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 붉고 따사로운 태양 (172/173)


172화. 붉고 따사로운 태양
2023.02.22.



 
에르헨은 비명을 지르고는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날카로운 선을 자랑하는 턱과 신이 심혈을 기울여 다듬은 듯 쭉 뻗은 콧날.

그 어떠한 일에도 좀처럼 평정을 잃지 않고 언제나 여유 넘치는 미소를 머금은 입술.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한여름의 신록을 닮은 녹색 눈동자까지.

익히 잘 알고 있었던, 잘생겼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근사한 미청년.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지옥에서 온 악마와도 같았다.


“폐하……?”

“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아니, 내가 죽어서 정말로 지옥에 떨어진 건 아닐까.

에르헨은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곁에 있던 태황제도 의아한 눈길로 그를 살폈다.

이내 태황제는 에르헨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의사를 불러와라.”

그가 침착하게 명령하자,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급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의 신하들 또한 곁으로 다가왔다. 오르세스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저 황제가 어딘가 몸이 안 좋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에르헨의 이상한 태도가, 오르세스 후작의 뒤를 따라 들어온 젊은 미청년 때문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모두의 걱정을 받는 와중에도 에르헨은 대답하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끔찍한 재앙과도 같은 저주가 그를 옭아매고 있었으니까.

위너드 황태자의 가슴에 칼을 꽂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그때였다.

내내 가만히 서 있던 위너드가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그저 그뿐인데도, 순식간에 홀 안의 공기가 뒤바뀌었다.

마치 봐선 안 되는 것을 본 사람처럼 에르헨의 입술 사이로 앓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폐하……?”

가까이서 그를 살피던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에르헨 황제가 증오 넘치는 얼굴로 어느 한 곳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하나둘씩 에르헨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끝에 서 있는 건 추하게 일그러진 표정의 에르헨과는 달리,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청년이었다.

그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빛나는 듯했다.


“내가…… 누굴 데리고 온 거지……?”

오르세스 후작은 순간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자는……?”

알 수 없는 기묘한 기분에 휩싸인 건 태황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길은 내내 위너드에게 머물렀다.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이 청년과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에.

아니, 최근에 만난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아는 얼굴이라는 확신이 차올랐다. 태황제는 에르헨을 살피는 것도 잊고, 위너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윽고 청년이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그동안 네 자리가 아닌 곳을 차지하고 앉아, 네 것이 아닌 것을 쥐고…….”

묵직하고도 낮은 음성이 홀 안에 내려앉았다.


“……즐거웠나, 에르헨?”

담담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른 순간, 두 사람을 둘러싼 공기가 날카롭게 변했다.

새파랗게 날 선 침묵을 뚫고 보이지 않는 커다란 파동이 이는 듯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귀족 따위가, 감히 황제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황제를 대하는 그의 태도 또한 너무나 이상했다.

무례하다기보다는…… 에르헨 황제를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태도다.

그야말로 엄중한 벌을 받아마땅한 일.

그러나 누구도 위너드를 무엄하다며 제지하지 못했다.

아니, 막기는커녕 모두 머릿속으로 비슷한 생각만 떠올릴 뿐이었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무엄하다고 하는가?’

‘내가 저분에게 그런 말을 해도 되나?’

서로의 황망한 눈빛이 부딪혔다.

……정말이지 희한한 일이었다.

마치 자신들의 진짜 주군이 돌아온 듯했다.

처음 만난 지방 귀족에게 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나서긴커녕 입술조차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에르헨이 핏발 선 눈을 사납게 희번덕였다.


“죽여 주마.”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몇 번이고 그럴 힘이 있으니까!”

내면에는 여전히 분노와 경악, 그리고 공포가 뒤죽박죽 섞여 있지만, 이 악몽에 언제까지고 잠식되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살기 어린 고함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신하들이 위너드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그의 앞을 막아섰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중무장한 기사들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일제히 안으로 들어왔다.


“황제 폐하를 호위하라!”

호위 단장의 명령에 그들이 일제히 은빛 검을 빼 들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이 날카로운 칼날을 타고 눈부시게 부서져 내렸다.

에르헨의 입술이 그제야 희미하게 들려 올라갔다.


“……실패자 따위가.”

그래, 대체 뭘 겁내야 하는가.


“주인공은 네가 아니라, 나다.”

이 세계에서 중요한 건 오로지 그것뿐인데.

에르헨은 악귀와도 같은 흉측한 미소를 지은 채 음산하게 속삭였다.


“지금 당장 없애 주지.”

그러고는 두 눈을 부릅뜨고 얼른 시스템 창을 띄웠다.


“그를 소멸시켜 다오!”

절실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띵동!

「죄송합니다, 에르헨 님. 주인공은 오로지 주인공의 세계에만 관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세계의 남주를 없앨 수 없습니다.」
 


“……뭐?”

띵동!

「그러므로 그 소원은 불허합니다.」
 


“후보……?”

에르헨의 눈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를 경악하게 만든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차 안 하길 잘했네ㅋㅋㅋ 이놈이 어떻게 죽을지 궁금한 건 나뿐임? 두 번 죽었다 살아나면서 원한도 두 배로 쌓였을 텐데, 사지를 찢어 버려야 속이 시원할 듯.」

「사지ㄴㄴ. 모가지 정도는 베어야지. 원래 그게 쥔공 특기였음.」

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주주들에게서 온갖 조롱이 쏟아졌다. 게다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뭐래 XX놈이! 내 남주 건드리면 죽어!」

「빨리 저 새끼 해치우고 울 언니의 하렘으로 들어가……ㅠㅠ」

난생처음으로 보는 주주들까지 등장해 욕설을 잔뜩 내뱉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부서져라 다문 잇새로 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는 사이, 위너드는 또다시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어깨 부근이 희미하게 빛나는가 싶더니 이내 손끝에 붉은 오라가 일렁였다.


“저건……?!”

호위 단장의 놀라 외쳤지만, 두 남자는 그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았다.

주인공의 힘으로 위너드를 없앨 수 없다면, 직접 나서서 다시 한번 그의 심장을 꿰뚫어야 할 터.

에르헨은 위너드의 손끝에서 점점 붉게 변하는 빛에 눈을 떼지 않은 채, 황급히 자신의 허리춤을 더듬었다. 고급스러운 가죽 검대 끝에 달린 검집이 만져졌다.

황제만이 지닐 수 있는, 황실의 보검이었다.

알현을 위해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치장할 필요는 없지만, 에르헨은 정복을 갖춰 입은 다음 마지막에 꼭 그 보검을 차곤 했다.

그래야만 비로소 만족스럽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반면 위너드 황태자는 무장은커녕,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았다. 무기를 지닌 채로 알현하는 일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니까.

에르헨은 루비와 에메랄드로 장식된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는 그대로 검을 빼냈다.

능숙하게 팔을 사선으로 치켜들자 휘익, 바람이 일었다.

위너드의 머리카락 한 올도 흔들지 못할 정도로 약한 바람이.


‘내가…….’

검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을 내려다본 순간, 목덜미에 차가운 땀이 고였다.

물론 에르헨이 지닌 검에도 같은 빛이 넘실거렸다. 위너드 황태자와 같은 능력을 지니게 해 달라고 빌었으니, 힘의 차이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제대로 무기를 갖춘 제 쪽이 조금 더 우위였다.

분명 오라로 공격해 올 테니, 저 역시 오라를 이용해 그것을 막고 그대로 그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면 된다.

단 일격에 끝날 간단한 승부였다.

그런데도 에르헨은 두려움에 깊이 잠식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온갖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내가 정말 제대로 일격을 휘두를 수 있을까? 실패해서, 그에게 검을 빼앗긴다면?

위너드를 직접 가르쳤기에, 그는 위너드 황태자의 천재적인 재능을 잘 알았다. 게다가 위너드는, 그런 재능을 쥐고서도 그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자신은…….


‘황제가 된 이후로는 검을 제대로 쥔 적이 없었지.’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는 승리감에 취하고, 또 주인공이 되었다는 달콤함에 안주한 채 말이다.

과거에 그를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위너드 황태자가 자신을 찾느라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실패했겠지.


“다가오지 마라.”

그때, 황제의 곁을 빈틈없이 지키던 호위단장이 경고했다.


“다들 목숨 바쳐 황제 폐하를 지켜라!”

그의 두 눈이 용맹하게 타올랐다. 무인의 감으로, 위너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감지한 듯했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서 일렁거리는 저 빛이 범상치 않다는 것도.

잘 훈련된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위너드를 포위했다.

그사이, 다른 사람들은 급히 에르헨을 뒤쪽으로 이끌었다.


“폐하,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에르헨은 그제야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저자를 당장 죽여 버려라!”

무기도 없이 제국에서 실력이 좋기로 정평이 난 호위 기사들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위너드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리라.

그들이 시간을 벌어 주기만 한다면 위너드를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그도 아니면, 진짜 황태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부하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해도 좋고.

그 순간 누군가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잠깐……!”

바로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태황제였다.


“무기를 거두어라!”

어째서인지 태황제는 자리에 버티고 서서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몇몇 기사들이 어리둥절한 눈길을 보냈다.

이 빌어먹을 영감이.

에르헨의 눈에서 악랄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검을 꾹 쥔 채, 나머지 자유로운 한 손을 태황제에게로 뻗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태황제의 목을 휘감으려던 그때였다.

창문도 열려 있지 않은데, 갑자기 어디선가 거센 돌풍이 불어왔다.


“뭐야……!”

기사들이 두르고 있던 망토가 마구잡이로 날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쿠웅.


“으악.”

무언가가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작은 비명이 들렸다.

……여자?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누구?”

기사들과 에르헨 황제 사이에 나타난 건, 붉은 머리를 한 여자였다.

그녀가 재빨리 몸을 일으키자 찬란한 태양을 닮은 머리카락이 탐스럽게 물결쳤다.

위너드의 녹색 눈동자 안에도, 그 아름다운 붉은빛이 넘실거리며 스며들었다.


“그, 그대는?”

태황제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로렐라…… 메이레드?”

그 이름을 읊은 순간.

그녀의 발끝에서부터 눈부신 빛의 파장이 일어났다.


“커헉!”

그 빛은 곧장 에르헨에게로 닿았다.

태황제를 잡으려던 에르헨이 저절로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는 지지 않고 로렐라를 향해 팔을 뻗었다.

파앙!

두 사람이 만들어 낸 파동이 서로 부딪혀,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윽……!”

엄청난 압박감에 주위 신하들이 몸을 똑바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이내 힘이 빠진 에르헨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어깨를 들썩이며 밭은 숨을 내쉬고 있는 건 로렐라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빈틈없이 자신이 되찾아야 할 사람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그건 위너드도 마찬가지였다.

바다처럼 깊고 커다란 그리움, 제아무리 새까만 암흑이 찾아온다 해도 감춰지지 않는 빛나는 사랑을 담은, 너무나도 닮아 있는 두 개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돌려내.”

로렐라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위너드를 바라보며,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남주와 관련된, 사라진 모든 기억을 돌려내.”

그 순간.

띵동!

로렐라의 귓가에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난생처음 보는 휘황찬란한 빛이 홀 안의 사람들을 휘감았다.


“엇……!”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눈을 가렸다.

빛은 금세 창문을 넘어, 그리고 지붕과 첨탑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갔다.

번성한 도시의 성벽 위로, 또 비옥한 토지와 커다란 산맥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가던 빛은 푸르른 창공에 모여들었다.

점점 팽창하던 빛이, 어느 순간 소리 없이 터졌다.

이윽고 제국의 하늘에서 아름다운 광채를 지닌 별똥별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내렸다.

* * *



“……화, 황태자 전하?”

짧지만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침묵을 깬 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호위단장이었다.


“위너드 전하께서 어째서 지금껏…….”

그는 자신이 가로막고 선 남자를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위너드…….”

뒤이어 이루 말할 수 없이 떨리는, 축축하게 젖어 든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 아들……!”

태황제가 시종들을 밀치며 허겁지겁 걸어 나갔다. 어찌나 힘이 센지, 여전히 태황제를 에워싸고 있었던 몇몇 사람들이 뒤로 나자빠질 정도였다.


“으아아아아악!”

그 순간, 에르헨의 입에서 마치 악령의 비명과도 같은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새빨개진 눈을 부라리며 제게 등을 보인 태황제의 어깨를 재빨리, 있는 힘껏 그러잡았다.

태황제를 인질로 잡을 셈이었다.

그대로 목을 향해 검을 겨눌 생각이었지만, 에르헨은 검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휘익!

그 순간, 붉은 오라가 허공을 가르며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어……?”

에르헨의 입에서 얼떨떨한 신음이 낮게 흘러나왔다.

투욱.

무언가 그의 발치에 가볍게 떨어졌다. 바로 방금 전까지 태황제를 잡고 있었던 자신의 팔이었다.


“으…….”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스르륵, 목이 먼저 옆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지러지는 시야 속에 자신을 무감하게 바라보는 위너드 황태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작은 소리와 함께 카펫으로 떨어져 내린 에르헨의 눈에 비친 건 마치 줄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쓰러지는 자신의 몸이었다.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 * *

에르헨 황제가, 아니, 황제 행세를 하던 에르헨이 죽었다.

잘린 목에서 흘러내린 피로, 붉은 카펫이 금세 축축해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문제 삼지 않았다.

사람들의 신경은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에 쏠려 있었다.


“다들 비켜라……! 어서 내 아들을 안아 봐야겠으니……!”

에르헨에게서 벗어난 태황제는 평소의 위엄과 체통을 다 집어던져 버렸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그리운 아들의 얼굴뿐이었다.

하지만 신하들은 감히 그 명령을 지키지 못했다.


“위너드 님!”

“황태자 전하……!”

다들 태황제와 마찬가지로, 잊고 있었던 그의 이름을 연신 외치며 달려 나갔다.


“황태자 전하, 부디 무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기사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무기를 바닥으로 내던진 채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가장 재빨리 움직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드레스 자락이 그의 곁에서 무릎 꿇은 기사들의 차갑고 무거운 갑옷을 감싸듯 스치고 지나갔다.


“위너드……!”

붉은 태양이 그의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위너드는 눈을 꼭 감고선, 그 따사로운 빛을 부서져라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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