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복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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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거지?"
마법을 쓸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선택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마법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마법에 재능이 있는 평민이라 해도, 그걸 어렸을 적에 갈고닦지 않으면 작은 불덩이를 손에서 만드는 정도가 한계다.
귀족, 최소한 귀족의 시종처럼 상류층의 시선이 닿는 곳에 사는 이들이, 아무런 노동 없이 학습과 연구에 집중하는 것만이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법을 배운 자들은, 다른 이들이 상상도 못 할 권위를 누릴 수 있었다.
군용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자들의 전략적 가치는 어마어마했고, 정치적 가치는 더 뛰어났다.
마법으로 인한 독살은 마법이 아니고서는 피할 수 없었고, 저주나 축복의 가치도 어마어마했으니까.
당연히 마탑의 고위 마법사는, 그에 따르는 엄청난 권위와 부,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라도, 지금은 그저 작은 꼬맹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빌고 있는 처지였지만.
"말해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위 마법사는 벌벌 떨면서, 그가 해야 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골라내고 있었다.
만일 그의 말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그녀는 바로 당장 그의 모든 권위와 직위를 쓰레기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그건 그녀가 특별히 거짓을 싫어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의 기준에서, 거짓은 진실된 탐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가 주는 정보를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만들어, 그의 가치를 떨어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쓸모없는 인간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마탑의 지루한 일을 네게 맡겨 놓으니,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으냐?"
"아닙니다!"
파란 머리, 작은 체구. 그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마술 학교의 신입생으로 오해할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면목을 하는 이들은, 그녀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매우 거칠고 절제되지 않은 명칭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수백 년을 살아온 마법사이자, 마탑의 주인. 파시어였으니까.
"나 몰래 행하는 마법이 있구나. 그것도, 매우 거대한 규모의 주문이야... 대체 누구와 손을 잡았던 거냐? 그리고, 그걸 내게 떠넘기면. 내가 웃으며 네 짐을 떠맡아 줄 것 같았나?"
"황제 폐하의 명령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쉽구나... 황제의 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
그녀의 순수하고 자비로운 목소리에도, 고위 마법사는 긴장의 끝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나보다 황제 폐하에 충성하는 이를, 내가 굳이 마탑에 두어야 할까? 응? 황실 마법사 자리가 비었을지..."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일로 심려를 끼쳐 드릴 수 없어... 가벼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말만 들으면 자비롭게 그를 내보내 주려는 것 같았지만, 고위 마법사는 그녀의 기준에서 쓸모없어진 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배신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마법사가 행하는 암살은, 그보다 더 강한 마법사가 아니면 알 수 없다.
황족 수준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면 여신, 신수와의 계약, 고위 성직자 등 어느 정도 보험을 갖추고 있으니 그녀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겠지만, 겨우 마법사인 그는 다르다.
그가 여기서 도망치는 순간, 파시어는 그를 배신자로 규명하고 처단할 것이다.
그녀의 신임을 얻지 못해 쫓겨나더라도, 최소한 분노는 사지 말아야 한다.
"사용된 시료를 보면... 힘, 무력, 차원, 닻... 딱 봐도 위험해 보이지 않나? 자네가 이런 일을 할 줄은 몰랐어."
"그것이..."
"내 짧은 식견으로는, 타차원 침공 외에는 이런 재료로 주문을 만들어야 할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군."
파시어가 이 일을 중대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단순히 그녀의 눈을 가리고 황제와 결탁한 것, 그 이상의 문제였다.
사용된 마법 재료들은 하나같이 귀하디귀한 물건이었지만, 단순히 그 가격이 문제인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 위험성이 더 큰 문제였다. 수백 년을 살아온 그녀조차 몇 번 보지 못한 물건이었다.
사고가 터졌을 때 단순히 마을 하나, 도시 하나 사라질 물건이 아니었다.
"황제 폐하가 이런 일을 주도하실 사람은 아니야. 누굴까? 누가 황제의 눈과 귀를 속였을까... 응?"
"피,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황제 폐하의 허가를 얻은..."
"그렇다면, 왜 필요한지 정도는 알려 줘야지."
작고 여리면서도, 살기로 가득 찬 목소리가 그의 귀에 꽂혔다.
"대화를 하고 있는데 한쪽은 정보를 쓰지 않고 그저 앵무새처럼 '잘못했습니다.'만 말하고 있다면, 그게 진실된 태도라고 할 수 있겠나, 응?"
"그, 그게..."
계속 숨길 수는 없는 정보다. 황제와의 약속을 어기는 건 그 자체로 반역에 가까운 중죄였지만, 저 마법사는 어떻게든 그녀가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고 말 것이다.
"역소환... 의식이었습니다."
"누구의? 이번 대의 용사는 엘레노어였잖나."
용사는 대부분 여신의 소환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현지인 출신 용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와 같이 모험했던 파시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엘레노어는 의심할 바 없는 용사였다.
"...아닙니다."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려는 건가?"
"아닙니다! 제가 그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는 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쉽게도, 나는 네 충성심도 믿고 있었거든. 이제 내 판단을 믿지 못하겠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용사가... 있습니다. 황실 마법사와 함께... 그의 힘을 황녀님이 대리해서 사용할 수 있는 마술을 사용했습니다."
파시어는 기억을 더듬어 그 주문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의 말이 진실이었을 가능성은 너무 적었다.
아직까지는, 거짓말을 이어나가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이어붙이는 나약한 모습이라고 느껴졌다.
"그건 용사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주문이야. 강압이나 폭행이 아니라, 진짜 마음으로 동의해야 한다고. 무슨 수로? 언제 봤다고? 소환되자마자 자신의 힘을 넘겨주기라도 했다는 거냐?"
"...사실입니다."
"뭐, 그게 사실이라 쳐 보세. 그러면 그 용사는 대체 어디 있나? 그 주문은 만능이 아니야. 결국, 진짜 용사 없이는 여신의..."
무언가 생각나는 게 있었다. 파시어가 그녀의 작은 얼굴을 갸웃거렸다.
이유 없이 만들어지는 주문은 없다. 그저 '적을 죽이기 위해서', '병자를 살리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주문을 있을지 모르지만, 용사와 관련된 주문이 그런 간단한 이유로 만들어질 리 없다.
용사 소환의 간격이 약 300년이니, 300년에 한 번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주문이다. 마지막으로 쓰인 건, 거의 1000년 전의 마왕 퇴치였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맞춤형' 주문은 제약 또한 어마어마했다. 용사와 힘을 받는 사람이 항상 곁에 있어야 하고, 강해지기 위해 여신의 가호를 받을 때는 매번 진짜 용사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런 사람이, 있을 리 없.
"아."
그러고 보면, 용사 파티의 여정 중에서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짐꾼이 용사 파티를 보필하는 것이 전례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역사상의 '짐꾼'들과는 셀 수 없이 많은 부분에서 다른 이였으니까.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것 같지도 않고, 두각을 보이는 능력도 없었다.
그녀가 알기로는, 무슨 귀족이 공명을 얻기 위해 억지로 파티에 끼어들었다고 한다.
그와 직접 대화해 본 적은 드물었지만, 딱히 부인하려 들지 않았으니 그 비슷한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에, 그녀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것이 사실이라면.
"부탁인데 말이다... 내가 그 사람을 이미 봤다고는 하지 말아 주겠나?"
"이, 이미 아실 겁니다. 짐꾼으로 같이 모험을 떠난다고 했으니..."
파시어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어린아이의 애교 같은 앙증맞은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진지하게 이 제국, 아니 이 세계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왜 알려주지 않았지?"
"그, 황제 폐하께서 당부하셨습니다! 혹시나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파티의 신뢰가 흔들릴지 모른다고..."
"그래. 흔들리겠지. 용사 파티가 그딴 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진작에 내가 전부 다 뒤집어엎었을 테니까!!!"
마술사에게, 자원 배분은 숙명과도 같다.
어떤 마술사든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기 마련이고, 돈, 권세, 인간, 실험 재료, 시간 등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시간에서 자유로워진 파시어였지만, 그렇다고 그 습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짐꾼이나마 용사 파티에 도움이 되고 싶었던 사람을, 나름대로 '쓸모 있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그건 용사를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귀중한 보석을 그저 단단하다는 이유로 발판으로 사용하고, 날카롭다는 이유로 푸줏간 칼로 사용한다면, 그 보석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절규했다.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어떡하지? 우린 다 죽을 거야. 나는, 내 꿈은. 이걸 위해 이 빌어먹을 삶을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앳된 얼굴 뒤로 비친 연륜과 위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괴로움에 울부짖는 소녀 하나가 있었다.
"그, 너. 뭐 하나만 물어보자."
그녀는 이미 배신자에게 내릴 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배신은 배신이고, 그녀에게 숨긴 건 숨긴 거라 치더라도, 그녀 자신이 저지른 죄가 너무 컸으니까.
"네?"
"요즘 애들은, 그... 화해, 하려면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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