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복귀2
* * *
"끝났다..."
이미 제국 영토 내부로 들어온 지 한참 지났지만, 용사 파티의 행군 속도는 줄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용사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빨리 수도에 도착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다못해 마을에서 쉬기라도 하면 좀 나을 텐데, 그녀는 대관절 그 고귀하신 사정이 뭔지 알려 주지도 않고 우리를 재촉하기만 했다.
물론 다른 이들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나눈 대화가 많을 테고, 나는 파티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느낌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적어도 마왕이 죽은 지금은 나를 해방시켜줘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이 정도라면 안전할 것 같으니, 알아서 집으로 돌아가겠다.'라고 설득해 봤지만, 다수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노예 혹은 샌드백이 더 필요한 건지, 용사와 성녀, 마법사는 극구 반대했다.
궁사는 어떻게든 저 역겨운 짐꾼과 몇 초라도 빨리 헤어지고 싶다며 소리치며 반대했지만, 수에 밀리자 목소리에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응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일말의 여지없이 나를 혐오하는 그녀에게 화내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하다못해 궁사라도 이런 파티에 남아 있기 싫다며 떠나가길 바랐지만, 또 지금까지 정든 동료와 떨어지긴 싫은지 그녀는 이를 악물고 다수의 의견에 순응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내 일상은 힘들었다. 엘프와 마법사에게 정신적 공격을 받고, 성녀가 시키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모두 해낸 다음, 지친 몸을 용사의 화풀이에 아낌없이 내주어야 했다.
그래도, 이제 정말 끝난다.
"다 왔어..."
서서히 가까워지는 수도를 보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끝도 없이 거칠어진 호흡 때문에, 가슴이 벅차오른 것처럼 느낀 걸지도 모른다.
혼잣말도 크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폐에서 목으로 공기를 너무 세게 내뿜으면, 거칠어진 목 안쪽 피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를 테니까.
하지만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그 혼잣말도, 기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마왕도 죽었다. 더 이상 내가 무언가 해야 할 당위도 없고, 생각도 없다.
"이제 슬슬 얼굴을 가려야 할 겁니다. 파시어, 당신도 이제 두 발로 걸으십시오. 부양 마법을 그렇게 편안하게 쓰며 지나간다면, 순식간에 신원이 판명될 겁니다."
"거 참, 이건 일종의 목발 같은 걸세. 자네 사정은 알겠지마는, 그 어른을 위한 배려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어쨌든, 부양 마법은 안 됩니다. 여기서 사람을 고용하거나 말을 살 수도 없을 테니... 짐꾼. 마법사님을 네 등에 업어라."
"뭐?"
무겁지는 않을 것이다. 마법사의 어투나 행동은 노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지만, 목소리와 외모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혈통에 특별한 힘이 깃든 데다, 본인의 마법 실력 또한 천재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충분한 사람이라 들었다.
이미 어렸을 적에, 자신의 수명에 관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정도로 뛰어난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가 천재인 건 내 알 바 아니고, 그녀가 가벼운 것도 내 알 바 아니다. 애초에, 내 몸뚱어리를 지탱하는 것도 아슬아슬한 상태다.
"이것도 못 하겠다는 거냐? 네 나약한 육체가 쓰러져, 성녀님이 대신 짐을 들어 주시고 계시지 않나!"
용사의 격노한 목소리가 내 몸을 흔들었다. 두렵지는 않았지만, 그 앞에 서 있는 것 자체로 힘을 소모했고, 내게는 그 조금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성녀가 내 짐을 든 건, 강행군 끝에 내가 결국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힘도 약하지 않은 용사였고, 일행의 짐은 스스로 들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짐을 드는 것이 마치 명예롭지 못한, 역겹고 천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일을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황성에는 하루빨리 도착해야겠다며 다른 사람들을 독촉한 것도 용사였다.
악취 나는 가방에는 손도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엘프, 마법으로 몇 시간씩 끌고 가면 내용물들이 전부 으스러질 거라며 한 발 빼던 마법사를 제외하니 남은 게 성녀밖에 없었을 뿐이다.
"뭐, 마지막에 이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 이 몸이 올라갈 테니, 다리 굽히고 저기 웅크리거라."
마법사의 아기 같은 목소리가 머리를 흔들었다. 처음에는 귀엽고 예쁜 목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저 듣는 순간 불안해지고 한숨이 나오게 만드는 역겨운 목소리일 뿐이었다.
아마 지구로 돌아가더라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분명히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혐오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하나둘씩 싫어하는 것이 늘어나고 있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반박하고 싶었다. 정말 화내고 싶었지만, 그녀가 굽히지 않을 것이란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인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리 그 사람의 말이 옳더라도 그 말에 수긍하는 것을 '패배'로 인식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을 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한숨을 쉬고, 마법사를 업었다.
"끄으읏..."
"왜 이리 힘이 없느냐?. 설마 이 몸이 무겁다는 건 아니겠지?"
마법사는 앙증맞은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나는 그 작은 펀치에도 휘청거릴 정도로 힘들었다.
"가죠."
'헛소리하지 말고'라는 말을 뒤에 붙이고 싶었지만, '가죠' 한 마디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짜내듯 내뱉은, 단말마에 가까운 말이었다.
아마 목적지는 궁성일 테니, 수도를 가로질러 간다 해도 그리 먼 거리가 남은 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온 길에 비해서는.
"그럼 실례하마!"
나는 이를 빠드득 갈며, 그녀를 등에 업고 다시 용사를 따라 걸었다.
이제 진짜 끝이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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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성가가 거대한 홀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신성력으로 증폭된 성스러운 목소리는, 마이크와는 다른 감동이 있었다.
어제, 나는 돌아오자마자 왕에게 나를 지구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슬슬 말을 돌리며 축하연에 참석하고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시간을 끌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용사 파티 사이에 끼어 축복과 환영을 받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어디 귀족 옷 같은 걸 둘러 입고 박수나 치는 처지였지만.
"그대들은 가장 어려운 임무를, 누구보다 빠르고 영웅적으로 수행하였다."
네 명의 여자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그 칭송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콧대 높던 여자들이 그저 황제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좀 우스웠지만,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던 것 같았다. 납득하기 어려웠을 뿐.
"여신의 의지에 따라, 우리는 또다시 이 세계를 지켜냈다. 이것은 그대들의 용맹스러운 의지와 희생정신, 그리고 여신의 사랑이 만든 또 한 번의 기적이며..."
용사 소환과 마왕 퇴치는, 일종의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거대한 의식이다. 단순히 인간 간에 벌어지는 전투가 아니라, 용사라는 여신의 사도가 마왕이라는 세계의 적을 물리치는 의식.
제국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존재해 왔으며, 영웅 소환도 몇백 년의 간격을 두고 계속 지속되어 왔다.
그들은 용사가 아니면 열 수 없는 던전에 들어가 여신이 준비한 무구를 찾고, 봉인되어 있는 사악한 마물들을 쓰러트리고, 중간중간 준비해 둔 여신의 힘을 여신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따르는 성녀의 인도를 따라 얻는다.
그리고 제국은 용사를 소환하는 나라고, 황제는 용사 소환과 마왕 퇴치가 끝나는 동안, 용사를 돌보기 위해 여신을 대리하는 임무를 받게 된다.
그래서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데다 '인간' 카테고리에 들어 있는 생명체들을 죄다 원숭이, 혹은 강아지 정도의 짐승으로 보는 궁사도, 사제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어 누구에게도 굽힐 의무가 없는 성녀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적은 피해로, 마족의 세력이 커지고 마왕이 부하들을 모으기도 전에 그들의 세력을 부순 것은, 역대의 용사 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뒤에서 지켜보는 나는, 지루했다.
음악은 물론 멋있었다. 몇 년간 들은 음악이라고는 마물들의 비명뿐이었고, 가끔 흥얼거리는 성녀의 성가뿐이었으니까.
음식도 물론 맛있었다. 여행 초기를 제외하곤 매번 돌처럼 말라붙은 열매를 억지로 씹거나, 배탈을 감수하고 영문 모를 사체를 입에 넣어야 했으니까.
분명 좋은데, 기쁘지 않다. 제국의 크기는 넓고, 각지의 맛있는 음식들이 다 이 황궁으로 들어올 것이다.
맛있었다. 비싼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구에서 먹었던 어떤 음식도 이 음식에 비하면 모자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쁘지 않다.
잔뜩 허기진 배는 걸신들린 아귀처럼 무언가를 안에 넣으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나는 꾸역꾸역 음식을 입안에 집어넣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냥, 컵라면이 먹고 싶었다.
그게 너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 인공적인 향과 매운맛이, 아마 여기서는 절대 볼 수 없고 본 적 없는 맛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았다.
깨달아 버렸다.
나는 이곳을 싫어한다.
마법사 때문에 어린아이 목소리를 싫어하게 되고, 궁사 때문에 엘프라는 종족 전체를 싫어하게 된 것처럼.
이 세계가 내게 남긴 부정적인 기억들이 너무 많아서, 차마 아무것도 즐길 수 없는 것 같았다.
축하연은 밤까지 이어졌다. 귀족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내가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보아하니 축하연은 밤새도록 이어질 것 같았고, 나는 남은 시간 동안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가장 독한 술을 마신 나는, 연회장과 연결된 정원에 들어가 나무 밑에 가지런히 몸을 기대어 잠을 청했다.
내일이면, 정말로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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