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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9화 (9/217)

〈 9화 〉 복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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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에게 어떤 의전을 행해야 할지는, 모든 사제들의 논제 중 하나였다.

성국에서는, 아무리 성녀라고 해도 '신의 사랑을 받은 여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교단의 모든 신도들은 신의 사랑을 받고, 단지 그걸 남들보다 더 많이 받을 뿐인 평신도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일부 신도, 특히 평민들은 성녀가 교황보다 더 큰 의전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제의 직위와 직급 따위, 인간이 만들어낸 계층에 불과하다는 논리였다. 신도의 가치는 신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람이 신과 신도들에게 얼마나 큰 헌신을 했는지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의 성녀는 이런 알력 다툼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시절부터 성녀가 되었고, 그녀를 뒷받침해 줄 세력도 없었다.

그리고 교황은, 그녀에게 충분히 높은 지위를 내렸다. 엄연히 교황의 밑이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아득히 높은 지위를.

어떤 이유에서건, 신도들은 그녀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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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는 아장아장 걸어 거대한 성당 앞에 섰다. 피로가 가득 담긴 눈으로 그 앞을 청소하던 젊은 수녀는, 성녀를 보자마자 빗자루를 내던지고 소리쳤다.

"어서 오세요!"

"반가워요!"

성녀도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내던 수녀들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녀에게 가족 같은 사람들이었다.

"얘들아, 모여! 빨리! 셀리아 성녀님이 돌아오셨다고!"

성당의 고요한 분위기가 깨졌다. 수녀들은 입에서 입으로 성녀의 귀환을 알렸고, 곧 젊은 수녀들은 셀리아를 둘러싼 채 질문을 퍼부었다.

"모험은 어땠어요?"

"힘들지는 않았어요? 마물은 어떻게 생겼나요?"

"여행에서 잘생긴 남자를 본 적은 없었어요?"

도심지 근처에 있는 것 치고는, 성당은 꽤 폐쇄적인 공간이다. 새로운 이야기에 목말라하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그녀들 앞에 있는 사람은, 몇백 년 만의 마왕 퇴치를 성공적으로 마친 용사 일행 중 한 명이었다. 굳이 성녀가 아니더라도, 모두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할 것이다.

"그,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던 성녀는 하나하나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풀어나갔다.

그녀가 좋은 이야기꾼은 아니었기에 시간순서는 뒤죽박죽이었고, 상황은 과장되거나 축소되었지만 그들의 모험은 그렇게 열화된 상태로도 충분히 멋지고 가치 있는 이야기였다.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과 이제는 끝나버린 고난들을 털어놓으며, 성녀는 자신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험은 좋았어요! 다 본성은 착한 사람들이었어요. 가끔 나쁜 짓도 했지만... 마물은 엄청 이상하게 생겼는데, 가까이서 본 적은 별로 없어요. 막 뒷걸음질 치면서 기도하니까, 여신님이 물리쳐 주셨어요."

성녀는 헤헤 웃으며 밀렸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연회장에서도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거기 사람들은 죄다 조금 요상한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는 이들뿐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요상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똑같이 요상한 말들을 하곤 했다.

이걸 엘레노어에게 털어놓자, 그녀는 '그냥 아무와도 말하지 말라.'라는 피상적인 해결책만을 줬을 뿐이었다.

묵언 수행은 익숙했지만, 기도실이 아닌 연회장에서의 침묵은 지루하고 따분했다.

"여행 도중에 잘생긴 사람을 본 적은 없었어요. 사람을 얼마 만나지도 않았는데요."

하지만 이 수녀들은 성녀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던 이들이었다. 성녀가 본격적으로 여신의 힘을 얻고 그들이 쳐다보지도 못할 직위에 오르긴 했지만,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저 성녀가 여신의 사랑을 받고, 더 신실하게 신을 섬겼을 뿐.

"와, 엄청 힘들었겠다. 괜찮아요!"

"갈수록 힘들어졌지만, 다 잘 해 주셨어요! 엘레노어 씨도 그렇고, 네르웬 씨랑, 어, 파시어 씨랑 짐꾼 씨도 그렇고..."

잠깐 성녀의 얼굴이 굳었다가 풀어졌지만,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성녀는 진심으로 이 대화를 좋아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 만나는 건, 신나고 재미있는 것만큼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그녀의 말에 어떻게 반응할지 확신할 수 없다. 그녀에게는 당연한 행동과 가치관들을,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멸시하곤 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주고,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을 물어봐 준다. 누구보다 친한, 그녀의 가장 큰 재산이었다.

"엘프는 어땠어요?"

"어... 완전 예쁘고요, 키도 컸어요. 활도 엄청나게 잘 쏘고, 손도 빠른데, 나쁜 말을 엄청 많이 했어요."

"뭐라고요?"

"그, 정확히는 잘 모르는데, 우리 짐꾼 씨한테 막 냄새난다고 하고, 무능력한 인간 따위가 왜 여기 오냐고 막 소리치고..."

"그걸 그냥 놔뒀어요? 아주 혼쭐을 내주셨어야지!"

성녀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네르웬에 대해 너무 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 이상하게 나와 버렸다.

"네, 네르웬도 착해요! 막 화살도 슝슝 잘 쏘고요, 짐꾼 씨가 자고 있을 때는 경계도 척척 서요. 먹을 게 없으면 사냥을 나가서 어디 숨어 있는 고기를 찾아오기도 하고..."

"그, 그런 걸 먹으면 몸이 상하지는 않을까요? 게다가 부정한 고기를 먹었다간..."

"제가 축복했으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성녀는 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면서, 또래 수녀들과 그녀도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발생했다는 걸 알았다.

수녀들 사이에서 성녀의 권한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 그녀를 보호해 주는 건 거의 없었다.

용사 일행 중에서, 성녀의 발언권은 가장 낮았다. 나이도 제일 어렸다. 엘프와 마법사의 나이는 아예 범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컸고, 그나마 비교적 비슷해 보이는 용사는 파티의 리더이자 황제의 딸이었다.

아예 파티의 일원으로 취급받지 않았던 짐꾼을 제외하면, 성녀가 화를 내거나 무언가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사람은 없었다.

단순히 연장자가 우대받는 파티는 아니었지만, 말싸움이 이어졌을 때 그녀는 남을 설득하는 방법을 몰랐다.

교단 안에서는, 그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냐고 화를 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래도 상대가 말을 듣지 않으면, 여신의 경전을 펼쳐 보여 주며 필요한 대목을 보여 주는 것으로 차고 넘쳤다.

하지만 용사 파티 안에서, 그런 사고방식은 어린 바보의 생각 취급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성녀를 지탱해 준 건 짐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려고 할 때, 온갖 욕을 들어먹으면서도 성녀와 함께 그건 안 된다고 소리쳐 줬으니까.

운이 좋을 때면 엘레노어나 파시어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 줄 때도 있었다. 네르웬은, 일관성 있게 그와 대화하기를 거부했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도 시간이 갈수록 힘들고 지쳐가는 게 눈에 보였지만, 성녀가 부탁한 일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들어 주었다.

"아!"

성녀는 또 자신이 갑자기 생각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걸 지켜보는 수녀들은 하루 이틀 일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기다려 주었다.

"그런데,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왜요, 여행 중에 무슨 일 있었나요?"

"그러니까, 그, 저한테 이유 없이 잘 해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왜 그랬던 걸까요?"

성녀는, 그의 친절을 받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당연하다고, 다른 파티원들이 이상한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과 생사고락을 헤쳐나가며 정이 쌓일 때쯤에는, 이미 그의 '친절'이 당연해져 버렸다.

"여신님을 엄청나게 잘 믿는 분 아닐까요?"

"아, 그분은 불신자셨어요. 안타깝지만..."

"불신자요? 역겨우셨겠다. 여신님의 뜻을 위해 마왕을 쓰러트리는 건, 그렇게 힘든 일이었군요. 불신자와 생사를 같이해야 한다니..."

성녀는 '그 사람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불신자가 어떻게 선할 수 있냐고 반문 받는다면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혹시 남자예요?"

장난기 넘치는 수녀 하나가 성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마, 맞아요..."

"셀리아를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성녀는 그럴 리 없다며 부인했지만, 그 의문은 곧 사실처럼 다가왔다.

남녀 관계에 대한 정보라곤 하나도 없는 성녀였다. 나이로는 이미 성인이 된 그녀였지만, 남자를 만날 기회도, 남자를 만난 여자를 볼 기회도 없었다.

기껏해야 다른 수녀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사랑 이야기를 공유할 때, '그런 건 기도에 방해가 됩니다!'라며 화를 낸 기억뿐이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이번 용사 일행에는 남자가 없었다고요."

"아, 맞다. 황녀님이랑, 그 마법사랑..."

"남자 있었어요! 그, 아무도 얘기는 안 해 주지만, 짐꾼 씨도 우리랑 함께 다녔어요!"

"그 짐꾼 씨가 남자였어요?"

"어... 어!"

성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얼마 전에 황실 도서관에서 인사했는데, 축하연에 오라고 하니까 불편해서 싫다고..."

"황실 도서관이요? 거기 아무나 못 들어갈 텐데... 신분도 엄청난 사람인가 봐. 어떡해!"

"성녀님, 그 사람 잘생겼어요? 마음에 들면 확 낚아채 버려요!"

"축하연이 싫다는 것도, 다른 사람 앞에서 보는 게 아니라 둘이서만 보고 싶다는 거 아니에요?"

수녀에 연장자라고는 해도, 결국 성녀보다 아주 조금 세상 물정을 아는, 한 두 살 더 나이를 먹은 소녀들일 뿐이었다.

그와 직접 대화해 본 성녀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대로 '만나는 게 불편하다.'라는 그의 의견을 존중하면 결국 용사 파티는 아쉽게 끝나 버린다. 그건, 성녀에게 너무나 슬픈 일이었다.

이제 곧 황태녀 자리에 오를 엘레노어도, 세계수에 돌아갈 네르웬도, 연구에 몰두할 사피어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에, 그저 부끄러워서 그가 다른 파티원들을 피하고 있는 거라면, 그때 그를 붙잡고 함께 웃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럼, 저, 다시 가 볼게요!"

성녀는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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