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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1화 (11/217)

〈 11화 〉 거절­2

* * *

"에, 엘프?"

"엘프가 남작님께는 대체 왜..."

경비병들은 당황한 듯 내 앞에 섰다. 뒤를 돌아 궁사의 얼굴을 보자, 머릿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할 만큼 했다. 그녀에게 화를 낸 것도 아니고, 그녀를 만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진작에 세계수로 떠났어야 할 사람이 굳이 여기 남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좋은 의도가 있다고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가자."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이제 남남이다. 마왕 퇴치를 위해 그녀를 참아 줘야 할 필요는 없다.

"기, 기다려. 기다려..."

목소리가 이상했다. 마치 마약에 중독이라도 된 사람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그녀를 걱정해 줄 의리는 없었다.

"뒤, 뒤에..."

"신경 쓰지 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져야 할 책임도 없었다.

"잠시만..."

하지만 궁사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계속 내게로 다가오려 했다.

이상하다. 어떻게 생각해도, 그녀답지 않았다.

나를 죽이려 했다면, 이렇게 번거롭게 얼굴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내 냄새를 느끼는 것조차 싫어하는 궁사였으니, 높은 곳에서 화살을 쏘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기다려! 이, 이걸 풀어라!"

언제나, 파티 중에서 가장 가벼워 보이던 그녀였다.

특유의 그 사람을 내리깔아 보던 눈매 때문에, 언제나 그녀는 그렇게 살 것만 같았다.

다른 파티원을 볼 때 조금 눈매가 누그러지긴 했지만, 그것도 친절과 존중은 거리가 멀었다.

굳이 따지자면, 인간이 파리를 볼 때 느끼는 시선에서, 애완용 장수풍뎅이를 볼 때 느끼는 감각일까.

"흐읏, 읏, 으으..."

하지만, 궁사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지었다.

경멸도, 분노도 아닌 고통스러운 패배감과 두려움이 섞인 일그러진 얼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네가 한 짓임을 알고 있다! 부인할 셈이냐, 이 비겁한 놈이!"

흐트러진 숨과 떨리는 몸짓 사이로, 그녀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녀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은 순식간에 커져 '내가 왜 이런 억지를 받아 줘야 하지?'하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 더 이상 그녀를 존중할 수 없었다.

"지랄하지 마!"

생각해 보면, 그녀는 거의 처음 만난 그날부터 나를 싫어했다.

기껏해야 '싫어하기는 하지만 그걸 드러내지는 않는' 수준에서, '거리낌 없이 내게 명령하고 혐오를 드러내는' 수준으로 변화했을 뿐이다.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여자, 나에게 뭔가 누명을 씌울 생각이다.

처음에는, 마약 중독이나 독을 의심했다. 아무리 봐도 그녀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세계의 엘프는, 미약 따위에는 걸리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독은, 엘프에게 있어 조금 톡 쏘는 물질일 뿐이었다.

평소에도 냄새가 난다며 내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목욕을 강요하는 그녀였다.

만일 그녀에게 진짜 문제가 생겼다고 치고, 가능성은 없지만 미약 같은 물건에 중독되었다 치더라도, 굳이 수도에 있는 많은 남자 중 나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나를 싫어했으니까.

지금까지는 다른 파티원들의 눈을 경계하느라 나를 죽이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너무 하찮고 가치 없어 보여서 죽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만 그녀가 나를 정말 증오해서, 엘프의 기준으로 생명보다 중요한 명예까지 빼앗으려 든다면 모든 행동이 설명된다.

"대체 뭘 더 원하는 거야!"

나를 때리고 멸시했던 거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그 냄새라는 건, 나를 그렇게까지 혐오하게 만들 정도로 커다란 요인이었던 걸까.

"어, 어쩔 수 없단 말이다! 그저 한 번 만 냄새를..."

"그 좆같은 냄새를 또 와서 맡아야 할 정도로, 내가 그렇게 싫냐고!"

"그게 아니다! 그게..."

나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나를 싫어하는 궁사에게 등을 보여주는 것은 내키지 않았지만, 설마 내 등에 화살을 꽂을 정도로 정신 나간 상태는 아닐 거라 믿었다.

호위병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잠시 얼어붙었지만, 내가 저 멀리 달려나가자 결국 나를 따라왔다.

그녀는 잠시 거기 멈춰, 주저앉았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던 건 아니었지만, 엘프가 저런 추태를 보인다는 건 이슈가 될 만한 일이었다.

괜히 나왔다.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면, 정말 내 방 안에 틀어박혀야...

"남작님, 피하세요!"

"뭐?"

가볍게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큭!"

너무 가벼운 발소리라서, 마치 사람의 소리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궁사는 그 민첩한 몸놀림으로, 꽤 벌려진 거리를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리고 마치 내게 안길 것처럼, 내 몸에 덮쳐 들어왔다.

"흡!"

너무 빨라서, 그게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도 없었다. 그저, 내 몸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전투에서는, 후방이라고 안전하란 법은 없었다. 처음에는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다가 싸움이 끝날 때쯤 얼굴을 비췄지만, 제국을 넘어서는 순간 그건 불가능했다.

오히려 나 혼자 떨어져 안전지대에 머무는 것보다, 거친 싸움 한복판이더라도 용사 파티 근처에 있는 게 안전했다.

그렇게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또 넘겼던 나는, 몇몇 상황에는 머리가 반응하기 전에 몸이 반응했다.

"꺄으읏!"

"뭐, 뭐야!"

주먹이었다. 보통 이럴 때는 다리가 먼저 반응하는데, 너무 놀라 그저 팔을 뻗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한계였다.

"대, 대형 갖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 광경을 눈으로 따라오지 못한 호위병들은, 다급하게 창을 그녀에게 가져다 대고 경계했다.

"으읏...."

궁사기 입고 있던 귀한 옷은 땅바닥에 널부러져 흙이 잔뜩 묻어 있었고,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 주먹에 느껴진 부드러운 감촉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처럼, 그녀는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체, 체포해야..."

"됐어. 가자."

그녀를 봐 주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엘프를 체포하는 것이 길고 어려울 뿐이다.

엘프들은 오만할지언정, 선한 일을 한다는 통념이 깔려 있었다. 궁사에게 당한 나는, 그 '선한 일'의 기준이 뭔지 진지하게 묻고 싶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녀가 나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내가 궁사를 경비병에게 넘긴다면 일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

왜 엘프가 나를 공격하려 들었는지, 어떻게 내가 저 엘프를 때릴 수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을 게 분명했다,

나는 그러면 저 역겨운 생물과 몇 번을 더 같은 자리에 앉아 서로의 진술을 대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녀를 다시 한번 만날 바에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좋다.

"짐꾼, 짐..."

궁사는 필사적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지만, 우스꽝스럽게도 내 이름 하나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들에게 이름을 알려준 적이 있었던가.

아마 알려줘도 잊어버렸을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내 이름을 알려주고 싶지 않다.

잠깐 쓸 이름은 이곳 방식의 이름으로 족하다.

"가자."

"...네!"

나는 잠시 궁사를 노려본 후, 다시 그녀를 버려둔 채 떠나갔다.

/////

네르웬은 길바닥에 버려진 채, 그저 개처럼 킁킁대며 몸에 남은 그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짓을..."

그래도, 한바탕 그의 냄새를 맡고 나자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다시 그 냄새가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엘프로서의 마음가짐이 다시 몸을 통제했다.

그녀의 가는 손으로 하얀 옷을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묻어 있던 흙이 마술같이 쓸려나갔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남은 붉은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네르웬은 손가락으로 그 붉은 자국을 찍어, 거기 묻은 그의 냄새와 열기를 느꼈다.

그나마,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아직도 그녀의 머리는 어지러웠지만, 일 초도 쉬지 않고 그를 찾아 헤매던 때에 비하면 적어도 머리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하지만 냉철해진 이성은, 그녀가 암울한 미래를 더 선명하고 맑게 볼 수 있게 해 줄 뿐이었다.

차라리 짐꾼이 복수를 원하거나, 음흉한 목적을 내뱉어 거래를 시도했다면 좀 나았을 것이다.

짐꾼 따위가 비열한 수를 써 봐야 얼마든지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그녀의 상태조차 겉으로 보이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훨씬 더 불안한 일이었다.

당장 그녀의 몸은 갉아 먹히고 있는데, 그 이유조차 모른다.

저주라면 누구에게 걸린 저주인지 알아내야 한다. 음모라면 그걸 사주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 처단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그저,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였다. 거대한 폭력이었다.

한평생 물속에 살던 물고기가, 어느 순간 '너는 사실 아가미가 없다.'라는 말을 듣고 목 안에 물이 한가득 들어가면 이런 느낌일까.

두려웠다.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삶이었다.

"이렇게 평생... 그 짐꾼을 따라다니며 살아야 하는 건가?"

모자라다. 오늘 잠깐 맡은 냄새로는 한참 부족하다.

그녀가 엘프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그를 붙잡고 자비를 구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르웬은 구슬픈 울음을 흘렸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 고통과 공포는 그녀가 감당하기에 너무 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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