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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3화 (13/217)

〈 13화 〉 거절­4

* * *

마왕이 쓰려졌다고 해도, 각지에 흩어진 모든 마물이 한순간에 쓰러지는 것은 아니다.

제국 곳곳에 스며든 마물 군단은 각자 날뛰고 있었다.

"지원군은 대체 언제 오는 거냐!"

"원군 요청은 보내 놨지만... 아마 제국에서도 가용 병력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 마왕 처치 직후의 공백기는, 지방을 지키는 군단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일단 마왕 퇴치가 끝났으니, 소집령은 해제된다. 남부에서 징집된 병사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점이 될 만한 도시나 성에는 순간적으로 과도하게 많은 병력이 배치된다. 마왕군과의 전면전을 전제로 들어온 병력이니, 거기에 병사들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이름 없는 지방의 성은, 이중고를 겪어야만 한다.

후방 교란을 목적으로, 혹은 단순히 통제되지 않은 몬스터 군단들은 전략적 가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많은 곳으로 들어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약탈과 학살을 즐길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왕과의 전면전에 병사를 차출하지 않을 수도 없다. 국경에 투입된 병사를 빼기도 전에, 혼란스러운 몬스터의 습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도망치지 마! 자리를 지켜!"

하지만,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한둘은 큰 오크의 곤봉 앞에서 장창을 들고 서 있을 만한 병사가 많을 리 없었다.

만일 그런 병사가 있다 한들, 주위의 병사들이 다 도망친다면 홀로 쓸쓸히 남겨져 쓰러질 뿐이다.

능력과 용기를 겸비할 정도로 잘 훈련된 병사는, 이미 차출되어 격전지로 떠났다.

"주, 죽고 싶지 않아!"

"도망쳐! 이대로는 개죽음이야!"

마왕이 살아 있다면, 그나마 병사들의 사기가 유지될 것이다. 제국 어디로 도망치든, 심지어 외국으로 도망쳐 봐야 마왕이 승리하는 순간 다 의미 없는 짓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어깨에 달려 있는 책임이 다르다. 마왕은 죽었고, 이런 자잘한 영지 몇몇을 점령하는 것 외에 그들이 거둘 수 있는 전과는 없었다.

어떻게든 신분을 숨기고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하기만 하면, 목숨이나마 부지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당장 옆에 서 있던 병사들이 괴물의 곤봉에 몸이 터져 나가고 산 채로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병사들은 차라리 그게 낫다고 여겼다.

"전열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일단 후퇴를..."

"젠장, 원군을 보내 준다고 했단 말이다! 만약에 도망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우린 전부 끝이야!"

이 영지를 지배하는 귀족의 성은, 빈말로도 성이라 하기 초라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성이 없는 괴물이 상대라면 간단한 나무 목책과 낮은 돌담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는, 후퇴를 권하는 부관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달랐다.

이 평야에서 원군과 함께 싸우기로 약속했다.

섣불리 이 지역을 포기한다면, 멀리서 지켜보던 원군이 그대로 발을 돌려 '더 급한 곳'으로 이동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원군을 통솔하는 귀족이 그보다 높은 이라면, 책임을 면하기 힘들었다.

"중앙으로 뭉쳐! 어떻게든 시간만 끌어!"

전장을 통솔하던 영주의 옆에, 급하게 달려온 병사 하나가 무릎을 꿇었다.

"워, 원군이 오고 있습니다! 후퇴하라고 하십니다!"

"뭐라고?"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제국에서 보낸 원군이라고 해 봐야, 조금 더 훈련된 병사에 불과할 테니까.

이미 싸우고 있는 영지의 병사들이 목숨을 바쳐 창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그들이라고 가볍게 괴물들을 처리할 수는 없다.

"아, 알겠다. 전부 후퇴! 전열을 유지하고, 내가 있는 곳까지만 후퇴해라! 여기서 다시 전열을 만들어!"

영주가 있는 곳은, 피와 살이 튀기는 전장으로부터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여기까지 도망치는 것은, 반쯤 후퇴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영주도, 그 말을 믿어야 할 정도로 몰려 있었다. 정 안 되면, 그 전령의 목을 바쳐서라도 희생을 최소화해야 했다.

"그 말, 사실이겠지?"

전령은 정말 쉬지 않고 달려온 듯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웃음이 조금 걸려 있었다.

"사실입니다. 이겼습니다. 우리가 이겼어요!"

"그게 무슨..."

그 순간, 언덕 너머로 거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말이다. 여기저기 근육이 박힌, 거대하고 강인한 군마가 먼저 머리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하얀 갑옷이 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 저건!"

잠시 말을 잃은 영주였지만, 그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다.

"원군이 왔다! 조금만 더 버텨! 포기하지 마라!"

부관과 옆에 있던 병사들이 그의 말을 따라 소리쳤다.

지겹도록 듣던 '원군이 올 것이다.'가 아닌 '원군이 왔다.'라는 함성을 듣자, 병사들의 사기가 조금 올라갔다.

그리고 그 갑옷을 탄 이들은, 서서히 대형을 잡더니, 섬광과 같은 속도로 몬스터 군단에게 달려들었다.

"가자!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황제 폐하를 위하여! 제국을 위하여!"

그리고 그 선두에는,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빛이 있었다.

그녀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광은, 다른 기사들이 검에 담은 마력과는 조금 달랐다.

영롱하고 따뜻하게 빛나는 저 힘은, 분명 용사의 힘이었다.

"와아아아아!!!"

기사들이 따라 함성을 질렀다. 말은 거대한 오크를 상대로도 겁먹지 않고, 그 주인을 믿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선두에 선 황녀의 무위는, 마치 무신과 같았다. 검은 일반적인 롱소드 크기의 무기였지만, 거기서 두 뼘 정도 늘어난 용사의 힘은 거기 닿는 모든 것들을 쓰러트렸다.

"크어우욱! 크위이익!"

몬스터 군단은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오크 하나하나의 팔과 다리, 머리통이 기사의 검에 베였다.

그들이 만들고 있던 어설픈 대열, 아니 군집은 기사의 돌격에 의해 완전히 반으로 갈라졌다.

"저게... 무슨."

원래 이곳을 지키고 있던 병사 중 가장 강한 기사도, 저 백금 기사단의 말석에조차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만한 격차가 있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아, 수도승에 버금가는 가혹하고 고된 훈련을 거쳐 만들어지는 황녀의 기사단이다.

본래라면 이런, 이름 없는 영지의 방어전 따위에 동원될 기사단이 아니었다.

"황녀님이다! 용사님이다! 지원군이 왔어!"

병사들이 다시 창을 굳게 잡았다. 말발굽이 땅을 울리는 고동은, 전장의 어떤 북소리보다 의미 있는 진동이었다.

"싸워라!"

용사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적진을 돌파하면서도, 함성을 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황녀의 얼굴을 본 사람은 적었지만, 그녀는 궁궐 안에 꼭꼭 숨어 자신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기사단과 훈련을 함께했으며, 용사로서 몇몇 동료와 함께 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황실에 대해 아주 약간의 관심만 있더라도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이끄는 백금 기사단의 영롱한 광채와, 용사의 빛, 그 아름다운 얼굴만 있어도 그녀가 누군지 알아채기엔 충분했으니까.

"기사들의 진로를 막지 마라! 저기, 멈춰! 윌리엄 경의 부대는 뒤로 조금 더 빠져라! 더 들어가면, 말발굽에 부딪힐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넋을 잃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영지의 방어군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저 아름다운 기사들을 방해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당장 도망치는 병사들을 어떻게 붙잡아 두어야 할지 고민하던 것을, 용맹하고 쓸데없이 전진하는 병사들을 통제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즐거웠지만.

"제국을 위하여!"

"""제국을 위하여!"""

황녀의 함성이 울려 퍼질 때마다, 기사단이 한 몸처럼 그 함성에 화답했다. 병사 중 몇몇도 그에 따라 함성을 지르고는, 용맹하게 오크를 찔렀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마물들은 죄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거나, 피를 흘리는 주검이 되어 쓰러졌다.

"가, 감사합니다! 황녀님!"

"공적을 뺏은 건 미안합니다. 올바른 지휘였습니다. 제가 아니었더라도 승리를 거둘 수 있었겠지요."

"아, 아닙니다!"

열세인 상황에서 영지의 군대가 잘 싸운 건 맞았지만, 전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사기가 조금만 더 빨리 떨어져 아예 진형이 붕괴되거나, 몬스터 군단의 증원이 어디선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승리한다 해도, 저희 부대는 거의 전멸했겠지요. 모든 영지민들이 황녀 전하께 목숨을 빚졌습니다."

엘레노어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좋습니다. 영주란 모름지기, 아랫사람들을 아껴야 하는 법.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이런 시골 영지의 귀족이라 해 봐야, 권세랄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황녀의 눈에 든다면,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영지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황녀님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영지민을 아끼는 것처럼, 저 역시 기사. 민간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황녀로서 제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영주는 가슴 속의 무언가가 쿵쿵대는 것을 느꼈다.

의무에 대해 입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마왕 퇴치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제국을 위해 직접 기사단을 끌고 나올 정도로 충실한 사람은 더 드물었다.

"변변찮지만, 잠시 쉬어가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기사들이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잔당을 토벌해야 합니다. 저 규모의 오크로도 작은 마을이나 행상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말에 내리지도 않은 채, 다른 기사단을 독려하고 떠나가 버렸다.

지친 병사들은 전장의 시체를 치우지도 않고, 멀어지는 황녀와 기사단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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