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복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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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은 위험하고 거칠었지만, 지나고 보면 기억에 남는 순간은 끝없이 펼쳐진 대지를 걷는 순간밖에 없었다.
제국에서 마왕성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인 내 발로 걷기에는 턱없이 먼 거리였으니까.
마법사는 둥둥 떠다니고, 엘프와 용사는 애초에 신체적 능력이 인외에 가까웠다.
그나마 갑옷을 입은 채 걷는 용사는 '매우 잘 훈련된 인간'의 범주 안에서 조금이나마 지치는 기색이 보였지만, 모험 도중 용사의 힘을 하나둘씩 얻게 된 다음부터는 그런 모습조차 없었다.
그나마 약한 성녀도 신성력을 둘러 몸을 가볍게 하고 피로를 치유했으니, 맨몸으로 걷는 인간은 나밖에 없었다.
비전투 인원에게 신성력을 쓰면 비상시에 대처할 수 없다는 나름대로 합당한 판단 때문에, 나는 어떤 치료도 받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요령을 부릴 셈인가, 짐꾼?"
"가, 가고 있습니다...!"
발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오래전에 사라진 상태였다.
신발 안으로 들어간 모래의 까끌까끌한 감촉, 흙과 피와 먼지가 섞인 찐득거리고 찝찝한 느낌 하나하나에 불쾌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이미 뇌에서 느끼고 있는 고통이 너무 크고 다양했으니까.
그래도, '돌아가는' 길 중에서는 가장 기쁘고 보람찬 길이었다. 한 번 지나갔던 길을 다시 되짚어 돌아가는 건, 미치도록 지루하고 무의미한 행군이었으니까.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자, 몸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오늘도 벌써 이 생각으로 몸을 일곱 번 넘게 가볍게 만들었으니, 약발이 떨어질 법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잘 먹히는 것 같았다. 대략, 물 한 모금 정도.
"집에 가면 뭘 하실 생각이에요, 다들?"
그녀들도 이 지루한 분위기를 견뎌내기는 힘들었는지, 성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다시 기사의 본분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당분간은 황녀와 용사의 업무에 충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쉬는 일은 없겠지만, 파티가 필요해지면 당신들도 초대하겠습니다."
"세계수로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지만, 하필 그때 머리에 열이 올라 생각할 힘이 없었다.
몸은 어떻게든 한계 이상으로 힘을 짜내 걸음이 멈추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힘은 없었다.
이러다 쓰러지면 바로 엘레노어의 거센 발길질을 맞고 억지로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나는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내 몸을 끌어다 쓰고 있었다.
이렇게 지구로 돌아가도 남은 수명이 몇이나 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몸을 혹사했다. 내 행복을 추구했다면, 모험 중간 정도에 귀환을 포기하고 자살이라도 하는 것이 더 이득이었을 것이다.
"으으..."
지끈거리던 머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숨이 끝없이 벅차올랐지만, 폐가 원하는 대로 산소를 집어넣어 주다간 바로 쓰러질 게 뻔했다.
억지로 숨을 삼키고 계속 걸어가자, 그럭저럭 시야가 돌아왔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성녀의 뒷모습이었다. 모험 도중 지겨울 정도로 많이 본 풍경이었다.
"진짜로, 말 없이 가도 반겨 줄 거예요?"
"성녀인 당신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오히려 제가 먼저 부르고 싶군요. 우리가 이 영웅담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저를 따르는 이들을 단결시킬 수 있을 겁니다."
여행 중 정이라도 들었는지, 마왕을 쓰러트리고 나서 긴장이 풀렸는지 한결 가벼워진 분위기에서 대화가 오갔다.
물론, 나는 그 사이에 들어 있지 않았다.
"하..."
이 사람들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는데.
/////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 처음으로 본 사람은 황제였다.
"자네는 여신에게 선택받았어. 용사의 사명을 띠고 소환되었네!"
친절하면서도 압박이 느껴지는, 한 마디만 들었을 때도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어조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각오했던 말이기도 했다. 갑자기 지구에서 영혼과 육체가 빨려 나와 차원의 틈을 넘는 경험을 하고 나면, 비상식적인 상황을 의심할 힘이 사라진다.
아무나 나타나 '나는 신이야!'라고 주장해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새로운 상식에 열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몸은 그대로였다. 내가 입고 있던 옷과 신발도 그대로였다. 무언가 몸 안에서 웅웅거리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걸로 싸워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돌아가게 해 달라고 했고, 싸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황제는, 묘한 웃음을 내비치며 달콤한 제안을 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거야. 마왕은 세계를 파괴할 테고, 다음 용사가 뽑힐 때까지 마물이 습격할 걸세.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되겠지."
그 말을 들은 뒤에는, 무섭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은 이해하고 있네. 싸우기 위해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면, 용사의 길은 거칠고 위험하니까.."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려던 찰나, 그는 내게 더 달콤한 선택지를 내밀었다.
"준비된 사람에게 자네가 가진 용사의 힘을 빌려줄 수 있네. 자네가 생사의 전장을 넘나들어 싸울 필요도 없고, 그저 편히 궁전에서 쉬다가 승전보가 들어오면 바로 돌아가면 될 뿐이야."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누구든 세상을 구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 참가하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용사라는 게 내 의무라면 그걸 남에게 던져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동의했습니까?"
"뭐라고? 하하하하!"
내 질문이 그리 우스운지, 그는 폭소를 터트렸다. 그 웃음마저 호탕하고 거대해, 소리에 압도당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당연하지! 그것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사람일세! 무슨 걱정을 하나 했더니... 결정했다면, 어서 가세나! 자네가 '용사'인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난다면, 의식이 실패할지도 모르니!"
내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황제는 웃으며 내 결단 아닌 결단을 칭찬했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메이드 몇이 나를 불렀다. 나는 눈을 가린 채, 아마 궁전 지하 어딘가에 있을 깊숙하고 은밀한 곳으로 끌려갔다.
회색 옷을 입은 마법사들이 말없이 바닥에 도형을 그렸다. 오랜 시간 끝에, 원, 삼각형, 문양과 처음 보는 글자들이 어지러이 섞인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당신이, 용사군요."
그리고 내 앞에는, 마치 흠 없이 빛나는 검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 끝이 약간 겹쳐지는 두 원 안에, 나와 그녀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네."
"힘을 포기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으십니까?"
무언가 갈구하는 것 같기도 했고, 심문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지한 질문에 답해 주기에는, 내가 이 선택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 너무 적었다.
"상관없어요.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죠."
힘은 애초에 필요 없었다. 지구에서의 삶이 꼭 행복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현대 문명이 있는 삶이 좋았다.
황제의 말을 들어 보면, 마왕이 쓰러진 후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의식을 통해서만 용사를 원래 세계로 귀환시킬 수 있다고 한다.
나를 위해서라도, 이 세계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가는 게 옳다.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나와 그녀는 대화를 멈췄다.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 들은 대로, 조용히 눈을 감고 몸에 남은 힘을 전부 뺐다.
고통과 이질감, 내 배 속에 있는 무언가를 입으로 뽑아내는 것만 같은 역겨운 감촉이 느껴졌고, 이내 몸에서 남은 힘이 전부 빠졌다. 그렇게 그녀가 용사가 되었다.
/////
피부를 베어버릴 것 같은 차가운 물에 몸을 담갔다. 내 냄새에 미치도록 민감한 사람이, 아니 파티원이 한 명 있어서, 나는 온몸의 피부를 벗겨낼 기세로 몸을 닦아야만 했다.
"아파..."
목욕이 그나마 덜 역겨운 점은, 어차피 한 번쯤 하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과 몸을 최소한으로 움직여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최소한 몸은 쉬는 시간이었다.
파티로 돌아가 봐야 성녀의 심부름, 궁사의 멸시, 마법사의 괴롭힘, 용사의 훈련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몸 상태로 용사의 훈련을 견디는 건 무리였다.
단점이라면, 도저히 정신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집중할 수도, 잠에 빠져들 수도 없다.
그저 고통스러운 액체 칼날이 온몸을 난도질하는 것을 느껴야 한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지?', '이 지랄을 하면서까지 모험에 참여해야 하나?' 같은 분노, 체념, 슬픔, 절망이 머릿속을 흔드는 것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받아들여야 한다.
분명 처음에는 뭐든 하겠다는 각오로 시작했는데, 이 일이 끝나면서 분노가 늘었다.
우울은 더 큰 희망,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눈에 보이는 미래 때문에 잠시 가려졌을 뿐, 이렇게 차가운 물 속에서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돌아가자."
다시 귀환의 의식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면 다시는 볼 일 없는 사람들이다.
웃는 것도, 참는 것도, 굽히는 것도 더는 안 해도 괜찮다. 마왕은 죽었고, 모험은 끝났다.
"잘 버텼어..."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된다. 나는 마지막까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노력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차가운 물을 거친 천으로 닦아내고 옷을 입었다. 가장 추운 날씨는 지나갔지만, 아직도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옷을 말리며 몸의 열을 빼앗았다.
파티가 쳐 둔 텐트에 돌아오자마자, 궁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코를 부여잡고,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아직 냄새나. 다시 씻고 와."
좆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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