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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2화 (12/217)

〈 12화 〉 거절­3

* * *

"드, 드디어 만났네요!"

다른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정숙한 도서관에 성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조용히 하세요."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시끄러웠죠?"

궁사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녀가 예전에 내게 했던 것처럼 폭력이나 폭언을 일삼지는 않았지만, 그저 내게 얼굴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짜증 났다.

"제발 만나지 말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성녀처럼 순수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나 같은 남자에게 거절당하면 저런 반응을 보였을 테니까.

얼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신성력은 그 순수한 신앙심을 증명한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성녀의 마음은 분명 순수했다.

"그, 그래도, 화해하고 싶어요..."

하지만 저 순수한 마음이란 건, 경우에 따라 순수한 증오나 순수한 무관심이 될 수도 있었다.

"제게 사과해야 할 일이 있으신가요?"

"아, 음, 그게..."

그녀의 사과도, 순수하다. 단순하고 일차원적이다.

성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그저 내가 화를 내고 있으니 어련히 자신이 잘못했겠거니 하면서 자신을 굽혀주는 것 뿐이었다.

"화해는, 무언가 서로 화가 난 일이 있을 때 하는 것 아닌가요?"

"그, 그러니까..."

"성녀님이 제게 화난 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저도..."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성녀의 마음속에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녀에게 당한 일도 적지 않았다.

"저도..."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당한 일들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녀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성녀님께 화난 일은 없으니까요."

성녀는 그래도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것처럼, 두 주먹을 굳게 쥐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면, 같이 저녁이라도 한 번..."

"그건 싫습니다."

"왜, 왜요? 조금 전에 괜찮다고..."

"싫습니다."

그렇다고 한들, 그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 나를 주먹으로 후려쳤을 때, '나를 때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구나...'하고 생각하는 것과 그를 볼 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다르다.

"일은 끝났잖습니까. 또 만나야 할 이유가 있나요?"

애초에, 나와 함께 식사하고 싶다면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이유가 없어도..."

"성녀님."

여기서 더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감정을 쓰고 싶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그녀들에게 복수하고 싶지도 않았고, 마지막 기억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억지로 화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저는 당신이 싫습니다. 당신은 제게, 만나서 즐거울 정도로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네... 네?"

구경꾼들의 눈길이 흥미진진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싫다고요."

"저, 저를 좋아하시는 것... 아니었나요."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자, 잘 해주셔서... 챙겨주고, 따뜻한 말도 해 주고..."

성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행동을 전부 가증스러운 연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성녀와 같이 지내온 시간과 그녀의 행동을 생각하면, 이건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처음부터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싫어졌습니다."

"그, 그러면 왜 싫어하는지라도 알려 주세요!"

사실은, 그냥 내가 여기서 일어난 다음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된다.

하지만, 그러면 성녀는 몇 번이고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도서관에서 자리를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지금 그녀를 돌려보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제가 싫어하는 점을, 고칠 생각이신가요?"

"물론이죠!"

평생, 누군가에게 미움 당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의 눈이다.

"이전에, 그 숲 마을 기억나요? 폭포 근처에 있던."

"네... 네!"

"그때, 저를 시켜서 성물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셨죠."

"기억나요!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헤헤... 그거, 잘 보관해서 지금 대성당에 보관해 놨어요. 한 번 같이 보실래요?"

"당장 마왕 침공으로 고통받고 있는 마을 주민들을 동원해서, 어디 있을지도 모를 성물을 찾아 달라고."

내 말이 좋게 들리지 않는지, 성녀의 목소리가 서서히 작아졌다.

"중요한 일이었어요..."

"압니다. 중요한 일이었겠죠."

하지만, 원망받는 것은 나였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 온몸이 시린 한겨울에 강을 뒤지도록 지시한 것은 나였다.

사냥꾼의 도움 없이 약초를 캐던 여자가 늑대에게 물려 사경을 헤맬 때, 아버지의 분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나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말을 꺼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성녀는 말만 꺼내고 쉬고 있으라 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파티 전체가 쉬고 있는데, 그들을 동원한 나까지 편한 곳에서 감시하듯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불 보듯 뻔했으니까.

거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마법사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라며 협박을 할 수밖에 없는 것도 나였다.

"그건 700년 전에 성 마르올리가 사용한 향로에요. 교황청에서도 꼭 그걸 찾아오라는 명령이 있었다고요."

"압니다. 이해할 수 있어요."

억울한 목소리로 항변하는 성녀를, 나는 그저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필요했잖아요. 그게 없었으면 다음에 만날 마족 대장군을 억제할 수 없었을 거예요. 모든 모험이 실패하고, 그 마을에 있는 사람이 죽을 수도..."

"알아요."

그녀의 판단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용사 파티 안에서는, 비이성적인 사람은 없었다.

기껏해야 궁사의 그 냄새 혐오 정도가 비이성적인 행동이었지만, 그녀도 선은 지켰다.

꼭 필요한 상황이면 다섯 명이 같은 텐트에서 자는 것도 거절하지 않았다.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는 나를 안고 뛰는 것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용사도, 마법사도, 성녀도 그랬다. 그들의 행동은 대부분 모험에 필요한 일이었다.

"그 사람들도 다 신의 자녀들이에요. 용사의 모험, 마왕의 퇴치는 전부 여신님의 뜻이라고요. 분명 기쁘게 받아들였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과 기쁨보다 신의 의사를 우위에 두지는 않는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성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게 화가 난 것 같았지만, 그녀가 틀렸다거나 내 말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그녀는 '친절하게 성물을 찾아다 준' 마을 사람들을 폄하하지 말라는 뜻으로 나에게 화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신의 의사를 거부하는 것은 불충한 짓이다. 하지만, 그들은 충실하게 용사 파티의 모험을 도왔고, 행동으로 신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내가 여기서 '그 사람들은 신을 따르는 일에 기뻐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녀의 시각에서 볼 때 마을 사람들에 대한 무례다.

"직접 만나 보셨습니까?"

"그들의 마음을 아는 것은 오직 여신님뿐입니다. 짐꾼님은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나 순수하다.

당연히, 그 사람들이 여신을 도와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이 기뻐하리라 믿는다. 그 사람들은 충실하고 선한 여신의 자녀들이니까.

그래도 이 성물 같은 경우는, 그나마 조금 나은 경우였다.

적어도 파티 안에서는 성물을 찾아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고, 여정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은, 모든 파티원들이 동의하는 일이 아닐 때도 있었다.

신의 뜻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녀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럴 때마다 성녀의 의견을 마법사에게 알려 주며 욕을 들어먹고, 마법사의 의견을 성녀에게 알려 주며 악마 취급을 받았다.

둘 중 어느 쪽도,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그녀와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주위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역시, 화해하기는 힘들었네요."

그렇다고 내가, 그녀보고 '당장 불신자가 돼라.'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녀의 직위나 현실적 어려움은 둘째 치더라도, 그녀에게 여신이란 삶의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일 테니까.

만약에 그녀가 미쳐서 내 말에 따라 준다 해도, 성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그녀를 책임질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로 끝내는 게 좋다. 그녀에게 화를 낼 필요도, 사과를 받을 이유도 없다.

"네? 아, 아!"

그제서야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떠올린 그녀는, 작은 입을 틀어막았다.

"서로, 힘쓰지 말죠. 저는 어차피 갈 사람이니까."

"그, 영지로 돌아가시는 거예요? 귀족인 줄은 몰랐는데... 역시, 일이 많으시겠죠?"

"...할 일은 없지만, 뭐. 비슷합니다."

"당장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꼭..."

"만날 수는 없을 겁니다."

성녀는 아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녀의 진심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를 기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녀가 정말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평화로운 상태'를 신이 원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그림을 만들려고 하는 것 뿐일까.

성녀는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갔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봐야 한다는 생각에,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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