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거절9
* * *
겉보기에는, 그저 어린아이 같은 외모다.
보랏빛 머리칼이 눈에 띄지만, 그것만으로 그녀를 위험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녀를 마주친 순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무슨 짓입니까?"
"소란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손을 썼지."
개구리는 두려운 듯 연신 울음소리를 내며, 애처롭게 폴짝거리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었습니까?"
"가문 정도는. 하지만, 그다지 중요한 사람은 아니야."
겨우 진정되던 심장이, 그녀를 보고 더 크게 뛰었다.
"자, 자네 거야. 갤러리가 많지 않다는 건 아쉽지만..."
"제가 이걸 실수로 밟기라도 하면 어쩌실 겁니까?"
"실수라니? 당연히, 밟기 좋은 크기로 만들어 준 것 아니겠나?"
마법사에게, 모든 것은 환원 가능한 자산이다.
용암이 이글거리는 곳에서 불의 기운을 잔뜩 담은 돌이든, 유니콘의 피와 용에 심장이든.
그리고, 사람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영구적인 마법은 아닐세. 밟으면, 원래 크기로 돌아오겠지. 밟힌 상태 그대로."
나는 잠시 그녀를 노려보았다.
"황실은 이걸 '이해할 수 없는 사고'라고 여길 테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하고 나를 증오하게 될 걸세. 자네에게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을 거야."
사람을 개구리로 만드는 마법이, 얼마나 귀찮고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지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녀다.
그런 마법사가 굳이 사람을 개구리로 만들어 죽이려 한다면, 그건 이게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 할 법한 일이다.
"감촉이 맘에 들지 않나? 하긴, 확실히 양서류를 밟는 감촉은 끔찍하지. 그녀에 등에 찍힌 신발 자국 따위를 신경 쓰지는 않을 테니, 더러운 일은 내가 대신해도 상관없다만?"
"그만하시죠."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바로, 움찔거리던 발을 멈췄다.
저 존중의 천분의 일이라도 여정 중에 보여 줬다면, 이렇게 화를 내지는 않았을 텐데.
"절 위한 거라고요."
"말했잖나. 선물이라고."
"대체 왜?"
그녀가 곧이곧대로 설명해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 정보를 넘겨주는 게 자신에게 유리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말을 돌리고 넘어갈 것이다.
"그건... 여기서 말하기는 조금 어렵군. 잠시, 시간을 내주겠나? 아니, 개구리는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지. 자네의 발을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었군."
그녀는 손짓 한 번으로 내 호위병을 재웠다. 황궁 안에서도 으슥한 곳인지라, 아직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그걸 감안해도 이 공백은 이상하다. 분명 저 마법사가 무언가 개입했을 것이다.
인식 방해를 위한 마법 따위는, 수백 년을 살아온 그녀가 손쉽게 해낼 수 있는 마법일 테니까.
"먼저, 사과하고 싶네."
"다시 묻겠습니다. 왜죠?"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어른에게 혼나는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을 굴리고 있었다.
"내가 어리석었네. 이제야 알았어. 진짜 용사가 누구인지를."
이 말을 믿어야 할까. 이것마저도, 그녀의 기만 아닐까.
겉으로 보기에는 꽤 진정성 있어 보이는 사과였지만, 그녀의 겉모습을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이제 와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정말 그녀가 몰랐다면,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낌새를 알아챈 순간,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이미 그녀의 귀에 들어갔을 테지.
"지금부터 바꿀 수 있는 건 있지! 자네의 영광과 업적을 빼앗아 간 이들 아닌가. 내가 도와주면, 그걸 되찾게 해 줄 수 있어."
공수표다. 그녀가 마법사로서 비인간적인 성취를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달성하려면 제국 전체와 맞서 싸워야 할 테니까.
"믿을 수 없군요."
"뭘 하면 믿을 수 있겠나? 전부는 아니더라도, 자네가 명령하기만 하면 나는 여기 있는 황족 중 대다수를 죽일 수 있어."
마법사의 손에 흉흉한 기운이 맴돌았다.
"아쉽게도, 자네가 가장 증오하고 있을 황녀나, 자네를 기만하려던 황제를 죽일 수는 없겠지만."
"동료 아니었습니까?"
"용사의 분노, 용사의 복수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나. 나는 그저, 자네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길 바라네."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용사와 마법사는 꽤 친해 보였는데, 그녀에게는 그것마저 '버릴 수 있는 패'였던 모양이다.
"네르웬은 어떤가? 그 년이 네게 한 짓은... 많이 비이성적이었지. 시간을 충분히 주기만 한다면, 그녀를 자네가 원하는 대로 가공할 수 있을 걸세. 그 귀쟁이가 세계수로 복귀하지만 않는다면..."
"..."
"성녀는 또 어떤가. 되도 않는 이상론, 그 여신의 계집들 말고는 아무도 지키지 못할 규칙들을 늘어놓고, 그에 대한 부담은 다 자네에게 떠넘기지 않았나."
"다 알고 있었군요."
"미안하네.... 하지만, 그때 나는 성녀와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그렇다면, 당신은요?"
정적이 흘렀다. 마치 그녀가 내 편이었던 것처럼 시원스레 뒷담화를 늘어놓던 그녀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입을 다물었다.
"일단, 저거나 좀 푸시죠."
그녀의 몸이 약간 떨렸다.
마법을 푸는 것은, 마법을 거는 것 이상으로 많은 능력과 자원을 소모한다.
그녀를 개구리로 만드는 것만 해도, 차원 어딘가에 숨어 있을 그녀의 재료 저장고가 텅텅 비어갈 사건임이 틀림없었다.
"그, 한 달만 있으면 풀리는... 아, 알았네! 자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하지.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
마법사는 개구리를 바닥에 떨어트린 다음, 주문을 외웠다. 개구리가 있던 곳에는 어느새 상처 입은 여기사가 서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살려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울부짖으며, 마법사의 다리를 붙잡고 빌었다. 마법사는 거칠게 다리를 움직여 그녀를 차 버렸다.
"이,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나?"
"보내죠."
"그, 그러면 귀족들이 자네를 적대하게 될 걸세.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겠나?"
"아, 아닙니다! 다시는, 다시는 레오드린 남작님을 공격하지 않겠습니다! 불리한 증언도 하지 않겠습니다! 사, 살려, 살려주세요!"
저 여자가 내 구타를 맞으며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은, 내가 그녀를 죽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가문과 위상을 생각하면, 귀족이 귀족을 죽이는 일이 쉽사리 일어날 리 없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가 이미 자신을 개구리로 만드는 마법을 써 버린 순간, 모든 상식은 깨진다. 남아 있는 건, 그저 누군가 발을 헛디디는 것만으로 온몸이 으깨져 죽을 수 있는 그녀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여기사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필사적으로 그 자리를 피했다.
"이, 이미 적대할 생각인가? 용서까지는 바라지 않겠지만, 적어도 죄의 대가를 스스로 치를 기회 정도는..."
"알아서들 치르시죠."
"모, 모든 걸 줄 수 있네! 자네도 봐서 알겠지만, 능률을 포기한 마법사는 그 어떤 불가능한 일도 할 수 있어."
그녀는 필사적으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녀의 말처럼, 재료와 능력의 제약이 없는 마술사들이 할 수 없는 일은 거의 없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네! 그저 속죄의 의미로, 자네의 도구가 되어 살고 싶은 것뿐이야."
마법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지만, 지금의 행동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능률과 효율을 내팽개치고, 잔혹성에만 집중한 지금의 마술도 그렇다.
황실을 감싸는 것 같지만, 테러를 일으키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는다. 마치, 차라리 직접 황실과 적대하지 말고 자신을 써서 황실에게 복수하라는 것처럼.
"그건, 제가 용사이기 때문 아닙니까."
"당연하지! 진짜 용사, 여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가 여기 있었는데, 내 눈에 어두워서 알아채지 못했어! 미안하네. 제발 용서를..."
이마저도 기만일 수 있었다. 용사의 힘이라면 이미 황녀가 충분히 사용하고 있지만, 마법사가 그녀를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제가 용사가 아니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갔을 일이군요."
그녀의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면, 더 할 말이 없습니다. 되도록, 저를 용사로 부르지도 말아 주십시오. 당신이 부르는 제 이름은 짐꾼 아니었습니까?"
"그건, 정말 몰랐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저 마법사가 나를 두려워할 이유를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 하지만, 그게 뭔지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뭐든 간에,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일 테니까.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관심이 없다..
"그럼, 개인적인 부탁을 하나 드릴 테니, 혹시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래도 같이 마왕 퇴치를 했던... 짐꾼과 용사 파티원 간의 정이라고 생각해서."
"무, 물론이네. 얼마든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당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누군가를 해쳐야 할 필요 없고, 추가로 마법 재료를 사용해야 할 필요도 없어요."
"뭐든 할 수 있네. 시켜만 준다면..."
나는, 조금 허리를 숙여 파시어의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 보았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치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나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잘못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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