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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자신이 없어 (154/173)


154화. 자신이 없어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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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넌은 그 뒤에 바로 돌아갔다.

갑자기 찾아온 것도 죄송한데, 더 이상 폐를 끼칠 순 없다는 말을 남긴 채.

나는 차마 그를 잡을 수 없었다.

그저 오랫동안 현관에 서서 그가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까 있었던 일을 찬찬히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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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조사 중 또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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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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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한 해적들에 대한 조사 말입니다.’

 
레어넌은 ‘해적들’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발음했다. 마치 안심하라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과 눈빛이었다.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다정하고 상냥한 단장님이었다.

그의 열렬하고 진심 어린 고백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확실히 거절해야만 했다.

내 마음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나는 크게 심호흡하고는 결국 몸을 돌렸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서 기다리던 조이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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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은 잘 가셨어요? 별일 없으신 거죠?”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를 향해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조금 쉬고 싶으니 방해하지 말아 달란 말을 남기고 자리를 피했다.

아직 잠자리에 들 시간은 아니었지만, 신경을 많이 쓴 탓인지 조금 피곤했다.

문을 열자 깨끗이 정돈된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눈처럼 새하얗고 푹신한 침구에 바로 뛰어들기 위해 걸음을 옮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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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발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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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로렐라.”

바로 오늘도 여전히 눈부시게 화려한 차림을 한 위너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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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녕.”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건만,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안내자인 위너드는 이제는 당연한 얘기지만 내게 일어난 일을 전부 다 알고 있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정도였지만, 나는 그래도 아주 작고 사소한 이야기라도 위너드와 공유했다.

아까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도 당연히 말해 줄 셈이었다. 레어넌 단장님이 아무래도 ‘데우스 에번’을 의심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데.

……하지만 머릿속에 자꾸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 레어넌 단장님에게 고백받은 걸…… 봤을까?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당혹감이 차올랐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위너드의 눈을 피하고 말았다.

그와 각별한 사이가 되고 난 이후, 내가 무척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깜빡했다는 걸 깨달았다.

있는 일 없는 일까지 모두 아는 남사친이 연인이 되었을 때는, 감수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거였다.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있었던 숱한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네가 부러지는 바람에 레어넌과 입술을 맞대고 말았던 일이라든지, 고원에서 목욕 중이던 카셀을 껴안고 함께 물에 뛰어든 일, 아파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펠리어트에게 입으로 약을 먹인 일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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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수도 없이 적립해 온 흑역사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달아오른 뺨을 마구 문질렀다.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으면 고개를 못 들 정도로 창피한, 그야말로 별의별 짓을 다 했는데 하필이면 그걸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을 좋아하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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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민망함이 차오른 나머지 멍하니 서 있기만 하니, 위너드가 이상하다는 듯 한쪽 눈썹을 슬쩍 치켜올렸다.

홀로 가슴 졸인 게 무색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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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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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데…… 어디 아픈 거야?”

심지어는 다정한 눈빛으로 걱정스레 이마를 짚어 주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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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아프긴.”

나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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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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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럼.”

하지만 위너드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곧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 주었다.

혹시…… 위너드는 아무렇지 않은가? 내가 너무 쓸데없이 신경을 쓰는 걸까?

다시 한번 그를 살피자 아름다운 초록빛 눈동자가 시선을 맞춰 왔다. 미소 띤 얼굴에는 평소처럼 여유가 가득했다.

그 태도를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래……. 나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딱히 이런 일로 질투하는 타입은 아닌가 봐.

하긴. 그는 나만큼이나. 아니, 나 이상으로 주식에 진심인 사람이니까.

지금도 여전히 카셀과 펠리어트, 그리고 레어넌을 좋아해 주는 주주들이 있지 않나.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사적인 감정은 철저히 분리하는 거겠지.

나였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을 것 같은데. 새삼스레 그가 어른스럽고 더 멋져 보였다.

안심되어서 그런지 목이 말랐다. 나는 위너드에게 잠시 기다려 보라 말하고는, 얼마 전 방에 새로 들인 장식장 쪽으로 갔다.

거기에는 얼마 전 선물로 받은 와인이 놓여 있었다. 사그랑 별궁에서 만났던 벨레드리안 귀족이 선물 해 준 거였다.

벨레드리안 제국에서 아주 소량만 생산한다는 와인인데,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워낙 호평이 자자해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환상의 술이라나.

언젠가 위너드와 함께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는데, 지금이 적기 같았다.

와인이라도 한 잔 마시며 한숨 돌리고 나면 좀 진정되겠지.

나와는 달리 태연한 그 앞에서 혼자 계속 허둥지둥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조이에게 받아 온 잔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코르크 마개를 연 뒤 먼저 그에게 한 잔을 따라 건넸다. 그러고는 내 잔에도 따른 뒤, 잔을 살살 돌려 가며 향부터 맡았다. 과연 범상치 않은 향기로운 냄새가 주변에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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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단하다……!”

나는 연신 감탄사를 남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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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돈을 줘도 구하기 힘들다는 환상의 와인이라더니 정말로…….”

그런데 그때 벌어진 광경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크게 떴다.

와인을 음미하기는커녕 잔을 순식간에 비운 위너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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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더듬더듬 입술을 여는 나와는 달리 그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눈빛이었다.

혹시 목이…… 말랐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그걸 물처럼 마시다니!

하지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위너드는 내 앞으로 빈 잔을 내밀었다.

잔을 채워 주니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것도 몇 번이고.

그러자 어느새 와인이 훅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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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술 가지고 쩨쩨하게 굴려는 건 아니지만, 이건 환상의 와인이라고 불리는 건데!

결국 느긋하게 음미하며 맛보기를 포기한 나는, 위너드를 따라 급히 와인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 * *

연거푸 와인을 들이켰지만 타는 듯한 갈증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했다.

레어넌이 로렐라를 품에 안은 채 뭐라고 속삭이던 광경이 위너드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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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이지만…… 불안했어.’

혹시나 로렐라의 마음이 흔들릴까 봐.

그녀에게 고백을 건네는 레어넌 단장의 진심 어린 눈빛과 표정은 솔직히 같은 남자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제국을 호령하는 용맹한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심장을 꺼내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열렬히 마음을 전하는데 과연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곤 해도 절대로 빼앗길 수는 없었다. 위너드 역시 온갖 힘을 다해 그녀를 사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마음이 변했으니 놓아달라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위너드는 머릿속으로 아주 잠깐 레어넌 단장과 마주 보며 웃고 있는 로렐라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손등에 퍼런 힘줄이 돋을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저 찰나의 상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무엇으로도 꺼뜨릴 수 없는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로렐라가 텅 비어 버린 와인 병을 허탈한 듯 들여다보는 틈을 타, 위너드는 무섭게 굳어진 얼굴을 재빨리 쓸었다.

사실 레어넌 베르하르트뿐만 아니라 그 애송이 길드장 녀석이나 펠리어트 공작도 마찬가지다. 틈만 나면 로렐라의 마음을 얻으려는 놈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곤 있지만, 로렐라가 그들과 가까이할 때마다 사실은 속이 타들어 가다 못해 아예 시꺼먼 숯덩이로 변할 지경이었다.

평정심 따위는 이미 가루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지만 앞으로도 티는 내지 않을 생각이다.

로렐라는 최선을 다해 주인공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겨우 이런 일로 신경 쓰게 만들 수는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안내자 아닌가. 후보와 주위 인물들의 일에 마구잡이로 개입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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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까지 질투가 심한 인간이었을 줄이야.’

처음 알았다.

조금 재수 없을진 몰라도,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데 더 익숙했으니까.

부모님과 황실 신하들, 전 제국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를 칭송했고, 아낌없이 사랑을 퍼부었으며, 어딜 가든 애정 어린 눈빛이 따라다녔다.

심지어 주인공 후보였을 때도,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모든 주주를 빠짐없이 열광시키지 않았나.

그래, 그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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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와인. 내 환상의 와인이…….”

입술을 내민 채 뾰로통하게 중얼거리는 로렐라를 바라보며, 위너드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네 매력과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내가 얼마나 피가 마르는지 너는 모르겠지.

도통 통제가 안 되는, 날 것에 가까운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밀려들어 절 괴롭힌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이 마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했다.

위너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로렐라의 앞에 놓인 와인잔을 들어 다른 곳으로 치웠다. 행여나 유리잔이 깨져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멀쩡해 보였지만 그녀의 눈빛이 살짝 풀려 있었다. 아무래도 저를 따라 급히 술을 들이켜는 바람에 취기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잔에 이어 병까지 모두 로렐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 둔 위너드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잡으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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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쉬어.”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순식간에 잠옷 차림이 된 로렐라가 폭신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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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예전에도 똑같은 일을 해 준 적이 있는데도, 로렐라는 또다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감탄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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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

길드원들과 쉴 새 없이 연락을 취하느라 바빴던 데다가, 아델리움에서 벌어지는 일에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멍하니 두 눈을 깜빡이는 그녀를 다정한 손길로 토닥여 주고, 그대로 뒤로 돌려던 찰나였다.

이불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온 손이 그의 소매를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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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너드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입술을 멈췄다. 루비처럼 반짝거리는,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눈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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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별로 안 피곤한데…… 벌써 가려고?”

그녀는 슬쩍 몸을 일으키더니, 어리광을 피우듯 배시시 귀엽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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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그 순간, 위너드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감정이 커다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동안 참고 인내했던 모든 것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질투도, 안내자로서의 자각도 모두 녹아 사라졌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눈빛에. 저 가냘픈 손짓 한 번에.

위너드는 그대로 로렐라를 향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가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고 그 손을 맞잡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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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

그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지독하리만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때문인지, 로렐라가 손을 잡으려다 말고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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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은 달라. 그러니까 잘 생각하고 잡아야 할 거야.”

말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하는 순진한 눈망울이 그의 마음을 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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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좋아해. 그리고 너도 날…… 좋아한다고 했고.”

나직한 고백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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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억누를 자신이 없어.”

이토록 사랑스러운 널 앞에 두고.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깐 로렐라의 풍성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그저 그뿐인데도, 위너드는 어디선가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 온몸을 감싸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숨 막힐 듯한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서 더더욱 아무것도 없는, 둘만의 세상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위너드는 조용히 이를 사리물었다.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그는 또다시 로렐라를 향해 완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유 따윈 조금도 없으면서, 너무나도 여유로워 보이는 그런 미소를.

다시 한번 어깨를 토닥여 주고는, 조용히 몸을 돌리던 그때였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손을 꼭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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