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나는……
(148/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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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나는……
2022.11.30.
“샬로네즈!”
아연실색한 라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앞의 이 근사한 황태자는,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 주는 수밖에.
아니나 다를까. 관심 없다는 듯 아래로 내리깔고 있던 위너드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설마…….”
신음하듯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샬로네즈가 참지 못하고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무얼 믿고 그리 자신만만한 건가 싶었는데.”
투명한 화면 너머로 흔들리는 눈빛을 확인한 순간, 그녀는 조용히 창을 껐다. 입가에는 어느새 의기양양한 미소가 피어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토록 짜릿한 기분을 맛본 건 처음이었다.
위너드 황태자는 이걸 어떻게 손에 넣었냐고 묻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몸을 파르르 떨어 대는 라그에게 시선을 돌린 것을 보면 말이다.
징계를 받아 끔찍하게 변한 그녀의 몰골을 살피는 눈이 몹시 날카로웠다.
“주인공이 되는 건 저예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주식 경쟁에 뛰어드는 것보다, 훨씬 더 확실하고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으니까요.”
샬로네즈는 거만한 미소를 띤 채 당당히 턱 끝을 치켜들었다.
“게다가 이 무기를 어떻게 활용하면 가장 효과적인지도 알고 있죠. 전……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답니다.”
그녀는 일부러 ‘뭐든지’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발음했다. 명단을 손에 넣는 것은 물론, 다른 후보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샬로네즈! 네가 어떻게 이런……!”
라그가 격노하여 소리쳤다. 마지막까지 마음속에 아주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던, 샬로네즈에게 걸었던 기대가 모두 사그라들었다.
“그렇군.”
위너드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차분해졌다. 살짝 굳었던 표정도 금세 원래대로 돌아갔다.
“다른 후보에게 로렐라 메이레드를 공격하라 시킨 것도 결국은 너였군.”
샬로네즈는 그에게 가만히 시선을 맞춘 채 아름답게 미소 지었다.
“덕분에 전하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그 말에 위너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턱을 매만지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했다.
비밀을 알게 된 사람치고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위엄 서린 황태자로서의 면모가 느껴져 좋긴 하지만, 어쩐지 조금 아쉽다고 생각한 그때였다.
“결국 넌 다른 사람의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네.”
“……네?”
단정한 입술을 비집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샬로네즈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전하. 지금 뭐라고…….”
“내 말이 틀렸나? 이 명단도 안내자가 희생해서 얻은 거잖아.”
위너드는 가차 없이 말을 이었다.
“나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다른 후보가 대신 희생한 덕분이고.”
샬로네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래도 너무 설명이 부족했었던 걸까.
그녀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으리라.
“전하, 제가 갖고 있는 힘은…….”
샬로네즈는 더듬더듬 입술을 열었다. 언제나 나긋나긋하기만 했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넌 도대체 주인공이 뭐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조소였다.
“목적을 이루는 것만큼이나 정정당당한 과정도 중요한 법이라는, 그런 고루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히 해야겠군.”
차가운 비웃음보다 더욱 뼈저린 것은 냉정한 말이었다.
“그냥 넌,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 외에는 그들을 이길 방법이 없는 사람일 뿐이야.”
서늘한 목소리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온몸에 꽂혔다.
“뭐, 뭐라고요……?!”
샬로네즈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그녀가 깔고 앉아 있던 정복 재킷이 옆으로 흘러내려 이내 흙바닥 위로 풀썩 떨어져 내렸다.
“어떻게 감히 내게 그런 말을……!”
누구나 칭찬을 아끼지 않던, 아름다운 호박색 눈동자에 시뻘건 핏발이 섰다.
“지금 그 말, 그대로 돌려 주지.”
하지만 위너드는 태연자약하게 맞받아쳤다.
“감히 내게 그런 별 볼 일 없는 후보 따위의 안내자가 되어 달라고?”
담담한 말투와 표정이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더없이 싸늘했다. 마치 이제 그만 달콤한 허상에서 깨어나라는 듯이.
노여움에 가득 찬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위너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너처럼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등바등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는 씨근덕거리는 샬로네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미 주인공으로서 완성된 사람이 있지.”
조각처럼 잘생긴 옆얼굴 위로 어느새 떠오른 찬란한 태양 빛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난 그 사람이 누군지 벌써 알고 있어서 말이야.”
그 순간, 그의 눈매가 마치 황홀한 꿈을 꾸듯 부드럽게 휘어졌다.
입가에도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그지없다는 듯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방금까지 경멸을 담아 자신을 바라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얼굴.
그리고 그것이 샬로네즈가 본 위너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황태자는 어느새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석상처럼 굳은 그녀를 홀로 남겨 둔 채로.
* * *
‘난 분명히 의뢰받은 대로 했어.’
도대체 누가, 어떤 의뢰를?
하지만 몇 번이나 물어도 카셀은 그저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새벽 내내, 로렐라는 침대에 우두커니 걸터앉아 카셀이 쥐여 주고 간 안경알 하나를 말없이 만지작거렸다.
생각에 잠겨 있느라 거의 잠도 이루지 못했지만, 피곤한 줄도 몰랐다.
이윽고 살짝 벌어진 커튼 틈으로 옅은 빛이 스며들었다.
동이 트고 있었다.
카셀이 알려 준 시각이 다가온 것이었다.
로렐라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안경알을 눈에 가져다 댔다.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지만,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거라고는 그저 익숙한 방 안의 풍경뿐이었다.
“대체 이걸 왜 보라는 거지……?”
로렐라가 중얼거린 그 순간이었다.
안경알에 무언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낯익은 사람이 나타났다.
“샬로네즈……?”
무릎 위로 안경이 툭 떨어졌다.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렸다. 자신이 본 광경이 믿기지 않아, 로렐라는 두 손으로 눈을 세게 문질렀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커다란 혼란이 찾아왔다.
지금 누군가가 이것과 짝을 이루는 다른 안경알을 낀 채로 샬로네즈를 만나고 있는 건가.
그 사람이 카셀이 말한 ‘의뢰인’인 거야……?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뚫고, 방금과 똑같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누가? 어째서?
답은 하나뿐이었다.
‘이걸 끝까지 확인하면 알게 되겠지.’
로렐라는 다시금 침착하게 안경을 들었다.
‘누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금방 나왔다.
누군가가 샬로네즈를 위해 직접 벗어 벤치 위에 친절히 깔아 준 화려한 정복 재킷 덕분이었다.
얼핏 보이는 손에 낀 장갑도 무척이나 눈에 익었다.
“……위너드.”
그 이름을 직접 소리 내어 말한 순간, 안경 속으로 샬로네즈의 얼굴을 처음 본 것보다 더욱 거센 충격이 다가왔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서 오로지 입술만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위너드가 왜 샬로네즈를…….
좀처럼 믿기지 않았지만, 현실이었다.
대체 왜 만난 걸까. 혹시 두 사람이 뭔가 이전에 접점이라도 있었던가?
무릎에 가볍게 올려놓았던 손은 어느새 드레스 자락을 거세게 틀어쥐고 있었다. 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안경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집중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지는 모른다. 그저 위너드와 같은 시선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니까.
그러나 은밀한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듯, 두 사람의 거리는 무척이나 가까웠다.
그렇기에 로렐라의 눈에는 더욱 생생히 보였다.
샬로네즈가 얼마나 황홀한 시선으로 위너드를 바라보는지, 또 그를 향한 미소가 얼마나 밝은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긋나긋하게 움직이는 손끝에도 노골적인 유혹이 가득 담겨 있었다.
왕녀는 무어라 말을 이어 가던 중, 뒤에 서 있는 흉측한 괴물 같은 존재를 향해 한 차례 흘끗 시선을 던졌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자신만만한 눈빛도 흐려졌다.
그 미묘한 변화를 눈치챈 로렐라의 눈에도 긴장이 스민 그때였다.
왕녀가 눈앞에 커다란 시스템 창을 띄웠다.
“저건……!”
그 속에 나열된 이름들을 본 순간, 로렐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 *
노크 소리와 함께, 조이와 하녀들이 아침 시중을 들기 위해 찾아왔다.
줄곧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로렐라의 눈동자가 그제야 벽에 걸린 시계로 향했다.
그녀는 일부러 피곤하다는 듯 기지개를 켜고는, 방해받지 않고 쉬고 싶다는 말로 모두를 물렸다.
두꺼운 커튼 덕분에 아직도 어두컴컴한 방 안.
로렐라는 여전히 침대 가장자리에 넋이 나간 듯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머릿속에는, 새벽녘 보았던 광경들이 조각조각 부서져 파도처럼 밀려들기를 반복했다.
……샬로네즈도 주인공 후보였어.
머릿속에 그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도 명단을 가지고 있는 후보.
비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분명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아델리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과 저를 공격했던 레이나 아벤도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줄곧 어긋나 있던 퍼즐이 비로소 맞춰지는 듯했다.
로렐라의 붉은 눈에 이채가 서렸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이 있었다.
천천히 손을 펴자, 손바닥 쪽에 빨갛게 파고 들어간 손톱자국이 보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것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위너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작은 바람이 일었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그는 창문가에 팔짱을 낀 채 비스듬히 서 있었다.
“불렀어?”
언제나처럼 능청스러운 목소리도, 장난기 서린 미소를 띤 얼굴도 변함이 없었다.
“…….”
로렐라는 그런 위너드를 그저 말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무거운 침묵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그를 천천히 훑었다.
특히 재킷을 갖춰 입지 않은 차림새에,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그녀와 눈을 마주친 그 순간.
위너드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
……화가 났구나.
로렐라의 눈동자에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센 분노가 담겨 있었다.
샬로네즈가 접근했을 때, 위너드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평범한 주인공 후보는 아닐 거라고 판단했다.
나쁜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그로선 그걸 어떻게든 로렐라에게 알려 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로렐라를 위한 일이라도, 자신의 안내자가 다른 후보와 몰래 만나는 걸 반길 사람은 없을 테니 화를 내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 또한 자신이 감수할 몫이었다.
위너드는 천천히 로렐라 곁으로 다가갔다. 겉보기엔 평소와 똑같았지만, 한 발 한 발 내딛는 긴장한 걸음걸이는 숨길 수가 없었다.
이윽고 침대 가까이 다가온 위너드가 로렐라 옆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로렐라.”
그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를 부른 그때였다.
“……너.”
작고 흰 두 손이 그의 셔츠 깃을 거세게 틀어쥐더니, 그대로 뒤로 밀었다.
위너드는 순순히 밀려 주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단정한 입술 사이로 화가 서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옷깃을 틀어쥔 채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노여움 담긴 시선을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었다.
“글쎄.”
위너드는 모르는 척 되물었다.
“뭐 하는 짓일까?”
평소처럼 여유롭게 웃고 싶었으나,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고,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정작 그녀의 분노 어린 시선을 받으니 평정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위너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로렐라, 나는…….”
어떻게든 그녀를 위해, 그리고 또 저를 위해 뭐라도 말해 보려던 찰나였다.
“안 돼. 말하지 마!”
로렐라가 급히 소리쳤다.
“제발 부탁이니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러다 혹시…….”
분노만이 가득하던 로렐라의 눈에 두려움이 어렸다. 비록 끝까지 말을 잇진 않았지만 그녀가 무엇을 겁내는지 알고 있기에, 위너드도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안내자가 지켜야 할 규칙을 걱정하는 거겠지.
줄곧 말없이 위너드를 바라보던 그녀가 결국 스르륵 고개를 숙였다.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는 거야? 대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고, 셔츠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운 후보야? 네가 그런 일을 해야 할 정도로?”
혹시 그녀가 화난 건……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쪽이었을까.
“아니야, 로렐라.”
위너드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너는 누가 뭐라 해도 최고의 주인공 후보야. 그리고 나는…….”
줄곧 시선을 피하기만 했던 위너드가,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녹색 눈동자에는 오롯하게 로렐라만이 비쳤다.
“그런 너에게 진심으로 반했거든.”
그 말에, 붉은 눈동자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다.
“지금 뭐라고…….”
적잖이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멈추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멈출 수 있다. 지금이라면, 자연스럽게 장난인 척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위너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나는…… 어느샌가부터 널 좋아하게 되었어.”
그녀가 주인공이 되기 전까지는 숨겨 놓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리고 또 조금 더 근사하게 고백하고 싶었는데.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 주고 싶은 법이니까.”
로렐라는 여전히 위너드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길게 늘어트린 붉은 머리와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옅은 홍조가 피어난 두 뺨과 도톰하고 붉은 입술까지.
위너드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두 눈에 새겼다.
세상에 그 어떤 존재보다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만의 주인공을.
“나, 나는…….”
이윽고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이 열렸다.
“나는…… 싫어.”
하지만 귓가에 울려 퍼지는 심장 소리를 뚫고 내리꽂힌 건, 잔인한 대답이었다.
이런 식으로 고백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으니, 당연히 이런 대답 또한 생각지 못했다.
“나는…… 싫단 말이야.”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래, 그렇군.
……그녀는, 아니구나.
두 사람의 마음이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안내자라는, 누구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 그저 제멋대로 품은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산산조각나는 것만 같았다. 그 지독한 쓰라림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위너드가 두 눈을 질끈 감은 그때였다.
“좋아하는 남자가 나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건.”
떨림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귓가에 달콤하게 스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