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복귀3
* * *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집에 갈 수 없다고요?"
"미안하네.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자네들의 업적은 너무 성공적이었어. 우리가 예상했던 시간과는 아득히 먼 차이였지."
수없이 많은 용사 소환과 마왕 퇴치가 이루어져 온 나라였다. 오래전 일이라는 것을 제하고 보더라도, 이미 수많은 데이터가 존재했다.
용사 소환과 마왕 퇴치 사이에는, 수많은 전투와 역경, 고난과 승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용사는 외부에서 소환될 때도, 이 세계의 누군가가 선택받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투에 유의미한 경험이 없는 이들이 많다.
그런 반푼이 전사를 훈련시키고, 수많은 던전을 통과시켜 마왕을 쓰러트릴 만한 수준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계속 마물이 이곳저곳에 출몰하고, 교역은 끊어지며, 사회는 불안에 떨게 된다.
하지만 이번 마왕 퇴치는 조금 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힘을 빌려준 황제의 딸, 엘레노어는 조금 달랐다.
황제의 핏줄을 타고났기에 마력 재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검술 또한 어지간한 천재들의 콧대를 누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신체적 능력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준이다.
그 용사에 대해 좋은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은 지금도, 최소한 그녀가 최적의 인선이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끈기와 고결함, 능력과 정신력. 어느 것 하나 갖추지 못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가능한 겁니까."
"한 달! 한 달이면 충분하다네. 너무 화내지 말고, 여운을 즐긴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쉬고 돌아가세나."
내 기대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보는 해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현실은 내 기대보다 잔인했다.
가장 분노스러운 것은, 나는 저 황제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설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용사 소환과 마왕 퇴치에 관한 대략적 기록은, 소환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드문드문 남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황실 도서관에는 모험에 대한 정보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마 용사 파티에게도 곧 사람이 갈 테고.
그런 기록들을 세세하게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업적은 지나치게 빨랐다.
적게 잡아도 5년이 걸릴 모험을 그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끝내고 온 것이니, 다른 준비가 미흡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이제 슬슬 뇌가 한계를 호소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나를 둘러싼 모든 문제와 속임수에 그럴듯하니까, 다른 사람이 보는 손해는 없으니까, 내가 이해할 수 있으니까 이해하는 건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
게다가, 그들은 이제 인질로 잡을 수 있을 만한 민중들이 없다.
"...준비되면 말씀해 주세요. 바로 떠날 테니까."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알현실을 나왔다. 다시는 듣지 않아도 될 거라 믿었던 궁전 복도의 발소리가, 기괴하고 역겹게 들렸다.
/////
침대에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것은, 첫날에는 미친 듯이 쉬웠다.
하지만 정신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집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 여행 중에 내가 '합리적인 사고하에' 당해야 했던 것에 대한 울분이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세 번째 날이 되고 나서는, 뭐라도 하는 것이 덜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황제라면, 내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허락해 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겨우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황제의 이해를 구하고 그가 자비를 베푼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에게서는 동전 한 푼도 받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 보거나 고개를 숙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르겠다..."
내가 묵고 있는 곳은 넓은 손님용 방이었다. 침대는 크고, 시설은 좋으며, 연결된 화장실과 간단한 다과까지 있다.
끊어질 것 같은 다리를 생각하면, 여기서 오래 걸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에 내 몸으로 걸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걸 즐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뭘 해야 할까.
무언가 일을 시작했다가는, 한 달 뒤에 바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근거 없는 불안감은, 어느새 내 마음을 좀먹고 있었다.
그걸 떠나서, 인연을 만드는 것 자체가 싫었다.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가짜 신분에 불과하다. 황제가 적당히 만들어낸 사라진 가문의 후계자라는 설정은, 대놓고 말하고 다니기에도 부끄럽다.
게다가, 사람을 만나는 게 싫었다. 외국 여행을 나가서 한 번이라도 소매치기를 당하면 다음부터 그 나라의 이미지가 소매치기로 기억되듯이, 이 세계의 이미지는 이미 네 명의 여자들로 머릿속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여기에서도 그나마 괜찮은 여가생활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걸 즐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 안은 놀랄 만큼 공허해져 있었다. 마치 일평생 바쳐 온 복수를 성공시킨 사람처럼, 무엇을 해도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졌다.
금세 불안해졌다. 내가 지구로 돌아간다고 해서 지구에서 살던 삶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막연한 불안함이었다면, 이제는 거의 코앞으로 다가온 현실에 대한 공포심이었다.
예전처럼 웃을 수도, 참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다른 것보다도, 그게 더 무서웠다.
/////
"수고했다, 내 딸아."
황제의 유들유들한 웃음은, 그녀의 딸인 엘레노어의 동경을 사는 표정이었다.
완벽하게 무해한 듯 보이면서도, 근엄함과 품위를 잃지 않는,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사람. 황제의 표정에 딱 걸맞은 웃음이었다.
"주어진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래서, 여행은 어땠니, 엘레노어? 뭐 물론 힘든 일도, 행복한 일도 많았지만 여행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항상 보석 같은 사람들이지. 나도 젊었을 때는 국토 순찰을 다녀 봤다만... 못할 짓이야."
엘레노어는 '보석 같다'라는 것이, 단순히 귀하고 아름다운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황제의 용인술은 놀랍도록 보석 세공을 닮아 있었다. 조금이라도 티 나거나 삐져나온 부분을 날카로운 칼로 자르고, 자신은 빛나는데 주위에 있는 돌 때문에 빛이 바랜다면 그 돌들을 쪼개 때내어 버린다.
"여행에서 만난 인간 모두, 기억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사람은 있어도..."
"그럼, 용사 씨와는 어땠니? 서로 문제는 없었고?"
"저 말입니까?"
엘레노어는 잠깐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상황을 분석했지만, 곧 그게 자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비겁자에 대해서는 할 말 없습니다."
"그가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나?"
의심, 분노, 계산. 수많은 생각들이 황제의 머릿속에서 요동치고 있다고 엘레노어의 직감이 알려주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저, 그는 책임감과 의지가 부족했습니다."
"그건 네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검을 쓰는 솜씨를 어떻게든 가르처 봐야 기초체력부터 부족하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고, 항상 다른 이들의 짐이 되어 초주검 상태로 돌아오면서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이 당당합니다."
그녀가 시킨 훈련이 없었으면 이미 애저녁에 죽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남자라 생각했다.
훈련을 어떻게든 버틴 것, 용사의 힘을 적절한 사람에게 바친 것은 엘레노어의 생각으로도 칭찬할 만했지만, 나머지는 무용한 남자였다.
"그렇군, 혹시 그 아이도 너를 그렇게 생각할까?"
점점 어두워지는 그의 표정을 보고, 엘레노어는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느꼈다.
"모릅니다."
"엘레노어, 황가가 받는 가호에 대해 알고 있나?"
제국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신들의 가호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꼭 신이 아니더라도, 용이 가문과 계약을 믿고 나라를 지키거나 정령이 왕가와 계약하고 도움을 베푸는 일은 흔했다.
"악을 물리치고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 말입니까?"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걸 받을 수 있는 조건."
"황가의 일원이 황제 자리에 오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는 옳을 수 있겠지. 하지만 원래 그건, 최근에 소환된 용사, 혹은 그의 혈육이 황제 자리에 올랐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네."
너무나 담담한 황제의 말투에, 그녀는 그의 말 중 어디에 이상한 점이 있는지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곧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소환된 용사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그런 게 있었으면 벌써 저희가 알았을 겁니다!“
"그때는, 용사가 본국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으려 했으니까. 그리고, 황가는 적당한 공주를 붙여 주거나 알아서 용사를 양자로 삼았지."
"그런..."
용사 소환은 구체적이다. 왕실 도서관에는, 이 사건에 대한 수많은 분석이 올라가 있다. 무엇을 왜 하면 안 되고 왜 해도 되고 설명도 나름대로 명쾌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한 번만 예외적인 상황이 일어나도 이전 절차를 찾으려면 600년 전 용사 소환을 뒤져 봐야 한다. 오개념이 퍼지더라도 바로잡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용사는 접니다."
엘레노어는 모멸감과 분노에 손을 꽉 쥐었다. 터질 듯이 넘쳐흐르는 마왕을 쓰러트린 용사의 힘이 여기 있었다.
국가 내외에서 꿈틀거리는 불온세력도 대부분 정리했다. 공적이든 신분이든, 엘레노어보다 높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마치 우습다는 것처럼,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모두에게 알려줄 수 없는 정보라지만, 정말로 아무도 모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용사는 그일세. 처음 이 땅에 왔을 때도, 지금도 그건 변하지 않았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