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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4화 (14/217)

〈 14화 〉 거절­5

* * *

무슨 일이 더 벌일지도 모른다는 내 예상과 달리, 궁사는 내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상처를 보여주며 나를 공개적으로 욕하지도 않았고, 치료비나 배상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쉽게 넘어갈 사람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먼저 그녀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런 여자를 신경 쓸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많은 상황도 아니었다.

"자, 드세요! 딸기 케이크에요!"

"그건 좀 물리는데."

은발의 메이드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포크로 하얀 케이크를 살짝 찍은 그녀는, 내 쪽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자, 아 하세요. 아!"

"꼭 이걸 해야 합니까?"

영 떨떠름했지만,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계속 그녀가 기다리게 두는 것도 미안했다.

"아."

입을 살짝 벌려 그녀가 준 케이크를 삼켰다. 달콤한 설탕과 부드러운 크림이 혀를 타고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맛있어요? 맛있어요? 달콤하죠? 사랑스럽죠? 막 껴안아 주고 싶죠?"

"먹고 보니 생각난 건데, 이건 대체 어디서 구한 거예요?"

처음에는 메이드 스스로 준비한 선물인 줄 알았지만, 음식의 수준이 너무 높았다.

놀랍게도, 이 세계의 음식들은, 정확히는 이 황궁의 음식들은 지구에 비해 그리 밀리지 않았다.

내 취향에는 맞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깊은 풍미나 부드러운 향기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을 맷돌 갈듯이 갈아서 만드는 혀의 쾌락이었다. 메이드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수준의 디저트가 아니었다.

"이곳에는 황제 폐하의 식사를 담당하는 요리사도 있지만, 다른 황가의 일원들이나 귀빈을 위해 요리하는 요리사도 있다고요!"

"아니, 그런 분을 막 굴려도 돼요?"

내가 그런 걸 몰라서 질문했던 건 아니다.

"막 굴리다니요! 레오드린 남작님도 엄연히 왕궁의 귀빈이라고요! 그런 분께 디저트를 바치는 게, 막 굴리는 일이 될 리 없잖아요?"

"어쨌든, 시켰잖아요..."

"에이, 맛있게 드셨으면 된 거 아니에요?"

메이드는 내 쪽으로 몸을 기댔다. 순간 느껴지는 보송보송한 향기에,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황궁의 요리사들은 요리가 좋아서 여기 온 사람이라고요. 여기가 아니면 이런 재료로 언제 요리를 해 보겠어요?"

"뭐,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손이 쉬고 계시네요! 한스 씨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디저트를 무시하는 건 아니겠죠?"

맛은 있었다. 맛은 있었는데, 손이 가지 않았다.

"음, 단 음식은 싫어하시나요?"

"그냥... 딸기 때문에."

"딸기요? 딸기가 왜요?"

"그러니까..."

그러고 보면, 내가 짐꾼이라는 것 자체는 비밀이었다.

조금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나 내가 투입되는 것을 지켜본 병사라면 알 수는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레오드린 가문의 후계자와 이름 없는

'짐꾼'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 중의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내가 그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했던 말을 취소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 알고 있어요!"

"어떻게?"

"저는 남작님을 모시는 메이드니. 당연한 거죠!"

굳이 따지자면 나를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황실에서 손님 대접을 하는 메이드라고 봐야 할 것 같지만, 저 자신만만한 미소를 굳이 깨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 모험 중에는 먹을 걸 구하지 못할 때도 있어서, 가끔 굶을 때도 있었거든. 멀쩡한 땅이 갑자기 황무지로 변한 적도 있으니까..."

"그래서요?"

다른 사람들처럼, 메이드에게도 그 모험은 존재만으로도 궁금증을 자극하는 일이었나 보다.

"별일은 아니야. 그냥,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적이 있었거든. 마족이 점령하고 있던 숲에 들어갔었는데, 마기 때문에 다른 동식물들은 먹을 수도 없는 상태였어. 그런데 거기 사는 산딸기 종이 뭐 신성하다거나... 해서 나는 그것만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

"저런!"

"뭐, 다른 사람들은 요령껏 어떻게 다른 음식도 잘 먹긴 했지만, 나는 따라 할 수 없었거든."

그래도, 싫었다. 좋아할 수는 없었다.

"용사의 힘이나 성녀의 기도로 위를 마기로부터 보호한다던가... 뭐 그런 식으로."

신나는 식사를 즐기는 파티원들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굶는 기분이 영 좋진 않았다.

불합리한 일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 세계가 원래 불합리하고 마왕 퇴치가 불합리한 일이 될 테니까.

적어도 그녀들은 각각 어떤 방법으로 음식을 먹고 있는지 내게 설명해 주었고, 나는 그걸 받아들였다, 전부, 내게는 쓸 수 없는 능력이었다.

적어도 기준을 알 수 없는 궁사의 '냄새' 문제나, 기준이 저 하늘 높이 아득하게 떠 있는 용사의 시험보다는 나았다.

그냥, 나 혼자 기분 나쁘고 나 혼자 배고플 뿐이다.

"뭐 그래서, 어쩌다가 산딸기 군집을 찾아서, 배터지게 먹었었지."

"그러셨겠죠...

기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메이드는 어딘가 수상했다. 눈빛이 조금 이상하다.

"아무튼 뭐, 확실히 그 신성한 산딸기에는 마기가 스며들지 않았는지, 먹고 바로 죽지는 않았어. 좀 질리도록 먹었을 뿐이지."

"어, 그러면 좋아하게 되는 거 아닌가요?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음식을 먹게 되는 거니까... 막 기억이..."

"그게, 그때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려 버렸어.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게 먹었거든."

"아, 그래서... 딸기를 싫어하시는 거였군요. 이건 오산이에요."

메이드는 하얀 케이크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영 불만스러워 보였다.

"으, 완벽한 계획이었는데... 대체 뭐가 문제지."

"애초에,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줄 필요가 있어?"

내 말을 들은 메이드는 잠시 움찔하더니,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내 무릎을 만졌다.

"글쎄에에요. 남작님은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메이드는 찬란한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가볍게 통통 튀었다. 마치 발레라도 하는 것처럼, 과장되고 경쾌한 몸놀림이었다.

"저는 사실! 평범한 메이드가 아니랍니다!"

"...그래."

나는 아무 반응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녀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라고 해 봐야 특별할 건 없을 것이다.

스케일이 작다면 그럭저럭 귀족처럼 보이는 나를 유혹해서 출세하려는 여자일 것이고, 기껏해야 다른 왕국이나 귀족, 혹은 황제의 스파이겠지.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저는 사실... 남작님을 위해 저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온! 남작님만을 위한 메이드였답니다!"

"황궁 소속이잖아."

"이건 사실 위장 신분에 불과하다고요! 명령만 내리신다면, 바로 본업으로 복귀하겠습니다!"

신나게 내지르는 그녀의 에너지를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피로 섞인 웃음을 흘리며, 신나게 떠드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뭐, 고맙지만... 의미는 없어. 난 곧 떠날 사람이니까."

"아, 그렇죠. 떠나실... 생각이신 거죠."

메이드는 조금 침울해졌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가 나한테 잘못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 전체가 싫었다.

그래도, 조금 아쉽긴 했다. 웃는 척일 것 같긴 하지만, 저 메이드 같은 미녀가 내게 반응해 준다는 건 재미있었으니까.

그래도, 여기서 남은 삶을 살 정도로 기대되는 일은 아니었다.

/////

마법사는, 모순적인 일을 계속해내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권세를 부릴 만한 성격이 아니다. 신분 상승을 위해 마법을 배우는 이들도 종종 있었지만, 그들에게 마법은 비효율적이다.

그 노력으로 무를 수련하면 이름난 기사가 될 수 있고, 재무를 배우면 관료로 밥벌이 정도는 어렵잖게 할 수 있다. 신께 기도하면 명예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바닥이 없었다. 정말 마법에 모든 것을 다 바친 이라 해도, 티끌만큼의 보상도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고위 마법사들은 무언가에 미친 채, 수련하고 또 수련한 이들이지, 정치에 능하거나 사교술에 능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그들의 마술이 만들어 주었고, 사교술은 왕실의 지원을 따내기 위해 다시 피나는 노력을 하고 배워야 했다.

하지만 역시, 그들의 전문 분야는 아니었다.

그들은 가장 사교성 없는 사람 중 특별히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뽑아 조직을 만듦지만, 그 조직의 수장은 수도 없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 모순이었다.

파시어는 수직으로 꺾여 있는 거대한 우물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여러 사건들을 보고 있었다.

사과다. 일단, 사과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먹은 다음에도 그녀가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이 사과를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불운하게도, 그녀는 그에 대해 어떤 잘못을 했든, 그걸 모른다. 기억할 수 없다.

기억할 필요가 없는 가치를 가진 사람이 상대라면, 주저 없이 그 기억을 지워버린다. 애초에, 무언가 생각을 하며 그런 이들을 대하지도 않는다.

굳이 이런 보조 장치까지 끌어오며 그녀의 기억을 반추해야 할 정도로, 그녀는 몰려 있었다.

"잘못한 일... 제발 없었으면 좋겠는데..."

짐꾼이 용사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펄쩍 놀란 그녀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안일한 가설 또한 파시어의 머릿속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애초에 그가 화가 나 있다면. 진작에 무슨 일이 터져도 터졌을 것이다. 괜히 파시어가 사과한답시고 그를 자극했다가,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너무 작았다. 그녀의 기억에 비친 그의 모습은 너무 작아서, 화난 표정인지 슬픈 표정인지 우울한 표정인지도 알 수 없었다.

파시어는 밤새도록 수직 우물 앞에 서서 그를 관찰했다. 알아낸 정보는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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