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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불길한 기분 (120/173)


120화. 불길한 기분
2022.08.24.


등에서부터 팔을 타고 자잘한 소름이 돋았다.


“느낌이…….”

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위너드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안 좋다고?”

“그래.”

위너드가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달리 예민하고 날이 선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능청스럽긴 해도, 실없는 소리를 함부로 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이번 일이 정말 심상치 않은 상황일 수도 있다는 건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눈만 마주치던 그때.


“도착했습니다, 로렐라 님.”

바퀴가 멈춘 동시에,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나는 위너드와 더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하지 않나 싶어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몸을 일으켰다.

내가 먼저 들러 달라고 부탁했는데, 내리지 않고 안에 앉아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니까.

마차 밖으로 나서기 전 위너드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더니 곧 나를 따라 내리는 게 아닌가.

함께 내린 그를 보고 마부와 호위가 깜짝 놀랐으나, 위너드가 작게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돌아왔다.


“저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을까요?”

“그래 주겠어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꾸벅 인사를 건네는 마부를 뒤로한 채 몸을 돌렸다.

살짝 비탈진 대로가 눈에 들어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마차는커녕, 길에는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폈다.

오른쪽에는 돌로 만든 담벼락이 세워져 있었고, 왼쪽에는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심겨 있었다.

가로수 너머로 보이는 들판에는 집터처럼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저 멀리 길 끝에는 커다란 탑이 위용을 자랑했다.

확실히 인적이 뜸하고, 조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기지만 그뿐이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길이었다.

에라주리스 백작은 이 담 너머에 작은 염료 공장이 하나 있다고 했다.

지금은 한밤중이라 아무도 없지만, 그때는 날이 저물기 전이라 공장에 대여섯 명의 직원이 남아 있었다던데…….

만약 신변의 위협을 느낀 바이올렛 영애가 소리라도 질렀다면 충분히 들릴 만한 거리다. 그런데도 아무도 비명 같은 건 듣지 못했다니.


“……정말 희한하네.”

왕실뿐만이 아니라, 백작가에서도 수많은 사람을 고용해 딸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들었다.

돈을 그렇게나 많이 썼다는데 아직도 작은 단서조차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의아하게만 느껴졌는데, 역시 현장에 직접 와 보니까 더더욱 이상했다.


“이제 그만 가자. 밤이 늦었어.”

줄곧 침묵한 채 곁을 지키던 위너드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거기 멈춰라!”

저 멀리서 험상궂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고개를 돌리니, 횃불을 든 사람 여럿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 *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여러 명의 병사였다. 다들 딱딱하고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며, 검을 차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풍겼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여느 병사들과는 달리 커다란 방패 문양이 새겨진 붉은 망토를 두른 한 남자였다.

그는 상당히 젊었고, 또 절로 눈이 갈 만큼 잘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눈빛만큼은 살벌하다 못해 살의까지 느껴질 정도라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고 말았다.


“무례한 행동은 그만두십시오. 왕실의 귀중한 손님들이십니다.”

호위가 차고 있던 견장이 달빛에 드러났다. 그곳에 새겨진 문양을 본 병사들의 얼굴이 일순 창백해졌다.

하지만 붉은 망토를 두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곁에 선 병사에게 고갯짓했다.

병사가 쭈뼛쭈뼛 앞으로 걸어 나왔다.


“왕궁 소속이라는 확인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찌 그런 실례를!”

호위와 더불어 위너드 또한 미간을 구기며 낮게 혀를 찼다.


“……확인?”

갑자기 길을 막은 데다가, 다짜고짜 신분을 확인하려 드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그를 얼른 잡았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진짜 금박을 두른 고급스러운 양피지를 꺼냈다.

이 사람의 신분을 보증한다는 짧은 글귀 밑에는 아델리움 국왕의 친필 서명이 있었고, 그 옆엔 은을 녹여 만든 왕실의 인장이 박혔다.

공식적으로 왕실의 초청을 받아 왕국을 방문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서류였다.


“저는 세실리카에서 온 사절단입니다. 일정 중에 꼭 찾아뵐 분이 있어서,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이었어요.”

“가, 감사드립니다.”

병사는 허리를 낮게 숙인 채 내게 허둥지둥 양피지를 돌려주었다.


“죄송합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줄곧 말이 없었던 붉은 망토의 남자도 비로소 입술을 열었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데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드는 모습에서는 품위와 위엄이 넘쳐흘렀다.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대로에서 신분을 확인하시다니, 무슨 일이 있나요?”

“별것 아닙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흔들리는 눈빛은 말과는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다.

위너드는 여전히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날카로운 눈빛을 고수했지만, 나는 궁금증만 더욱 커질 뿐이었다.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결국 남자의 입이 열렸다.


“……사교 파티 후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갑자기 사라져 버린 누이를 찾는 중입니다.”

슬픔이 어린 스산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 순간, 누군가 내 머리를 한 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얼얼해졌다.

남자는 멍하니 서 있는 내게 다시 한번 묵례와 함께 사과를 건네고는, 병사들에게 손짓했다.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그대로 나를 스쳐 재빠르게 멀어져 갔다.

하지만 나는 그 후로도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커다란 불안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초조함이 기분 나쁘게 전신을 감쌌다.


“마차를 불러 오도록.”

그때 위너드가 호위에게 짧게 명했다.


“네!”

그러자 그는 씩씩하게 대답하고 마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을 향해 재빨리 멀어졌다.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나까지 위너드가 정말 일행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밤이 늦었으니 이만 가자.”

애꿎은 입술만 짓씹고 있던 찰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드니 다정하게 빛나는 녹안이 들어왔다.

다짜고짜 나타나 예감이 좋지 않다며 날을 세우던 것과는 달리 한결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그는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미소 지었다.


“내일 아침 일찍 사절단 회의가 있잖아.”

“어? 아, 그렇지. 참.”

물론 내 스케줄 같은 건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이젠 그가 모르고 있다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지금 당장 눈을 붙인다 해도 얼마 못 잘걸.”

“뭐야……. 집사도 아니고…….”

짐짓 투덜대며 걸음을 옮기자, 그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빙글 몸을 돌리더니, 비어 있는 반대쪽 손을 올렸다.


“원하신다면.”

나른한 미소와 더불어 기분 좋게 서늘한 손가락이 내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뭐든 되어 드리고말고.”

농담처럼 느껴지는 가벼운 말투였지만, 목소리만큼은 꽤 진지했다.

나도 그를 따라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내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어깨에서 비로소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차갑고 싸늘하기만 했던 달빛이 조금은 은은하게 느껴졌다.

* * *

그날 이후, 각종 무도회와 만찬 등 수없이 많은 행사가 줄줄이 이어졌다.

촘촘히 짜인 일정을 소화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와중에도, 마음속 한편에는 내내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아델리움을 주름잡는 귀족들과도 여러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바이올렛 영애에 대한 정보는 전무했다. 누이를 찾는다는 남자에 대해서도 궁금했지만, 알 길조차 없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일을 공공연하게 입에 담을 순 없었으니까.

게다가 아델리움 왕국의 사교계에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라 남몰래 정보를 수집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각고의 노력 끝에 나는 이 흉흉한 사건에 대한 단서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개중에는 불안감을 덜기 위해 아무 상관도 없는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도 존재했으니까.


“정말 너무 무서워서 살 수가 없어요. 평화롭기만 하던 왕국에 대체 이게 무슨 변고인지…….”

무도회 도중, 쉬기 위해서 살짝 빠져나온 테라스에서 만난 아비넬 백작 부인이 짙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잘생기고 젊은 남자였고, 또 붉은 망토에 방패 모양의 수가 놓여 있었다고 했죠? 에트리아 가문의 바르시온 님이 틀림없어요. 누이라면, 그를 소년 시절부터 보살펴 준 셀리나 영애고요. 사실…….”

아비넬 부인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낮아졌다.


“두 분이 진짜 가족은 아니랍니다. 피도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요. 아무튼, 셀리나 님 덕분에 바르시온 님은 원정을 떠날 만큼 멋진 청년으로 성장했고, 원정에서 돌아오면 가문끼리 약속했던 분과 맺어지기로 되어 있었죠. 셀리나 님은 저택을 떠날 예정이었고요. 미리 살 곳도 알아보고, 사업을 구상하는 등 여러 준비도 차근차근히 해 놓으셨답니다. 그런데…….”

“혹시 셀리나 님의 생각대로 떠나지 못했나요……?”

백작 부인이 잠시 두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맞아요. 바르시온 님이 절대 허락하지 않았죠. 게다가 그분은 정해져 있던 약혼을…….”

“……멋대로 파기해 버렸겠죠?”

안 봐도 뻔하지, 뭐.

‘내 곁에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 주겠다고 했잖아.’라든가, ‘대체 날 두고 어디 가려는 거지?’ 등의 대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고서는 반드시, ‘소유욕이 가득 서린 눈빛’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살벌하게 미소’ 짓겠지.

하, 그걸 본 이상 게임 끝이다. 나 같아도 참지 못하고, 홀린 듯 주식을 사들일 게 분명…….

아차.

나는 얼른 생각을 갈무리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백작 부인의 얼굴이 이내 사색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이야기를 입에 담았군요!”

그녀는 실수했다는 듯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함부로 말을 뱉어 무례를 저지른 점, 부디 용서해 주세요.”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알고 있는 내가 셀리나 영애와 관련된 사람이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부인을 진정시켰다.

그냥 추측일 뿐, 나는 그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거듭한 뒤에야 비로소 부인은 조금 안심하는 듯했다.

물론 불안한 눈빛은 여전했지만.

그 뒤로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지만, 나로선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충분하다면 충분했다.

가짜 시한부에 이어, 집착 남주를 키워 버린 여주까지.

모두 주인공 후보가 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설정이었다.

……심지어 그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실종되었으니.

역시 찝찝해. 어딘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다.

마침 술을 가득 얹은 쟁반을 들고 지나가는 시종이 보였다. 나는 그를 불러 세워 갓 따른 시원한 샴페인을 한 잔 얻었다.

차가운 샴페인을 쭈욱 들이켜자 비로소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무도회장 안으로 다시 들어서자, 마침 창가 근처에 서 있던 누군가가 밝은 미소로 알은척을 해 왔다.


“로렐라 님,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샬로네즈 왕녀였다.

봄의 새싹만큼이나 고운 연둣빛 드레스와 화려한 에메랄드 목걸이, 그리고 순금과 진주로 된 꽃 모양 머리 장식까지.

오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는, 파티 내내 즐거운 분위기를 주도했다. 어디든 웃음소리가 퍼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왕녀가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어머. 얼굴이 좀 안 좋으신데, 괜찮으세요……?”

걱정을 듬뿍 담은 채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상냥한 눈동자가 느껴졌다.


“아, 아니에요. 조금 피곤한가 봐요.”

“어머…… 역시 일정이 너무 벅찬 모양이군요.”

샬로네즈의 하얗고 고운 미간이 구겨졌다. 그녀는 내 팔을 꼭 잡은 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가 방으로 모셔다드릴 사람을 불러 드릴게요. 잠시 기다리시면…….”

그때였다. 누군가가 재빠르게 다가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으십니까?”

레어넌이었다.


“아, 그게…….”

얼른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읏.”

갑자기 피부를 찌르는 통증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입술을 비집고 짧은 신음이 새어 나가자 레어넌이 황급히 내 어깨를 부축했다.


“어서 가시지요.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레어넌은 그렇게 말하고 왕녀를 향해 빠르게 묵례를 건넸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여전히 내 팔을 고집스레 잡고 있는 샬로네즈 때문이었다.


“……샬로네즈 님?”

조심스레 그녀의 이름을 부른 순간.


“아, 죄송해요. 로렐라 님이 걱정된 나머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느라…….”

그녀가 눈썹을 추욱 늘어뜨린 채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떨궜다.


“계속 이렇게 무리하다가 탈이 나실까 걱정이에요. 폐하께 말씀드려 일정을 좀 조율해 보겠어요.”

“아니에요. 그냥 조금 피곤할 뿐인걸요. 제가 원래 집이 아닌 곳에서는 잠을 설치는 편이라…….”

나는 크고 맑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부러 활짝 미소 지었다.


“그러니 부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네?”

“로렐라 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쑥쓰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여 미소 짓던 샬로네즈는 이내 화들짝 놀라며 내 팔을 얼른 놓아주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이렇게 잡고 있을 때가 아니죠.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네?”

그러자 주위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 게 좋겠다며 한마디씩 보탰다.

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곤 조용히 회장을 빠져나왔다. 문밖으로 나서자 안쪽과는 달리 한결 서늘한 공기가 몰려왔다.

나와 보폭을 맞추며 함께 걷던 레어넌이 걱정을 가득 담아 물었다.


“어디가 불편한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바로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녜요. 정말 아무렇지 않아요.”

“하지만…….”

“조금 피곤할 뿐인걸요. 침대에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들 것 같아요.”

레어넌은 잠시 고민하다 하는 수 없다는 듯 근심 어린 시선을 맞춰 왔다.


“……만약 내일도 컨디션이 안 좋으시다면, 바로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지금 미리 다짐을 받아 두려는 듯 낮게 읊조리며.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레어넌을 바라보며 끄덕였다.

하지만 고개를 바로 한 순간.

입가에 걸렸던 미소를 단번에 감췄다. 조용히 두 눈을 여러 번 감았다 떠 보았지만 딱딱하게 굳은 눈가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나는 못이라도 박힌 듯, 드레스 소매 밖으로 드러난 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샬로네즈 왕녀가 잡고 있었던 곳에, 네 개의 붉은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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