는 레오드린이 아니야."

"황제 폐하를 속인 겁니까?"

"아니, 내가 다른 모두를 속인 거지."

황제의 눈가에는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로, 회한과 고뇌가 틈틈이 들어차 있었다.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그때는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과 희생양을 만들었다.

"황녀 폐하의 결혼은... 진심이십니까?"

"나는 진심일세. 하지만, 다른 이들이 진심일지는 모르겠군."

서류를 책상 한쪽으로 밀어 넣은 황제는, 아직 의문에 빠져 있는 신하를 내보냈다.

"...사람들은 준비했나?"

"예. 인선 선발이 끝났고, 누구의 입에서도 나와서는 안 될 비밀이라는 것도 알렸습니다."

"부족함이 없게 하게.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일이야."

시종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어디론가 달려나가 황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비틀거리며 다시 집무실로 돌아왔다.

황제는, 오늘따라 그의 몸이 자신의 근육으로 지탱하기에는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황좌에 오르기 전에는, 오직 권력만을 추구했다. 황제에 오른 다음에는, 오직 제국과 신민들을 위해서만 행동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하고 있는 행동들은, 비이성과 불합리의 결정체였다.

"결국 모두에게 죄를 질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한 사람은 구원받아야지."

서류를 쥔 황제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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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교회에서 마법 공부를 해도 되는 거예요?"

"아, 이건 비밀인데!"

간식을 전해주려 다른 수녀에 방에 들어온 셀리아는, 비틀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 금기사항이에요. 여신님이 들으시면 크게 노할... 어, 언제부터 마탑에 들어가려고..."

"지, 진짜 아니에요! 필요해서! 필요해서!"

하지만 그 수녀는 급하게 마법책들을 덮으면서도, 필사적으로 해명하려 했다.

"뭐, 뭔데요?"

"이건 진짜 비밀인데..."

하지만, 성녀라면 지금 당장 인정할 만한 설명을 듣지 않았을 때, 바로 교단으로 쪼르르 달려가 보고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그 수녀가 죄를 인정받을 일은 없었지만, 수사 과정에서 기밀 사안이 드러난다는 건 큰 문제였다.

차라리, 지금 그녀에게만 비밀을 공유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황실에서, 성직자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마도 신성 주문이요? 그걸 쓸 줄은 몰랐는데."

"이, 이해해 주시는군요!"

드물지만, 마법사와 성직자의 힘이 동시에 필요한 주문도 있었다. 쉽사리 사용될 일은 없는 거대한 주문이었지만.

"그거, 저도 전에 몇 번 해본 적 있어요!"

"마, 마술은 대체 어떻게 배우셨어요? 저는 머리 깨질 것 같아서 못 하겠던데..."

그리고 그런 주문들은, 성직자가 마법을 이해해야 하고, 마법사가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

당연히 세상은 신의 섭리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성직자들은, 그에게 '간청'하는 대신, 휘적거리는 손 움직임이나 붓으로 그린 문양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한다 해도, 문제였다. 최소한 마술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기초 중 기초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 그건 왜요?"

하지만 성녀는 입맛을 쓱 다시더니, 살짝 시선을 피했다.

"도저히 모르겠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용어도 너무 어렵고..."

성직자가 배워야 할 것은 아주 기초적인 개념밖에 없었지만, 마술사가 다루는 지식의 양은 아득할 정도로 많다. 그 기초라고 한들, 단숨에 배울 수 있는 양은 아니다.

"마법사 놈들은 대체 뭐가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건지 모르겠어요. 평소에 이런 걸 하고 있는 사람들이..."

"신앙심 없는 사람들이 신앙심을 배워야 하는 거에요. 힘들지 않을 리 없죠."

반대로, 주문에 '감정'을 담으라는 것은 마법사들에게 어처구니없는 주문이었다.

마법사들에게 마법은 궁극적으로 목적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도구였다.

'의심 없이 믿었을 때' 당연히 더 강하고 거대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성직자와는 달랐다.

주문은 주문이다. 감정이 체내 마나 유동과 마력 성질에 변화를 줄 수는 있어도, 감정만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 이미 완성된 마법 주문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고 결과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은 마법사들에게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마치 '칼끝에 사랑을 담아 찌르면 아프지 않습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성녀님은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그게..."

조금 어리숙해 보이는 데다, 기도와 성당 외에는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성녀다.

용사 파티에 차출되어 마왕을 퇴치하고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마치 아이를 물가에 내놓는 것만큼 걱정할 때도 있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돼요!"

"아."

혹시나 했지만, 역시 이 순수한 성녀가 그런 지식들을 배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압도적인 신성력으로 부족분을 메꾼 것이다. 비현실적인 양의 신성력이 필요했겠지만, 성녀라면 해낼 만도 했다.

수녀는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책을 손에 들었다. 그 순간, 방금 닫힌 문이 바로 열렸다.

큰 키, 아름답고 고고한 얼굴, 뾰족한 귀를 가진 금발의 엘프가 들어왔다.

"할 말이 있다. 셀리아."

/////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듯, 눈은 퀭했고 동작은 둔했다. 마치 바람처럼 빠르고 경쾌한 몸놀림을 보여 주던 모험 중의 그녀와는 너무 달랐다.

분명히 나를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나를 보지 못했다는 것처럼 지나친다.

잠시 내 시선이 사라졌다 싶으면 바짝 나를 따라오면서도, 시선이 마주치는 것은 극구 피하려 한다.

궁사다. 분명, 그녀가 따라오고 있었다.

"잠깐, 이쪽으로 돌아갑시다."

"나, 남작님? 거긴 길이 아닌..."

"잠시만요."

일부러 으슥한 골목까지 걸어온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알고 있었나."

애초에, 내 감으로 추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의 상태는,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불안정해 보였다.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제게 누명을 씌우러 오신 겁니까?"

"...아니."

적의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이 한 번 번뜩였다. 하지만, 나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잠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네가 이 짓을 사주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 믿겠다."

"그럼 졸졸 따라오지 마시고 서로 갈 길 가시죠."

하지만 그녀는, 내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고개를 숙였다. 그 네르웬이.

"부탁, 하겠다... 부디, 조금만 더 가까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신분으로만 따지면 황녀가 더 높겠지만, 그녀는 그다지 '재수 없는' 느낌으로 권위를 따지는 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를 지탱하는 것은 그 신분이 아니라 그 힘과 노력, 의지와 기술이었다.

제국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황녀라면, 오히려 고개를 숙이는 일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미칠 것 같다... 죽을 것 같아..."

하지만 궁사는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기술이 선천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며,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세계수의 대전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고 강하도록 '선택된' 것이 그녀라고 믿었다.

같은 엘프들도 아랫사람 취급하는 그녀가, 인간을 동등하게 볼 리 없었다.

인간이 바퀴벌레에게 사과하는 것, 그 이상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는 일이 그녀에게 어떤 각오와 생각을 거쳐 나오는 결정이든,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원인을 찾아야 한다. 세계수로 돌아가면, 분명 현자들이 답을 알려 줄 테니."

"그럼 가시지요."

"그, 몸이... 떨어지질 않는다. 움직일 수가 없어, 그... 으읏...."

요컨대, 나를 데리고 세계수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걸 들어 줘야 할 의무가 없었다.

"저는 따라가지 않을 겁니다."

"거부할 셈이냐! 주제도 모르는 인간 놈이!"

정신을 잃고 있다. 평소라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명백히 인간과는 다른 종류의 지혜와 능력을 과시했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뻔히 보이는 아첨으로 나처럼 작은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처지였다.

"지금 남작님을 협박하시는 겁니까!"

은발의 메이드가 함성을 지르며 끼어들었다.

"당신, 용사 파티의 일원이라고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무섭지도 않은 지, 그녀는 당당하게 궁수를 꾸짖었다.

"한 번만 더 남작님의 눈앞에 나타난다면, 정식으로 이 일을 황제 폐하께 고발하겠습니다!"

"시녀 따위가, 대화에 끼어들지 마라!"

궁수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화를 냈다.

하지만 그건 몰락한 여왕이 왕성까지 들이닥친 시위대에게 내지르는 호통처럼,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고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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