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 (141/173)


141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
2022.11.05.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는 손님들 얼굴을 바라보며, 레어넌은 깔끔히 비운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몸을 곧게 편 채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었지만, 그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단 하나, 열어 둔 창문으로 불어온 바람에 흔들리는 금빛 머리카락뿐이었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벨레드리안에서 온 자작 영애가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몰래 하다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상대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레어넌은 입꼬리를 부드럽게 위로 끌어 올렸다. 그럴수록 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홍조는 더더욱 붉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곧바로 시선을 거뒀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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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먼 길을 달려오시느라 피곤하시지요? 괜찮으시다면 만찬 전까지 잠시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

벨레드리안 태황제에게 로렐라가 살갑게 말을 건넸다. 줄곧 그녀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던 레어넌은, 그제야 시계를 바라보았다.

가볍게 차 한잔 마셨을 뿐인데도 어느새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긴 시간 마차를 타고 여기까지 온 데다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젊은 나이가 아닌 손님들은 피로함을 느낄 법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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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 주어 고맙군, 레이디 로렐라. 아쉽지만, 그리하지. 그러지 않아도 오랫동안 마차를 탄 터라 황후에게 무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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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첫날이니만큼 너무 무리하시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제가 방까지 안내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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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괜한 수고를 끼치는 건 아닐지 모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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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폐하. 오히려 제가 그러고 싶어 여쭈어본걸요. 만찬 때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나누길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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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나 역시 만찬이 무척이나 고대된다오. 즐겁게 기다리지.”

정성을 다해 손님을 응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특사로서 손색이 없었다.

벨레드리안 태황제도 그런 로렐라가 어여쁜지 만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레어넌의 눈빛이 어느새 부드럽게 변했다. 자작 영애에게 기계적으로 지어 보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의 마음속에 드리운 그림자는 좀처럼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태황제 부부와 그들을 보필하는 시종들, 그리고 로렐라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머지 손님들과 특사들도 뒤를 따라 차례로 티 룸을 빠져나갔다.

레어넌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마지막 손님이 나갈 때까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어느새 텅 빈 방 안에는 그만 남게 되었다.

생각에 잠긴 듯 레어넌은 호수처럼 파란 눈을 내리깔았다.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던 얼굴이 점차 굳기 시작했다.

그는 벨레드리안 태황후가 앉았던 자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물결치는 갈색 곱슬머리, 그리고 한여름의 넝쿨처럼 진녹색을 띤 아름다운 눈동자.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간 공식 석상에서 몇 번이고 만난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일까.

오늘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기억 속에 묻어 놓았던 어떤 남자가 떠오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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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에번.”

그저 딱 한 번 고용했을 뿐이라는 로렐라의 외출 시종인 그는 바자회에서 후작이 시계를 도난당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 따로 떠올린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잊은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남자는 로렐라와 관련이 있는 자였다.

……그러니 더욱 잊을 리가 없지.

레어넌은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남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자의 목소리와 말하는 방식, 제 앞에 서서 미소 지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한데 그러면 그럴수록, 혼란은 가중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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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가능한 건가?’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물론 세상에 닮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분위기와 말투까지 비슷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심지어 한 명은 무려 제국의 황족이고 다른 한 명은 신분조차 불분명한 수상한 남자인데.

게다가 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에르헨 황제의 과거에 대한 의구심이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일전에 에르헨 황제를 떠올리다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변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의식해서 황제에 대한 작은 기억이라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심지어 에르헨 황제를 알 만한 주위 사람들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 보기도 했지만,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말문을 쉬이 열지 못했다.

벨레드리안 제국과 특히 친분이 깊은 사람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홀린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두 눈을 끔뻑거리던 그자의 얼굴을 떠올리니 또다시 머리가 아파 왔다.

해결할 수 없어 뒤로 미뤄 두었던 의문이, 오늘 태황제 부부를 직접 마주하고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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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밖에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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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로렐라가 특사로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레어넌은, 또다시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일에 대한 의욕도 좋지만 혹시 자리에서 막 일어난 그녀가 다시 쓰러지지는 않을까 해서.

만약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면 특사단 결정권자의 권한으로 즉시 일에서 제외할 생각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휴식을 취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욱 세심히 그녀를 살폈다. 그런데…….

그녀는 어쩐지 평소와 조금 달라 보였다.

사그랑에 온 이후 내내 조금 들떠 있는 듯했고 동시에 긴장되어 보였으며, 때론 초조함이 느껴졌다.

첫 사절단 임무를 맡아 아델리움에 가게 되었을 때도 그랬지만, 그때와는 무언가 결이 달랐다.

……그래, 마치 태황제 부부를 만나기를 무척이나 고대하는 사람 같았다.

왜일까. 그들과는 아무런 접점도 없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투성이인 일들뿐이다.

덕분에 묘하게 곤두선 신경이 좀처럼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레어넌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문 쪽을 향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었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자 성기사단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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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시겠습니다, 단장님.”

얼른 표정을 갈무리한 레어넌이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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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적 사건에 대한 보고서도 방으로 함께 가져다주겠나. 가장 최근에 발견된 내용까지 기록된 걸로.”

그 말에 부하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서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방으로 돌아가서도 업무를 보려는 상관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레어넌을 보필하는 성기사단원들 중에서도 무척이나 그와 가까운 사람 중 하나였다.

따라서 그가 이 일에 왜 이렇게까지 매달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요즘 세실리카에 떠도는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것도.

좋아하는 여자가 목숨이 위험할 만한 상황에 빠져 있었으니,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시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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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잠깐 쉬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렇기에 감히 이런 제안을 해도 될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으나, 그는 솔직하게 걱정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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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랑에 오기 직전까지 잠도 거의 주무시지 못하고 일에 몰두하셨잖습니까. 이러다 건강을 해치실까 우려됩니다.”

레어넌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부하를 바라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서늘하게 가라앉은 시선에 부하는 그만 위축되고 말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발 물러났다. 역시 주제넘은 짓을 했다는 후회도 함께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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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하지.”

각오했던 엄한 질책 대신 돌아온 건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부하는 두 눈에 힘을 바짝 준 채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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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명하십시오. 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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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장에게 전갈을 좀 보낼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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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바로 전서구를 띄우겠습니다. 무엇을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단장님이 부단장님을 급히 찾는 일은 종종 있었기에 이상할 게 없었다.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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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도록.”

부하의 곁으로 다가가 몸을 기울인 레어넌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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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의 시계 도난 사건에 연루되었던, ‘데우스 에번’이란 자를 조사해 달라고 전해.”

지금 맡은 일만 해도 산더미라 매일 몇 시간도 채 주무시지 못하는 단장님인데, 설마 또다시 일을 늘리려 하시는 걸까?

걱정은 앞섰지만 명령이기에 곧바로 대답하려던 부하가 순간 멈칫했다.

데우스 에번이라는 이름이 묘하게 귀에 익은 탓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부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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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차례 조사하셨던 자 아닙니까……? 바자회 때 일어난 도난 사건으로…….”

그는 레어넌을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사람인 만큼, 시계 도난 사건 또한 함께 조사했었기에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레어넌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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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조사는 사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사건과는 상관없이, 그자가 대체 누구인지 알아야겠어.”

순간 그의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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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필요하다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였다. 순간 부하는 어깨를 흠칫 떨고 말았다. 이처럼 냉정하게 가라앉은 표정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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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받들겠습니다.”

서슬 퍼런 기운에 부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 *

첫날의 만찬에 이어 정원에서 열린 야외 음악회,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가지는 티 타임까지.

즐거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오늘은, 레어넌이 벨레드리안의 전 기사단장님을 모시고 외출하는 날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성기사단 지부에, 전 기사단장의 친우가 있어 그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레어넌과도 인연이 깊은 사람이라, 그들은 사그랑에 도착하기 전부터 미리 이 일정을 계획했다.

게다가 벨레드리안의 전 기사단장은 퇴임 후에도 여전히 기사단 일에 두루 관심이 많았다.

친구를 별궁으로 초대하는 대신, 직접 만나러 가겠다고 한 것도 이번 기회에 세실리카의 성기사단 지부를 둘러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안락한 소파와 진귀한 술이 잔뜩 준비된 호화로운 룸에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태황제와 태황후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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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삼삼오오 모여 가벼운 카드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향기로운 술을 마시는 신하들을 바라보며 태황제가 흐뭇하게 웃었다.

어쩌면 ‘골치 아픈 정사는 잠시 접어 두고, 그저 푹 쉬고 싶다’는 그의 요청이, 어쩌면 그동안 고생했던 신하들을 위한 게 아니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긴장으로 뻣뻣해진 눈가를 남몰래 문질렀다.

긴장되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쯤 내가 부탁한. 아니, 기획한 ‘티 타임’ 준비가 한창일 테니까.

위너드가 나타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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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어디 불편한 데가 있거나 힘들진 않소?”

태황제가 곁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태황후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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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폐하.”

그러자 그녀는 손에서 책을 놓고 남편에게 눈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노부부의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처음 태황제의 말을 듣고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혹시 태황후 폐하께 어디 편찮은 곳이 있으신 건지 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태황후를 무척이나 아끼는 태황제의 말버릇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태황제 부부의 금슬이 무척 좋다더니. 곁에서 지켜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불현듯 ‘두 분이 아들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려서 오히려 다행’이라던 위너드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아서 괜히 가슴이 아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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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 님. 아직도 친구분께 답이 오지 않았나요? 첫날 입으신 드레스가 너무 예뻐서, 의상실을 꼭 알고 싶어요.”

마음을 진정시키려 차를 한 모금 마시는데, 그새 친해진 벨레드리안의 귀부인 한 명이 내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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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안타깝게도 지금 친구가 멀리 가 있어서…….”

다들 첫날 입었던 드레스에 대해 하도 궁금해하기에, ‘친한 친구에게 선물 받았다’고 얼추 둘러댔었다. 그럼 의상실이 어딘지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까.

설마 친구에게 물어봐 달라고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굴 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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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얘기해 봐요. 사실 그 친구분, 근사한 신사죠?”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무어라 변명할 틈도 없이,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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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신사분이죠. 어느 영애가 드레스 보는 눈이 그렇게 높았다면, 세실리카 사교계에 소문이 났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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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정말이라면 분명 로렐라 님께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계실 거예요. 아닌데 설마 그렇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선물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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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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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도 알고 있는 분이 아닐까요? 그런 고급스러운 선물을 거리낌 없이 하시는 걸 보면, 틀림없이 고위 귀족이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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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진짜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녀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순간,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시선이 비수처럼 뒤통수에 날아와 박히는 듯했다. 주범은 바로 세실리카의 호위 기사들이었다.

……바로 나와 레어넌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황궁 기사와 성기사단원들.

‘어떻게 레어넌 단장님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냐’는 환청까지 들릴 정도로 원한 어린 시선이었다.

……아, 기 빨려.

사람 말을 좀 끝까지 들어 줬으면…….

그리고 제발 그만 좀 쳐다봤으면…….

심지어 태황후까지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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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가 준비했다고 할걸. 괜히 친구가 선물해 줬다고 말했나 봐.’

자책에 빠져 괜스레 손가락만 꼼지락대던 그때였다.

문밖에서 정중한 노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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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로렐라 님.”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어서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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